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계서당 종택≫
국가민속유산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불야면 가평리
계서당 종택은 조선 중기 때의 문인 계서 성이성(溪西 成以性, 1595~1664) 선생이 살던 집으로 광해군 5년(1613)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선생은 남원부사 등을 지낸 부용당 성안의(1561~1629) 선생의 아들이다. 인조 5년(1627)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주목사 등 5개 고을의 수령을 지냈고, 암행어사에도 4번이나 등용되었다. 근검·청빈·강직·직언으로 이름이 높아 훗날 청백리(곧고 청렴한 벼슬아치)에 녹선되기도 하였다. 이 고택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비교적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안채와 사랑채가 하나로 연결되어 'ㅁ'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중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사랑채가 자리잡고 있으며, 사랑채의 오른쪽 뒤편으로 방형의 토석 담장을 두른 사당이 위치하고 있다. 안채의 경우는 다른 고택에 비해 규방을 많이 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사랑방의 경우는 대부분 홑집인데 비해 겹집으로 만들어져 안채의 날개집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체적으로는 경북 북부지방 'ㅁ'자형 주택의 옛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주택 발달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최근들어 성이성 선생이 '춘향전'의 중심인물인 이몽룡의 토대가 되는 실제 인물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고택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현지 안내문--
조선 중기의 문신 성이성(成以性)이 경상북도 물야면에 경영하던 초당을 후손들이 중건한 종택이다. 1613년 (광해군 5)에 성이성이 지은 방 1칸 규모의 계서초당을 후손들이 증축하여 기와집으로 바꾸었고, 이후 건물을 하나하나 지어 종택으로 사용하면서 최종적으로 'ㅁ'자형 주택이 되었다. 이로 인해 안채와 사랑채 등 주요 건물의 건립 연대가 다르고 증, 개축의 흔적이 있다. 중략. --이상은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퍼옴--
<봉화군 가평리 계서당 종택(성이성 집) 입구>

<봉화군 홈페이지에서 퍼온 계서당 종택(성이성 집) 조감도>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솟을대문>

<성이성 선생, 계서공(성이성) 청백인정비>

≪춘향전의 이몽룡이 계서 성이성이라는 주장과 근거≫
춘향전의 이몽룡은 봉화의 실존 인물 성이성이었다. 춘향전의 전반 인물은 당시 유행하던 민간설화나 판소리에서 따온 듯하나, 후반부의 이몽룡 어사의 출도는 작가(산서 조경남)가 '계서 성이성 어사'를 모델로 한 것이 확실하다. 춘향전 줄거리의 절반은 역사적 사실인 것 같다. --설성경 교수--
성이성의 현손인 성섭(成涉)의 <교와문고>에 춘향전의 어사출두 장면과 똑같은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우리 고조께서 수의어사로 호남지방을 암행하여 한 곳에 이르니, 호남 12읍 수령들이 큰 잔치를 베풀어 술판이 낭자하고 기생의 노래가 한창이었다. 수의어사가 걸인 행색으로 들어가 (중략) 지필을 달라하여(아래 오른쪽 사진의 한시, 예서체라 판독이 어려워 풀이한 글로 대체)
'동이의 술은 천사람의 피요
소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래소리 높은 곳에 원성의 소리 높더라
...이어 서리의 어사출두가 외쳐지고 당일 파출수령 6인이고, 그밖의 6인도 서계 올렸다. 이는 모두 세도가의 자제였다. (중략) 호남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라 말하였다."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과 사랑마당>
그리 높지 않은 위치임에도 8개 계단 높이의 기단을 쌓고 집을 지은 것과 사랑채 오른쪽 건물을 토벽 위에 지은 것이 독특하다. 돌을 섞어 쌓은 사랑채 토벽도 상당히 이채롭고 아름다웠다.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사랑채 왼편>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 사랑채 중앙에 있다.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사랑채와 溪西堂 편액>
아래 사진은 봉화군 홈페이지에서 퍼옴.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사랑마당의 작약>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사랑마당의 패랭이꽃>

<동쪽 옆에서 본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동쪽면과 안채 중문>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동쪽면과 안채>
아래 사진은 옆에서 본 안채이다. 다른 고택과 달리 계서당은 좌우로 안채 옆 공간이 별도로 없고 출입도 불가하기 때문에 이 정도만 보는 것이 가능하다.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안채쪽에서 본 사당>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사당의 달팽이 모양 간이 자물쇠>
어릴 적에는 이런 간이 자물쇠가 흔했는데 요즘은 사찰에서나 겨우 볼 수 있다. 단순하지만 현대의 어떤 자물쇠보다 튼튼하다. 원래 제대로 된 달팽이 모양인데 이 자물쇠는 아예 묶어서 고정해버렸다.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사당 옆의 당귀와 신선초>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사당>
아래의 사당 사진은 봉화군 홈페이지에서 퍼옴.


<사당 앞에서 본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봉화 계서당(溪西堂) 종택 사랑채와 솟을대문>
시간을 두고 증축을 해서인지 계서당 행랑채는 서쪽이 다른 전통가옥과 같은 모습인데 비해 동쪽은 2칸 밖에 없는 비대칭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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