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유적답사나 서울지역 답사는 그 동안 수도 없이 지나치며 일부만 알고 대부분은 몰랐던 서울의 숨긴 사연을 비교적 확실하게 안 계기였다. '스크롤에 대한 압박' 때문에 이 카페에서 멀어졌다는 어느 분을 그리며 이 글을 올린다.
이 답사의 주제는 <다시 걷는 자주독립의 길-독립문에서 태평관 거쳐 원구단까지>였다. 가이드는 근대역사의 대가이신 재야 사학자 이순우선생님이 하셨다.
<서대문독립공원의 독립관>
앞에서 원래의 독립관, 영은문 사진을 들고 설명 중인 이순우선생님.
<독립문의 양면>
현 위치는 독립문 복원과정에서 바로 위를 지나는 고가도로로 인해 원래보다 홍은동 쪽으로 약간 옮긴 것이다. 홍은동 쪽에서 본 글씨(한자)는 아이러니하게 매국노 이완용의 필체이다.
<대신고등학교와 그 안에 위치한 양호거사비>
종로구 행촌동 171번지 소재.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탈 때마다 고가도로 옆으로 보이는 본관이 후줄근해보이는 대신고등학교가 가끔 궁금했는데 안에 들어가니 건물이 나름 괜찮았다.
양호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로 출병한 양호장군(직책이 엄청나게 길다-흠차경리조선군무도찰원우첨도어사)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史書에서 들은 기억이 없는 이름인데 이 양반을 위한 비가 자그만치 4개나 된다. 선조 31년, 광해군 2년, 영조 4년, 헌종 1년에 각각 세워졌고, 대신고의 비는 가장 늦게(헌종 기 1835년) 세워진 것이다.
<숭의묘(서묘) 터와 청수관 터>
서대문구 천연동 98번지 소재.
고종의 정비 명성황후가 시해 당한 뒤 실질적인 궁의 안주인 노릇을 했던 엄비가 무당 현령군의 요청으로 세운 숭의묘(서묘) 터(서대문구 천연동 98번지)와 청수관 터(현재 동영여중)이다. 아래 건물은 맞은 편의 눈길을 끄는 건물, 감리교신학대학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외국공관 청수관 터와 동영여자중학교>
서대문구 천연동 31번지 소재.
청수관은 현재의 동영여중과 금화초등학교 자리에 세워진 경기중영 건물이었다가 일본공사관으로 사용되었다. 일본공사관으로 바뀐지 2년도 안 돼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하나부사 공사가 달아나면서 불을 질러 건물이 소실되었다. 바로 옆에 서지(연못)와 천연정(서대문구 천연동 13번지)이 있었다. 당시에는 성안에 외국공사관 설립을 불허했기 때문에 이곳에 자리잡은 것이다.
<청수관 옆의 천연정 터와 금화초등학교>
서대문구 천연동 13번지 소재.
동영여중과 금화초등학교는 담을 경계로 붙어있어서 우리 눈에는 같은 장소로 보였다!
<모화관 터로 추정되는 영천시장(위 언덕)과 맞은편에 보이는 서울성곽>
서대문구 영천동 69번지 소재.
여담인데 아래 사진의 서울성곽 왼편에 있는 '딜쿠샤'를 너무 사랑(?)한 나는 혼자 그 곳을 찾느라 이 일대를 꿰다시피 했다! 낡은 건물에다 공간마저 좁아 사진도 찍기 힘들었지만 장독대 뒤에서 '1925(?) 딜쿠샤'란 글을 찾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인간은 그렇게 자기 만족을 하며 산다! 역사 속에서 미미하기 짝이 없는 그 '딜쿠샤'가 도대체 뭐라고... 그게 발로 움직이는 답사자들의 진정한 즐거움이 아닐 런지?
<육교에서 본 홍은동(인왕산) 방향과 서울역 방향>
모화관 터에서 적십자병원으로 가기 위해 건넌 육교에서 본 모습이다.
<만초천 복개천을 따라가며 본 서울적십자병원과 만초천>
서울적십자병원(서대문구 충정로 1가 90번지 일대)은 옛 경기감영(현재의 경기도청) 터이다.
<경기감영 터인 서울적십자병원과 정거장호텔(애스터 하우스, 충정로 1가 일대) 터>
근대 최초 철도정거장인 서대문역이 이 근처(이화여고)에 있어서 스테이션호텔(정거장호텔, 애스터 하우스)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현재의 농협건물 터가 김종서장군 집터였고, 당시의 느티나무(추정)가 지금도 농협 뒤쪽에 남아있다.
<이화여고 정문 안쪽의 서대문정거장 터 표석과 이화여교 교정>
중구 충정로 1가 일대 소재.
서대문정거장은 경인선의 시발역이었지만 외국인(주로 일본인)의 거주지(명동이나 남산쪽)와 가까운 서울역이 개통되면서 곧 그 기능을 잃었다고... 당시엔 주로 말이나 도보로 이동했다.
인천항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은 하루에 한 두번(주로 10시) 운행하는 기차를 놓치면 꼬박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최초의 철도역 부근에는 유명한 호텔들이 포진했다. 인천 자유공원 아래(청일조계지 근처)의 거대한 대불호텔, 이화여고 옆의 에스터 하우스 등...
