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전등사 관람, 주차 안내≫
* 관람 : 2023. 5. 4부터 무료 개방
* 개방시간 : 09:00~17:30
* 주차(종일) : 소형 2,000원, 대형 8,000원
* 기타 : 반려동물 동반 입장 시 꼭 서약서 작성할 것
≪강화도 삼랑성 전등사≫
'우리 역사와 함께한 현존 최고(最古)의 사찰'
전등사는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 아도화상이 창건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사적 130호인 삼랑성(三郞城)으로 둘려싸여 있다. 사적 1점, 보물 6점, 시문화재 14점 등 많은 문화재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정족산사고, 가궐(假闕) 터, 정족진지, 의병 전투지 등이 있는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한 유서 깊은 곳이다. 대웅보전의 전설의 나부상, 열매가 열리지 않는 은행나무와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 주엽나무, 엄나무, 왕소사나무, 단풍나무, 노송 군락지 등 다양한 수목이 바다와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상은 입구의 '불교문화유산 안내소'의 내용---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천년고찰'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창건했으며,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고려 충렬왕 8년(1282) 정화궁주의 옥등 시주와 인기스님이 남송에서 대장경을 들여오면서 '부처 법의 등(燈)이 전해진 곳'이라 하여 전등사(傳燈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옥등'의 밝음도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며, '전등'은 부처님의 지혜가 전해진 것을 뜻한다. ---이상은 대조루 아래 안내문의 내용---
≪가깝고 볼거리 많은 강화도≫
지난 11월 25일 국립민속박물관 답사 때 초지진, 굴암돈대, 망양돈대 등의 방어시설과 능내리의 가릉, 석실분 등의 고려시대 무덤, 석모도 보문사, 오상리 고인돌군 등을 다녀온 후 20여 일만에 다시 강화를 찾았다. 외국에 사는 동생이 입국하여 머무는 동안 운전을 할 사람이 쉬는 날마다 1곳을 정해 자매들이 다녀왔는데 강화도도 그곳 중 하나였다. 강화도는 워낙 볼거리가 많지만 외국에 오랫동안 거주하는 동생을 생각하여 모든 것을 두루 볼 수 있는 전등사를 골랐다. 가까운 곳이다보니 전등사를 보고도 시간 여유가 있어서 삼랑성을 반쪽이나마 돌아보고, 정족산사고지도 둘러보았다. 12월 15일임에도 날씨가 푸근하고 좋아 여행이 즐거웠고, 맛있는 음식과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마신 커피도 좋았다.
내가 이번에 특히 좋았던 점은 잎이 거의 진 전등사 입구 숲길의 고목들이었다. 은행나무, 단풍나무 같은 잘 알려진 나무부터 이름 모르는 나무까지 수형이 아름답고 세월의 흔적에 기품을 더한 아름다운 나무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겨울에 들른 적이 없어서 나목들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졌을 성 싶다. 작년(2023) 가을과 지난 봄(2024)에 '갑사로 가는 길', 정확히는 길가의 나무들이 좋아 두 번 연이어 들린 공주 계룡산 갑사 못지 않은 아름다운 나무들을 새삼 느낀 시간이었다.
<동문 주차장의 상가들>
연탄도 새삼스럽고, 필요할 때마다 건물을 덧댄 듯한 가게들이 정겨웠다. 나오는 길에 이곳 어디에선가 인삼막걸리랑 도토리묵 가루를 샀다.
<주차장에서 전등사 가는 길>
이곳부터 아름답고 오랜된 나무들이 전등사 바로 아래(대조루)까지 이어진다. 이번에 발견한 전등사의 또다른 매력이었다.
<전등사 아래의 상가와 전등사 불교문화유산 안내소>
이곳은 예전에는 매표소가 있던 곳인데 2023년 5월부터 무료입장이라 전등사 불교문화유산 안내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신 주차비(소형 종일 2,000원 / 대형 8,000원)만 받는다. 아래 사진의 상가 밖으로 드러난 계량기가 새삼스럽다.
