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미완의 서울성곽 돌기3-낙산에서 북악산

큰누리 2012. 11. 11. 14:15

2010. 0215. 미완의 15차 서울 성곽돌기3

 

<서울성곽(낙산에서 북악산, 숙정문)>

여장에 올라 남산 쪽, 대학로 쪽, 동대문 쪽을 둘러봤다. 조금 더 가서 정상의 낙산공원에서 반대편에 있는 성북동, 돈암동, 동소문동, 안암동 쪽과 북한산을 봤으니 서울 성 안 조망은 남산에 이어 두 번째로 마스터한 셈이다. 이곳에서 또 단체촬영 한 컷! 일행 모두 ‘건방진 폼’으로 포즈를 취했다.^^

 

 

 <낙산에서 조망한 남산쪽> 

 

 

<낙산에서 조망한 동대문쪽>

 

 

낙산공원 내리막길에서는 혜화동과 삼선동을 끼고 다양한 형태의 성곽이 이어진다. 축성 초기부터 숙종 시기까지의 원래의 다양한 돌담을 모두 복원한 덕분에 장충동과 더불어 제대로 된 성의 느낌을 가장 많이 느낀 구간이다. 성곽 바로 아래(대로에서 보면 꼭대기)에서 도도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자그마한 옛날 집들을 보면서 혜화문을 향해 가파른 골목길을 내려갔다. 그 쯤 되니 배가 고파서인지 주택이 밀집돼서인지 동네가 마구 헛갈렸다. 삼선동이야, 혜화동이야, 동소문이야?

 

한성대 입구 전철역에서 나는 또 일행을 놓쳤다. 다행히 담모퉁이님 따님이 지하철 모퉁이에서 친절하게 기다려줘서 겨우 일행과 만날 수 있었다. 표 나게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닌데 걸음이 눈에 띠게 더뎌진 것은 왼쪽 무릎이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해서였다. 특히 내려갈 때 통증이 더하고 다리가 질질 끌리다시피 했다.

 

 

 <낙산공원 너머 북쪽의 낙산 서울 성곽>

다양한 형태의 성곽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낙산공원 너머 북쪽의 낙산 서울 성곽>

북한산, 성북동이 보인다.

 

 

<낙산공원 너머 북쪽의 낙산 서울 성곽 북쪽>

삼선동의 집들.

 

 

<낙산 성곽에서 혜화문으로 가는 삼선동의 가파른 골목>

 

 

혜화문은 원래의 이름이 홍화문이었다가 중종 조에 개칭이 된 동북 문(동소문)이다. 북대문인 숙정문이 상징적인 문으로 통행이 허락되지 않아 북쪽으로 드나드는 실질적인 문이었다. 일제가 헐어버린 것을 1990년대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 복원하면서 문의 누각을 올렸다고 한다. 복원한 역사가 짧아 말끔한데다 주변의 주택과 대학 틈에 끼어 세월의 흔적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 문이었다. 주택가로 이어진 성곽을 따라가니 이 구간 역시 장충동, 신당동 성곽처럼 혜성교회의 담으로도 이용되고 경신고등학교 담장으로 재활용되었다.

 

태조 때 쌓은 것으로 보이는 가지런한 성곽 돌 틈으로 이름 모를 나무들이 비집고 들어와 있는 것이 보인다. 지금은 작은 나무에 불과하지만 방치하면 앙코르의 유적만큼은 아니더라도 성곽을 파괴할 게 틀림없다. 4시간이 넘는 강행군으로 일행들이 지치고 배고픔이 한계에 달했을 즈음, 혜화동인지 성북동인지 헛갈리는 지점에 있는 ‘오박사네’ 라는 돈까스 전문점으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얼마나 반가운지...

 

 

<동북문, 속칭 동소문인 혜화문>

북문(숙정문)이 상징적인 문이었기 때문에 의정부, 파주 쪽으로 드나드는 실질적인 문이었다.

 

 

<성곽이 담으로 재활용된 혜화동 혜성교회> 

 

 

<성곽이 담으로 재활용된 혜화동 경신고등학교> 

 

 

 <앙코르의 따 프롬 후예가 될 것 같은 혜화동의 나무가 자리 잡은 성곽>

 

 

 <성북동 왕돈까스 집 오가네 앞의 오래 된 난로>

 

 

 <성북동 왕돈까스 집 오가네의 스프>

이 스프 두 그릇으로 언 몸을 녹였다, 무한리필 가능!

