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국립중앙박물관 불교회화실

큰누리 2026. 3. 20. 00:04

≪불교회화≫

불교회화는 불교의 교리와 가르침을 표현한 그림이다. 좁은 의미로는 법당에 걸어놓고 예배하기 위한 부처(佛陀)와 보살(菩薩) 그림을 일컫지만, 경전의 내용을 설명적으로 나타낸 그림법당의 내외부를 장식하는 그림도 넓은 의미에서 불화(佛畵)라고 할 수 있다. 부처와 보살, 나한(羅漢) 또는 여러 신을 그린 그림은 예배용 불화에 해당한다. 그들은 혼자 표현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많은 인물이 함께 나타난다.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여러 보살과 인물을 표현한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 수행자의 모습을 그린 나한도(羅漢圖),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신을 묘사한 중도(神衆圖) 등이 있다.

그 밖에 부처의 전생 이야기나 일대기를 그린 불화, 경전의 내용을 묘사한 사경변상도(寫經變相圖)는 어려운 불교 교리를 그림으로 나타내 쉽게 전달해 준다. 또한 법당을 엄숙하고 위엄 있는 예배공간으로 만드는 용이나 연꽃 등의 장식 그림도 오늘날 불화로 감상하기에 손색이 없다. 

 

≪불교의식과 불화≫

불전(佛殿)은 부처의 세계를 재현한 공간이자 불교의식을 행하는 장소이다. 따라서 불전 안을 장엄하는 불화는 예배의 대상으로서 뿐 아니라 불교의식의 주체로서 의식의 거행을 위해 봉안되었다. 조선시대의 불교의식은 전각 안에 삼단(三壇)을 설치하여 각 단에 예배하고 공양을 올리는 절차로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불화도 봉안 위치에 따라 상단, 중단, 하단불화로 명명하면서, 각 단에 맞는 불화를 조성·봉안하였다. 상단은 불단(佛壇)으로 영산회상도 또는 아미타불도, 비로자나불도 등을 봉안하였으며, 중단은 의식의 실질적인 주존을 위한 단으로 삼장보살도와 지장보살도, 신중도 등을 봉안하였다. 하단은 영혼의 천도를 위한 영단(靈壇)으로, 수륙재용 불화인 감로도를 봉안하였다. 야외 의식에서는 괘불과 함께 8금강도와 4보살도, 사직사자도(四直使者圖) 등을 번(幡)의 형태로 걸어 도량을 장엄하고 보호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1층의 개성 경천사지 10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203호 불교회화실>

아랫단에 있는 입구의 불화(화면)에 대한 설명은 따로 발견하지 못했다.

 

<극락으로 인도하는 배 그림,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

조선 19세기, 비단에 채색.

용머리 모양의 배가 영혼을 태우고 파도를 가르고 있고, 배 앞머리에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휘날리는 깃발(幡)을 들고 길을 인도한다. 그 뒤쪽에 보살과 함께 서있는 아미타불은 배의 목적지가 서방극락정토임을 알려준다. 배 뒷머리에는 지장보살이 돛을 잡고 배가 극락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배에 탄 영혼들의 머리 위에는 비구, 비구니, 처사, 보사녀(補寺女), 동녀, 동자라고 적혀 있다. 이들은 이들은 아미타불과 인로왕보살, 지장보살의 인도로 안락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극락정토에 도달하게 된다.

 

<남계원址 7층석탑 출토 묘법연화경>

고려 1283년, 감색 종이에 금은니.

남계원 칠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야외석조물 정원 소재)은 개성시 덕암동 절터에 있던 탑으로, 1915년 경복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탑안에 넣어 모셨던 묘법연화경 7권이 발견되었다. 아래는 권 제7로 사경의 마지막 부분에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의 염승익이 국왕과 궁주의 안녕을 기원하고, 자신과 가족(아내 노씨, 아들과 딸)이 살아서는 안락한 삶죽어서는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1행에 14자를 쓰는 형식과, 표지그림, 신장상을 갖춘 그림은 고려 왕실이 발원한 사경과 같다. 글씨는 은으로 썼다. 

