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국립중앙박물관 통일신라실

큰누리 2026. 3. 15. 16:43

≪불국토 통일신라와 통일신라의 불상≫ 

통일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불교를 받아들여 다양하고 폭넓은 불교 사상을 만들어냈다. 불교를 국가이념으로 삼고 대중적인 종교로 변모시켰으며, 불교를 통해 사회 안정을 이루고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포용하고 융화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통일 이후에는 주로 화엄종(華嚴宗)과 법상종(法相宗) 등의 종파가 유행하였고, 하대에는 선종(禪宗)이 전래되어 구산선문(九山禪門)이 형성되는 등 선종 불교가 주요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통일신라 불상은 통일 이전 토착적인 신라의 불상 양식을 기반으로 백제와 고구려의 조각 양식을 흡수하는 한편, 당나라 양식을 받아들이면서 통일신라만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통일신라 불상 중 가장 완성된 예는 8세기 중엽의 석굴암 본존불이며, 이 시기를 정점으로 통일신라의 불상 조각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 이후 신라 사회의 모순과 선종의 유행으로 약사불과 비로자나불이 등장하며, 금동불이 줄어들고 새로운 철불이 유행했다.

 

<경주 사천왕사 사천왕상 전돌>

사천왕은 고대 인도에서 숭상했던 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경주 사천왕사에서 발견된 녹유신장상은 탑의 기단을 장식한 것으로, 기단 4면의 계단을 중심으로 좌우 3개씩 총 24개가 배치되었다. 일반적으로 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이 동서남북의 방위를 지키는 형태로 배치되지만, 사천왕사 탑의 기단에는 3개의 신장만으로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통일신라 철불(8~9C)의 4면>

 

<경주 담엄사지 팔부중(아수라, 건달바)>

9세기, 돌.

팔부중은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천(天), 용(龍), 야차(夜叉), 건달바(乾達婆),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睺羅伽) 신을  말한다. 아수라(左)는 원래 싸움의 신이었으나 부처님에게 감화되어 불법 수호신이 되었으며, 얼굴은 셋, 손과 팔은 여덟개나 여섯 개로 표현된다. 건달바(右)는 머라에 사자의 머리가죽 같은 것을 쓰고 있다.

 

<통일신라 청동정병>

충남 부여,  9~10C.

 

<통일신라 발걸이>

황해도 평산, 9~10C. 철.

말 위에 장착한 발걸이인데 이렇게 화려하고 정교한 것은 처음 보았다!

 

<경주 월지(안압지) 출토 용머리 꾸미개와 짐승 얼굴무늬 기와>

금동 용머리 꾸미개(左)와 녹유 짐승 얼굴무늬 기와(右), 8~9C. 

 

<통일신라의 왕경(王京) 귀족>

통일신라를 주도적으로 이끈 세력은 왕경의 진골(眞骨)귀족이었다. 왕경에는 17만 8,936호가 살았고, 금입택(金入宅)이 30여 채 있었다고 한다. 금입택의 주인은 왕권에 비견될 만한 유력한 진골 귀족으로, 금과 은으로 사용한 생활용품, 녹유 기와 등은 사용했을 정도로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다.

 

<세 발 항아리(녹유)와 경주 傳 흥륜사지 사냥 무늬 전돌> 8~9C. 

 

<오리 모양 잔, 연적, '함통육년(865)' 명 벼루>

오리 모양 잔 : 경주 구황동 원지, 8~9C, 토제.

연적 : 경기 양주 대모산성, 8C, 토제.

'함통육년(865)' 명 벼루 : 경기도 이천 설봉산성, 865년, 돌.

 

<인형, 연꽃 모양 꾸미개>

인형(土偶) : 경주 용강동 석실분, 8C, 토제.

연꽃 모양 꾸미개 : 경주 월지, 8~9C, 청동.

 

<경주 월지(안압지) 옷걸이와 짐승 얼굴 모양 문고리>

옷걸이(윗단) : 8~9C, 금동.

