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동행(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 전시회≫
--카탈로그의 '전시회를 열며', 이하 존칭 생략--
이번 전시에는 인물, 동물, 사물의 모습을 한 토기와 토우들이 가득하다. 삼국시대 특히 신라와 가야의 무덤에서 나온 것들이다. 모든 무덤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기에 그 의미는 특별하다. 가까운 이를 보내며 준비한 이 마지막 선물들은 삶을 마무리하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개인적인 공간에 넣어졌다. 1,600년 전 과거를 여행하는 전시이지만 과거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죽음이란 누구나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보내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살아온 삶, 그 사람을 보내는 이들의 삶,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누군가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했던 이 특별한 동행자들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 여정은 누구의 이야기일까? 지금으로부터 약 1,600년 전 신라와 가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여정은 그들이 살았던 삶을 표현하고 있다. *두 번째, 왜 영원한 여정일까?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죽음 이후에 다음 세상에서 지금처럼 삶은 계속된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특별한 동행은 무엇인가? 동물, 사물, 사람들의 모습을 닮은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의 동행이다. 영원한 삶을 기원하는 특별한 의미를 담아 무덤에 넣었다. *네 번째, 이 특별한 동행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극복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 마음을 담은 동행은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소중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다섯 번째,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를 어떻게 보면 좋을까? 동행자들의 모습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살펴보고, 동행자들이 살던 시대로 들어가 당시 일상을 경험해보고, 나의 여정에 어떤 동행자가 있으면 좋을지 상상해 본다.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
<영원한 삶을 위한 선물, 상형토기>
인생의 마지막 통과의례는 살아온 삶을 정리하고 사후 세계로 가는 장송의례이다. 고대의 장송의례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음 세상에서 현세의 삶이 이어진다는 계세(繼世)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신라와 가야지역에서 거대한 무덤에 많은 껴묻거리와 함께 장례를 치르는 후장(厚葬) 풍습도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신라와 가야에서는 새, 상서로운 동물, 뿔, 말, 수레, 배, 집, 등잔 등의 상형토기를 무덤에 부장품으로 묻었다. 여기에 죽음을 삶과 연속된 세상으로 바라보려 했던 1,600년 전 사람들의 내세관이 표현되어 있다.
<헤어짐의 이야기, 토우장식 토기>
사람이 죽으면 무덤을 만들고 매장을 하며 일정한 절차에 따라 의례가 진행된다. 그 의례는 망자가 사후세계에 잘 적응하고, 남은 이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다. 토우장식 토기는 상형토기와 마찬가지로 장례를 준비하며 만든 제의용 그릇이다. 토우장식 토기에는 장송 의식을 함께 치르거나 일상의 한순간을 표현하여 떠나는 이뿐만 아니라, 보내는 이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다. 살아있을 때 함께 했던 순간을 담은 일상의 모습들, 주위의 동물들이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양한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이양선 기증품, 경주 월성로 가-11-1호 무덤.
윗 사진은 중간줄 왼쪽부터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과 사슴,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과 멧돼지이고, 호선형 아랫줄은 왼쪽부터 사람과 새, 사람과 멧돼지, 사람과 표범과 게, 사람과 개, 사람과 개와 사슴이다. 아래 사진은 노를 저어가는 사람, 통나무배, 노가 있는 배, 말,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 말에 짐을 싣고 있는 사람들이다.


<의례를 행하는 사람들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중간 왼쪽부터 절하는 사람들, 거석 기념물을 향해 절하는 사람들, 절 받는 사람과 절 하는 사람, 아랫단 왼쪽부터 춤을 추는 사람들, 성적인 장면을 향해 절하는 사람들, 남성성과 여성성이 강조된 장면이다. 아래 사진은 성적인 장면을 향해 절하는 사람들, 남성성과 여성성이 강조된 장면을 확대한 것이다.