<서울연통부지 터 겸 인현왕후 탄강구기비 터>
순화동 5번지 동화약품 소재.
공사가 한창 중이다. 새로운 빌딩이 들어설 때마다 유적은 하나 둘 사라진다. 서울연통부는 일제 강점기 3.1운동 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자금조달 통로였다. 동화약품건물과의 인연은 당시 연통부의 책임자가 동화약방의 설립자의 아들인 민강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또한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민강, 인현왕후 민씨...
<소의문(서소문) 터와 서울성곽>
중구 신문로 2가와 충정로 1가의 경계 지점 소재.
서소문은 수구문(광희문)과 더불어 장안의 상여와 시신이 빠져나가는 통로로 사용되었다. 또한 서소문 밖은 천주교 박해 당시 처형장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근세에 서양인들의 주요 거주지이기도 했다.
<시위대 병영터(서소문동 58번지, 120번지 일대)와 정미의병 발원지>
언젠가 정미의병들이 숭례문(일본군)을 향해 이곳에서 조촐한(?) 구식 병기로 대항하던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중과부적이었다! 윗사진의 '부영'이라 쓰인 건물은 명지대의 전신으로 선의사가 있었던 곳이다. 시위대병영터는 숭례문에서 훤히 보이는 지점에 있고 정미의병 발원터는 그 맞은편에 있다.
<복원 중인 숭례문과 남지 터(남대문로 5가 1, 2번지 일대)>
차들로 그득한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숭례문 앞(사진 상의 SK주유소 안내판이 있는 주변)에는 연꽃이 그득한 남지가 있었다.
<한국은행(구 제일은행 한국총지점, 남대문로 3가 110번지)>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 위치...
<한국은행(구 제일은행 한국총지점)의 쇠창살과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
'定礎'는 이토 히로부미의 필체이다. '초'자 왼쪽을 자세히 보면 원래 새겼던 글씨를 갈아낸 흔적이 보인다. 철통 같은 쇠창살 너머는 금고였을 터...
<상동교회와 송현궁(저경궁) 터>
중구 남창동 1번지 신세계백화점 본점 옆, 새로나백화점 자리 소재.
상동교회는 대한제국 시기 비밀결사 항일단체의 하나인 신민회의 근거지였다. 송현궁(저경궁)은 인조의 잠저.
<대관정 터(중구 소공동 112-9번지, 서울프라자호텔 주차장)>
임시 주차장으로 쓰이면서 높은 빌딩이 올라서길 기다리는 사연 많은 이 놈의 건물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위치는 조선호텔 맞은 편이라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중요도는 어마어마하고... 한 마디로 말하자면 원래 대한제국의 게스트하우스였지만 일제에 의한 무력통치의 본거지로 바뀌었다.
원래는 대한제국 시기에 호머 헐버트가 1898년에 완공한 것을 대한제국 궁내부에서 인수해서 외국 귀빈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사용, 러일전쟁 후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 받으면서 1904년부터 조선주차군사령부로 일본에 공여, 2대 사령관인 육군대장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부임하면서 그의 이름을 따 소공동 일대를 하세가와쵸로 명명, 덕수궁 코앞에 위치하여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고 고종을 강제 퇴위케 한 배후 장소, 조선주차군사령부가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점차 퇴락하다가 1923년에 미츠이합명회사에 매각, 1927년에 경성부립도서관으로 사용, 1946년부터 서울시립남대문도서관으로 사용, 1967년부터 민주공화당당사로 사용, 1983년에 삼환기업으로 소유권 이전 후 현재 재개발 추진 중...
우와, 머리가 띵~~~~한 정말 우여곡절이 많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건물 터이다.
<↑석고단과 석고(중구 소공동 87-1번지)>
석고는 돌북이란 뜻인데 1902년에 고종의 육순과 즉위 40년을 기리기 위한 시설물이다. 지금은 조선호텔 안의 원구단 옆에 있지만 일제의 강점기를 거치면서 떠돌던 석고가 지금의 위치로 자리잡은 것일 뿐 원구단과 전혀 관련이 없다.
<원구단(중구 소공동 87번지 일대)>
고종의 황제 즉위식을 위해 조성, 원구단에는 황천상제, 황지기의 위판을 모시고 더불어 대명지신, 야명지신, 북두칠성지신, 목화토금수지신, 이십팔수지신, 주천성수지신, 운사지신, 우사지신, 풍백지신, 뇌사지신, 오악지신, 오진지신, 사해지신, 사독지신 등 14신의 위패를 설치했다. 자세히는 모르더라도 우리 역사에서 많이 들어본 신들이다.
내가 여기서 본 것은 쓸쓸하게 퇴락한 조선(대한제국)의 망령과 뒤늦게 몸부림 친 고종, 당시 개념있는 선각자들의 슬픈 몸부림이었다. 자고로 스스로 지키지 못한 나라의 백성은 온갖 멸시를 몽땅 뒤집어써야 하고 군주와 지배층은 한마디 변명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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