 

<묘법연화경 권7(妙法蓮華經 卷七)>

고려 1385년, 백지에 금니와 먹.

<묘법연화경> 7권본 중 권제7은 발원문을 통해 개성군부인 김씨가 죽은 남편 박중기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 사경을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경전, 특히 法華經을 쓰는 것은 공덕신앙 뿐 아니라 돌아가신 이를 추도하는 영가천도와 관련이 깊다.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

조선 1636, 종이에 목판 인쇄, 2021년 이건희 기증.

물과 땅을 떠도는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펼치고 음식을 베푸는 의식인 수륙재(水陸齋)의 절차를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는 수륙재의 유래와 이를 베푸는 이유를 쓴 <설회인유편(設會因由篇)>에서부터 모든 절차를 끝내고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내용의 <보신회향편(普伸廻向篇)>까지 총 54편의 글이 실려 있다. 여러 수륙재 의식집 중에서 내용이 자세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이 책은 숭정(崇禎) 9년(1636) 전라도 남원 지리산 감로사에서 간행한 것이다.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

조선 1474, 종이에 목판 인쇄, 보물.

염불하며 참회하는 의식인 미타참법(彌陀懺法)의 방법과 절차를 적은 의식집이다. 이 의식은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고 시방삼세의 부처를 청하여 죄업을 참회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지막 발문을 통해 세조비 정희대왕대비가 1474년 죽은 성종비 공혜왕후 한씨(손주며느리)의 명복을 빌고, 돌아가신 여러 선왕과 선왕비를 기리기 위해 지중추부사 성임에게 명하여 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주자 명단에 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를 비롯한 왕실 여성과 종친, 고승의 명단이 기록되어 국가적인 큰 사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영혼을 달래어 보내는 세 보살 그림,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

조선 18세기, 민회 畵, 비단에 채색, 2021년 이건희 기증.

하늘세계를 관장하는 천장(天藏)보살, 지상세계를 관장하는 지지(持地)보살,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지장(地藏)보살 등 세 보살을 그린 삼장보살도이다. 중앙의 장(天藏)보살 주위에는 진주보살과 대진주보살이 협시하고, 머리를 묶고 도포를 입은 선인 등을 그렸다. 화면 오른쪽의 지지(持地)보살은 용수보살과 다라니보살이 협시하고 주위를 팔부중이 싸고 있다. 왼쪽의 지장보살은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좌우에 있으며, 주변에는 지옥을 다스리는 시왕(十王)을 그렸다. 삼장보살도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보내주기 위하여 치르는 의식인 수륙재 때 사용되었다. 화기에 민희라는 승려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전라도, 경상도 지역에서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아래 그림은 확대한 것.

 

<삼보패(三寶牌)>

조선 18세기, 나무에 채색.

삼보패는 부처나 보살의 이름, 또는 발원 내용을 적어 불단에 봉안하는 불교 의식도구이다. 삼보, 즉 불보·법보·승보의 존명을 적어  모시는 위패이다. 중앙에 '시방삼보자존(十方三寶慈尊)' 글씨를 중심으로 꽃과 구슬장식을 늘어뜨려 입체적으로 조각하였다. 뒷면에는 암산으로 둘러싸인 전각과 호황, 용, 호랑이 등을 조각하여 정토를 표현했다.

 

≪지옥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 시왕(十王)≫

죽은 사람이 저승에 가면 살아 있을 때 지은 죄를 열 명의 왕이 심판하는데, 이들을 시왕(十王)이라고 한다. 시왕은 당나라 장천(藏川)이 지은 <불설염라왕수기사중역수생칠왕생정토경(佛說閻羅王授記四衆逆修生七往生淨土經)> (줄여서 佛說예수시왕생칠경, 혹은 시왕경)에소부터 등장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시왕(十王)신앙이 널리 퍼졌다. 경전에 따르면 죽은 사람은 순서대로 한 명씩의 왕을 만나 죄의 심판과 형벌을 받는다고 한다. 7일마다 제1 진광대왕, 제2 초광대왕, 제3 송제대왕, 제4 오관대왕, 제5 염라대왕, 제6 변성대왕, 제7 태산대왕의 7명을 만나고, 100일에는 제8 평등대왕, 1년에는 제9 도시대왕, 3년에는 제10 오도전륜대왕을 만난다고 한다.

