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복건성, 산동성

중국 복건성 여행10 - 무이산의 천유봉

큰누리 2013. 8. 29. 00:34

<3일째 일정>

무이산 입구의 보도회전센터호텔에서 10여분 거리의 무이산으로 이동→ 무이산 천유봉 등산(2시간)→ 하산(1시간)→ 보도회전센터호텔에서 점심식사 후 무이산 구곡계 뗏목 유람(1시간 50분)→ 무이산박물관, 무이궁(주희기념관) 관람무이산 대홍포 관람(30분)→ 무이산 입구에서 저녁식사 후 무이산공항으로 이동→ 하문 seashine 호텔에서 숙박.

 

 

<무이산(중국명 우이산)에 대한 개요>

武夷산은 복건성 서북부의 남평시(南平, 난핑)에 있는 중국 국가 5A급여유경구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이다. 야생 동식물과 희귀 곤충류, 무이산에서만 볼 수 있는 천연자원들이 많아 유네스코 지정 2개의 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중국 당국에서 분류한 무이산의 '중국 국가급풍경명승구' 의하면 무이산(武夷山, 중국명 우이산)명승구는... 

1) 36봉우리, 72동천, 99암석 및 108개의 경점과 구곡계를 포함한 풍경명승구,

2) 구곡계 양쪽 절벽과 북쪽 경구 절벽 위에 월족이 안치한 20여 개소의 무이산애묘군,

3) 무이산 천심암과 구룡과 절벽 위에서 자생하는 차나무로 만드는 대홍포 茶를 만드는 우이암대홍포 제작기술이 포함된다.

 

태산을 근거로 공자의 유가사상이 나왔다면 무이산은 주희의 예학사상의 본거지이다. 주희는 14살부터 세상을 떠난 71살 까지 무이산에서 평생 학문을 닦고 제자를 양성했다. 그래서 무이산 안에 주희와 관련된 무이서원, 무이궁(주희기념관) 등이 있다.

'무이산'이라는 명칭은 무이산 천유봉 정상의 천유각에 모신 도인 팽조의 두 아들, 팽무와 팽이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무이산은 도교의 성산이기도 하다. 현재 주희기념관인 무이궁은 원래는 무이궁의 산신인 무이군과 지신인 황태모에게 제사를 지내던 도교사원이었다고 한다.

 

천유봉은 '천상(천길의 절벽)을 유람한다'는 뜻이며, '천유봉에 오르지 않으면 무이산을 보았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이산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천유봉은 1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무이산에서 가장 큰 바위로 무이산 안의 또 다른 산 같다. 정상은 평탄하지만 절벽에는 오랜 세월 동안 통바위를 따라 쭉쭉 내리뻗은 무수한 물줄기 자국들이 있다. 천길의 절벽과 그 위로 난 840여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보는 발 아래의 봉우리와 뗏목이 줄을 이은 구곡은 정말 장관이다. 아마 구곡계가 없었다면 무이산은 조금은 밋밋했을 것이다.

구곡계는 '산을 둘러싸고 아홉구비를 이루며 흐르는 강'이라는 뜻으로 총 길이가 62.7km나 되어 '제 2의 아마존'이라고도 불린다. 이 중 뗏목으로 유람하는 구간은 9.5km 정도라고 한다.

 

 

관광객이 몰리기 전에 서둘러 무이산에 올라갔다 하산해서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체크 아웃을 한 후 뗏목을 타는 게 우리의 일정이었다. 얼마나 관광객이 많기에 한밤중에 도착한 우리를 현지 중국인 가이드가 아침 일찍부터 몰아세우나 약간 의아했다. 중국인 현지 가이드, 정말 착하고 순한 사람이었다. 한국이 좋아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엉터리(!)로 배웠고,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를 쓰며, 아직은 얼마 되지 않는 한국인을 밥줄로 바라보고 사는 중국인 가이드...

