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08.19. 수. 맑음>
백두산답사에 합류하기 위해 어제밤 늦게 일본에서 날아온 동생도 일찌감치 눈을 떴다. 멀리 여행 길 떠나는 언니들에 대한 배려 없이 아침 8시부터 전화해서 중요한, 그렇지만 뒤로 좀 미뤄도 되고 하루 이틀에 해결될 일이 아닌 문제를 건드려서 심란한 마음으로 눈을 뜨게 하는 막내 동생에 대해 불쾌감이 앞선다. 철없는 것 같으니라고...
전화를 받고 안절부절 하는 일본 동생을 보자니 ‘이거 여행이나 제대로 하겠나’ 싶은 걱정이 앞선다. “언니, 사람 만나려면 정장 한 벌 사서 입고 나가야 예의 아닌가?” 철없는 막내에 분노를 애써 삭히며 “그렇게 일이 빨리 성사 되겠니? 15년이나 된 문제인데. 일이 돌아가는 추이를 봐가며 천천히 하자.” 며 달랜다. 또 전화, 금방 상대 쪽에서 만나자고 했다더니 좀 있다 말이 달라지고 이어 온 전화에서 완전히 꼬이고 말았다. 어찌 쉽게 일이 풀린다 했더니...
결국 막내가 일을 무모하게 서두른 탓에 한 나절 만에 일본 동생의 그토록 간절했던 소망은 저 멀리 날아갔다. 5년 쯤 후에나 원상이 돼서 다시 건드려 볼 수 있으려나? 그러기에 옛사람 말 하나 그른 것 없다. 아무리 급해도 우물에 가서 숭늉 구할 수 없는 법이고 바늘허리에 실 묶어 바느질 할 수 없는 법이다.
어두워진 얼굴의 일본 동생을 앞세워 은행도 들르고 여행 중 먹을 찬거리를 사자며 나갔다. 은행에서 엔화 환전하고 여행에서 팁으로 쓸 천원 권을 두당 3만원씩 바꾸고 마트로 갔다. 느끼한 중국음식을 중화시켜줄 깻잎 캔,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큰딸을 위한 참치 통조림과 비스킷 몇 개, 음식이 낯선 곳 어디에서나 통하는 모두를 위한 김, 1회용 비옷과 목욕용품 등을 사니 벌써 한 보따리다. 에구, 여름이었기에 망정이지 옷이 두툼한 겨울이었으면 이민 가는 사람 짐인 줄 알겠다!
밥 먹고 나니 12시, 입국할 때 공항에서부터 해소 기침을 했던 동생을 보니 걱정이 된다. 일어나자마자 병원에 다녀오라 하니 귀찮단다. ‘일본으로 다시 들어갈 때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로 오해받으면 어쩔 거냐, 우리의 이번 여행은 단순히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빡센 답사다’라는 내 이어지는 잔소리에 마음이 좀 흔들렸는지 병원에 간다.
시간이 별로 여유가 없다. 동생을 병원에 보내고 난 후 그저께부터 살살 아프던 배가 아파오니 이번엔 내 부실한 건강이 걱정이 된다. 거기서 급성장염이라도 일어나면 어쩌지? 이곳에서도 종종 구급차에 실려 갔을 정도인데... 에라, 모르겠다. 장염약, 근육통약, 소화제, 설사약은 충분히 챙겼으니까 나머지는 운이지, 뭐.
마지막 짐 체크를 하고 콜택시를 부른다. 집에서 인천국제여객선1터미널까지 3만 5천원 정도 예상을 했는데 2만 8천원이 나왔다. 3시가 좀 안 돼 터미널의 약속장소에 도착했는데 예상대로 1빠다. 조금 있다 ㄱㄴㄹ님이 도착하고 이어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속속 도착한다. 아차산 답사 때 낯이 익은 분이 몇 분 있지만 일행이 누군지 정확히 모르겠다. 약속시간인 3시 반, 일행이 모두 도착하고 여행사사장님과 ㄱㄴㄹ님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출국 사전준비를 한다.
제물포에 사는 세째 동생 가족이 일본 동생을 볼 겸 배웅을 나왔다. 출출한 사람들은 김밥이나 컵라면을 사 먹으며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 답사자료집을 다시 훑어본다. 일행의 스냅사진 몇 장을 찍는데 ㄱㄴㄹ님이 배표와 멋진 천지 사진 위에 이름, 비자번호, 가이드 연락처 등이 적힌 여행사 목걸이를 주신다. 내가 일행 1번이다!
<인천국제여객선터미널>
4시 반쯤, 승선하기 시작했다. 손을 열심히 흔드는 세째 동생네 가족을 뒤로 하고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2층의 출구를 통과하여 우리가 탈 배 앞에 버스로 도착하니 덩치는 크지만 모습은 초라한 배가 기다린다. 여행 가방을 끙끙대며 들고 불안한 이동식 계단을 오르니 질척하고 컴컴한 창고 같은 배안이 시야에 들어온다. 심란하구나!
주변엔 나이 드신 자유총연맹순천지부 노인 일행들과 또 다른 노인일행, 그리고 중학생으로 보이는 단체관광객, 어마어마한 포장된 짐 박스를 들고 땀을 흘리며 옮기는 젊은이들이 같이 움직인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보따리 장수인가보다. 행색이 좀 초라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중국어를 쓴다.