<동물들을 표현한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멧돼지와 여우·물고기, 개, 호랑이, 호랑이와 사슴, 사슴과 개, 소, 육상동물, 멧돼지, 멧돼지와 개이다. 아래 사진은 개와 멧돼지, 뱀을 확대한 것...


<동물들을 표현한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개와 자라, 곰, 소와 육상동물, 돼지와 호랑이, 여우, 사슴과 개 등이다.

<신라인의 옷차림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모자를 쓴 사람, 허리띠를 맨 사람 등으로 옷차림은 단순하게 묘사되어 치마나 바지 정도만 구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머리에 뿔처럼 표현된 모자가 특징적인데 모자는 복발식 건(巾)과 절풍형의 두 가지가 있다. 복발식 건(巾)은 원추형, 절풍형 모자는 양 옆에서 눌린 듯한 모습이다. 절풍형 모자는 삼국의 공통 모자이고, 원추형의 복발식 건은 신라만의 특징이다.

<일하는 사람들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중간줄은 왼쪽부터 기대어 쉬는 사람, 삼태기, 지게를 진 사람, 네모판 위는 머리에 짐을 이고 가는 사람, 짐 나르는 사람, 봇짐을 멘 사람이고, 아랫단은 왼쪽부터 디딜방아, 괭이를 든 사람, 작은 동물 8개는 멧돼지를 싣고 가는 말과 짐을 싣고 가는 말이다. 아래 사진은 네모판 위의 짐 나르는 사람을 확대한 것이다.


<행렬을 따라 행진하는 사람들, 춤을 추는 사람들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2, 3), 경주 계림로 47호 구덩이(1).
조우관을 쓰고 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새긴 그림, 약기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 말을 탄 사람과 용과 동물들이 행진하는 장면.

<행렬을 따라 행진하는 사람들, 춤을 추는 사람들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춤추는 사람들, 현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는 사람들.

<주위의 동물들을 표현한 경주 황남동 유적>
신라 5세기, 오리, 새, 고니와 가마우지, 후투티 등 주변의 동물들 묘사.


<경주 황남동 유적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물 속 생명들을 묘사한 토우장식 뚜껑으로 자라, 거북, 거북·게·물고기, 거북과 물고기 등.


<경주 황남동 유적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물 속 생명들을 묘사한 토우장식 뚜껑으로 가재, 바다뱀·갯가재·망둥어, 별불가사리와 육상동물, 해삼, 가재·개, 별불가사리 등.


<경주 황남동 유적, 강릉 병산동 10호 무덤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물 속 생명들을 묘사한 토우장식 뚜껑으로 장어, 가물치, 잉어, 어류와 거북, 어류와 뱀 등.

<경주 황남동 유적, 강릉 병산동 10호 무덤 토우장식 뚜껑>
삼국 5세기, 어류와 잉어.

<신라 5C 경주 황남동 유적 토우장식 뚜껑>


<신라 5C 경주 황남동 유적 토우장식 뚜껑>
위 : 뱀과 개구리 / 아래 : 뱀과 개구리와 개, 뱀과 개구리


<신라 5C 경주 황남동 유적 토우장식 뚜껑>
뱀, 뱀과 자라, 뱀과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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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쪽샘 유적의 토우장식 토기>
경주 쪽샘 유적은 신라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인 대릉원에 인접해 있으며, 많은 양의 토우장식 토기가 한꺼번에 묻혀있는 무덤이 발견되었다. 5개의 돌무지 덧널무덤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중 B6호 무덤 한 곳에서만 토기 뚜껑 33점에 장식된 54점의 토우가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토우장식 토기가 무덤에 묻힌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어서 더욱 중요하다. 쪽샘의 토우들은 사람과 동물을 주로 묘사했는데 지팡이를 짚은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뱀과 개구리 등 토우의 대표적인 모습들이다. 경주 황남동 유적과 함께 신라 토우장식 토기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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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토우가 발견된 경주 황남동 유적>
일제 강점기인 1926년 5월, 경주 분관 개관을 위해 출장 중이던 조선총독부 박물관 후지타 료사쿠와 고이즈미 아키오는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경주 황남동으로 간다. 갑분의 내부에서 많은 토우장식 토기가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 갑분은 2개의 덧널이 붙어있는 형태였다. 현재까지 갑분은 황남동의 여러 무덤 중 하나로 생각되었는데 최근에는 무덤과 다른 제사유구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다.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인물 토우장식 토기편과 비슷한 것이 갑분에서도 출토되어 두 무덤의 관계에 대해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경주 황남동 유적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 조각>
신라 5세기.

