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실미도, 2009년 봄

큰누리 2013. 10. 16. 22:10

 

 

 

≪실미도 사건≫ 

실미도는 북파공작원 684부대를 훈련하던 곳으로 우리에게는 영화 <실미도>를 통해 알려졌다.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형수 등이 강제로 차출된 후 '김일성의 목을 따기 위해' 지옥훈련을 받던 장소였다.

 

684 북파공작부대는 1968년 1월 21일에 청와대 앞까지 밀고 들어온 북한 특수부대 124군을 모델로 같은 해 4월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인원수도 1.21사태의 남파공작원수와 같은 31명이고 124군보다 강도가 센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3개월의 지옥 훈련 끝에 부대원들은 1.21사태 때 남파된 124군 못지 않은 살인병기와 같은 능력을 갖추었다.

북파공작이 성공하면 새로운 인생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고 이들 중 일부는 훈련 중 죽기까지 하는 지옥 훈련을 견뎠다. 하지만 안으로는 창설자인 정보부장 김형욱이 이후락으로 바뀌고, 밖으로는 당시 남북간에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3년 4개월이 넘도록 북파 명령이 없다가 결국 처치 곤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1971년 8월 23일, 부대원들은 24명의 교육대원들을 죽이고 실미도를 탈출한 후 시내버스를 탈취하여 청와대로 향했다. 교육대원 중 김방일 소대장을 비롯한 경비병 등 5명만 살아남았을 정도로 684부대 훈련병들은 막강했다고 한다. 결국 실미도 684부대원들은 서울 대방동 로터리 부근에서 탈취한 버스가 가로수에 받혀 멈추자 수류탄으로 자폭을 했다. 살아남은 4명은 사형을 당했고, 사건이 발생한 3일 후 국방장관이 사표를 냄으로써 묻혀버렸다. 

 

실미도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크지도 높지도 않은 무인도이다. 인천의 남서쪽 해안에 있으며 바로 곁에 무의도가 있다. 당시에는 두 섬이 떨어졌겠지만 현재는 커다란 징검다리로 이어져 있다. 영화 실미도를 떠올리며 들른 실미도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작고 조용한 섬이었다. 

햇살이 따사로운 2009년 4월 29일, 나는 그곳에서 어떤 피비린내 나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무의도 주민이 해산물 채취를 위해 가끔 드나드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당 기간 방치된 실미도는 파도, 나무, 풀 등의 자연이 주인이었다. 홀아비꽃대, 반디지치 등의 야생화와 복숭아, 산버찌 등의 유실수, 소사나무 같은 나무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최근에는 무의도를 찾는 이들이 돌다리를 통해 실미도에 자주 들리는 모양이다. 내가 다녀온 지 벌써 4년이 넘었으니 그 동안 실미도는 많이 변하고 사람 발길도 잦아졌을 것이다. 묵은 사진을 정리하다 갑자기 실미도, 무의도 사진 폴더가 눈에 들어온 덕분에 오랜만에 실미도를 떠올렸다.

 

 

 

<무의도에서 본 실미도>

실미도는 해발 80m에 면적은 2㎦ 라고 한다. 아주 조그맣고 평온한 느낌의 섬이다. 사람들이 있는 지점 쯤에 돌 징검다리가 있어서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지도에는 징검다리 부근이 '바다 갈라짐 길'이라고 되어 있다. 썰물일 때만 징검다리가 드러나는 모양이다.

 

 

<징검다리를 건넌 후 실미도에서 본 무의도>

 

 

 

 

 

<해산물을 채취하러 가는 무의도 주민들>

 

 

<실미도 북쪽에서의 전망>

 

 

<실미도 남쪽 해변>

 

 

<실미도 북쪽해변> 

 

 

 

<무의도, 실미도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 주변의 모습들>

밧줄에 따개비가 더덕더덕 붙어있다.

 

 

 

 

 

 

<실미도 바닷가의 나무>

 

 

<실미도의 복숭아꽃 사이로 보이는 무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