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열하일기 코스

북경7 - 서태후가 끝까지 집착했던 황실 별장 이화원

큰누리 2012. 6. 10. 01:01

사람들은 자금성이 헛갈린다는데 나는 이화원에서 내내 방황해야 했다. 사전 지식없이 들어간 데다 예측할 수 없는 건물의 배치와 어마어마한 정원의 크기 때문이었다. 사진에 팔려서 몇번이나 일행을 놓쳤는데 그 때마다 그런 엄마가 걱정이 되어 제 볼 걸 포기하고 갈림길에서 조금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착한 딸이 팔짱을 끼고 기다리곤 했다.

곤명호를 낀 평지에서는 그래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만수산 자락을 따라 지어진 고풍스럽지만 미로 같은 건물들 사이에서 일행을 잃으니 정말 곤혹스러웠다. 내 행동 패턴을 잘 아는 광나루님은 답사 때마다 "몇시까지 어디로 꼭 오셔야 합니다"라는 사전 예고를 하는데 이화원에서는 그게 없었다.

 

우리는 북문으로 입장했다. 북문으로 들어서면서 처음 만나는 것이 소주거리(街)이다. 

강남의 소주를 본떠 이화원 안에 만든, 궁궐 사람들을 위한 시장 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오후 늦은 시각인데다 북쪽에 위치한 탓인지 꽁꽁 언 얼음 위에서 사람들이 쪼그리고 앉아 썰매를 타고 있을 뿐 다른 이들의 사진이나 글에서 본 것처럼 번화하거나 아름답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궁궐 입구나 중간에 서 있는 화려한 패루를 지나 처음으로 간 곳이 만수산의 운회사이다.

중국풍의 전각 1채와 종각으로 보이는 건물만 달랑 2채가 있는 운회사는 음산하기까지 했다. 나는 이미 입구에서 일행을 놓쳤기 때문에 포기하고 혼자 유유자적(?) 했지만 다른 분들은 곧장 불향각으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화원은 유교와 불교(사람에 따라서는 도교 추가)가 공존하는 황실 정원이다.

동북쪽 곤명호와 접한 평지에는 유교 이념으로 지은 궁궐(거주 구역)이 자리잡고 있고, 북쪽 만수산자락에는 불교 관련 건물들이 주로 자리잡고 있다. 중국식 불교사원, 라마식 사원과 건물들이 묘하게 어울린 공간이다. 그 곳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이 정상의 라마식 사원 앞에 자리한 이화원의 랜드마크 불향각이다. 불향각 안의 천수관음이 유명하지만 따로 입장을 하기 때문인지 시간 때문인지 우리는 통과했다. 다른 이들의 사진을 보니 계단이나 라마식 건물들이 상당히 아름다웠다. 불향각을 밖에서 본 후 산을 넘으려니 비스듬한 석양을 배경으로 보이는 굴곡진 회랑과 레이스처럼 보이는 불향각 아래의 기와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지붕 기와의 곡선을 보고 레이스라니 가당찮은 것 같지만 만수산 아래의 기와 곡선은 그 표현만한 게 없는 것 같다.

 

두어 개의 정자를 대충 둘러본 후 잰 걸음으로 아래(곤명호 쪽)로 내려갔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회랑식 복도인 장랑 걸으며 어디로 가야 일행을 찾나 고민이 될 즈음 딸이 또 내 앞에 나타났고 광나루님이 나타나서 돌배를 봤냐고 물었다.

"돌배라뇨?"

허겁지겁 광나루님을 따라 이화원 서쪽 끝에 있는 돌배(청안방)를 봤다. 중국처럼 절대권력을 가진 황실, 그것도 큰 나라가 아니라면 생각도 못할 건조물이었다. 돌배라니... 

과연 그 돌배(청안방)는 물에 한번이라도 뜬 적이 있을까? 은자 80만냥으로 서구열강에 대비해 해군력을 보강하려는 이홍장을 누르고 서태후가 그 돈을 접수해서 이화원 재건에 쓴 후에 해군 보강에 보태라고 내린 배가 바로 청안방이라고 한다.

 

긴 장랑과 곤명호가를 번갈아가며 정문을 향해 걷다가 중간에 연결된 전각으로 들어갔다. 그 곳이 바로 서태후가 1년 중 2/3를 머물렀다는 낙수당이었다. 천하를 주무른 여걸(?)의 거처답지 않게 소박했다. 주변에서 담장의 복판에다 일정한 간격, 서로 다른 기하형으로 낸 창을 눈에 담으며 다시 걸음 재촉...

 

드디어 이화원의 정전인 인수전 도착... 인수전 앞의 괴석과 기린을 잠깐 보는데 빨리 오라고 가이드는 재촉하고 해는 꼴딱 저버렸다. 

