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천주교혜화동교회의 역사와 성모자像

큰누리 2013. 1. 11. 13:15

<천주교혜화동교회>

대학로 주변을 답사한 날, 마지막 코스가 혜화동성당(편의상!)이었는데 공식적으로는 천주교혜화동교회가 맞다. 이 날은 바람막이 겨울점퍼를 입고도 답사 뒷부분에 내린 눈에 옷이 젖었다. 어지간하면 끝까지 답사에 충실한 편인데 혜화동성당은 전에도 온 적이 있는데다 입구에 있는 임시 천막 안의 곱창난로(?)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답사의 목적을 망각하고 말았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대충 겉만 훑은 것을 얼마나 후회 했는지...

 

혜화동성당의 돌과 관련된 건축물이나 조각상은 모두 대한민국에서 내노라 하는 작품들이다. 그래서 역사가 아주 길지 않은 혜화동성당이 등록문화재 제230호로 지정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성당 현관 위를 뒤덮은 부조 <최후의 심판도>는 내 구미에 끌리지 않고 현관 양쪽의 성모자상만 들어왔다. 그래도 볼만큼은 보았는데 성당 후면에도 작품이 줄줄이 있고, 성당 안에 <103위 순교 성인화> 등의 벽화가 있는데 모두 놓치고 말았다. 에라이, 핑계 삼아 다음에 한번 더 가자!

 

천주교혜화동교회는 2006년에 등록문화재 제230호로 지정되었다. 현재의 건물이 1960년 대에 건립된 점을 감안하면 꽤 파격적인 셈이다.

 

 

* 천주교혜화동교회에 대한 자료를 종합한 결과는 아래와 같다.

 혜화동성당의 역사는
 *1909년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독일의 베네딕도수도회가 조선의 책임자 격인 뮈텔 대주교의 요청에 따라 종교교육을 목적으로 혜화동에 10여만㎡의 땅을 사서 서울수도원을 세웠다. 

 *1927년 베네딕도수도회가 함경남도로 수도원을 옮기자 천주교 경성교구가 이 땅을 매입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시잘레 베드로신부가 부임했으며 수도원의 목공소를 성당으로 고쳐 사용했다. 

 *이후 신도가 늘면서 1960년에 건축가 故 이희태의 설계로 현재의 강당형 성당을 신축했다. 이희태는 절두산 순교박물관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현재의 가톨릭대학교, 혜화동성당, 동성중고등학교가 모두 처음의 부지 영역이다.

 

<혜화동성당 성당 밖 예술작품>
 1. 현관 위의 화강암 부조인 <최후의 심판도>는 1961년 김세중, 장기은교수 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라' 요한복음 14장  6절과 '천지는 변하려니와 내 말은 변치 아니하리라' 루가복음 21장 33절, 예수를 중심으로 4명의 복음서 저자 상징이 조각되어 있다.
  2. 십자가가 있는 성당 왼편 붉은 벽돌 위의 부조는 주보성인인 베네딕토像.
  3. 성당 입구 계단 양쪽에 있는 성모마리아와 예수像은 1996년 최종태 作.

<혜화동성당 성당 안 예술작품>
  1. 제대 뒤의 권순형 作, 도자벽화 <성사>와 중앙의 김세중 作 <십자가像>.
  2. 제대 오른쪽 벽의 <103위 순교 성인화>. 1977년 문학진 作.
  3. 이남규 作. 유리그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다>.
  4. 최봉자 수녀 作. <감실>.
  5. 김종영 디자인, 박승환 제작. 성수반.
  6. 이종영 作. <성녀 소화데레사像>

 

 

<천주교혜화동교회>

성당 설계자 : 1960년. 이희태.

전면의 부조 <심판도> : 1961년. 김세중 원도를 김세중, 장기은 공동제작.

 

 

<천주교혜화동교회(혜화동성당) 오른쪽>

이날 결혼식이 있었는지 결혼식 후 하객들이 부대시설로 보이는 오른쪽 건물로 들어갔다.

 

 

<결혼식 하객으로 보이는 영화배우 김수로씨와 일행>

사진 찍다보면 가끔 이런 상황을 만난다^^.

 

 

<성당 입구 계단 왼편의 성모像. 1996년. 최종태 作>

이날 성모상이 나를 꼭 붙들었던 이유는 녹은 눈이 만든 자연스러운 음영효과 때문이었다. 일부러 연출을 해도 이토록 성모상이 비통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상황이었다!

 

 

 

<같은 최종태 교수의 작품인 길상사의 관음보살상>

작년 봄, 성북구 답사 때 길상사에서 촬영한 것이다. 외모는 성모상인데 내용은 관음상인 이 작품이 얼마나 참신하고 느낌이 좋던지...

 

 

<성당 입구 계단 오른편의 예수像>

예수상은 나름대로 느낌이 좋다. 머리 위의 광배(?) 덕에 눈을 맞지 않아 성모상 만큼 깊이는 없지만 근엄하거나 다른 종교화에서처럼 고개를 한쪽으로 숙인, 틀에 박힌 자애로운 모습이 아니어서 일단 좋다. 고행하는 성자 같은 느낌...

 

 

 

<성당 입구 왼쪽(성모상 위)에 있는 성 요셉>

 

 

 

<천주교혜화동교회(성당) 내부>

내가 본 것은 여기까지이다.

 

 

 

<위 스테인드글래스 아래 쪽의 전시물 / 혜화동 성당 미니어처>

 

 

<성당 건립 당시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종>

 

 

<미사 때 사용할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과 성해(聖骸)>

잔이나 촛대 등은 이해가 되는데 중앙의 설명서에 聖骸라는 것이 있고,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 모방신부(1803~1839) - 1836년 최초로 조선에 입국하여 김대건, 최양업, 최방세 등의 성직자를 양성하고 기해박해 때 순교.

샤스탕신부(1803~1839) - 모방신부에 이어 두번째로 입국하여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성인.

♣ 앵베르주교(1796~1839) -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 선교와 성직자 양성에 힘쓰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
♣ 김대건신부(1821~1846) - 최초의 한국인신부. 1845년 사제 서품 후 곧 입국하여 선교와 선교사 영입에 나섰으나 체포되어 1846년 새남터에서 순교.

 

그렇다면 이 유리박스 안에 윗분들의 유해가 있다는 이야기인가? 오른쪽 두번째 단의 항아리가 성해인가 싶었지만 머리 수가 안 맞고, 이런 분들의 유골의 일부라도 혜화동 성당에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신자들에게 엄청난 순례지가 됐을 것 같은데 그 이상은 모르겠다.

 

 

<홍색제의와 녹색제의>

♣ 녹색은 사제가 미사 때 연중 입는 제의로 IHS를 수놓았다.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우리의 구세주란 뜻의 희랍어 첫글자라고... 예전에는 사제가 뒤돌아서 미사를 드렸기 때문에 뒷면이 더 화려하다고 한다.

 홍색은 성 금요일, 성신강림 대축일, 주의 수난주일, 순교성인 축일에 입는 옷이라고 한다. 비둘기는 성령, 일곱개의 빛줄기는 칠은(七恩), 비둘기 입 주변의 세 기둥은 신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에고, 어렵다!

 

 

<미사전문판>

 

 

<성수반>

안내문에 작가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1961년에 김종영 교수가 디자인하고 박승환이 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혜화동성당에 부임했던 주교들?>

정진석 추기경도 보인다.

 

 

<혜화동성당 역대 주임신부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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