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

큰누리 2012. 10. 20. 14:20

2012년 7월 7일의 근대유적답사 때 들른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 전시물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관람 순서에 따라 먼저 1층의 고대나 삼국 관련 전시실을 들른다. 전시물이 눈을 사로잡을 만큼 다양하고 내용이 풍부해서이기도 하지만 박물관의 규모가 크다보니 2층에 올라갈 즈음이면 지쳐서 대충 훑고 넘어가기 일쑤이다. 게다가 2층은 고려, 조선의 도자기 위주의 전시물, 3층은 특별 장르나 기증자들의 전시물이라 특별히 그 분야에 관심이 없으면 지루하기까지 해서 건너뛰는 일도 허다하다. 

 

우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야외전시물을 보고 1층에서 대략의 설명을 들은 후에 3층의 불교조각실로 직행했다. 컴컴한 불교조각실에 전시물 앞에서만 조명을 설치해서 종교적인 신비감이 더하다. 하지만 어두워서 사진 찍기에는 젬병...

전에는 전시장 안에서 사진찍는 것에 대해 제재가 많았지만 요즘은 후레쉬를 터트리지 않으면 특별한 제약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사람들 때문에 간간히 번쩍번쩍한다.

 

지금까지 한 장소에서 불교관련 조각(소조)을 가장 많이 본 것은 국립경주박물관이다. 다리가 아프다 못해 나중에는 머리가 어질어질했었다. 본격적으로 중앙박물관의 불교조각실을 둘러본 것은 나도 처음인데 생각보다 내용물이 많았다. 반가상, 결가부좌, 몇개의 수인 등은 알지만 종교와 관련된 내용은 잘 모르겠다. 더 많이 보고 찾아서 아래 사진의 이름을 다 채우기를 바라며...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불교조각전시실>

 

  

  

 <닫집(보개)>을 찍느라 불상의 이름을 놓쳤다.

숭림사 보광전의 화려하고 정교한 닫집을 본 이후로 절집의 주전 불상을 볼 때마다 닫집이 있는지 눈여겨 보는 습관이 붙었는데 의외로 닫집이 많았다. 어쩌면 어지간한 주불전의 불상 위에는 모두 있을지도... 

 

 

 

<이름을 놓친 철불>

금동불과 달리 매끈한 주조가 쉽지 않은 철불 제작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지적 중이신 이순우선생님.

 

 

<경주 남산 삼릉곡 출토 석조 약사불 좌상>

통일신라 9세기 작품.

경주 삼릉곡 정상 부근의 마애대불 건너편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닫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항마촉지인 수인에 근엄하면서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감산사 미륵보살(좌)과 아미타불(우)>

통일신라 719년 무렵 조성, 국보 82호.

1915년 감산사 터에서 옮겨왔다. 집사부시랑 김지성이 부모의 은혜와 왕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만들다가 김지성이 죽자 같이 명복을 빈다는 내용이 광배 뒷면에 기록되어 있다.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통일신라 9세기.

비로자나불은 온누리에 가득찬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부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9세기에 크게 유행했으며 중국, 일본과 달리 여래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특징이 있다. 

 

 

<하남 하사창동 절터 출토 철조불 좌상>

고려 10세기.

1911년에 옮겨온 것으로 지금도 절터에는 석조대좌가 일부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불이다.  불상의 양무릎에 딱딱하게 굳은 옻칠이 남아있어 원래 불상 전체에 옻칠을 한 후 도금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통일신라 말~고려 초 제작.  

 

 

<이름 모르는 금동불상들>

 

 

<금동 관음보살 좌상>

고려 14세기.

갸름한 얼굴, 화려한 장식에서 라마 불상 양식을 볼 수 있다. 가부좌한 자세에서 오른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오른팔을 자연스럽게 올려놓은 뒤 왼손으로 바닥을 짚는 윤왕좌의 앉음새이다. 윤왕좌는 인도 신화에서 이상적인 제왕인 전륜성왕이 취하는 자세이다. 

 

 

<이름 모르는 금동불상>

 

 

<국보 78호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삼국시대.

삼국시대에 유행한 반가사유상 중 대표적인 불상으로 오묘한 표정과 옷주름, 장식이 빼어나다. 워낙 유명한 불상이니 자세한 내용은 검색을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어둡고 흔들려서 촬영 상태 불량한데다 사진 높이를 맞추느라 내 신체가 드러난 점은 심히 유감, ㅠㅠ...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삼산반가사유상으로도 불리는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왜 놓쳤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국보 78호보다 모양이 유려해서 더 좋아한다. 몇년 전에 경복궁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있었을 때 두 불상만 특별전시를 한 걱을 본적이 있는데 단 2개의 작품만으로도 볼거리와 감동이 충분했다.

 

 

 

 

<불상의 명칭>

 

 

<금동 불감>

고려 14세기.

불감은 작은 불당으로 집에서 예불을 드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문 안쪽에 문을 지키는 인왕(금강역사)이 있고, 원래 안에 작은 불상을 모셨을 것으로 추측한다. 벽에 구품인을 맺은 아미타불과 보살, 나한 등을 새겼다. 

 

 

<보물 1327호 석조 지장보살 좌상>

 조선시대 1515년.

좌대 뒤에 자세한 명문이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위해 영원히 부처가 되기를 포기한 보살이다. 주로 삭발을 한 스님의 모습이거나 두건을 두른 모습으로 표현된다. 머리에 두건을 두른 지장보살은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에 걸쳐 많이 만들어졌다.

 

 

<불교조각전시실의 소형 불상들> 

 

 

 

<불상의 명칭>

 

 

<동양의 국가별 불상들> 

 

 

<불상의 손갖춤(수인)> 

 

 

<금동불 제작 과정> 

 

 

<제작 시기에 따른 불상 연표>

 

 

<불교조각전시실을 나오며...>

 

 

<국립중앙박물관 1층의 통일신라 팔부중>

출토지 미상.

팔부중은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는 8명의 신들로 석탑 기단부에 새기는 경우가 많다. 이 팔부중상은 배열이 일정치 않고 조각 양식이 서로 달라 비슷한 시기에 다른 탑에 조각되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천(天), 야차, 아수라, 건달바, 가루라, 용(龍)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