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서울대학교병원 주변의 사적

큰누리 2013. 1. 9. 22:02

-≪서울대학교병원 주변의 사적≫-

<舊 공업전습소 본관(사적 279호) = 現 한국방송대학교 우체국 및 역사관>

구)공업견습소 본관은 대한제국 순종 2년(1908)에 건립되었다. 원래는 화폐를 인쇄하던 전환국 기계시험소 터였는데 1906년 공업전습소가 들어서면서 그 본관으로 지은 건물이다. 2층 목조건물로 벽은 독일식 나무 비늘판을 붙였고, 외형은 르네상스 양식을 모방했다. 공업전습소는 당시 조선 최고의 공업교육기관이었다. 구한말 탁지부가 설계한 몇 안 되는 현존건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국방송대학교 우체국으로 사용 중인 구)공업전습소 본관 뒷쪽>

2012년 8월 9일부터 2013년 2월 4일까지 종로구청 주관으로 보수 공사 중이다. 내부는 모르겠고 밖의 낡은 나무 비늘판을 교체하고 있었다. 

 

 


<구)공업전습소 본관 앞면>

전에는 한국방송대학교 본관으로 사용되었다는데 대학 본관은 최근에 신축한 건물로 이전하고 지금은 역사관으로 바뀐 듯 하다. 

 

 

<舊 서울대학교 본관(사적 278호) = 現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예술가의 집, 국립예술자료원>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뭔가 예사롭지 않은 건물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일제 때인 1931년에 준공된 경성제국대학의 본관으로 해방 후에는 서울대학교 본관으로 사용되었다. 1972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뒤에는 문화예술진흥원 청사로 사용되었다.

경성제대는 3.1운동 후 이상재 선생을 대표로 한 조선민립대학 기성회가 결성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1926년 법문학부와 의학부를 개설하면서 그 문을 열었다. 본관은 3층 짜리 벽돌 건물로 우리나라 건축계의 선구자인 박길룡이 설계하고, 공사는 일본인 미야카와구미가 맡았다.  

 

 

 

<서울대학교병원>

기록에 의하면 구)서울대학교 본관이 종로구에 남은 유일한 건물이라고 하는데 길 건너에 있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건물도 양식이 똑같다. 

 

 

<서울대학교병원의 자루>

대학로 쪽에서 들어와 경모궁 터로 향하는 길에 이런 게 있었다. 은행잎 낙엽을 쓸어담은 자루이다. 이렇게 모아서 남이섬에 파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서 처치 곤란한 가을의 낙엽을 은행잎이 부족한 남이섬에서 트럭 당 1백만원인가 주고 사서 남이섬 길바닥에 관광용으로 뿌린다는 내용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어서... 

 

 

<서울대학교병원 안의 경모궁 정당 터와 신문(사적 237호)>

이곳의 최초 용도는 창경궁 소속의 궁궐 정원인 함춘원으로 말을 방목하거나 활쏘기를 관람하는 곳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관리가 부실해지면서 인조 때 함춘원의 절반을 태복사에 나눠주었으며 이후 140년간 말을 기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영조 40년(1764)에 순화방에 있던 사도세자의 사당을 옮겨 짓고, 정조는 즉위 후 경모궁으로 격상하고 정조 9년(1785)에 이 일대를 정비했다. 광무 3년(1899)에 경모궁에 있던 사도세자의 위패를 종묘로 옮기면서 경모궁은 기능을 잃어 경모전으로 개칭했다.  일제 때 경성제대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건물이 없어졌고 남아있는 건물은 6.25 전쟁 때 소실되고 현재는 신문과 정당 터만 남아있다. 

 

 

 

<서울대학교병원>

 

 

<舊 서울대한의원(서울시 유형문화재 32호) = 現 서울대학교병원 연구소 및 의학박물관>

1907년 고종의 명에 의해 의정부 직속으로 함춘원 언덕에 지었다. 일본인의 설계로 1908년에 완공하였으며 병동, 부검실, 의학교가 있었으나 현재는 본관만 남아있다. 1908년 조선총독부의원→ 1911년 조선총독부의원 부속 의학강습소 1926년 경성제국대학 병원 해방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병원 본관 1970년대 말 현대식 건물 신축 후 부속건물 현재는 서울대학교병원 부설 병원연구소 및 의학박물관으로 사용.

 

 

<舊 서울대한의원 본관 앞의 지석영선생 像>

 

 

 

<舊 서울대한의원 본관의 일성 명주완박사 기념비>
비문을 보니 우리나라 신경정신과의 길을 연 분이라고...

 

 
<舊 서울대한의원 본관 뒤의 안내문> 

 

 

<舊 서울대한의원 본관 뒤의 실험동물공양탑>

大正11년 7월 15일(1922년)에 세웠다. 의학 발전을 위해 실험용으로 죽인 동물들에게 공양탑을 세운 일본인들이 이시이부대에서 산 사람을 제물로 써서 자행한 마루타 실험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이 비(탑)를 세운 일본 의학도들의 변명을 한번 상상해 봤다.

1) 난 정치는 모르는 의학도일 뿐이다. 따라서 제국주의니 전쟁이니 하는 것과 나는 무관하다.

2) 전시 체제와 평상시는 다르다.  인간 존중 어쩌고 하는 것은 전쟁 중에 언급할 내용은 아니다.

3) 전쟁은 죽고 죽이는 것이니 불경선인을 잡아다 실험용으로 써서 궁극적으로 전쟁에 이기면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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