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미완의 서울성곽 돌기1-숭례문에서 장충동

큰누리 2012. 11. 11. 16:08

2010.02.15-미완의 15차 서울 성곽돌기1 

 

<서울성곽 남산구간>

한 번에는 불가능할 것 같으니 두 번에 나눠서라도 서울 성곽 종주에 꼭 도전한다고 생각했었다. 이번에 여건이 좀 안 좋다 싶었지만 도전한 것은 날씨 때문이었다. 적당히 추운 날이 힘든 여정에는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 갑자기 서울성곽 종주에 끼게 됐다. 그런데 전날 저녁 술을 마신 탓에 아침에 눈을 쥐어뜯으며 일어나서 숙취도 안 풀린 채 그 빡센 서울 성곽 종주에 도전했다.

택시로 남대문 약속 장소에 도착한 시각은 지정된 시간보다 5분 일찍... 그 5분 안에 한 사람 빼고 모두 모였다. 안 나타난 분은 포기하고 종주 도전자는 10명.  

 

 

 <숭례문 앞에서의 만남. 08:30>

 

 

 광나루님의 짤막한 성곽 종주에 대한 개요를 듣고 세브란스 건물 왼편에서 남산을 향해 출발했다. 세브란스 건물은 내 입장에선 대학시절의 통학수단이었던 삼화고속버스 자리이고,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정부에서 운영하던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이 미국 선교부에 인계된 후, 실업가 세브란스의 지원을 받아 세브란스병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최초로 근대식 건물을 지은 곳이다. 즉, 세브란스 병원 발생지란 이야기다.

 

뒷길을 지나 남대문로 5가에서 처음으로 서울성곽을 접했다. 刻字가 있는 돌이 먼저 반긴다. 각자가 뭐냐고? 음, 일종의 실명제! 성곽을 지을 때 170~180m마다 요새로 치면 군 단위 정도로 구역 할당을 받고 성을 완성한 후 부실공사에 대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묻기 위해 어디 사는 누가 성을 쌓았다는 것을 새긴 그런 것... 18.2km에 달하는 성곽을 97개로 나눴는데 계산상 아귀가 안 맞는 것은 인왕산 성곽 부분을 바위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성곽 초입-남대문로 5가의 실명제 흔적(刻字)> 

 

 

남산으로 올라 우리 애들 어렸을 때 많이 데려갔던 어린이공원 앞에 다다르니 휘장 너머로 발굴 중인 성곽 돌이 보인다. 아, 세상 세련돼졌네! 돈도 안 되는 성곽 복원을 문화재청이 나서서 하고 있잖아? 그 앞으로 서울시 상징이라는 해치 플래카드가 보인다. 해치, 너 배부르겠어! 해치라는 상상 동물의 하는 일이 비리관료 잡아먹는 일 아니야?

 

 

<서울시의 상징인 해치와 성곽 발굴 현장>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지나 분수대 앞에 서니 뭔가 허전하다. 아하! 젊었을 때 관리인 눈치 보면서 꽃 사과 열매 따다 술 담았던 그 뒤의 식물원이 없어졌구나! 추억 하나를 놓친 것 같아 아쉽다. 식물원 자리(일제 때 조선신궁 본전 터) 앞엔 갈색 문 같은 철골 구조 두 개가 덩그러니 세워졌고 소나무가 식재되었다.

 

남산계단이 눈앞에 좍 보인다, 웬수! '서울 성곽 종주 코스(이 표지, 종주 코스 중간에 여기저기 있는데 꽤 유용하다)'라는 눈에 보일랑 말랑한 표지 한 컷 찍고 남들은 잘도 오르는 계단을 헐떡거리며 겨우 따라붙는다. 눈물겹게 일행을 따라붙어 전망대에서 숨 좀 돌리려했더니 출발이란다. 일행 뒤통수만 찍고 정상을 향해 또 출발했다.

봉수대 보고 팔각정에 도착하니 전경 무리가 뭔가를 도모하고 있다가 기가 센 우리를 보고 바로 철수한다(내 생각!), ㅎ... 그 새를 놓치지 않고 대한민국 아줌마의 뻔뻔함을 동원해서 1회용 커피 한 잔을 얻어먹었다. 전경도 군인이니까 군인한테 커피 얻어먹은 사람 있으면 나와 봐! 나, 이런 사람이야.

 

 

<분수 뒤, 남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  

 

 

<남산 봉수대>

 

 

눈물 나는 10분간의 여유를 활용해서 서울N타워 앞 조형 설치물이랑 열쇠 광장(?) 사진을 찍었다. 요새 젊은 애들, 별 거 다 한다. 이름 쓰고 열쇠 채워 세상에 드러낸다고 니들의 사랑이 영원히 보장되는 거냐?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이까짓 쇳덩어리로 결정되는 건 아니지만 애교와 마음가짐만은 평가해줘야지!

