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인천, 부천 지역 능원묘답사2

큰누리 2012. 6. 7. 01:48

<인천 심곡동의 문종 후궁인 숙의 문씨 묘>

초등학교 바로 위에 있는데 무슨 사연인지 입구부터 묘역까지 철책도 모자라 DMZ처럼 입구를 철망으로 또 둘렀다. 철책이 촘촘해서 밖에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겉을 빙빙 돌다 철망이 끝나는 지점의 지지대 위로 올라가 한 손으로 철책을 잡고 나머지 손으로 몇 컷의 사진을 건졌다. 얼핏 도굴을 당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 때문인가?

 

 

<철책 지지대에 한 발을 걸치고 건진 문종의 후궁 숙의 문씨 묘 사진>

숙의 문씨 묘는 철책 안의 또 다른 철책 안에 갇혀 있다(중앙의 오른쪽 끝). 주변의 묘는 모두 전주 이씨들이다. 문종의 후궁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산한 일생이었을 텐데(하지만 당시로선 83세까지 엄청 장수하셨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렇게 죽어서까지 갇히고 또 갇힌 것인지...

 

 

<인천 서구 심즙선생 묘를 찾아가는 길>

빈 땅이 많고 개발이 안 된 지역이어서인지 승마 중인 일행을 만났다. 차 안에서 두 컷... 디스크 때문에 평생 고생하는 내 눈에 이 사람들의 곧추선 자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저 부럽부럽...

 

 

 

<인천 서구 심즙선생 묘역>

심즙선생은 인조 때의 문신으로 이괄의 난 때 왕의 피란을 도와 공신 반열에 오른 분이라고 한다. 안내판이 벗겨져 동네 이름을 모르겠다. 최초의 장지가 개발(?)되어서인지 공동묘지처럼 청송 심씨 묘들이 층층이 정렬되어 있다. 이런 문중 묘는 개발 붐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위쪽에서 내려다 본 인천 서구 청송 심씨묘역>

심즙선생 묘는 가장 윗단에 자리하고 있다. 묘들이 가파른 각도로 층층이 자리 잡고 있고 묘역 끝 양편으로 망주석과 문인석들이 위 아래로 줄 지어 있다. 신도비들은 맨앞(아래)에, 그 위쪽으로 상석 4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이렇게라도 남아있는 게 다행이지만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다. 

 

 

<인천 서구 청송 심씨묘역의 심즙선생 묘>

 

 

<인천 마전동의 한백륜선생 묘역 앞 견공>

 

 

<인천 마전동의 한백륜선생 묘역>

예종의 계비(원비는 한명회의 딸)인 안순왕후의 아버지이면서 음서로 관직에 올라 정승이 된 분이다. 주변이 어수선하고 코 앞까지 개발이 닥치고 있는 곳이다.

 

 

<인천 갈현동의 이찰, 이율형제 정려>

임영대군의 후손으로 모친이 위독할 때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입에 흘려 넣어 소생시키고 부친상을 당해서는 형제가 각각 문막을 짓고 3년 간 시묘살이를 하자 고을 유지들이 상소하여 현종 11년(1670년)에 효자정려를 내렸다고 한다. 

그 동안 정려비만 보다 현판 형식으로 된 것은 처음이다.  

 

 

<인천 갈현동의 이찰, 이율형제 정려각>

 

 

<인천 갈현동의 이찰, 이율형제 정려 주변>

왼편의 산이 인천의 백두산인 계양산이다. 대략 해발 395m? 어스름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인천공항 방면으로 공항철도가 지나가고 있고 더 앞쪽으로 한강대운하 공사장이 보인다. 이번 인천 답사지 주변은 한강대운하 공사장과 많이 겹쳤다. 계획안만 나온 걸로 알았는데 한강대운하는 이미 상당량이 진행되고 있었다.

 

 

<인천 계양구 동양동의 순평군 묘역 앞의 철새떼>

이분 묘역에 올라서면 김포공항 청사와 활주로, 주변에 아직 남아있는 논들을 볼 수 있다. 성종의 현손으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피난을 갔다가 청나라 군사가 상륙하자 부인과 며느리가 자결했다고 한다. 시대가 벌어지긴 했지만 조선 말에 왕족과 왕비 친인척들이 앞장 서서 나라를 팔아먹은 것과 대조되는 분들이다.

 

 

<인천 동양동의 순평군 묘역>

맨앞 묘는 순평군부부, 중간은 아들부부 묘이고, 가장 멀리 보이는 봉분은 시신을 찾지 못한, 자결한 며느리의 치마폭과 신만 매장한 가묘.  

 

 

<인천 동양동의 순평군 묘역>

문인석이 등을 돌리고 나란히 배치된 점이 이채롭다. 정면으로 보이는 것은 순평군 아들(한성판관 이필혐) 부부묘의 문인석이고 등을 보이는 것은 앞쪽 순평군 부부 묘의 것이다.

 

 

<계양구청 근처의 순두부집에서 먹은 저녁>

관청 주변은 기사식당 만큼 맛있을 거라 믿고 일부러 계양구청 쪽을 찾아갔는데 맛이 없었다.

 

 

<귀가했더니 이런 것이 집에...>

올해도 어김없이 시골의 초등학교 친구가 친정어머니가 딸 챙기 듯 바리바리 싸서 보내줬다. 너무 무거워서 이 박스를 드는 것은 고사하고 질질 끌어서 풀었다. 눈물겹도록 고마운 친구, 잘 먹을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