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신촌역과 연세대학교

큰누리 2013. 5. 15. 22:54

<등록문화재 146호 신촌역>

대학 시절, 일영으로 MT를 가거나 백마를 갈 때 의례 신촌역에서 기차를 탔다. 그 때는 아담했던 신촌역이 지금은 주변의 대형건물에 둘러싸여 초라하기 짝이 없다.

1899년 경인선 철도 개통,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에 이어 1906년 용산~신의주간 경의선이 개통되었다. 경의선 부속 철도역사인 신촌역은 1920~30년대의 조적법, 목재 지붕틀, 창호, 굴뚝 등의 원형이 잘 남아있다.

  

 

  

 

<신촌역과 굴다리 주변의 그래피티 벽화들>

삭막한 시멘트블럭이나 담보다는 나은데 개인적으로 그래피티 아트는 비호감... 

 

 

 

  

우리가 연세대에 들른 이유 첫째는 수경원 터, 둘째는 언더우드관과 스팀슨관과 아펜젤라관, 세째는 언더우드기념관을 보기 위해서였다.

 

 

<연세대학교 안내도>

안내도를 보고 건물을 대조해 찾으면서 상당히 애를 먹었다. ①번부터 차례로 안내를 하면 좋은데 가나다순으로 안내를 해서 103개나 되는 건물 중에서 필요한 곳을 찾는 해괴한 방식이다.

 

 

<백양콘서트홀과 연세대학교 입학설명회>

정문부터 우산을 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어서 무슨 콘서트가 열리나 싶었는데 입학설명회 중이었다. 수시모집 때문에 일찍 설명회를 하는 모양인데 열기가 대단했다. 

 

  

 

<연세대학교의 상징 독수리>

고대의 호랑이像이 다소 늘어진 인상인데 비해 연대의 상징은 꽤나 호전적(?)인 인상이다. 백주년기념관(박물관) 안에 있는 2마리의 박제 독수리도 인상적이었다.

 

 

<연세대 구내식당과 우리가 먹은 메뉴>

상당히 넓고 쾌적했다. 우리도 이곳에서 식사를 했는데 계란 라면은 1,800원, 공기밥은 200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저렴하고 양도 많은 식당이라면 단연 대학의 구내식당일 것이다. 김밥도 시중보다 훨씬 굵고 저렴했는데 학생들은 대부분 라면에 김밥이나 공기밥을 추가로 먹었다. 2,500원이면 든든하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정면에서 본 언더우드관(총장실, 기획실, 총무처, 교무처)>

 

 

<언더우드관에서 본 정문쪽>

비가 와서 우중충하지만 캠퍼스 곳곳에 만발한 벚꽃의 화사함은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언더우드像과 언더우드관>

사적 276호이며 옛 연희전문학교의 건물로 학관으로 불렸다. 1921년에 착공해 1924년에 완성된 석조 4층 건물로 언더우드목사의 장남인 원한경교수가 초석을 놓았다. 연희전문 창설자인 언더우드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형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지었다. 아펜젤러관과 함께 연세대학교에 두 번째로 세워졌다. 고딕풍의 단아한 건물로 중앙에 현관이 있고, 지붕은 사람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강의동으로 사용되다 현재는 대학본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언더우드관 서쪽 앞의 스팀슨관>

사적 275호연세대학교에 최초로 세워진 건물이며, 1919년에 착공하여 1920년에 완공된 석조 2층 건물이다.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의 설립자인 언더우드 목사가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던 찰스 스팀슨의 기부금을 확보한 뒤 세상을 뜨자 후임교장인 에비슨이 그 기부금으로 건립했다. 언더우드 부인이 초석을 놓았으며 평면 장방형에 맞배지붕의 고딕풍 건물이다.

 

 

<언더우드관 동쪽 앞의 아펜젤라관>

사적 277호이다. 배재학당 설립자인 아펜젤러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매사추세스 피츠필드시의 기부를 받아 1921년에 착공해 1924년에 완공했다. 석조 3층의 단아한 고딕풍 건물로 언더우드관과 함께 연세대에 두 번째로 세워졌다. 언더우드관을 중심으로 스팀슨관과 아펜젤라관이 앞으로 들어서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언더우드관 뒤쪽의 연희관>

 

 

<좌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유억겸기념관, 연희관, 스팀슨관>

연세대에는 사람 이름이 붙은 기념관(건물)이 참 많다! 위의 3개관을 비롯해 유억겸기념관, 김우중기념관, 빌링슬리관, 외솔(최현배)관, 한경관, 러들러교수동 등...

 

 

<외솔관 앞의 벽화>

미술대학이 없는 대학교는 건물이 좀 별로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연세대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일단 주요 건물들이 중후하고 아름다우며 이런 센스(!)있는 벽화도 있다.

 

 

<외솔관 옆의 계단>

계단 위에 산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있다. 우리는 언더우드 기념관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언더우드 기념관은 서문으로 들어가던지 이 건물의 좀더 앞으로 나와 삼성관 앞을 지나야 한다.

 

 

<이원철 박사像과 원철성>

대학시절에 교양으로 천문학을 배우면서 접한 '원철星'이라는 별 때문에 기억에 남았는데 동상을 본 것은 처음이다. 선생은 1919년 연희전문 수학 및 물리학과 1회 졸업생으로 1926년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천문학 분야의 한국 최초 이학박사가 되었다. 독수리자리의 에타성을 연구하여 '원철성'이라는 이름을 얻어 일제 치하의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모교의 교수, 연세재단의 이사장과 연세동문회 초대회장, YMCA이사장, 국립관상대 초대대장,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을 역임했다. 

 

 

 

<노수석 추모공간>

내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인데 바닥에 있는 비문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노수석은 1996년 3월 29일 대선자금 공개와 국가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서총련 결의대회에 참가하여 종로에서 평화 시위를 하다가 경찰의 폭력 진압에 의해 사망하였다.'  이하 생략...

 

 

 <남북공동선언문 비>

우리 대학 시절엔 연세대가 대학 시위의 본부나 마찬가지여서 대학 앞을 지날 때조차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진동했었다. 그런 곳에 이런 비가 있어 처음엔 좀 생뚱맞다 싶었는데 남북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한열추모비>

이한열은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1천여명과 함께 대정부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의식을 잃고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으나 뇌 손상으로 인한 심폐기능 정지로 7월 5일 사망했다. 1986, 1987년은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었던 시기로 1987년 5월 16일에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직후에 벌어진 일이라 6월 항쟁이 일어났고 당시 전두환 정권에 직격탄을 안겨 결국 대통령 직선개헌을 한다는 6.29선언을 이끌어냈다.

 

이한열, 박종철은 2001년에 권위적인 정권에 항거하다 숨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되어 공식적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이한열은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안장되었다.

 

 

<백주년기념관(박물관) 안의 독수리 박제>

유감스럽게 박물관은 문을 닫아 못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