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군(지석묘)≫
고인돌(지석묘)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석실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석실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오상리 고인돌은 탁자식으로, 이곳에서 돌칼, 돌화살촉, 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오상리 고인돌은 2000년 4월부터 2001년 10월까지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 발굴단(단장 이형구)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고려산 서쪽 낙조봉의 능선 끝자락에 위치한 해발 76m의 조그마한 야산의 낙타 등 같은 능선에 12기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 무덤의 축조 방식과 하부 구조는 고임돌에 쐐기를 박아 바로 세우고 마감돌로 막은 후, 시신을 덮고 덮개돌(蓋石)을 덮은 다음 주변에 돌을 쌓은 적석, 또는 포석(鋪石)방식을 사용하였다.
* 답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일행과 나는 강화 오상리 고인돌(지석묘)군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것에 동의했다.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군 배치도>
고인돌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궁금한 것은 못 참는 내가 촬영한 오상리 고인돌 70여개의 모든 사진을 대조해서 총 12기의 번호를 확인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ㅎㅎ... 검정색은 비교적 온전한 것, 빨간색은 받침돌만 있는 것이고, 초록색 66호는 덮개석만 있다.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군을 위, 아래에서 본 모습>
비교적 온전한 형태의 고인돌(지석묘)은 7기, 받침돌이나 덮개돌 일부만 남은 것은 5기이다. 다른 고인돌이 바닷가 등의 평지에 있는 것(돌을 옮기기에 수월)에 비해 이곳은 지대가 제법 높은 곳에 있는 점이 특이하다고 한다.
<중간쯤에서 본 아래쪽의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
테두리 밖으로 가장 멀리 있는 것은 67호와 59호(받침돌), 테두리 안쪽 중앙은 58호(받침돌)와 66호(덮개석), 왼쪽 근경은 61, 62호, 오른쪽 근경은 65호이다.
<받침돌과 덮개석만 남은 오상리 고인돌(지석묘)>
윗단 왼쪽은 63호, 오른쪽은 60호이다. 아랫단 왼쪽은 58호, 오른쪽은 덮개석만 있는 66호(위의 온전한 것은 57호)이다.
<가장 작은 오상리 고인돌(지석묘) 67호>
돌 테두리 밖 가장 아랫쪽에 있다.
<강화 오상리 고인돌 62호>
<그룹으로 본 오상리 고인돌(지석묘)>
윗단은 아래쪽에서 올려다 본 모습, 두 번째 단은 옆(62호쪽)에서 본 모습, 세 번째 단은 윗쪽에 있는 65호와 62호이다.
<강화 오상리 고인돌 56호를 사방에서 본 모습>
고인돌은 자연석에 가까워서 어느 위치,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두 다르기 때문에 대조하는데 애를 먹었다.
<강화 오상리 고인돌 61호를 사방에서 본 모습>
<강화 오상리 고인돌 57호를 다른 위치에서 본 모습>
<강화 오상리 고인돌 64호를 사방에서 본 모습>
<강화 오상리 고인돌 65호를 사방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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