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열하일기 코스

북경8 - 근대 서구 열강의 만행을 증명하는 원명원

큰누리 2012. 6. 10. 01:03

원명원의 폐허를 둘러보면서 우리나라의 덕수궁과 근본적으로는 느낌이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다른 점은 덕수궁의 서양식 건물(석조전)은 제대로 남아있지만 원명원은 철저히 파괴되고 잔해만 남았다는 것이다. 원명원(圓明園) 명나라의 정원이었던 것을 1700년대 초에 청의 옹정제가 아버지 강희제로부터 하사 받았고 황제가 된 옹정제와 다음 황제 건륭제가 증축을 거듭해서 청 말기에는 황제가 실제로 거주했던 황실의 정원다.

임진왜란 후 궁궐이 불타 머물 곳이 없던 선조가 월산대군 집에서 임시로 거주한 후 궁으로 승격한 현재의 덕수궁과 시작은 좀 다르지만 근대식 서양식 건물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점, 마지막에 황제가 거주한 이궁이란 점에서 상당히 비슷하다.

 

우리가 아는 원명원은 바로 이웃해 있는 장춘원, 기춘원(후에 만춘원으로 개칭)을 묶은 넓은 의미의 명칭이다. 로코코와 바로크식의 대리석 건축, 수많은 연못과 정원, '문원각'이라는 도서관까지 갖춰진 이 호화로운 별궁은 1856년의 2차 아편전쟁의 처리를 빌미로 1860년, 영불 연합군에 의해 문화재는 약탈 당하고 건물은 방화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다. 아니다, 소실에 의한 폐허라기보다 폭탄 같은 것으로 박살을 냈다 해야 맞는다! 그 정도로 철저히 파괴되었다. 당시에 사흘 밤낮 동안 불에 탔다고 한다. 이후로 계속 방치되다가 최근에 복원 논의가 있었으나 그대로 두자는 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오늘 날에 이르고 있다.

 

매 시각마다 12지신이 번갈아가며 시각을 알렸다는 장춘원 해안당 물시계의 동물상 중 2개가 서양에서 수집가들의 손을 떠돌다 경매시장에 나와 중국인들이 구입하려 했지만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인정하라는 조건을 붙여 중국인의 자존심만 건드렸다고 한다. 강탈한 남의 물건을 300억 가까운 바가지로 되팔아먹으려는 심뽀라니... 물론 달라이라마에 대한 인정과 티벳의 독립은 중국의 아킬레스건이지만 프랑스인들의 뻔뻔함도 대단하다.

하긴, 중국 것만 강탈했는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부속품들, 우리나라의 외규장각의궤 등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나폴레옹은 해외원정 때 아예 고고학자를 대동하고 다녔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에게 외규장각의궤를 줄듯 말듯 약 올리다 반환도 아닌 대여(!)를 하면서 그들이 챙긴 잇속 또 얼마인가?

 

우리는 원명원의 정문(원명원공원의 후문)으로 들어갔는데 입구 오른쪽으로 고궁 느낌이 나는 기둥이 있기에 무심코 촬영했다. 글 정리를 하면서 보니 그 곳이 바로 원명원 3원 중의 하나인 만춘원 입구였다. 긴 진입로, 넓은 연못가를 걷다 전동카트(트롤리)를 타고 우리가 간 곳은 원명원 중에서 장춘원이다. 다른 곳은 연못이거나 워낙 폐허가 돼서 볼거리가 없다고 한다. 입장료를 받는 공간을 들어선 순간 눈앞과 발밑이 온통 조각이 새겨진 하얀 대리석 건물의 잔해였다. 철저히 파괴됐다는 게 그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황제가 중앙의 높은 보좌에 앉아 미로를 헤매며 알현하러 오는 신하들을 지켜봤다는 일명 미궁인 황화진(黃花陳)에서 우리는 상당히 오래 머물렀다. 미로를 헤매기도 하고 보좌가 있던 원형 건물에서 사진도 찍고...

 

우리가 밟거나 지나면서 본 폐허의 잔재들 중에서 이름이 있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소극장이 아니었을까 싶은 연못가의 해기취(諧奇趣), 공작이나 새들을 키웠을 양작롱(養雀籠), 건륭제가 사랑하는 이슬람인 후궁 향비를 위해 지은 이슬람 사원 방외관(方外觀), 분수와 물시계가 있던 해안당(海晏堂)거대한 물탱크인 해안당 축수지대(蓄水池臺), 건륭제가 지었으며 원명원 서양루 구역의 얼굴인 대형 분수 대수법(大水法)출발지점에서 맨 끝에 있는 작은 동산인 선법산(線法山)과 그 앞의 빅톨 위고像... 빅톨 위고 동상은 원명원을 철저히 파괴한 서구열강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할 것을 촉구한 서양인이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세운 동상이다.