 

 

<분수대에서 바라본 서울N타워>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N타워> 

 

 

<서울N타워 앞의 조형물> 

 

 

<서울N타워 아래의 열쇠 광장>

 

 

<서울N타워에서 용산쪽 조망>

 

 

500년 뒤에 개봉할 타임캡슐 앞에서 일행을 만나 전에는 막혔는데 길이 뚫렸다는 곳 지나고, 자연학습장을 지나 남산 약수터를 올랐다. 성곽은 안 보이고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게다가 길은 왜 이리 험한고? 잔설 위로 지나간 발자국들이 반질반질하다. 밟으면 팔자에 없는 스키 타게 생겼다. 말이 좋아 스키지 이거야 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긴장하고 걸은 이곳이 내가 종주를 못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약수터에서 물마시고 숨을 돌린 후 조금 더 가니 냄새도 안 빠진 나무계단이 보인다. 얼마 전까지는 없었던, 최근에 성곽 복원을 하면서 새로 만든 길이다. 앞으로는 성곽 돌 때 우리처럼 남산을 빙 돌아올 일이 없다는 얘기다. 약수터 위의 코스는 남산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성곽을 볼 수 있었지만 눈 때문에 가장 힘이 든 구간이기도 했다. 

차가 다니는 길로 내려서니 바닥에 중구와 용산구 경계선이 보인다. 그 곳 지나서 국립극장 보고...

 

 

<남산 정상의 타임캡슐> 

 

 

 <남산 약수터쪽 성곽> 

 

 

<남산 국립극장> 

 

 

국립극장 정문 앞에서 타워호텔을 바라보며 서울 성곽이 끊긴 지점과 최근의 발굴 작업에 대해 광나루님에게 설명을 들었다. 일제는 의도적으로 성곽이나 궁궐 파괴를 자행했다. 게다가 해방 후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민간인들에 의해 성곽이 집의 벽으로 자리 잡은 곳도 있다. 가능하면 성곽 복원을 위해 토지를 재매입하고 대로가 뚫린 곳은 구름다리처럼 복원한다고 하니 기대해 볼 일이다.

 

한국자유총연맹 건물 마당을 지나 언덕배기로 올라서니 복원한 성곽이 처음으로 제대로 이어지고 그 아래로 신당동이, 왼편으로는 신라호텔이 보인다. 신라호텔 뒷길을 따라 조용한 마을 위로 높은 성곽이 장충동까지 이어진다. 성곽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제대로 된 성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으로 느꼈다. 그리고 이 구간에서 태조 때 최초의 축성법, 세종 때와 숙종 때의 축성법에 따른 차이를 알았다.

 

 

 <자유총연맹 건물을 지나 언덕에서 본 성곽과 신라호텔>

 

 

 <성곽 아래의 신당동>

 

 

<신당동, 장충동 성곽 구간에서 본 신라호텔>

 

 

<서울 성곽 축성법 - 장충동>

태조 때의 축성법은 전체 서울성곽을 기준으로 볼 때 중간 크기로 동글동글 다듬은 생김새나 크기가 딱 메주다. 태조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새 도읍 축성을 맡겼고 정도전은 그 명에 따라 1년 만에 우리가 돌고 있는 서울 성곽의 기본을 완성했다. 그런데 이 양반들 성곽 축성 때, 농번기를 피해 농한기인 겨울과 여름 8, 9월에 백성들을 두 번 동원해서 기본 골격을 완성했다. 당시 지대가 낮아 늪 같았던 동대문 구역과 성문을 빼고 축성을 했으니 추진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아무나 나라를 세우는 게 아닌 모양이다.

 

태조 때에는 평지를 토성으로 쌓았는데 세종 대에서 모두 돌로 바꿨다고 한다. 세종 때의 성은 아래는 큰 돌로, 위로 갈수록 잔돌로 축성했기 때문에 아기자기한 모양이 사랑스럽고, 숙종 때에는 크고 정확하게 다듬은 직사각형 돌만 사용해서 튼튼하다는 느낌이 든다.

 

남산을 벗어나 이어진 장충동 구간에서 시기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성곽을 보는 것이 상당히 즐거웠고, 오른쪽 아래로 신당동의 오밀조밀한 집들을 조망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집 앞의 쓰레기봉투들, 고만고만하지만 똑같은 모양은 없는 집들과 그 집 위에서 칭칭 얽힌 채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는 전선들조차 정겨웠다. 운동기구가 있는 성곽 옆 간이 쉼터에서 일행들 중 좀 더 바지런한 분들이 준비해온 커피와 김밥으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신당동, 장충동 성곽 구간. 축성 방법으로 보아 세종 때인 듯>

 

 

<신당동, 장충동 성곽의 암문. 이리로 빠져나가면 장충동체육관 쯤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