 

 

일행 모두가 워낙 배가 고프던  참이라 뭘 먹어도 맛있었겠지만 남자 어른 손바닥보다 더 큰 이  집의 돈까스, 정말 맛있었다. 뜨거운 스프를 두 그릇씩 마시니 여기저기서 ‘좀 살 것 같다’는 말들을 한다. 걸을 때는 몰랐는데 몸이 많이 얼었던지 먹는 내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귀가 뜨거웠다. 먹는 동안 벗어놓은 등산복 상의는 그 따뜻한 곳에서 지체한 30여분의 시간 동안에도 땀이 마르지 않아 나설 때까지 축축했다.

 

 

 <성북동 왕돈까스 집 오가네의 왕건이 돈까스>

크기도 엄청나지만 맛도 짱!

 

 

점심 먹는 동안이라도 다리가 풀리기를 고대했지만 북악산이 시작되는 와룡공원을 올라가는데 한계상황이라는 느낌이 온다. 광나루님이 이곳에서 포기하지 않으면 중도하차할 곳이 없다고 결정을 하라고 한다. 눈앞의 북악산이 까마득하지만 결심을 굳혔다. 그래, 간다!

 

30분쯤 올라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명소>란 곳에서 서울의 북쪽을 조망했다. 눈 아래로 삼청각, 간송미술관이 보인다. 꼭 한번 둘러보고 싶은 심우장, 이태준家(수연산방), 이종상家 등이 모두 발아래 있는데 한가하게 더듬어볼 여유가 없다. 3시까지는 말바위안내소에 도착해야 북악산 출입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성곽 전체의 1/3 이상이 북악산을 끼고 있고 그 아래에 청와대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1968년 1. 21사태 이후 일반인 통행이 금지된 이 구역이 출입조건은 까다롭지만 그나마 국민들에게 개방되어서 다행이다.

 

2시 30분경에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작성해서 제출하고 주민증을 보여준 후 목에 거는 출입증을 받았다. 그 이후로 일정한 간격마다 등산복 차림의 전경들이 1, 2명씩 지키고 있고 중간 중간에 군사시설로 보이는 목책으로 사방을 가린 작은 건물들을 만났다. 전경들의 태도는 정중하고 친절했지만 주눅이 들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시야가 탁 트인 곳을 찍으려다 몇 번 제지를 받고나니 더욱 그랬다. 나중에는 아예 전경한테 찍어도 되는 곳인지 물었지만 4개쯤 되는 쉼터를 제외하고는 거의 no였다.

산책로의 전경 외에 초소에도 군인들이 있었다. 초소가 성곽 위에 있으니 결국 능선을 따라 지은 성곽은 원칙대로라면 한 장도 찍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물론 철책과 초소를 피해가며 몇 장은 건졌다.

 

 

<와룡공원 조금 지나 북악산 코스가 시작되는 곳>

 

 

 <서울시 선정 우수 조망명소 오르는 계단>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명소와 말바위안내소 사이의 이정표>

 

 

숙정문(북대문)은 말바위안내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지금의 문은 연산군 때 원래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출입이 목적이 아니라 사대문의 격식을 갖추고 비상시에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진 문인데다 음기가 강한 곳이라는 풍수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에게도 친근한 문이 아니었고 청와대 뒷산 깊숙이 있어서 우리에게도 역시 친근할 수 없는 문이다. 지금의 문은 1976년 북악산 성곽을 보수하면서 복원한 것이라고 하는데 위의 이유와 평소에 쉽게 만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특히 눈길이 더 갔다. 사대문 중에서 유일하게 산중에 있는 점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정문 바로 앞 성곽 길을 황토에 박석을 깔아놓은 것도 인상에 남았다.

 

전에 고급요정이었다는 삼청각이 멀어지면서 산꼭대기의 팔각정이 가까워지나 싶었는데 그것도 이내 지나친다. 그리고 북쪽으로 보이는 것은 멀리 보이는 북한산과 철책, 중간의 산뿐이다. 

성곽 길에서 약간 남쪽 아래에 있는 말바위쉼터에서 조망을 하니 눈을 덮어쓴 무성한 소나무(이 곳의 소나무는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시책으로 보호한 것이다.) 사이로 경복궁 일부와 광화문, 시청 쪽이 보인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조망하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산 3개를 타면서 서울 복판을 한꺼번에 내려다본다는 게 내게는 여전히 신기하다. 기분까지 우쭐해진다고 할까? 이런 기분을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코스를 따라갔다.

 

 

 <북악산 구간의 숙정문(북대문)>

말바위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받아 오르는 보안구간이다.

 

 

 <북악산 구간 숙정문(북대문)아래의 황토 길과 박석>

 

 

<말바위쉼터에서 조망한 경복궁 쪽>

광화문, 시청 등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