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군산 발산리, 개정동의 유적들

큰누리 2012. 10. 31. 22:06

군산에는 일제 점령기와 관련된 유적들이 특히 많다. 일제 때 호남평야의 논을 일본인들이 강제로 빼앗아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고 거기에서 생산한 막대한 양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창구로 군산을 집중 개발했기 때문이다.

 

군산이 고향이라 자주 들르는 편인데 내가 군산의 유적에 눈을 뜬 것은 최근의 일이다. 취미로 근대사를 공부하면서 쌀 때문에 일제 수탈의 중심이 된 곳이 군산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주변의 임피역사(驛舍)나 초등학교 건물, 관사 등 일본 건물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시골이면서도 일찌감치 전기가 자리를 잡고, 논의 관개수로가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정비된 이유를 그 즈음에야 알게 되었다. 다른 항구가 개발로 인해 일제 때의 건물이 대부분 철거된데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늦었던 군산, 특히 구 시가지에는 아직도 일제 때의 건물들이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최근에는 지자체마다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붐이 일어서인지 군산 역시 구)군산역에서 월명공원, 부두 주변에 집중된 일제의 유적들을 적극적으로 보호, 정비하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낡고 후줄근한 그 건물, 거리들이 이렇게 대접(!)을 받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나운동을 중심으로 군산 신시가지가 형성되기 전까지 군산역에서 월명공원, 해망동 주변은 시대의 흐름을 놓치고 깊은 잠에 빠진 병든 노인 같았다. 개발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 가보니 군산 근대유물전시관과 진포해양공원을 중심으로 깨끗이 정비된 구)군산시내에서 풍기는 새롭고 활기찬 기운이 좋았다. 

 

익산의 유적을 둘러보고 점심 때쯤에 군산에 도착했다. 군산하면 횟집이 우선인데 전국 5대 짬뽕집 마스터하겠다는 대장(!)의 주장으로 5대 짬뽕집 중에서 네번째로 복성루로 향했다. 도착하면서 내리기 시작한 비가 장대비가 되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내내 비를 맞아야 했다. 군산 복성루 짬뽕은 맛은 괜찮은 편이지만 돼지고기 볶음을 잔뜩 넣어서 짬뽕 특유의 개운함이 2% 부족했다. 그 동안 들른 곳 중에서 맛이 가장 나았지만 비를 맞으며 40여분씩 기다려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내 입에는 5대 짬뽕집은 아니지만 홍합이 19개(?)나 들어간 인천 삼산동 짬뽕 훨씬 개운하고 맛 있었다.

 

 

<전국 5대 짬뽕 맛집인 군산의 복성루>

당일에 준비한 재료만 쓰기 때문에 오후 3시 반 경이면 영업이 끝난다고 한다. 내 입엔 '괜찮은 정도'였고, 현지의 친구들에게 물으니 짬뽕 한 그릇 먹자고 길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릴 가치가 있느냐고 되물었지만 (우리 연배는 가격이 싸다고 중국집 찾을 나이는 지났다!.) 영업 끝나는 시간이 다 되어도 줄이 끊이지 않았다.

 

 

 

 

<군산 개정동 발산초등학교 내 시마타니 야소야콜렉션>

전북 일대의 유물들을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시마타니가 자신의 농장에 모아두었다가 일제가 패망하는 바람에 그냥 달아났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이지만 씁쓸하기 짝이 없다. 현재의 군산발산초등학교는 시마타니 농장의 중심으로 이 유적 전시장 앞쪽으로 시마타니 금고가 남아있다. 전시 중인 유적(유물) 중 오층석탑과 발산리 석등(아래 사진의 맨왼쪽)가 보물이다.

 

 

 

 

<보물 제234호 발산리 석등>

 

 

<보물 제276호 발산리 5층석탑>

 

 

 

<구)일본인농장 창고(시마타니 금고)>

건물의 용도가 금고였던 만큼 워낙 튼튼하고 문도 미국에서 수입했을 정도로 공을 들여 지은 건물이다. 철문 장식에 찍힌 made in USA가 아직도 또렷하다.

 

 

 

 

<발산리 최호장군 유지>

군산지역에는 이렇다 할 묘가 흔치 않은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묘가 아닐까 한다. 최호장군은 조선 선조 때의 무신으로 1596년에 일어난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공신 2등에 올랐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칠전량해전에서 왜군과 대적하다 전사한 분이다. 최근에 조성한 어마어마한 묘역과 석축들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 높지 않지만 묘 앞이 툭 트여 군산저수지가 있는 방향의 호남평야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최호장군 묘에서 본 호남평야와 군산저수지 방향(사진의 오른쪽 윗부분)>

 

 

<군산 개정동 이영춘가옥>

일제 강점기 때 최대 농장주인 구마모토에 의해 1920년대에 한옥,양옥, 일식집의 절충형태로 지은 독특한 가옥이다. 정교한 쪽맞춤 티크 바닥재, 샹들리에, 가구 등 고급자재를 외국에서 수입해서 지은 총독관저와 맞먹는 비용이 든 집이라고 한다.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인 이영춘박사가 사용했으며 후손이 최근까지 살았다. 현재는 원형을 살려 박물관으로 개조 중이다. 

 

 

 

 

<전시관으로 탈바꿈 중인 이영춘가옥 내부>

집의 내부는 이영춘박사와 관련된 내용, 구마모토농장과 관련된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이하 내용은 군산 구시가지의 근대유적이다.

 

<부두 쪽에서 본 군산 해망굴과 주변 풍경>

 군산 구시가지에는 아직도 이런 건물들이 많다. 지난 여름에 산사태가 난 곳이냐고 친구에게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해망굴은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가 있던 시내에서 부두에 직통으로가기 위해 현재의 월명공원 아래에 뚫은 통로이다. 굴 반대편은 월명공원 입구이고 그 부근에 신흥동 히로쓰가옥, 동국사 등이 있다.

 

 

 

<구)군산세관 본관>

1908년에 인천세관 관할로 건립, 일제 강점기에 군산항에 드나들던 물품에 대해 세금을 거두던 곳이다. 한국은행과 같은 양식으로, 독일인이 설계했으며 벨기에에서 수입한 벽돌로 지었다. 아름다워서 근대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