 

<북한산 중흥사의 시왕도>

조선 1829년, 승려 신겸 그림으로 추정.

그림에 화가 이름이 없으나 1828년에 그린 밑그림으로 1829년에 북한산 중흥사 명부전 시왕도를 그렸다는 내용이 있어 신겸 작품으로 추정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중 불화 복장품에 후령통과  함께 '1829년에 시왕을 조성했다'는 발원문이 발견되어 중흥사 시왕도의 복장물과 발원문임이 밝혀졌다.

 

<시왕도(제1 진광대왕, 제3 송제대왕)>

왼쪽의 제1 진광(秦廣)대왕을 첫 번째 7일에 만나면 죽은 사람을 귀문관(鬼門關) 앞에 세우고, 살생의 죄가 있으면 쇠몽둥이로 내리친다고 한다. 세 번째 7일에 오른쪽의 제3 송제(宋帝)대왕만나기 위해 강을 건너는데, 죄가 없는 사람은 금은보화로 장식된 다리를 건너고, 죄가 가벼운 사람은 무릎 깊이의 강을, 죄가 많은 사람은 물살이 빠르고 험한 곳을 건넌다고 한다. 그림 하단은 구름으로 나누어 지옥을 그렸다. 옥졸이 망치를 들고 죽은 사람을 관에서 꺼내는 장면, 죄인을 밧줄로 묶어 끌고 가는 장면, 죄인이 칼을 차고 대왕에게 심판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장면, 죄인의 혀를 빼내어 그 위에 소를 몰아 밭을 가는 장면 등이다. 

 

<북한산 중흥사 시왕도 제7 태산대왕>

조선 1829, 종이에 채색, 신겸 그림.

사람이 죽은 후 일곱 번째 7일에 만나는 태산(泰山)대왕은 다섯 번째 왕인 염라대왕의 서기이기도 하다. 인간의 선악을 기록하여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인(人), 천(天), 육도(六道)의 어느 곳에서 다시 태어나게 할지 결정한다. 화면 상단에 태산대왕이 있고. 32명의 권속이 둘러싸고 있다. 구름과 담장으로 나눈 하단에 포승줄에 묶인 죄인과 바위산을 조여 벌을 주는 지옥이 있다.

 

<북한산 중흥사 시왕도 제8 평등대왕>

조선 1829, 비단에 채색, 신겸 그림.

사람이 죽은 후 100일 뒤에 만나는 평등(平等)대왕이 한손으로 흰수염을 만지고, 주변에 31명의 권속이 둘러싼 그림이다. 담장과  구름으로 나뉜 하단은 옥졸들이 가마솥에 죄인을 넣고 끓이는 장면, 톱으로 몸을 자르는 장면이다. 하단 오른쪽에는 판관들이 모여 앉아 있고, 판결문에서 피어난 구름을  타고 가는 영혼을 그렸다.

 

<북한산 중흥사 시왕도 제9 도시대왕>

조선 1829, 비단에 채색, 신겸 그림.

사람이 죽은 후 1년 뒤에 만나는 도시(都市)대왕이 한손으로 수염을 만지고, 주변에 권속 34명이 둘러싼 그림이다. 그림 하단은 옥졸이 쇠로 된 침상에 영혼을 묶고 쇠못으로 박는 장면, 쇠기둥에 묶고 벌을 주는 장면이다. 하단 오른쪽은 판관들 앞에서 저울에 죄인을 매달아 죄의 무게를 재는 장면이다.

 

<나무에 채색을 한 장군상>

 

<동자상>

조선, 나무에  채색, 이건희 기증.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조선 19세기, 비단에 채색.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하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많은 인물을 그렸다. 중심에 지장보살과 도명존자·무독귀왕이 있고, 그 앞의 원 안에는 선악동자가 있다. 지장삼존 옆에 죽은 사람이 생전에 지은 죄를 보여주는 거울인 업경대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시왕(十王)은 화면 상단에 좌우로 5명씩 나뉘어 있으며, 판관·녹사소머리의 우두옥졸(牛頭獄卒), 말 머리의 마두옥졸(馬頭獄卒), 호랑이머리의 옥졸까지 지옥의 모든 인물들을 그렸다. 