가이드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장사진을 친 무이산 입구의 중국 관광객은 우리를 기가 질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질서라는 단어는 어디에 쑤셔박고 그렇게들 새치기를 하고 밀어붙이는지... 무이산에서의 중국인들의 무질서와 새치기를 그 뒤로도 주욱 봐야 했다. 참 착하고 순한 사람들이었는데 어찌 그리 질서의식이 부족한지...

복건성의 중국인들은 땡볕 가리개용으로 모자 대신 양산을 쓰지만 우산도 그에 못지 않게 많이 쓴다. 무질서하게 새치기를 하며, 그 놈의 우산 끝으로 머리를 쑤셔대는 것은 여행 내내 나를 힘들게 했다. 가파른 정상에서도, 그늘에서도 우산은 접지 않았다. 끼어드는 중국 관광객에 밀리고 치이며 30여 분만에 겨우 입장을 해서 관광차에 올랐다. 꽤 큰 관광 전동차가 줄을 이어 대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곳 역시 밀치고 밀리고...

 

관광차에서 내려 조금 걸어들어가자 오곡대교가 나타났다. 오곡대교 위에서 다리 아래로 줄 지어 지나가는 구곡계 뗏목(죽벌 : 竹筏, 중국명 주파이)을 처음 보았는데 신기했다. 다시 조금 더 걸어들어가니 '무이서원' 안내판이 보이고 '주희원(朱熹園)' 이라 새긴 바위가 보인다. 무이서원은 pass.

가마들이 대기 중인 장소를 지나면 바로 천유봉 매표소 있다. 천유봉을 비롯한 무이산의 여섯 곳을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은 140위안(한화 2만 7천원 정도)이라고 한다.

 

늙은 호랑이굴을 통과하여 작은 고개(?)를 넘어서고, 다동(茶洞) 앞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천유봉 등산이 시작되었다. 다동에서부터 가파른 천유봉 계단이 시작되는데 840여개라고 한다. 아득한 통바위를 보고 행여 뒤처져 일행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무이산의 또 다른 장관인 '인간 띠'가 거의 정상까지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질 체력인 나는 더디게 진행되는 인간 띠 덕을 톡톡히 보았다. 쉬엄쉬엄 올라가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크게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뿐 아니라 가끔 사진도 찍고, 산 아래의 구곡도 감상할 수 있었다.

 

오르는 계단을 따라 눈앞에서 눈 아래로 멀어지는 3개의 바위묶음을 접순봉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은병봉이었다. 접순봉이란 이름은 산 위에서, 은병봉은 산 아래 구곡계에서 부르는 명칭이 아닐까 생각했다. 천유봉 중 거의 90도로 내리꺾은 6곡에서 보이는 부분을 구곡계에서는 쇄포암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은병봉(접순봉?)과 천유봉 정상 사이에서 더 보였다 덜 보였다를 반복하는 구곡, 그리고 주변의 바위들을 바라보며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천유봉 매표소에서 1시간 30분, 다동에서 1시간 만이었다. 관광객이 적으면 30분 정도는 충분히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유봉 정상의 누각은 '천유각'이다. 1층에는 도교와 관련된 '팽조'로 보이는 인물상이 있고, 2층은 송미령 여사가 춤을 춘 곳이라는 글귀가 있다. 자세히 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스치다시피 해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

국민당이 본토에서 잘 나갈 때, 장개석 부부가 가마로 오르내리기 위해 만든 길이 우리가 하산한 완만한 숲길, 일명 '국민당 길'이다. 발 아래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올라온 가파른 계단은 공산당이 중국을 장악한 후 만든 일명 '공산당 길' 이다.

