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북촌 답사2- 가회동 백인제 가옥, 가회동성당, 서울 재동 백송

큰누리 2024. 12. 16. 20:08

 

≪손병희 선생 집터≫

서울 종로구 가회동 170.

손병희 선생(1861~1922)은 구한말의 천도교 지도자이자 3·1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에 동학의 3대 교주가 되었으며,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3·1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에서 1919년 2월 28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었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 22호.

소재지 : 서울 종로구 북촌로7길 16 (가회동).

북촌의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백인제 가옥은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에 의해 1913년에 건립되었다. 주변가옥 12채를 사들여 마련한 907평의 큰 대지에 압록강 흑송을 사용하여 건축하였다고 한다. 사랑채와 안채가 확연히 분리되는 전통한옥과 달리 안채와 사랑채가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당시 한옥에서 보기 힘든 2층도 있다. 본채 전체에 유리문을 달았고 사랑채 앞으로 넓은 정원을 조성한 것도 한옥에 적용한 근대적 요소이다. 사랑채 뒤쪽으로 난 아름다운 오솔길을 오르면 휴식공간인 별당채가 있다. 본 가옥의 마지막 소유주로서 1944년부터 거주하였던 외과의사 백인제 박사의 이름을 따서 문화재 명칭이 부여되었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 입구>

 

<가회동 백인제 가옥 문간채>

문간채란 명칭은 따로 없지만 대문 안쪽으로 연결되어 있어 임의로 붙였다. 안내문에는 '제1영상실'이라고 되어 있다.

 

<백인제 가옥 사랑채를 다른 방향에서 본 모습>

윗 사진 왼쪽은 작은 사랑방, 오른쪽(정면)은 사랑방이다. 사랑방은 바깥주인이 거처하는 방으로 손님을 맞거나 서재의 기능을 했던 방이다. 방의 4면이 마루로 둘러싸인 독특한 구조이며 사랑대청은 전통적인 한옥의 우물마루 대신 장마루를 깔았다. 작은 사랑방은 아들이 거주하는 방으로 전통한옥에서는 사랑대청을 사이에 두고 사랑방과 마주보며 위치하지만 이 가옥에서는 사랑방 뒤의 복도로 연결되어 독립적이다. 두 번째 사진은 사랑방쪽에서 본 사랑채이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 사랑방과 작은 사랑방 내부>

 

<가회동 백인제 가옥 사랑채 정원>

사랑채는 백인제 가옥의 가장 중심에 있고, 사랑채와 사랑채 정원은 가옥 총면적의 절반을 차지한다. 2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위치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백인제 가옥 사랑채와 안채 뒤뜰>

이곳이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 안채 옆면과 부엌>

부엌은 안채의 뒤쪽(왼쪽 사진 앞쪽)에 있으며 특유의 온돌문화로 취사기능과 난방기능을 겸한다. 안방쪽으로 부뚜막을 만들어 음식을 만들고 동시에 난방도 한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 별당>

백인제 가옥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주인의 휴식공간으로 높은 누마루가 있어서 북촌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백인제 가옥 별당에서 본 안채(왼쪽)와 사무실>

 

<정독도서관 구내식당(소담정)에서 본 백인제 가옥 별당>

12월 19일, 개인적으로 다시 들렀을 때 정독도서관에서 본 백인제 가옥 별당이다. 종친부 터 아래로 보이는 'ㅁ'형의 기와지붕이 예사롭지 않아 확인해보니 바로 아래에 백인제 가옥이 있었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 안채>

안채는 집안의 안주인이 기거하는 장소로, 한옥의 가장 안쪽에 있으며 집안 이외의 남자는 출입할 수 없다. 윗 사진 중앙은 안방으로 오른쪽의 태극무늬와 벽돌장식이 인상적이다. 아래 사진은 윗 사진 왼쪽에 있는 할머니방과 옆에 딸린 작은 방이다.

 

<백인제 가옥 안채 대청>

 

<백인제 가옥 안채 안방>

 

<백인제 가옥 안채 할머니방>

 

<가회동 백인제 가옥 지하공간>

중문채 옆쪽 바닥에 있는 지하방공호이다. 1940년대에 세계 2차대전의 위험이 부각되면서 서울 일대에 방공호 조성이 성행할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촌 한옥마을의 산타클로스 조형물>

왼쪽은 가회동, 오른쪽은 헌법재판소 건너편의 재동에 걸린 산타클로스인데 모양이 똑같다.

