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백석동천 그 뒤 코스(세검정, 옥천암 마애석불)

큰누리 2012. 9. 23. 01:40

부암동이나 백사실계곡은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부암동 못지 않은 유적들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아하게 산모퉁이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백사실계곡을 돌아 신영동 쪽으로 나오는 걸로 코스를 잡는다.

 

더 학구적(!)인 사람은 백사실계곡을 가기 전에 로터리 부근에 있는 석파랑까지,

 더더 학구적인 사람은 부암동사무소 쪽의 현진건 집터, 무계정사, 윤웅렬 별장까지 들르고...

 

장의사지 당간지주는 백사실계곡을 나오는 길 버스정류장 바로 위, 세검정초등학교 안에 있다.

당간지주를 본 후 시내 방향으로 조금 걸으면 세검정, 그리고 석파랑이 있는 로터리로 연결된다.

 

석파랑을 들른 후 조금 더 코스를 늘이면 홍지문, 옥천암 마애좌상을 볼 수 있다.

로터리에서부터 왼쪽으로 인왕산을 끼고 홍지동 방향으로 개천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홍지문은 그렇다치더라도 옥천암 마애좌상은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뚜렷한 형상에다 마애불을 새긴 바위를 통으로 둘러볼 수 있다.

신자들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불상의 코앞까지 볼 수 있지만 공간이 좁아 촬영은 다소 힘들다.

 

  

 

장의사지 당간지주

장의사는 황산벌 전투에서 전사한 신라의 장춘랑과 파랑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무열왕 6년(659)에 세웠다고 한다.

마주 보는 기둥의 바깥면 모서리를 약간 죽여 장식을 보이고, 기둥머리 부분은 약간 깎여 있다.

통일신라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세검정초등학교 안에 있다.

 

 

 

 

홍지문과 오간수문

홍지문은 탕춘대성의 정문으로 숙종 41년(1715)에 서울도성과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세웠으며 한성의 북쪽에 있어 한북문으로 불리웠다.

홍지문은 1921년 홍수로 유실되어 50년간 방치되다 1977년에 오간수문과 함께 복원되었다.

 

 

 

 

 

 

 상명대학교

이 상명대학교에서 어느 해인가 도자기실습을 받았는데 아침마다 이곳을 오르는 게 등산이 따로 없었다.

 

 

 

 

세검정

대학 시절, 문화촌에 있는 과 친구의 화실을 가려면 항상 이곳을 거치는데 

버스 차창으로 스치는 무속적인 느낌이 강한 절이나 기타 건물들에 대해 언제나 묘한 느낌이 들곤 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제 나이를 유추하시는 겁니까? ㅎㅎ...) 봐도 이곳은 여전히 신비롭다.

 

그 느낌을 준 곳중의 한 곳, 세검정이다. 

세검정은 숙종 때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군사들의 휴식처로 세웠다고도 하며 연산군의 유흥을 위해 지은 정자라고도 한다.

여하튼 목 좋은 곳임에는 틀림없다.

 

한편으로는 광해군 반정 때(1623) 이귀, 김류 등이 광해군을 몰아내기 위해 칼을 씻었다고 해서 영조 19년(1743)가 정자를 세우고

현판을 써서 하사한데서 유래했다고 하니 결론은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인 것 같다.

 

 

 

 

 

 

옥천암 마애좌상

높이 5m의 마애불로 '백불' 혹은 '해수관음'으로도 불린다.

이성계가 서울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마애불 앞에서 기원하였으며

고종의 어머니도 아들을 위해 이곳에서 복을 빌었는데 이때부터 하얗게 칠을 했다고 전한다.

 

 

 

 

옥천암 아애좌상

머리에 화려한 화관을 쓰고 있고 머리카락은 어깨를 따라 팔꿈치까지 늘여져 있다.

얼굴 모형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는 단정한 아미타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