<전등사로 들어가는 통로 삼랑성(정족산성) 동문>
왼쪽은 밖에서, 오른쪽은 안에서 본 모습이다. 안내문에 '동문 방면'이라고 되어있는데 원래는 이 아치형 윗쪽에 건물이 얹혀진 누각 형태였을 것 같다. 삼랑성(三郞城)은 일명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하며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있다. 조선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 160여 명이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해 오자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물리쳤다.
<강화 삼랑성(정족산성)의 양헌수 승전비>
<전등사 입구 소나무의 일제에 의한 송진 채취 흔적>
전등사 동문 안쪽 길목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은데 이 소나무는 수령 300년으로 일제가 태평양 전쟁 때 무기의 대체 연료로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뚫은 구멍이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사찰의 종, 민가의 숟가락과 젓가락까지 빼앗고 나무조차 이렇게 만들었다.
<반쯤 누운 모양이 아름다운 소나무>
위 소나무는 반쯤 눕긴 했지만 늦게 태어난 덕분에 일제에 의해 송진을 채취할 목적으로 구멍이 뚫리진 않았다. 아래의 나무는 選佛場(선불장) 아래에 있는 단풍나무인데 전등사 주변에는 수령이 오래되고 수형이 아름다운 단풍나무들이 많다. 특히 대조루 옆의 단풍나무가 탁월하다.
<전등사 입구의 큰 나무(느티나무)>
이 나무는 1615년 전등사를 재건할 당시 풍치목으로 심은 나무로 추정된다. 주변에 오래된 보호수 은행나무와 노송은행나무, 동자승은행나무가 있다.
<진무중군이용의(鎭撫中軍李容儀) 공덕불망비>
보호수 은행나무, 노송은행나무와 동자승은행나무 앞에 있는 공덕불망비이다.
<전등사 범종루와 대조루(對潮樓)>
<전등사 대조루(對潮樓)> 인천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전등사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에 세운 누각이다. 전등사 대조루가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말 대학자 목은 이색(李穡)의 '전등사 시'에서 읊은 시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말에 이미 대조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749년(영조 25)에 주지스님 초윤이 재건하였고, 1932년 사찰 안의 건물들을 수리하면서 대조루도 다시 지었다.
<전등사 대조루 동쪽의 보호수 단풍나무>
수령이 약 280년인 청단풍으로 한 밑동에서 여러 가지가 나와 웅장하다. 전등사를 찾는 이에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보배 같은 나무이다.
<전등사 경내와 느티나무>
왼쪽의 느티나무는 400년 수령의 보호수 '전등사 느티나무'이다. 전각은 왼쪽 원경부터 철종(각), 극락전, 명부전이다.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지정 : 보물.
대웅보전은 절의 중심 건물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다.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은 화려한 내부장식과 능숙한 조각 솜씨가 돋보이는 건물로 조선 중기 광해군 13년(1621)에 재건하였다. 지붕 처마 무게를 받치는 구조인 공포가 기둥 위뿐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짜여 있는 다포양식 건물이다.
건물 네 모서리 추녀 밑에는 벌거벗은 사람 조각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절을 짓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막 여인이라고 한다. 주막 여인이 하루 세 번,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죄를 씻고,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의미로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한다. 천장은 용, 극락조, 연꽃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부처를 모신 불단과 불상 머리 위의 닫집 장식이 화려하다.
<전등사 목조 석가여래 삼불 좌상, 업경대, 수미단>
전등사 목조 석가여래 삼불 좌상 : 보물.
전등사 업경대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전등사 대웅전 수미단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강화 전등사 목조 석가여래 삼불 좌상은 조선 인조 원년(1623)에 수연을 비롯한 6명의 승려 조각가가 제작한 불상이다.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란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이 삼불 좌상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여래, 왼쪽에 약사여래가 모셔져 있다.
삼불 좌상 앞 좌우에 있는 *업경대는 다른 사찰에서는 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 염라대왕이 망자의 죄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전등사 업경대는 인조 5년(1627)에 제작되었으며 나무로 만든 사자 등 위에 커다란 불꽃 문양으로 둘러싸인 거울이 꽂혀 있는 형태이다. 오른쪽에 황색 사자가, 왼쪽에 청색가 거울을 받치고 있다.
