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5진 7보 54돈대≫
진(鎭)과 보(堡)는 군사상 중요한 지역, 주로 해안 변방에 설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던 군사주둔 지역이다. 진과 보는 현대의 군대체계로 비유하면 진(鎭)은 대대병력, 보(堡)는 중대병력이 머물렀으며, 돈(墩)은 3~5명 정도가 지킨 초소이다. 진이나 보에는 일반적으로 포대가 소속되어 있었다.
* 강화 5진 : 월곶진, 제물진, 용진진, 덕진진(사적 제226호), 초지진(사적 제225호)
* 강화 7보 : 광성보(사적 제227호), 선두보, 장곶보, 정포보, 인화보, 철곶보, 승천보
* 강화 54돈대 : 갑곳, 계룡, 덕진, 택지, 장곶, 광성, 선수(송강), 무태, 좌강, 초지, 삼암, 분오리, 손돌목, 가리산, 걸곶, 건평, 검암, 광암, 굴암, 귀등, 낙성, 동검, 망양, 망월, 망해, 미곶, 북일곶, 불장, 빙현, 섬암, 석각, 석우, 숙룡, 속우, 송곶, 양암, 오두, 염주, 옥창, 용강, 월곶, 의두, 인화, 작성, 장자평, 적북, 제승, 천진, 철북, 추루, 화도, 후애, 휴암, 용두돈대
<초지진>
위치 : 인천광역시 강화도 길상면 초지리.
경기도 안산시에 있던 수군 기지를 효종 7년(1656)에 이곳으로 옮겨 설치했다. 강화 지역은 1870년대 통상을 요구하며 침략한 열강들과 격렬히 싸웠던 곳으로 초지진은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전력의 열세로 미군에게 대부분의 시설이 파괴되었고, 고종 12년(1875) 운요호 사건 때에는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1876년에 조일수호조규가 체결되며 이후 우리나라는 주권 상실의 시련을 겪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거의 허물어진 것을 1970년대에 복원하고 실제로 사용한 대포를 전시하였다.
<초지진돈대>
<초지진돈대 외벽과 소나무의 포탄 흔적>
윗 사진 오른쪽 소나무와 그 앞쪽 벽에 남아있는데 1870년대 전투 중에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
<초지진돈대 내부와 당시에 사용한 대포(홍이포)>
<초지진의 여장(성가퀴), 치첩, 포좌(대포 구멍)>
이날 굴암돈대와 망양돈대만 계획에 있었으나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 이곳 초지진에 들른 덕분에 둘러볼 수 있었다. 초지진돈대는 비교적 규모가 작고 대포 구멍이 2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벽 위에 방어를 위해 세운 윗단을 여장(성가퀴)라고 하며 성가퀴에는 활을 쏠 수 있는 작은 네모 칸(치첩)과 포를 쓸 수 있는 다소 큰 공간들이 있다. 사진 아래의 동굴 같은 곳에 구멍이 뚫린 공간은 포좌(대포 구멍)이다.
<굴암돈대>
위치 : 인천광역시 강화도 양도면 하일리.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유수 윤이제가 해안 방어를 목적으로 함경·황해·강원 3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을 동원해 80일 동안 쌓은 48개의 돈대 중 하나로 진무영 직할의 영문 소속 돈대이다. 높이 3m, 둘레 70m의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대포를 올려놓는 포좌를 4곳에 설치하였다. 돈대 위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하기 위해 덧쌓은 낮은 담장을 두른 흔적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굴암돈대 주변에 해병대 상륙기습훈련장이 있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해안 요충지가 비슷한 것을 증명한다.
<굴암돈대 출입구와 굴암돈대 내부, 포좌>
해안쪽으로 볼록한 반원(타원)형이며 4개의 포좌가 있다. 세 번째 사진은 4개의 포좌 중 하나이며, 맞은편은 석모도이다. 네 번째 사진은 안쪽에서 본 출입구 방향.
<굴암돈대 앞 좌, 우 풍경>
<굴암돈대 안에서 본 출입구쪽>
<외포항의 망양돈대 진입로>
지금은 석모도가 강화도 본섬과 다리로 이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배를 타야만 석모도에 갈 수 있었다.
<외포항 풍경>
썰물로 드러난 광활한 서해안 개펄에 일부로 찍은 것 같은 갈매기 발자국들이 예쁘다.
≪삼별초 항쟁비와 삼별초의 투쟁≫
삼별초 항쟁비 위치 : 강화 내가면 외포리.
좌별초·우별초·신의군으로 이루어진 삼별초는 고려 원종이 몽골에 복속하여 개경으로 환도하자 강화에서 봉기하였다. 1270년 6월 1일 강화도에서 배중손을 중심으로 왕족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관부를 설치한 후 전라남도 진도로 이동하여 항쟁하였으며, 다시 제주도로 거점을 옮겨 여몽연합군에게 무너질 때까지 항전을 지속하였다.
<강화도 외포리의 삼별초 항쟁비와 진돗개, 돌하르방>
삼별초 항쟁비는 항쟁비는 삼별초가 몽골의 지배에 항거하여 궐기한 유허에 세워졌다. 진돗개와 돌하르방은 1989년 자매결연을 맺은 강화군-진도군-북제주군의 상징물을 삼별초 원정길인 3개군에 설치하고 뜻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망양돈대≫
위치 : 강화 내가면 외포리.
망양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된 48개 돈대 중의 하나로 해안으로 상륙하는 적군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된 중요한 방어시설물이다. 당시 돈대에는 곡식과 땔감을 비축하고 3명이 1개조로 상주하며 경게 기능을 유지하였다. 돈대 윗부분에는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쌓은 낮은 담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망양돈대 입구>
삼별초 항쟁비 위의 산에 있으며 상당히 가파르다. 흙으로 쌓은 초지진돈대나 굴암돈대와 달리 포좌(대포 구멍) 윗단을 견고하고 넓게 돌로 쌓았다.
<망양돈대 내부의 성벽과 성가퀴(여장), 치첩, 포좌>
성벽 윗단의 요철 형태를 성가퀴(여장)라고 하며, 성가퀴(여장)의 작은 구멍들은 활을 쏘는 치첩이고, 아래의 큰 구멍은 포좌(대포 구멍)이다. 망양돈대에는 4개의 포좌가 있다.
<돌로 쌓은 견고한 망양돈대>
<망양돈대 아랫단의 포좌(대포 구멍)들>
<외포항 젓갈 수산물 직판장과 밖에서 말리는 생선들>
<외포항의 포토존>
예전에 이곳은 석모도행 배 선착장이었지만 지금은 작은 어선들만 보였다.
<점심을 먹은 석모도 '강화 꽃게 사랑'>
<'강화 꽃게 사랑'에서 우리가 먹은 된장찌개와 밴댕이회무침>
된장찌개는 개운하고 맛있었다. 밴댕이젓, 도토리묵, 말린새우도 맛있었는데 메인인 밴댕이회무침은 푸짐한 편이지만 좀 밋밋했고(조금만 새콤했더라면...), 아삭하고 쌉싸름한 맛이 일품인 강화도 특산품 순무김치는 질컥거려서 많이 아쉬웠다. 귀갓길에 보문사 앞에서 11,000원을 주고 산 순무김치는 아주 맛있어서 잘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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