 

<북촌 한옥마을(가회동) 풍경>

 

≪가회동 성당≫

북촌 한옥마을이 있는 계동은 한국 최초의 외국인 신부인 중국인 주문모가 조선에서 첫 미사를 집전한 곳이자 조선 왕실이 세례를 받은 역사적인 장소이다. 1795년 4월 5일 부활대축일에 주문모 신부는 계동 최인길 집에서 첫 미사를 열었고 가회동 성당은 첫 미사를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성당이다. 주 신부의 존재가 알려져 체포령이 내려지자 주 신부는 강완숙의 집으로 피신하였지만 최인길, 윤유일, 지황은 포도청에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이후 주 신부는 강완숙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활동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강완숙과 함께 순교하였다. 2014년 주문모 신부, 최인길, 윤유일, 지황, 강완숙 등 5명은 모두 복자로 시복되었다. 1955년 8월 9일에는 병인박해를 일으켰던 흥선대원군의 손자이자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이 이 성당의 관할구역인 안국동 별궁에서 당시 본당의 신부였던 박병윤 신부로부터 '비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같은 해 8월 14일에는 의친왕비 김숙도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가회동 성당>

 

<가회동 성당 은선재와 역사전시실>

 

<가회동 성당 은선재와 聖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동상>

 

<가회동 성당 대성전>

 

≪가회동 성당 역사전시실의 전시 내용들≫

<주문모 신부 초상, 황사영 백서, 천주교 관련 서적 등>

 

<주문모 신부의 첫 미사 집전>

최초의 외국인(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입국해서 최초로 포교의 거점으로 삼은 최인길 마티아의 집(계동 가옥)에서 1795년 4월 5일 미사를 집전하는 장면이다. 집주인인 복자 최인길 마티아, 복자 김종교 프란치스코, 복자 정약용 아우구스티노, 복자 최창현, 복자 윤유일 바오로, 복자 지황 사바, 황사영 알렉시오가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와 강완숙 골롬바 초상>

스테인드글라스는 성전 건립 당시 공헌한 이들에게 옛 성전을 해체하여 나누어준 것 중의 하나이고, 강완숙은 밀고로 체포령이 내려진 주문모 신부를 집에 6년 동안 숨겨주고 활동하게 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주 신부와 함께 순교하였다.

 

<복자 강완숙 롬바와 첫 여성 공동체>

강완숙의 신실한 믿음을 보고 주문모 신부가 평신도 전교 단체인 명도회 여회장으로 임명하자 그녀는 많은 동정녀들을 모아 가르치고 매달 6~10여 차례의 모임과 강습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그외에도 역적으로 몰려 기피대상이었던 은언군(사도세자의 서자)의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가 천주교를 믿도록 돕고 모임에 가입시켰다. 초기 한국교회가 성장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초기 천주교 선교 관련 그림과 성경 번역본>

은언군 부인과 며느리가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여신도들이 발각되어 끌려가는 장면 그림과 성경 번역본들이다.

 

<재동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최고 실정법인 헌법에 관한 분쟁이나 이의를 사법적 절차에 따라 해결하는 특별재판소이다. 윤석열대통령 탄핵 통과로 요즘 뜨거운 관심을 받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곳은 조선 말기 우의정이자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 선생의 집터(1807~1877)였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종합병원인 광혜원 터(1885~1887)였다가 1922~1927년 임종 때까지 이상재 선생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하다. 경기여고(1910~1945), 창덕여고(1949~1989) 터이기도 하다.

이상재 선생(1850~1927)은 한말 및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정치가·사회운동가이다. 서재필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구성하여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고, 1927년에 민족주의를 표방하여 좌·우익이 합작하여 만든 사회단체인 신간회의 초대회장이 되었다.

 

<서울 재동 백송>

지정 : 천연기념물, 수령 : 약 600년.

높이 16m, 밑부분 둘레 4.25m의 백송나무로 줄기 밑부분 46cm의 높이에서 2개로 갈라져 있다. 중국 북경이 원산지로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묘목을 가져다 심은 것으로 보이며, 번식력이 약해 그 수가 적다. 백골송, 백송, 백피송 등으로 불리며 우리나라에서는 정원수나 풍치수로 이용된다. 서울, 경기도 고양과 이천, 충북 보은, 충남 예산과 기타 지역에서 몇 그루가 자라는데 이 가운데 크기가 큰 몇 그루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점심을 먹은 북촌 재동 순두부집과 해물순두부>

식당 천장이 돋보였는데 사장님 말씀에 의하면 'ㅁ'자형 한옥의 뚫린 마당이었던 곳에 천장을 올려 식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불법개조로 해마다 벌금을 물고 있다고... 음식이나 밑반찬 모두 맛있었고, 계란말이를 무한리필 해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