정상의 천유각 앞에서 갈증을 달래기 위해 6위안(한화 1,100원 정도)을 주면 즉석에서 깎아주는 오이는 꿀맛이었다. 반으로 잘라달라고 했더니 토막을 내왔다. 덕분에 부근에 있던 일행 몇 분과 골고루 나눠먹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이 때 천유각 안을 둘러보는 것을 놓쳤다!, 그냥 '야호!'하는 곳인 줄 알고, ㅎㅎ...), 하산 길로 접어들자마자 요란한 바위 각자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중국인들은 손바닥만한 바위라도 가만 두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국민당이 세웠다는 패방을 지나 순탄하지만 시계가 막혀 공산당 길에 비해 조금은 답답한 국민당 길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들은 청아한 새 을음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산 아래 부분에 간간히 무이산의 명물인 차밭이 있었다. 출구로 나오니 시계가 트이고, 거대한 바위가 앞을 막는데 등산 길에 천유봉과 마주한 접순봉(은병봉?)인 것 같았다. 무이산의 또 다른 명소인, 바위의 틈이 한일(一)자로 보일 정도로 좁은 일천선 코스 시간이 부족해서 일정에서 제외되었다.

 

인파 때문에 등산 시간이 초과되어 천유봉에서 흘린 땀을 호텔에서 씻고, 쾌적하게 뗏목을 타려던 중국인 현지 가이드의 배려는 무산되었다. 아침에 챙겨놓은 짐을 무이산공항으로 보내고 호텔에서 점심을 먹은 후 줄달음질 쳐서 뗏목 승선장으로 갔다. 왜냐하면 뗏목 승선 매표를 1시 30분까지 하지 않으면 승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17명인데 뗏목당 6명을 채우지 않으면 출발을 안 한다. 현지 가이드가 한참 만에 1명을 어디선가 모셔온(!) 뒤에 우리는 겨우 뗏목을 탈 수 있었다. 

 

 

<보도회전센터호텔 객실에서 본 무이산과 주변 풍경>

요상하게 이어진 객실 구조 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바로 옆에 무이산이 있고, 그곳에서는 나름 유명한 호텔이라고 한다. 더위에 묻히기는 했지만 공기도 깨끗했다.

 

 

<보도회전센터호텔 식당과 아침 메뉴>

짜장면 맛이 괜찮고, 녹두죽이 특히 부드럽고 맛 있었다.

 

 

<무이산 입구와 인산인해의 인파들>

국가주석 강택민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복건성 남동쪽의 하문과 북서쪽의 무이산은 우리나라의 포항과 서울 쯤의 거리인데 이곳 역시 섭씨 37도를 넘는 날씨였다. 밀고, 새치기 하고...

그곳에서 거의 유일하게 질서를 지켰고, 유일한 한국 관광객이었던 우리의 줄은 한참이나 제 자리에 있었다. x어먹을 양산(우산) 끝으로 머리를 또 얼마나 쪼아대던지...

 

 

 

<겨우 매표소를 통과하여 관광차를 타러 가는 길>

관광차들이 화려하다. 이렇게 큰 관광차라 사람이 금방 빠지고, 10분 거리의 짧은 코스인데도 중국 관광객들은 또 새치기를 했다.

 

 

<관광차에서 내린 후 오곡대교에서 본 풍경>

이곳은 무이산 안이지만 아직 천유봉 매표소가 더 남아있다. 관광차 하차장에서 무이산 매표소까지 걸어서 10분쯤 들어가야 하고, 그 사이에 오곡대교와 무이정사가 있다. 오곡대교는 구곡계 5곡에 있다. 처음으로 이곳에서 본, 계곡을 따라 줄 지어 내려오는 구곡계 뗏목(죽벌 : 竹筏, 중국어 주파이)이 신기했다.

 

 

 

<5곡교에서 본 4곡, 3곡 쪽>

가장 원경의 중앙에 솟은 봉우리가 구곡계의 백미로 불리는 옥녀봉이다. 구곡계 뗏목에서의 내 기억이 맞다면 숲에 반쯤 가려진 오른쪽 바위는 무이산애묘군의 하나인 풍장(風葬)의 흔적을 볼 수 있는 4곡의 바위이다.

 

 

<무이산 입구의 무이서원 안내도>

시간 관계로 통과...

