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강진 무위사

큰누리 2012. 10. 3. 17:14

<무위사 :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74>

영랑 생가 주변에는 몇 군데 볼만한 게 있다. 생가 바로 앞에 있는 영랑 현구문학관(겸 향토미술관)은 강진 출신인 김영랑과 김현구 시인의 시와 사진들을 전시하는 곳이다. 영랑 생가를 둘러보고 나오면 바로 언덕길이 있는데 그 길이 바로 '다산의 예던 길'이다. '예던 길'은 '가던 길'의 옛말로 한쪽에 설치한 담벽에 시와 관광 명소 안내판들이 붙어있다.

유배 중인 다산이 초당에 정착(!)하기 전에 머문 곳 중의 하나인 보은산방이 영랑 생가 부근인 걸로 보아 '대역죄인'이란 어마어마한 죄명 때문에 오갈데 없던 다산을 거둔 주모의 주막도 번화한 이 부근에 있었을 것 같다. 영랑 생가 바로 위 언덕에 있는 강진 신교육의 발생지인 금서당에 올라 강진만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여유를 한번쯤 가져보는 것도 괜찮다.

 

 

영랑 생가 앞 예던 길의 무위사 안내판.

 

 

<무위사 일주문>

차로 산을 오르기는 했지만 절의 코앞 평지에 덩그라니 세워진 일주문이 생뚱맞아 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이곳에 갔을 당시(2011. 9/18) 일주문 뿐 아니라 경내에서도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 어수선했다.

 

 

<일주문에서 본 능선> 

무위사 소재지가 월출산이다. 능선은 별로이지만 정확한 명암으로 원근을 보이는 산의 색이 너무 곱다.

 

 

<일주문 옆 숲의 부도>

부도를 만들 정도면 그래도 당시에 나름의 명성이 있었을 텐데 원래의 자리인지 방치된 것인지 모르겠다.

 

 

<무위사 안내도>

월출산 남쪽에 있는 무위사는 사적기에 따르면 617년 관음사로 창건하였고, 도선사가 두 번째 중창하면서 갈옥사, 선각대사 최형미가 고려시대에 세 번째로 재건하면서 묘옥사라고 했다고 한다. 통일신라 시대에 선각대사가 이 절의 주지로 있던 시기에 무위갑사라는 절 이름이 보인다. 조선 명종 10년(1555)에 태감선사가 네 번째 중창을 했는데 건물이 30여채, 암자는 35개였다.

극락보전은 절대 연대가 확인된 귀중한 조선 초기의 목조건물로 여섯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이 때 분리된 벽화는 보존각에 따로 전시하고 있다. 조선 세종 10년(1430)에 건립한 주심포 맞배집인 극락보전은 국보 제13호이며, 고려 정종 원년(946)에 세워진 선각대사 편광탑비는 보물 제507호이다. 

 

 

<해탈문 기둥>

다른 절집들은 누각의 기둥들을 나무 본래 형태에서 다듬기만 해서 쓴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깔끔하게 다듬었고 새로 지었는지 모든 것이 반듯하다. 

 

 

<예던 길과 절의 안내문에 의하면 무위사 극락보전은...>

세종 12년(1430)에 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목조건축의 하나로 소실된 남대문에 이어 목조건물로는 두 번째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건물 자체가 국보이지만 내부에 조선 성종 7년(1476)에 그림을 끝냈다는 기록이 적힌 아미타후불 벽화(보물 제1313호)와 백의관음도(보물 제1314호)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그림은 토벽에 그려진 가장 오래된 후불벽화로 화려하고 섬세한 고려불화의 전통을 이은 수작이다.

무위사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건물은 조선 명종 10년(1555)에 건립되었으나 극락보전만 세종 12년(1430)에 건립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직선 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ps : 기록이 약간씩 달라서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절의 안내문 한 곳에는 내부 벽화가 전시실에 보존되어 있고 현재의 벽화는 모사본이라고 쓰여있고, 다른 곳은 (벽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쓰여있다. 벽화에 대한 보물 지정번호도 최근의 안내판에는 제1315호라고 되어 있는데 반해 예전의 안내판에는 윗글에서처럼 1313호와 1314호로 지정되었다고 되어 있다. 

 

 

<해탈문루 밑에서 본 무위사 극락보전>

불사로 어수선한 가운데에서도 이 극락보전은 눈에 쏘옥 들어왔다. 단청을 칠한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크기도 아닌 이 건물이 내 시선을 붙잡은 것은 기품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국보 제13호 무위사 극락보전>

기품 있는 이 건물에 부연 설명을 하는게 내키지는 않지만 몇 가지 짚을 게 있다. 건물 앞 양쪽에 있는 탱화를 내걸기 위한 지주는 사람들이 당간지주와 헛갈려하는 것이다. 당간지주는 절의 행사를 사람들에게 깃발로 알리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탱화 지주보다 훨씬 크고 절 밖에 있으며, 탱화를 거는 지주는 당간지주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절 안 중심 건물 앞에 있다. 건물 정면 앞 바닥의 연꽃 잎 8장이 돋을 새김된 재색 돌 무슨 용도인지 궁금하다. 해설사가 열심히 설명 중이었는데 독촉하는 일행들 때문에 듣지 못했다.

 

 

 

 

 

<극락보전 내부와 내벽 벽화>

동행한 사람으로부터 주존불 후불탱화와 관련해 파랑새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다. 일종의 화룡점정 같은 내용이었는데...

절의 안내문에 의하면 1974년에 극락보전을 보수하면서 <아미타내영도> <석가여래 설법도> <해수관음 좌상도> <오불도> <비천선인도> 등 29점의 벽화들을 원형대로 뜯어 보물(제1315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무위사 극락보전 외벽>

극락보전 내벽 벽화도 사전 공부를 안해서 놓쳤지만 외부의 기와는 그나마 아는 게 거의 없다. 대들보가 어떻고 상량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자주 듣지만 이상하게 지붕에 관한 내용은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위사 극락보전, 특히 옆벽(지붕구조가 맞으려나?)은 상당히 유명한데 기둥을 받치는 나무 구조 때문인 것으로 안다. 

 

 

 

 

 

<무위사 극락보전과 삼층석탑>

 

 

<삼층석탑과 선각대사 편광탑비>

 

 

<선각대사 편광탑비(보물 제507호)>

이 비는 선각대사(864-918)를 기리기 위해 고려 정종 원년(946)에 세운 것이다. 대사는 통일신라 말의 명승으로 법명은 최형미이다. 선각대사는 무위사의 당시 이름인 무위갑사 주지로 8년간 머물렀고 왕건의 창업을 돕기도 했다.   -안내문의 글을 발췌함-

탑비의 받침돌은 몸은 거북, 머리는 여의주를 문 용의 형상이며 머릿돌은 구름 속의 용의 모습이다. 조각도 뛰어나고 보존상태도 훌륭하다. 무위사에서 내 눈에 확실하게 들어온 게 극락보전과 이 선각대사 편광탑비였다.

 

 

<무위사 종각>

새로 올린 기와를 제외하고 종각의 나머지 목조도 꽤나 연륜이 있어 보인다. 

 

 

<종각에서 본 처마의 곡선과 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