 

일반 관광객은 폐허라 볼 게 없어 지나친다는 원명원의 폐허를 거닐면서 화려했을 당시의 궁궐 모습을 연상도 하고, 시대의 흐름을 놓친 무능한 중국인들이 불타는 자신의 궁궐과 보화를 강탈하는 서구 열강의 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는 모습도 연상하면서 유적들을 보노라니 남의 나라지만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원명원 입구 오른쪽의 만춘원(万春園) 입구>

기둥이 심상치 않아 무심코 촬영했는데 원명원 3원(원명원, 장춘원, 만춘원) 중의 하나인 만춘원 입구이다. 따로 가지 않은 걸로 보아 우리가 본 장춘원의 서양루 구역보다 유적이 적은 모양이다. 

 

 

<원명원 입구> 

 

 

<원명원 입구의 4룡>

가뜩이나 용을 좋아하는 중국인인데 올해가 마침 임진년 용의 해 모든 곳에 용 그림, 용상이 바글바글하다.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은 우리와 달리 믿는 것도 많고 특히나 중국인들은 터부가 많다. 오방룡이라면 남쪽을 뜻하는 붉은 朱龍도 있어야 하는데 없다! 불 때문인가? 

 

 

<원명원 전경 안내도> 

 

 

<원명원 안의 매점>

왜 이걸 올렸냐 하면 구조가 우리의 경복궁 향원정이랑 비슷해서, ㅎㅎ... 더 중요한 것은 해안당 분수의 12지신 동물 모형이 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원명원 매점 안의 해안당(海晏堂) 그림>

배경의 그림은 열두 동물이 돌아가며 시각을 알렸다는 해안당을 폐허가 되기 전에 그린 것이다. 근대 서구 열강의 내노라 하는 황제들이 앞다투어 흉내낸 동양 정원의 모델이다. 12동물들은 앉아서 손에 책, 지팡이, 악기 등으로 보이는 뭔가를 들고 있다. 

 

 

<원명원 매점, 해안당 12지신상 모형 중 일부>

프랑스에 넘어간(약탈 당한) 12지신 상 중 2개를 재구입하려다 자존심만 상한 채 실패한 유명세 때문에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옷은 중국복장(그림으로 추측)이지만 얼굴(?)은 사실적인 동상이다. 

 

 

<원명원 연못의 황제용 가마와 썰매(추측)>

 

 

<원명원 연못 중의 하나>

우리 궁궐의 연못이랑 닮은 꼴이다. 원명원은 전체 면적의 35%가 연못이라고 한다. 황량해보이는 지금과 달리 연못마다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꽃과 수련이 꽉 차고 그 사이로 나룻배가 다니는 여름 풍경 사진은 무척 아름다웠다. 중국 황실정원은 버드나무들이 유독 많다. 

 

 

<원명원 안내도>

우리는 노란줄을 따라 걷거나 전동카트를 타고 이동한 후 빨간줄 구역 안(장춘원)만 관람 했다. 노란줄 왼쪽 위는 원명원 3원 중에서 원명원, 오른쪽 아래는 만춘원(원명은 기춘원)이다.

 

 

<원명원의 전동카트>

구역이 워낙 넓기 때문에 요긴한 이동수단이다.

 

 

<서양루 구역의 첫째 코스 황화진(黃花陳) - 일명 미궁>

황제의 사적인 정원으로 동서양 건축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중앙의 황제 보좌까지 가려면 미로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미궁으로도 불린다. 우리 일행 중 건장하거나 성질이 급한 분은 미로를 헤매지 않고(!) 월담을 했다. 나도 넘어보려고 했다가 "옛날처럼 사진 찍고 뛰어내리다 허리 디스크 도지려고 그러세요?" 라는 딸의 힐난을 받고 포기했다.ㅠㅠ...

 

 

 

<황화진의 황제 보좌>

다른 관람객이 없어서 우리 일행이 이곳을 접수했다.

 

 

<황제 보좌에서 내려다 본 황화진의 미로>

사진 중앙의 작은 펭귄 형상이 바로 동행한 딸, ㅎㅎ...

 

 

<공작새를 키운 양작롱(養雀籠)>

 

 

<건륭제가 이슬람인 후궁인 향비(香妃)를 위해 지은 이슬람 사원 방외관(方外觀)>

 

 

<분수와 물시계가 있던 해안당(海晏堂)의 앞과 뒤>

  

 

 

<해안당 폐허 위의 길고양이>

 

 

<거대한 물탱크인 해안당 축수지 받침대(蓄水池臺)>

 

 

<건륭제가 지은 원명원 서양루 구역의 얼굴인 대형 분수 대수법(大水法)과 맞은편 건물>

다른 이의 글을 보니 대수법 뒤에 온전한 원명원 미니어처가 있었다.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놓쳤다.

 

 

 

<출발지점에서 맨 끝에 있는 작은 동산인 선법산(線法山)과 그 앞의 빅톨 위고像>

 

 

<원명원 출구 쯤에 있던 들고양이>

원명원에는 길고양이들이 참 많다.

 

 

<원명원공원 정문 바로 안에 있는 자리를 잃은 원명원 건물의 잔해들>

 

 

<원명원공원 입구>

이곳을 나와서 부랴부랴 중국 최대의 라마사원인 옹화궁으로 이동. 마지막날까지 바쁘다,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