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경복궁 담장길 따라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2

큰누리 2013. 4. 9. 02:21

<2차 답사 코스 경복궁 북쪽 담장길> 

통의동과 창성동 경계지점의 썩은다리(서금교, 서영교, 석은교) → 진명여학교(창성위궁) 터 → 청와대사랑방 → 경복궁 북문 추성문 → 경무대(융문당과 융무당) 터 →  경복궁 신무문(북문) →  경복궁 북문(신무문) → 경복궁 북문인 광무문과 계무문 → 경복궁 춘생문 터 → 태화궁 터 → 종친부와 규장각 터(국립현대미술관 건립지)

 

 ps : 경복궁 북쪽 담의 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추성문 - 신무문(북쪽 대문) - 계무문 - 광무문 - 춘생문

 

  

<영추문(경복궁 서문) 맞은편의 모자상>

유니세프 건물 앞에 있는 모자상이다. 

 

 

<썩은다리(서금교, 서영교, 석은교) 터>

사진 중앙 부분이 썩은다리(서금교, 서영교, 석은교)라는 돌다리가 있던 곳이다. '썩은다리'는 하천이 휘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원래 이름인 서금교, 석영교가 와전된 것으로 추측한다. 현재의 창성동 정부합동청사(정부종합청사 별관) 바로 북쪽 앞이다. 청와대 구역에서 흘러나온 물길이 효자동으로 내려오다 활 모양으로 휘어져 썩은다리를 지나 경복궁 안으로 들어간 다음 경회루 연못 아래에서 합류하면서 영제교 밑 금천 또는 어구로 물을 공급하는 기능을 한다. 

 

이 즈음부터 청와대를 지키는 분들이 우리 때문에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복궁이나 그 주변과 관련된 근대의 건물 터들이 이 부근에 꽤 많은데 이순우선생님 설명이 5분(30분이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만 넘으면 예외없이 청와대주변을 지키는 분들이 와서 자리를 뜨라고 종용했다. 대통령이 거주하는 청와대 주변이라 그럴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이해를 하면서도 상당히 불편했다.

 

 

<진명여학교(창성위궁) 터>

이곳은 영조와 귀인 조씨 소생인 화유옹주와 남편인 창성위 황인점이 살던 창성위궁 터이고 그 때문에 동네 이름이 창성동이 되었다. 그 후 고종의 후궁이면서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가 이곳을 소유했다가 1906년에 진명여학교 터로 하사했다.

엄비는 진명, 명신(숙명), 양정 외에도 휘문 등의 학교 설립에 많은 공헌을 했다. 진명여고는 1970년대 이후 강북의 학교들이 강남으로의 이전을 시작으로 1989년에 양천구 목동으로 이전했다. 이곳은 사진 촬영에 대해 청와대를 지키는 분들이 워낙 예민해서 진명여고 터 오른쪽에서 비켜 찍은 것이다.

 

 

<청와대사랑방>

청와대 앞(남서쪽)에 있다. 예전엔 기념품을 파는 임시건물 같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번듯하게 '청와대 사랑방'이란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한국을 개략적으로 소개하는 곳으로 한번은 들러볼 만 하다.

 

 

 

 

<경복궁 추성문 터와 추성문 사진>

경복궁 북서쪽 모서리에 있던 문으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의 관사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었다.

 

 

 

<경무대(융문당과 융무당) 터>

현재의 청와대 구역인 경복궁 후원 일대는 경농재와 융문당, 융무당이 있었던 곳이다. 경농재는 청와대 서쪽 구역으로 관풍루, 대유헌 등 국왕이 친경을 했던 곳이지만 대유헌은 총독 관저 신축 때 헐렸다.

융문당, 융무당 구역은 주로 과거시험이나 활쏘기, 군사들의 조련과 사열 등의 용도로 사용되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대규모 군중집회나 행사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융문당, 융무당 건물은 1928년에 일제에 의해 방매처분되어 칸코도리(現 한강로) 고야산 용광사로 옮겨졌다가 해방 이후 전남 영광에 있는 원불교 영산성지(원불교 창립관)와 옥당박물관으로 흩어져 사용되고 있다.

 

 

<경복궁 북문 신무문>

경복궁 북장문으로 바로 맞은편에 있는 청와대의 보안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노무현대통령 때에 완전개방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경복궁 북쪽 담장을 돌자면 보안 때문에 뒷골이 당긴다.

 

 

<경복궁 북쪽문 계무문과 광무문>

'계(癸)'자 필체가 예술이다!. 계무문은 건청궁으로 곧장 이어지는 문이고 계무문 바로 동쪽 옆으로 광무문이 있다. 둘다 북쪽을 상징하는 무(武, 현무)字가 들어가 있다.  

 

 

 

<경복궁 북쪽문 춘생문 터>

춘생문은 경복궁 후원에서 삼청동 쪽으로 나오는 문으로 을미사건 직후인 1895년에 이 문에서 '춘생문 사건' 벌어졌다. 춘생문 사건은 이재순, 임최수, 김재풍, 이도철, 이민광, 이충구 안경수 등이 합작 모의하고 이범진, 이윤용, 이완용, 윤웅렬, 윤치호, 이하영, 민상호, 현흥택, 언더우드, 헐버트, 애비슨 등 다수의 선교사와 주한 외교관 등이 호응하여 일제로부터 고종을 경복궁 밖으로 탈출시키려던 사건이다.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앞에서 본 가회동 31번지 한옥마을 구역>

현재의 국무총리 공관 구역(삼청동 106-11)은 친일귀족의 대명사인 송병준의 별장 터로 사후 아들인 송종헌의 소유가 되었다. 이곳은 1948년부터 국회의장공관, 5.16군사정권 수립 후에는 내각수반의 공관, 민정 이양 이후 총리공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규장각과 종친부 터(現 국립현대미술관 건립지)>

현재의 경복궁 안의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맞은편이다.

 

 

<규장각과 종친부 터(現 국립현대미술관 건립지)의 벽화들>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맞은편은 장생전, 종부시, 종친부 등이 있던 곳으로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신축 공사 중이다. 원래 이곳에 있던 규장각 도서들은 1928년부터 1930년에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일제 강점기(1928년)에 이곳은 경성의전이 들어섰다가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제2부속병원, 제36육군병원, 수도육군병원, 국군수도통합병원, 국군서울지구병원 등으로 사용되었다. 사진의 조형물은 로봇화한, 혹은 마네킹 '피에타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신축공사장의 얼굴은 모나리자 + 몸은 마하상>

 

 

<국립현대미술관 신축공사장의 벽화들>

눈을 휘둥그레 뜬 인물은 뉘신지?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도 있고 신윤복의 미인도도 있고,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