*수미단은 법당 내부에서 불상을 모셔놓은 단으로 불교에서 수미산은 세계의 중앙에 있으며, 여기에 부처가 있다고 여긴다. 전등사 대웅보전의 수미단은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3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단에는 수미산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전등사 대웅보전 네 모서리 추녀 밑에는 벌거벗은 인물상>
전설에 따르면 절을 짓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막 여인이라고 한다. 주막 여인이 하루 세 번,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죄를 씻고,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의미로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한다.
<전등사 약사전과 내부> 지정 : 보물
예전에는 본 기억이 없는 불상이고, 특히 뒤의 금색 소형 불상(천불?)들은 더욱 그렇다. 약사전은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으로 강화 약사전에는 석불 좌상, 후불도, 현왕도가 있으며, 모두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등사 약사전의 설립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광해군 13년(1621)에 고쳐 지은 대웅전과 건축 양식이 비슷하여 비슷한 시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지붕의 처마 무게를 받치는 공포가 다포양식이다. 천장 바깥쪽은 꽃과 물고기 조각으로 꾸몄으며 안쪽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한 다음 연꽃과 덩굴무늬를 그려 화려하게 장식했다.
<전등사 범종루>
<전등사 느티나무와 소원지를 거는 시설>
전등사가 조선 광해군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15년에 재건할 때 풍치목으로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이다. 이 나무는 전등사를 찾는 이들의 쉼터로 주변의 큰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며 운치를 더하고 있다.
<전등사 명부전, 약사전, 관음전>
<전등사 철종> 지정 : 보물.
전등사 철종은 송나라 때 숭명사에서 무쇠로 만든 중국 종이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병기를 만들려고 지금의 인천광역시 부평 병기창에 가져다 놓은 것을 광복 후에 이곳으로 옮겼다. 종의 꼭대기에는 용 두 마리로 만든 종 고리가 있다. 종의 몸통 윗부분에는 팔괘가 있으며, 그 밑으로 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정사각형 여덟개를 새겼다. 이 정사각형 안에는 중국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라는 것과 북송 철종 4년(1097)에 만들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전등사 철종 보호각의 자물쇠>
전등사 다른 전각에서도 이 자물쇠를 본 것 같다. 정족산성사고지 삼문 문고리도 전통적인 것을 사용했는데 이것도 그렇다.
<발굴 기법 작가 이영섭의 어린왕자들>
발굴 기법 작가인 이영섭의 전등사 찻집 앞의 '어린왕자(샘)', 약사전 앞의 '어린왕자 2020'이다. 발굴 기법은 땅을 파서 대상을 음각한 후 그곳을 거푸집으로 삼고, 그 안에 혼합재료를 부어서 굳혀 작품을 만드는 기법이다.
<전등사 극락전과 아래의 마애불>
<전등사 명부전>
수십년 전에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명부전 앞에 걸려 있던 하얀 연등이 신기해서 기억에 남았다. 당시에는 사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고 어느 시대의 무슨 절 하는 식의 국사책에서 배운 내용이 전부였다. 명부전은 시왕이나 동자, 장군상들, 특히 장군상의 표정이 가장 역동적이어서 지금은 사찰 전각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곳이 되었다. 주불상은 지장보살이다.
<전등사 명부전과 시왕(十王)像>
이 참에 시왕(十王)에 대해 살펴보았다. 1왕부터 10왕까지가 왼쪽부터 순서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처럼 혼재되어 있다. 윗단 왼쪽은 진광(秦廣1)대왕과 송제(宋帝3)대왕, 오른쪽은 오관(五官4)대왕과 초강(初江2)대왕, 아랫단 왼쪽은 염라(閻羅5)대왕과 태산(泰山7)대왕과 도시(都市9)대왕, 오른쪽은 오도전륜(五道轉輪10)대왕, 평등(平等8)대왕, 변성(變成6)대왕이다.
<전등사의 전각들>
왼쪽 원경부터 극락전, 명부전, 약사전, 관음전.
<전등사 選佛場과 장독대>
<전등사 극락전과 뒤편의 불상>
이곳은 비개방구역인데 모르고 들어가서 그 참에 한 컷.
<강화 정족산성진지에서 본 전등사>
전등사의 모든 전각이 보이는 유일한 장소이다. 이 위치에서 왼쪽으로 조금 더 오르면 강화 정족산사고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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