짐승 얼굴 모양 문고리(아랫단) : 8~9C, 청동.

 

<통일신라의 지방 사회>

통일신라의 지방 사회는 중앙의 행정력이 각 지방에 고르게 미치는 9주 5소경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실행함으로써 지방의 행정은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와 토착 촌주의 협력 하에 이루어졌다. 문자의 활용, 도로와 역의 정비를 통해 순조롭게 행정이 진행된 결과 왕경 문화가 지방에 그대로 이식되어 일부 지방 유력자는 왕경 귀족과 비슷한 문화수준을 유지했다.

 

<창녕 화왕산성 출토 칼, 재갈(左)과 자물쇠, 발걸이(右)>

8~9C,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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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말흘리유적 건물터 출토 유물>

창녕 말흘리유적 건물터에서 특이하게 쇠솥에 담긴 불교 공예품이 여럿 발굴되었다. 아마 주변의 어느 절에 큰 변고가 생겨 중요한 물품을 쇠솥에 넣어 묻은  것으로 추측된다. 9~10C. 1단은 풍탁(風鐸), 2단은 자물쇠, 3단은 오각형 꾸미개와 꽃 모양 꾸미개, 4단은 손잡이 향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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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말의 지방세력>

통일신라 말 변경의 군진(軍鎭)이나 지방의 상업과 대외교역이 발달한 곳에서 독자적인 세력이 크게 성장했다. 대표적인 곳이 장보고가 활동한 남해의 청해진 지역당과의 교역로였던 북방의 패강진 지역이다. 황해도 평산에서 출토된 유물은 변경의 군진에서 성장한 지방 세력의 모습을 잘 알려준다.

 

<경기 양주 대모산성 출토 도장, 8~9C, 곱돌>

 

<다양한 병과 완(碗)>

왼쪽의 병 3개 : 경북 울릉 천부동, 8~9C, 토제.

오른쪽의 병 : 전북 익산 미륵사지, 8~9C, 청동.

오른쪽 아래와 아랫단의 꽃 모양 접시 : 황해도 평산, 9~10C, 청동.

 

<청자 꽃 모양 완(碗)과 백자 완, 향합>

청자 꽃 모양 완과 백자 완 : 익산 미륵사지, 중국 당나라 공예품.

향을 담는 그릇(香盒) : 창녕 화왕산성, 8~9C, 청동.

 

<전북 익산 미륵사지의 재갈멈치와 재갈>

8~9c,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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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의 화장 장례와 뼈단지(骨壺)≫

불교가 삶 속 깊이 자리 잡은 통일신라에서는 불교식 장례방식인 화장(火葬)이 유행하였고, 화장 후 유골은 뼈단지(골호)에 담아 튼튼한 보관함에 넣어 땅에 묻었다. 8세기의 고급스러운 뼈단지는 화려한 도장무늬를 새기거나 녹유·청유·삼채 등의 유약을 발랐다. 국력이 쇠퇴하는 9세기 이후에는 꾸밈이 없고 소박한 형태로 바뀌었다.

 

<뼈 항아리와 청자 뼈 항아리>

위의 뼈 항아리 : 출토지 미상, 8C, 토제.

아래의 청자 뼈 항아리 : 경주 배동 삼릉 부근, 토제 안에 청자 항아리.

 

<뼈 항아리와 세 발 뼈 항아리>

왼쪽의 뼈 항아리 : 출토지 미상, 8C, 토제.

오른쪽의 세 발 뼈 항아리 : 출토지 미상, 8C, 토제.

 

<뼈 항아리 / 돌함과 뼈 단지>

왼쪽의 뼈 항아리 : 출토지 미상, 8C, 토제.