<춤추는 여인 토우, 경주 황남동 유적 토우장식 토기 뚜껑>
신라 5세기.
左 : 춤추는 여인, 경주 황남대총 남쪽 무덤 / 右 : 경주 황남동 유적 토우장식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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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남동 유적 토기에 표현된 무늬>
신라와 가야 토기는 전문적인 생산체제에서 제작되었다. 경주 손곡동과 물천리 유적는 신라, 함안 우거리 유적은 가야 토기 생산지이다. 전문 생산시설에서 만든 토기들은 독특한 형태와 선호하는 무늬들이 있었다. 신라는 접선무늬와 원·원점무늬를, 가야는 물결무늬와 점열무늬 등을 선호하였고, 지역마다 유행하는 무늬가 달랐다.

<신라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의 토우 부분>
위는 경주 미추왕릉 지구 계림로 30호 출토 긴목 항아리, 아래는 경주 노동동 11호 무덤 출토 긴목 항아리의 토우 부분을 펼친 모습이다. 항아리의 토우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과 동물들이 파노라마처럼 한 편으로 연결되어 있다. 개구리의 뒷다리를 무는 뱀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적으로 표현되고, 그 사이사이에 현악기를 연주하는 여자, 성행위 장면, 지팡이를 든 남자, 새, 물고기 등이 등장한다. 토우장식 토기는 신라 경주지역에서 5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가 6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사라진다. 이 시기에 신라에 불교가 도입되었으므로 토우의 장면들은 오래 전부터 전승된 토속종교 의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인의 음악과 춤을 표현한 토우>
5세기 후반 토우가 만들어질 당시 신라에 다양한 현악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관악기는 긴 것과 짧은 것이 토우에 나타나 있다. 한 손으로 부는 악기는 기록으로만 전하는 신라의 악기 가(茄)로 추정된다. 신라에는 왕마다 대표하는 가무악이 있었는데 토우에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심지어 탈을 쓰고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 표현되었다.



<5세기 신라의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
경주 노동동 11호 무덤, 국보.
토우장식 항아리에 붙어 있는 토우는 뱀과 개구리, 제사장으로 추정되는 지팡이를 든 사람으로, 오래 전부터 이어온 토속종교의 의례와 관련된 장면으로 보인다. 사람 모양 토우는 황남동 유적과 쪽샘지구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다.

<5세기 신라의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
경주 미추왕릉 지구 계림로 30호 무덤, 국보.
토우장식 항아리는 3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뱀과 개구리가 장면마다 반복되고 있다. 첫 번째는 남자와 새, 두 번째는 성적인 장면과 새·물고기·육상동물, 세 번째는 현악기를 연주하는 여자·새·거북이이다.

<토우장식에 표현된 신라인의 복식>

<토우장식에 표현된 신라인의 복식>
절풍형 모자는 삼국시대에 공통적으로 착용했던 우리 민족 고유의 모자로 토우에는 옆에서 보았을 때 반원 모양으로 표현되었다. 건(巾)과 립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천을 머리에 동여맨 것이다. 립은 차양이 있는 모자로 차양이 좁은 것과 넓은 것 2종류를 확인할 수 있다. 토우의 의복은 대부분 저고리에 바지와 치마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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