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미완의 서울 성곽돌기2-광희문에서 낙산

큰누리 2012. 11. 11. 14:52

2010.02.15. 미완의 15차 서울 성곽돌기2

 

<서울성곽(광희문-낙산)>

신당동과 장충동의 성곽을 끼고 한 시간 쯤 골목길을 걷다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높은 축대 위에 낡은 2층 연립주택이 있는데 그 축대가 바로 성곽이었다. 기막힌 재활용이랄까, 아니면 문화재에 대한 과거 우리나라의 무관심의 잣대랄까? 몇 걸음 더 가서 비슷한 상황을 또 목격했다. 언젠가 원상복구가 되겠지만 이상하게 정감이 가는 풍경이었다.


 

<영광스럽게 서울 성곽을 깔고 앉은 장충동(?)의 2층 연립주택>

 

 

언덕 위의 거대한 성채처럼 보이는 광희문교회를 지나자마자 도로에 동남의 소문, 즉 광희문이 보인다. 죽은 사람을 많이 내보낸 성문이라 하여 시구문으로도 불렸다. 원래 위치에서 동쪽으로 옮긴 것으로 워낙 번잡한 곳에 있다 보니 신경 써서 찾지 않으면 지나칠 것 같다. 조선시대에는 8개의 성문 중 하나를 통하지 않으면 성 안팎으로 드나들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이 문은 시체를 내가는 곳이 됐을까?

 

광희문은 지금의 상업 중심지역인 흥인지문(동대문)과 연결이 된다. 흥인지문 지역은 전차를 구실로 일제에 의해 성곽이 많이 파괴된 곳이다. 젊었을 때엔 서울 복판을 어지간히 쏘다녔건만 지금은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벽 한쪽의 알록달록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건물로 일행 선두가 들어가는데 그게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다. 그 건물 뒤편의 나무계단을 오르니 공사 중인 동대문운동장 터와 세련된 모습으로 널찍하게 자리한 동대문문화센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간 수문 위치를 확인하고 일행을 따라 다시 이동했다.

 

 

<언덕 위의 성 광희문교회와 서울 성곽 여장>

 

 

<시체가 많이 나갔다 해서 시구문으로도 불린 동남쪽 소문(남소문) 광희문> 

 

 

<동대문플라자 입구의 해치 상>

 

 

<공사 중인 동대문운동장 터>

광희문에서 흥인지문에 이르는 성곽이 이곳을 관통한다.

 

 

복잡한 대로를 건너 동대문운동장 터에 도착, 먼저 이간 수문을 관람했다. 이간 수문은 성 안과 성 밖의 수량을 조절한 2칸의 수문이다. 이간수 문과 성곽은 상당량을 새 것으로 복원했지만 운동장 아래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신기하다. 적의 침공에 대비해 만든 목책도 오른쪽 문에 복원해 놨다.

축성 당시의 돌과 새로 복원한 하얀 돌들로 이어진 성곽 가운데의 이간 수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서울 복판의 땅속에서 살아남은 이 유적이 신기하고 유네스코 지정을 염두에 둔 것이긴 하지만 서울 성곽을 힘들 게 복원하는 문화재청의 행동도 내겐 너무너무 신기하다. 말이 쉽지 서울 한복판에서 기존의 건물을 거두고 문화재 복원을 한다는 게 쉬운가!

 

 

 <동대문운동장 터에 복원한 이간 수문> 

 

 

이간수문 주변의 동대문역사공원에서 시멘트로도 이렇게 괜찮은 건물을 지을 수 있구나 하고 감상을 하다 보니 일행을 놓쳤다. 관리하는 사람한테 인상착의를 대고 지하로 통하는 현대식 건물 안에서 겨우 일행을 찾았다. 그 현대식 지하건물은 동대문문화센터다. x줄 타게 일행을 찾은 내 존재는 염두에도 없고, 안에서 모두 유유자적 8대 성문의 변천사를 감상하고 있다.

안내 책자 챙기고 모자라는 관람시간은 디카에 자료를 담은 후 지상으로 올라와 길 건너편에 있는 오간 수문 터를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청계천 답사할 때 지난 곳이다.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곳에 오간 수문 터가 있고 앞에 흥인지문(동대문)이 있다.

 

 

 <동대문역사공원과 동대문문화센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동대문역사공원의 서울 상징 10색>

 

 

<동대문운동장 터 안의 서울 성곽과 이간 수문>

 

 

<동대문문화센터>

 

 

 <오간 수문 터>

 

 

흥인지문(동대문)은 사대문 중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남아있고 현판을 두 줄로 쓴 점이 특징이다. 주변 정리를 말끔히 해 놓은 흥인지문을 둘러보고 기념촬영 한 컷 찍은 후 이대부속병원 헐리는 곳을 지나 낙산 성곽 구간으로 접어들었다. 대학 때 전시회 때문에 대학로를 수시로 드나들면서 동쪽 언덕배기에 있는 누추한 집들을 참 많이 봤다. 그리고 항상 ‘수도 서울에도 저런 집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처음으로 그런 집들이 있는 낙산을 오르는 것이다. 이건 나만의 기억일 것이다.

 

 

<동대문 사거리와 오른쪽의 이대부속병원 터>

 

 

<흥인지문(동대문)>

사대문 중 유일하게 원형이 남은 곳이다.

 

 

낙산공원길(성곽)은 지대가 낮아 오르는 내내 여유가 있었다. 발아래로 보인 절(법장사?)을 시작으로 요새로 따지면 실명제인 각자가 새겨진 성곽의 돌, 수평 수직을 정확히 지킨 축성 원칙을 벗어난 사선의 성돌 등을 보고 오르다 암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섰다. 요즘 서울에서 보기가 쉽지 않은 누추한 집들을 보고 다시 성 밖으로 나왔다.

 

암문으로 들어갔다 나온 이유가 분명 있었을 텐데 생각이 안 난다. 이곳처럼 사람 사는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골목을 헤집고 다닌 것이 내게는 성곽 찾는 것 이외의 또 다른 추억거리이다. 이런 집들은 낙산 성곽 구간이 가장 많았다. 인왕산 성곽 구간도 이곳이랑  비슷할 것 같은데 완주를 못해서 모르겠다.

 

 

<낙산 구역 성곽 입구>


 

<낙산 구역 성곽의 刻子>

 

 

 <낙산 구역 성곽의 비뚤어진 성곽>

사진의 기역자나 니은자 같은 돌이 아랫돌을 꽉 물어 성곽을 견고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낙산 입구의 성곽과 절(법장사?)>

 

 

낙산 공원 못 미쳐 있는 쉼터에서 바라본 동서남북의 풍경도 정말 아름답다. 눈 아래로 옥상 위에 장독대들이 올망졸망 놓여있고 한편으로는 두타빌딩이나 아파트들이 마천루처럼 쭉쭉 올라오고... 이런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현장을 성곽 답사 아니면 어디서 만날까? 특히 인구가 밀집한 낙산에서의 조망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성곽 답사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 지적인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나름의 몸짓이 아니던가?

 

 

 <낙산 구역의 서울성곽>

 

 

<낙산에서 바라본 동대문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