 

<감로도(甘露圖)>

조선 1649, 삼베에 채색.

감로도는 아귀도에 떨어진 영혼들을 구제하기 위해 의식을 베푸는 장면을 그린 불화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극락에 가기를 기원하며 그렸고, 조선시대에 성행한 우란분재, 수륙재, 천도재 등 다양한 의식에 사용하였다.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조선 1673, 비단에 채색, 여견 ·석기 등 3명의 화승 작품.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양 옆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합장하고 있다. 지장보살을 협시하는 도명존자는 저승사자의 실수로 사후세계를 경험한 중국 양주 개원사의 승려이다. 무독귀왕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찾으러 온 브라만의 딸에게 지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뒤쪽에는 지옥을 다스리는 시왕과 쌍상투를 튼 동자를 배치했다. 

 

<현왕도(現王圖)>

조선 1893, 비단에 채색. 금호당 약효  그림.

현왕(現王)은 본래 지옥을 다스리는 시왕(十王) 중 다섯 번째 왕인 염라대왕이지만, 염라대왕에 대한 신앙이 인기를 얻으면서 현왕으로 독립하여 따로 그려지게 되었다. 현왕 주변에 두른 병풍과 시동들이 받쳐든 산개(傘蓋)는 현왕이 존귀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현왕 주변의 판관들은 죄인의 심판과 관련된 책과 두루말이 등을 펼치고 있다.

 

<죄를 비추는 거울 받침대(업경대)>

조선 17세기, 나무에 채색, 2021년 이건희 기증.

죽은 사람이 지옥에 가서 다섯 번째 7일을 맞이하면 염라대왕 앞에 서게 된다. 염라대왕이 가지고 있는 거울을 업경(業鏡)이라고 하며, 죄인이 모습을 비추면 마음으로 지은 죄, 살아 있을 때 저지른 선한 일과 악한 일을 모두 보여준다. 업경대는 조선 후기 사찰 전각의 불단에 공양구·전패 등과 함께 봉안하여 불단을 장엄했다. 이 업경대는 거울을  받친 사자의 짧은 다리와 휘날리는 꼬리, 업경대를 둘러싼 둥근 불꽃의 형태로 보아 17세기 전반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기허(영규)대사와 화담당 대선사 진영>

조선 18~19세기, 비단에 채색.

왼쪽의 기허영규(騎虛靈圭, ?~1592)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승장이다. 청허휴정(淸虛休靜), 사명유정(四溟惟政)과 함께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3대 의병승장으로 꼽힌다. 화면 오른쪽에 '國一都大禪師'라는 시호와 '復國佑世騎虛堂'이라는 기허당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기허대사상은 기골이 장대하고 용맹함을 갖춘 승장으로서의 특징을 부각시켰다.

오른쪽의 화담당 대선사(華潭堂 大禪師, 1786~1848)화엄경을 연구하고 강의하여 이름이 높았던 선승 화담경화(華潭敬和)의 진영이다. 화담은 화악지탁(1750~1839)의 법통을 이어 경기지역을 주요 활동 기반으로 하는 19세기 대표 문중을 형성했다. 김룡사, 대승사, 통도사, 표충사에도 화담대사의 진영이 전하는데 모두 가부좌에 정면을 바라보며 책장을 막 넘기려는 모습이다. 

 

<화악당(華岳堂) 대선사, 무경당(無鏡堂) 대선사 진영>

화악당 대선사 진영 : 조선 1838, 비단에 채색.

무경당 대선사 진영 : 조선 19세기, 비단에 채색.

