경기도, 인천

석모도 보문사, 강화산성 서문

큰누리 2024. 12. 10. 17:15

 

≪석모도 보문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석모도 낙가산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창건하여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낙가산이라 하였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절의 이름을 보문사라 하였다. 경내에는 나한실(석실), 마애석불좌상, 맷돌, 향나무 등이 인천지정문화재 및 인천시문화재자료, 인천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또한 보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한국33관음성지'이기도 하다.

* PS : 한국 3대 관음성지 - 강화도 석모도 보문사, 부산 보타산 해동용궁사,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 PS : 한국 33관음성지 (재미삼아 찾아보긴 했는데 불자가 아니라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석모도 보문사 안내도(주요 전각만 표시)>

일주문부터 올라가는 길도 가파른데 눈썹바위 아래의 마애석불좌상까지 가려면 계단을 올라가려면 고행길이 따로 없다. 하지만 계단의 연등과 정상에서 보는 보문사와 서해바다는 충분히 보상이 된다. 

* 다음 숫자의 의미는? (12-32-21-21-21-관음성전비-6-12-6-8-16-4-8-8-6-11-9-8-6-8-8-9-8-6-10-12-6-6-11-소원지 다는 곳-6-8-8-6-6-4-4-6-8-8-4-4-4-4-9-6-6-7-8) ←보문사 소원지 이루는 길부터 마애석불좌상까지의 계단수(총 415개, 한 두개는 차이가 날 수 있음)

 

<석모도 보문사 일주문>

일주문은 기둥이 1쌍이란 뜻이라는데 보문사 일주문은 무려 3쌍이다.

 

<석모도 보문사 경내>

왼쪽의 황금용 뒤는 용왕전, 그 위는 와불전, 중앙은 법음루이다. 오른쪽 위로 눈썹바위와 마애석불좌상이 얼핏 보인다.

 

<석모도 보문사 용왕전과 내부>

용왕전 안에는 오방신왕 상이 있다.

 

<보문사 용왕전의 5방신왕들>

윗단은 북방 흑룡신왕서방 백룡신왕, 두 번째은 중방 황룡신왕, 세 번째단은 동방 청룡신왕남방 적룡신왕이다.

 

<석모도 보문사 용왕전 앞의 황금용과 잉어상>

가족들과 들렀던 8월 10일에 촬영한 사진이다. 이날의 관광(!) 포인트는 마애석불좌상으로 오르는 계단의 연등이었다!

 

<석모도 보문사 법음루와 그 옆의 윤장대>

 

<석모도 보문사 산신각과 주불전인 극락보전>

 

<석모도 보문사 전각 내부>

윗단은 주불전인 극락보전 내부, 두 번째단은 산신각과 석실(석굴사원) 내부, 세 번째 단은 와불전 내부 사진이다. 와불전 내부는 촬영금지도 모자라 신자분이 지키기까지 했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1972년 정수스님이 중수하였다. 법당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대세지보살(사진 左)과 관음보살(右)이 모셔져 있다.

 

<석모도 보문사 와불전, 석실(석굴사원)>

 

<보문사 눈썹바위(마애불좌상)와 석실(석굴사원)>

 

 <보문사 천인대의 33관음보탑과 오백나한상>

오백나한은 2009년 와불전과 함께 천인대에 조성되었다.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로 창건 이후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크기가 커서 천명이 앉을 수 있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진신사리가 봉안된 33관음보탑을 중앙에 두고 오백나한이 감싸는 형상이다. 나한이란 아라한(阿羅漢)의 약칭이며 범어 아르한(arhan)의 음역이다. 나한은 불제자들이 도달하는 최고의 계위로 이들은 더 이상 생사윤회의 흐름에 태어나지 않으므로 최고의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며 매우 덕이 높은 성자로 추앙받았다. 나한이 보살과 다른 점은 대개 실존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달라진 보문사 오백나한상>

왼쪽은 12월 5일 답사 때 본 오백나한이고, 오른쪽은 8월 10일에 본 오백나한이다. 그 동안 나한들의 옷이 흰색에서 칼라로 바뀌었다!

 

<33관음보탑과 오백나한상에서 본 보문사>

왼쪽부터 삼성각, 극락보전, 윤장대, 법음루.

 

<보문사 극락보전 옆, 마애석불좌상 가는 길>

 

<마애석불좌상 가는 계단에서 내려다본 보문사>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가는 계단>

 

<마애석불좌상 가는 계단의 소원지 거는 곳>

 

<밤에 아래에서 본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앞>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이 석불좌상은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주지 배선주가 1928년 낙가산 중턱의 일명 눈썹바위 암벽에 조각한 것이다. 불상은 뒤의 둥근 빛을 배경으로 네모진 얼굴에 보석으로 장식된 커다란 보관을 쓰고,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으며, 연꽃 받침 위에 앉아 있다. 얼굴에 비해 넓고 각이 진 양 어깨에는 승려들이 입는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는 커다란 '만(卍)' 자가 새겨져 있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관음 신앙 3대 성지로서 중요한 곳이다.

 

<옆에서 본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아래 바다 풍경>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야경>

 

<밤에 본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가는 계단의 연등>

 

<강화읍 신문리 강화산성>

 

<강화읍 신문리 강화산성 서문(첨화루(瞻華樓)>

강화산성은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조선 시대의 산성이다. 13세기 몽골의 침입 때 강화로 천도한 후 흙으로 쌓았고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원종 11년 개경으로 환도하면서 강화조약 조건으로 강화도에 지은 성을 헐면서 사라졌다. 이후 조선시대에 강화산성의 내성이었던 강화성을 다시 축조했지만 병자호란 때 청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숙종 3년에 성을 보수하면서 모두 돌로 쌓고 넓혀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