오른쪽의 돌함과 뼈 단지 : 경주, 8~9C, 돌과 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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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의 국가 권력과 의례>

통일신라는 의례를 통해 국가 권력의 정당성과 왕권의 위엄을 과시했다. 도성의 국가 의례는 신라인에게 왕에 대한 충성과 복속 의식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사찰 또한 국가와 왕권의 위엄을 구현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통일신라는 수도인 경주의 사방 입구에 성전사원(成典寺院)이라는 사찰들을 건립하여 수도를 천하의 중심이자 불국토의 중심으로 연출했다. 왕릉과 원찰에서는 왕권의 정당성과 신성함을 갈조하는 의례를 거행하여 신라 왕실의 영원불멸을 기원했다.

 

<경주 월지(안압지) 출토 유물 : 둥근판, 가위, 칼>

8~9C, 납.

월지는 신라 문무왕 14년(674)에 궁궐 안에 만든 연회시설이다. 삼국사기에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월지에 대한 설명이다. 이곳에는 연회를 위한 건물뿐만 아니라 종교시설도 있었다. 연못에서 불상을 비롯한 불교용품이 많이 발굴되었지만, 납으로 만든 가위나 손칼 같은 비실용적인 물건도 있었다. 이를 통해 불교의식뿐만 아니라 무속행위도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경주 충효동 傳 김유신묘 십이지상(말과 토끼)>

8~9C. 곱돌.

 

<함통육년명 금고와 황복사지 사리 상자>

왼쪽 : '함통육년(咸通六年, 865)' 명 금고, 傳 경북, 청동

오른쪽 : 출토지 미상 촛대,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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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복사지 사리갖춤≫

경주 황복사지 3층 석탑에 신라 33대 성덕왕(재위 702~737)이 706년에 사리갖춤(유리구슬, 굽다리 접시, 사리 상자)을 봉안하였다. 사리외함에 새긴 글에 의하면, 성덕왕은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인 31대 신문왕과 신목왕후, 그리고 형인 32대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사리갖춤을 봉안하였다고 기록하였다. 1942년에 석탑을 수리할 때 발견되었다.

 

<황복사지 사리갖춤(사리 상자, 유리 구슬, 굽다리 접시)>

 

<황복사지 사리갖춤(굽다리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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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의 수막새와 암막새>

왼쪽 : 출토지 미상의 보상화·새·보살 무늬 수막새와 8~9c, 토제.

오른쪽 : 출토지 미상의 당초무늬 암막새, 8~9c, 토제.

 

<통일신라의 보상화 무늬 전돌과 수막새>

왼쪽 : 출토지 미상의 보상화 무늬 수막새, 8~9c, 토제.

오른쪽 : 경주 인왕동 월지의 보상화 무늬 전돌, 8~9c, 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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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의 수입품들>

통일신라 유적에서 발견되는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중국 저장성 월요(越窯)에서 제작된 것이 많다. 특히 경주에서 출토된 월여  청자 대부분은 품질이 뛰어나며, 그 가운데 상당수는 월요가 만든 최고 경지의 청자인 비색자(秘色瓷)의 범주에 속한다. 윗사진은 공주 출토 중국 당~오나라의 청자 완(盌), 아래 사진은 7세기에 제작된 녹유 굽다리 항아리이다.

 

<허리띠 꾸미개> 7~8C.

윗단은 경주 장군로의 청동 꾸미개, 아랫단은 경주 구정동의 은제 꾸미개이다. 

 

<청동 꽃 모양 접시와 손잡이 향로>

꽃 모양 접시는 황해도 평산, 9~10C.

손잡이 향로는 출토지 미상의 당나라 제품.

 

<당나라 수입품으로 추정되는 은제 항아리와 청동 그릇>

설명을 놓쳤다!

 

<당나라 수입품 거울들>

왼쪽은 충남 부여 쌍북리와 출토지 미상의 동물 포도무늬 거울, 오른쪽은 출토지 미상의 청동·은제 동물 무늬 거울이다.

 

<중국의 청동 항아리>

6~7세기, 경주 충효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