<단동페리호>
한 층을 더 올라가니 여객실이다. 출입구 양쪽으로 칸막이 방이 몇 개 있고 가운데에 침구가 놓인 넓은 평상 구조이다. 중앙의 커다란 평상 침상 묶음 3개가 나란히 있는데 우리 일행의 구역은 서쪽이다. 구역마다 한쪽으로 12개씩, 2열로 24개의 구획이 있고 양쪽으로 베게와 이불 한 장씩이 접혀 가지런히 놓여있다. 침상 양쪽의 박스에 여행 가방을 몇 개 올려놓았지만 자리가 부족해서 양쪽으로 발을 잇댄 침상 중앙의 경계선에 가방을 놓고 자리를 잡는다.
일행 중의 몇 명이 실망한 빛을 보인다. 광나루님이 실망한 사람들을 위해 배로 가고 오는 길은 험하지만 답사지를 생각하면 견딜만하다는 내용의 변명인지 위로인지 모를 이야기를 한다. 침상 묶음 박스 위에 각각 1대씩의 TV가 올려져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고 국장으로 할 것인지 국민장으로 할 것인지 논의 중이라는 특보가 계속 나온다. 드디어 돌아가셨구나. 당신 재임 시 IMF를 맞아 경제가 엄청나게 힘든 상황에서 밀어줬다는 인천대교의 완공을 눈앞에 뒀는데... 어쨌거나 드물게 천수를 다한 전직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를 보낸다. 배안의 안내문 등의 글은 중국어와 한글이 병용인데 TV는 끝까지 한국방송 실시간 진행이다.
<단동페리호 객실 일반석>
오후 5시, 뚜~ 하는 뱃고동 소리. 출항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보를 계속 들으며 일행들은 서서히 불편함에 적응해 가는 듯하다. 짐 정리가 대충 끝나자 여행한다는 느낌이 새삼 드는지 뱃전이나 난간으로 나가 뒤로 밀려나는 인천항의 풍경과 등대, 완공을 눈앞에 둔 웅장한 인천대교를 감상하거나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다. 예외 없이 여객선에 따라붙는 ‘거지 갈매기들’도 인천항으로부터 한참이나 우리를 배웅(?)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망망대해가 나타나자 볼 것도 딱히 없고 사진 찍기도 시들할 시점에서 사람들이 침상으로 하나 둘 모인다. 씻으러 가는 사람, 배안을 둘러보는 사람, 우물거리는 사람, 모습이 제각각이다. 배에서 보는 기가 막힌 일몰이 오늘은 어렵겠다. 날이 흐리다. 아깝다!
<단동페리호에서 본 인천항과 거지 갈매기떼>
<완공을 눈앞에 둔 인천대교>
어느 정도 배에서 여유를 찾을 즈음 저녁식사 시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마음대로 식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해운회사 쪽에서 연락이 오면 목걸이를 꼭 걸고 일행이 한꺼번에 오란다. 한참을 기다려 위층의 식당에 줄을 서서 올라가니 스테인레스 식판에 국과 밥, 그리고 서너 개의 반찬을 알아서 담아먹는 방식이다. 하지만 조기 튀긴 것만은 중국인 아주머니가 직접 1쪽씩 식판에 올려준다. 국도 먹을 만하고 김치, 생선, 나머지 밑반찬도 모두 맛이 괜찮다. 흠이라면 미나리나 취나물이 질기다는 정도?
반찬이 입에 안 맞을 것을 우려해서 김이나 다른 반찬을 가져와서 먹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여행 중에 음식이 이 정도만 돼준다면야 나무랄 데가 없겠다. 우리처럼 일행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승선한 사람은 중앙의 <안내 데스크>에서 한국 돈으로 4000원을 주고 식권을 사서 밥을 먹는 모양이다. 메뉴의 <시락국>이라는 단어가 우스웠는데 예상대로 시래기국이었다.
출항 후 4시간 38분이 지난 시점에서 집 생각도 나고 작년 가을에 백령도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시간이기도 해서 시험 삼아 휴대폰으로 안부 문자를 보내니 편지 동영상 이모티콘이 왔다갔다 만을 반복할 뿐 넘어가지 않는다. 재시도를 했지만 ‘통화권 이탈’이란 문자가 나오고 애써 충전해온 휴대폰 밧데리만 주루룩 내려간다. 우리나라를 벗어났다는 실감이 난다. 한국과 중국은 정확히 1시간 시차가 나는데 배안의 시계는 중국시간으로 되어있다. 단동페리호는 한중합작 회사라는데 일하는 선원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중국인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밤 11시 쯤 돼서 침상 가운데에 조촐하게 술자리를 마련하고 모두 모여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ㄱㄴㄹ님이 다시 일정을 되짚어준다. 밖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배도 출렁이기 시작하자 예민한 사람들은 멀미 증세를 느끼는지 술자리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고 비척이며 잠자리로 간다. 멤버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하고 여성들인데다 초등학생이 둘 포함돼 있으니 술장사가 될 리 없다.
술자리는 흐지부지 끝나고 뒤척이던 사람들은 하나 둘 잠이 들었지만 배안의 시계로 1시가 넘었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뱃전에 나가보지만 비바람이 들이치고 배가 요동치는 통에 곧 들어오고 말았다. 그 사이 배안의 모든 불은 소등이 되고 난간의 불만 남아있다. 반대편 쪽에서 술을 마시며 떠드는 일행과 잠을 자려는 일행 간에 약간의 큰소리가 오갔지만 곧 잠잠해졌다.
내일 답사를 제대로 하려면 잠을 자야하는데 후텁지근한 공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누워서 동생과 딸 쪽으로 부채질을 하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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