 

 

<북쪽 출입구의 이화원 표석> 

 

 

<북문으로 들어가자마자 만나는 다리 아래의 소주거리>

춥고 꽁꽁 얼어붙어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화려한 이화원 북문의 패루(牌樓)> 

 

 

<만수산으로 오르는 길 입구의 암사자상>

이 친구가 바로 새끼를 발로 누르고 있는, 내 사진에서 유일하게 단독 모델이 된 암사자상이다. 암사자상 바로 뒤로 목이 잘린 보주를 밟고 있는 숫사자상이 있다. 이게 암사자란 걸 몰랐다가 사진 올리면서 방금 전에 알았다.^^

 

 

<만수산 북쪽 정상부근의 중국식 사원 운회사>

인기척 하나 없고 건물은 거미줄 치기 직전이다.

 

 

 

<불향각? 라마사원?>

이 건물의 이름을 찾으려고 400여개나 되는 블로그의 사진을 뒤졌지만 못 찾았다.

이 건물 앞에 이화원의 랜드마크인 불향각이 있는데 대부분의 글에서 이 사원과 중국식 4층 전각을 묶어서 불향각이라 불렀다. 우리가 아는 4층 짜리 불향각의 원경이 아름답다면 이 건물은 근경이 현란하다. 건물 전체가 주황과 녹색의 벽돌(?)인데다 불상 부조들로 온 건물을 도배 했기 때문이다.

 

 

<불향각>

이게 바로 불향각으로, 내부를 보려면 돈을 따로 내고 들어간다고 한다.

곤명호를 끼고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위치지만 설 수 있는 공간이 좁아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지붕의 둥근 공 모양은 원래는 황제가 거주하는 건물에만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불향각이 황제 거주지에 준하는 특별 대접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사진의 다른 건물을 확대해보니 이 건물 지붕만 온전하게 둥근 공 모양이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의 누각>

이 건물의 측경, 특히 기와의 곡선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 현란함의 극치라고나 할까? 사진 오른쪽 아래로 보이는 회랑을 포함해서 모든 이화원의 건물 중에서 이 자리에서 본 이 건물이 내 눈에 가장 아름다웠다!

 

 

<석양으로 물든 위 건물의 측경>

 

 

<곤명호의 석양>

산을 내려오면서 촬영한 것이다. 멀리 보이는 뾰족하게 솟은 건물의 정체가 궁금하다.

 

 

<용마루가 없는 중국의 기와 건물>

우리가 돌아본 궁궐이나 민가조차 중국 기와 건물은 용마루가 없었다. 변발 같기도 하고 대머리 같기도 하고... 다른 사진을 보니 이 안에는 황제의 보좌가 있고 따로 입장료를 받는다고 되어 있었다. 아마 황제의 거처가 아니었나 싶다.

 

 

<곤명호의 석양>

 

 

<돌배 청안방>

 

 

<장랑>

세계에서 가장 긴 복도(회랑)라고 한다. 서태후가 거닌 길이라고들 하는데  작은 가마라도 탔다면 모를까 전족을 했을 서태후가 절대로 직접 걸었을 리 없다.

 

 

<인공호수 곤명호에 뜬 인공섬과 17공다리(橋)>

다리의 구멍이 17개인 모양이다. 하절기에는 배를 타고 만수산자락이나 곤명호 주변의 건물들을 보는 것도 걸으며 본 것 못잖게 경관이 좋을 것 같은데 호수 대부분이 꽁꽁 얼어붙었다.

 

 

 <이화원 한복판의 화려한 패루 운회옥주>

내가 북경답사에서 본 패루 중 가장 화려한 것이다. 이 글을 올리면서도 이 문 이름이 '패루'란 것을 몰라 블로그를 뒤져 겨우 찾은 것이다. http://toads.blog.me/20112623121 두터비란 닉을 쓰는 분 블로그인데 그 많은 중국여행 관련 블로그 중에서 내용이 가장 충실하고 정확했다. 

안내판이나 최근에 보수한 건물은 모두 간자지만 옛모습이 남아있는 건물의 현판 등은 한자여서 보기가 쉬웠다.

 

 

<곤명호와 동문쪽 건물들>

사진 왼쪽으로 물속에 울타리 같은 것을 세운 곳이 서태후의 처소인 낙수당 바로 앞이다. 다른 이들의 여름 사진을 보니 연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곤명호의 일몰>

해 넘기 직전이다. 일행을 쫓느라 뛰다시피 하면서 일몰 광경을 줄장 찍었다^^. 이번 만큼 일몰 사진이 많은 여행도 없었다. 북해공원, 이화원의 곤명호...

 

 

<서태후의 거처였던 낙수당과 다양한 담장의 창>

중국 대륙을 뒤흔든 서태후의 거처치곤 참으로 단촐하다. 서태후는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내내 이곳에서 거주했다는데...

아래 사진 - 이화원 안의 대부분의 담장에는 중간에 이곳처럼 다양하고 아담한 창 있다. 담장에다 창을 내는 것도 우리에겐 특별한 구경거리인데 같은 모양의 창이 없다.

 

 

 

 <낙수당을 본 후 이화원 정전인 인수전으로 가는 통로>

 

 

<이화원의 정전인 인수전의 측면과 정면>

 

 

 

<이화원 인수문>

동쪽 맨끝에 있는 이 문을 나서면 이화원 관람 끝이다,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