왼쪽은 화악당(華岳堂)이라는 당호의 승려 진영으로 조사각이나 진영각에 고승을 모시는 개념을 화면에 담았다. 사당으로 보이는 건물과 소나무, 복숭아나무 등은 조선시대 사당에서 조상을 기리기 위해 그린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를 연상시킨다. 화악당이라는 당호를 쓴 승려가 여럿이라 진영이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오른쪽의 무경관주(無鏡觀周, 19세기 전반 활동)는 화악지탁·화담경화 문중에 속하는 선승이자 불화승이다. 서울 봉은사 <현왕도>와 <신중도>의 증사(證師)를 맡았으며, 괴산 채운암 <영산회상도, 1845년>의 수화승을 맡는 등 경기도 양주와 충청에서 활동하였다. 이 그림은 불화를 그리는 화승의 진영으로 드물게 전하는 예로서  의의가 있다.

 

<저승사자도(감재사자도, 직부사자도)>

저승사자는 사람이 죽었을 때 저승세계의 왕들이 파견하는 전령으로 직부사자(直符使者)와 감재사자(監齋使者) 있다. 흰색 말 앞에 두루말이를 든 직부사자(오른쪽)는 죽은 사람의 이름이 적힌 장부를 저승세계의 왕에게 전달하며, 푸른색 말 앞에 두루말이를 든 감재사자(왼쪽)는 죽은 사람의 집에 파견되어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살피는 역할을 한다. 두 폭의 사자도는 명부전에 지장보살도, 시왕도와 함께 봉안된다.

 

<목조 저승사자 입상>

조선, 나무에  채색.

저승사자는 사람이 죽었을 때 지옥의 왕이 파견하는 전령으로, 죽은 이를 찾아내고 저승세계로 가는 길을 인도한다. 명부전이나 지장전, 시왕전처럼 저승과 관련된 전각에서 시왕상을 보좌하는 존재로 판관, 인왕, 동자 등과 함께 조성되었다. 보통 죽은 이의 이름을 적은 두루말이를 들고 있는데, 허리춤을 잡은 오른쪽의 사자상은 손에 창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섯 방위를 다스리는 왕, 오방오제위(五方五帝位)圖>

조선 1676, 삼베에 채색, 도심과 태겸 그림, 2021년 이건희 기증.

다섯 방위를 다스리는 왕, 오방오제위(五方五帝位)는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방위로 통하는 길을 활짝 열어 모든 중생과 성인, 구천을 떠도는 영혼까지도 모두 제 갈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는 존재이다. 다섯 방위 왕에 대한 신앙은 고대 중국의 다섯 황제에 대한  신앙이 불교의 오방(오방)과 결합되었다. 동방태호지군, 남방염제지군, 서방소호지군, 북방전욱지군, 중방황제지군으로 한 폭에 한 명씩 다섯 폭으로 그리기도 하고, 한 폭에 다섯 명을 모두 그리기도 한다. 옷은 오방색에 따라 중앙 황색, 동방 녹색, 서방 흰색, 남방 붉은색, 북방 검정색으로 표현하였다.

 

<네 저승사자, 사직사자(四直使者)圖>

조선 1676년, 삼베에 채색, 도심과 태겸 畵, 이건희 기증.

사직사자(四直使者)는 사람이 죽었을 때 염라대왕이 죽은 사람에게 파견하는 네 저승사자이다. 각각 사람이 태어난 해(年)와 달(月), 날짜(日), 시간(時)을 담당하는 연직(年直)사자, 월직(月直)사자, 일직(日直)사자, 시직(時直)사자이다. 사직사자는 본래 도교의식에서 공양을 올리며 기원하는 존재인데 불교의식에 도입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수륙재 등을 행할 때 사직사자의 그림을 다섯 방위를 다스리는 왕인 오방오제위(五方五帝位) 그림과 대칭으로 걸어놓고 의식을 행했다. 

 

<화승 신겸(信謙, 왼쪽)과 서산대사 휴정(休靜, 오른쪽) 진영>

스님의 신분으로 임진왜란에 참여하여 조선 불교 부흥의 토대를 마련한 서산대사 휴정(休靜, 1529~1604), 승려이자 불화를 그리는 화가로 활동한 신겸(信謙,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활동)의 진영이다. 글 윗부분에 있는 북한산 중흥사 시왕도를 그린  화승이다.아래 그림은 진영을 디지털 영상으로 제작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