 

 

<무이산 입구의 가마들과 힘겹게 가마를 메고 천유봉을 오르는 가마꾼들>

가마의 편도 비용은 280위안(약 5만원) 정도이다. 나는 카페지기님의 사전 통고대로 딸 몫까지 500위안만 환전했다. 그래서 무이산 천유봉 입구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주머니 속의 돈을 불안하게 헤아렸다. 평소에도 건강이 부실한 데다 앞서의 토루 관광 때 다리에 경련까지 나서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그토록 싫었던 인파들 때문에 서서히 천유봉을 오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무사히(!) 오르내릴 수 있었다. 하산 길에 거친 숨을 내쉬며 관광객을 태우고 올라오는 가마꾼들을 보니 안 타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유봉 매표소>

 

 

<아래에서 올려다 본 천유봉 중턱의 관폭정과 인간 띠>

정상에서는 구곡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므로 중턱의 관폭정에서 구곡계를 조망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사진의 왼쪽 아래-구곡계 6곡에서 절벽 끝에 달랑 놓인 이 관폭정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천유봉으로 오르는 입구, 다동(茶洞)과 무이산 현지 가이드>

왼쪽의 모자를 쓴 이가 외국어를 듣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한국어가 서툰 중국 현지 가이드이다. 하지만 무이산에서 한국어를 구사하는 가이드가 없는 만큼 조만간에 한국 관광객들에게 유명 가이드가 될 지도 모른다^^.

 

 

 <천유봉으로 오른 직후의 풍경>

중앙의 바위가 내가 접순봉으로 알고 있던 바위이다. 지금도 천유봉에서는 접순봉으로, 구곡계에서는 은병봉으로 달리 불리는 것으로 믿고 있다. 구곡계 6곡에서 볼 수 있는 천유봉의 한쪽 벼랑(쇄포암)을 빼고 가장 가파르고 위용이 있는 바위이다.

 

 

<천유봉에서 본 접순봉(은병봉)과 구곡>

이 바위 아래에 우리가 무이산 입구에서 안내판만 본 무이서원이 있다고 한다.

 

 

<무이산 천유봉을 오르는 관광객들>

그야말로 '인간 띠'이다. 무이산의 절경 못지 않은 장관이다!

 

 

<천유봉을 오르며 고도에 따라 본 풍경>

오른쪽으로 나란히 솟은 봉우리는 여자의 젖가슴을 닮았다 해서 '쌍유봉'으로 불린다. 왼쪽의 날이 선 바위는 접순봉(은병봉)...

 

 

 

 

 

 

<천유봉 정상의 천유각>

천유봉은 심한 경우 67도가 넘는 예각의 통바위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은 신기하게도 평지이다. 천유각 1층에는 도가의 팽조로 보이는 인물상이, 2층에는 장개석총통의 부인인 송미령이 춤을 춘 곳이라는 내용의 편액이 보인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천유각이 그저 그런 조망대라고 오판을 해서 안에 들어가는 걸 놓쳤다!

 

 

<천유각 아래의 오이 파는 여인들>

오이는 1개에 6위안(1,100원 정도)으로 아주 맛 있다. 수박은 먹을 상황이 아니어서 가격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천유봉 하산 길의 각자들>

탁월한 필체이고 한 볼거리이지만 바위마다 너무 많은 글을 새겼다.

 

 

 

<하산 길 = 국민당 길>

국민당이 대만으로 밀려나기 전에 장개석 총통 부부가 오르내리기 위해 만든 길이다. 공산당 길은 계단을 놓아 반듯하고, 국민당 길은 흙길로 자유분방(!)하다.

 

 

<출구 밖에서 본 구곡계>

구곡 중 6곡과 5곡 사이이다. 특별한 이름이 없어도 계곡 모두가 한폭의 그림이다.

 

 

<구곡계 뗏목(주파이) 승선 시간에 쫓겨 밀어넣은 보도회전호텔의 점심>

천유봉을 올라갔다 내려온 후라 맛있게 먹었음직 한데, 객실에서 10분만에 짐을 챙겨 내놓고 또 10여분 만에 쫓기 듯 먹어치운 점심이다. 그리고 버스에 승차해서 구곡계 뗏목을 타는 상류의 성촌 승선장으로 출발.

구곡계 뗏목 유람은 9곡인 성촌선착장에서 출발하여 1곡인 무이궁 입구까지 1시간 50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