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레도(Toledo)에 대한 개요>
Toledo는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 남서쪽 70km 지점에 있는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성채 도시로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3면이 타호(Tajo, Tagus) 강으로 둘러싸인 고지대이기 때문에 북쪽만 방어하면 되는 천혜의 요새이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일찍부터 요새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수도, 종교의 중심지로 자리매김 했다.
1561년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로 천도하기 전까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각 시대별로 수도였고 현재까지 중세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한 국가는 아니지만 천여년 동안 수도였고, 남아있는 유적이나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점에서 우리나라의 경주 쯤에 해당한다.
<똘레도(Toledo)의 약사>
역사적으로는 BC 218~201년 한니발 장군이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군에게 패한 후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600년 경 로마제국의 쇠퇴 후에는 서고트족의 지배 하에 들어가 왕국의 수도가 되어 번성했다. 711년 이슬람 세력의 침략 후에도 역시 똘레도 왕국의 수도로 상공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금세공과 갑옷, 칼 등의 무기 생산으로 명성을 떨쳤다.
1085년 알폰소 6세가 이슬람 세력(무어족)으로부터 탈환한 후에는 카스티야 왕국의 중심지로 계속 발전하였다. 1492년 이교도의 국외 추방령이 내려질 때까지 똘레도에는 서로 다른 민족, 세력의 반복된 점령으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유대교도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1561년 펠리페 2세가 마드리도로 천도한 후 정치, 경제 중심지로서의 지위는 잃었지만 스페인 카톨릭 대교구로서 종교의 중심지로서의 지위는 유지하고 있다.
<똘레도(Toledo)의 유적과 볼만한 것들>
똘레도 성안은 13세기의 고딕식 성당, 무어풍의 왕궁과 성벽, 유대교회 등 이색적인 건축물로 가득하다.
1. 도시(성)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알카사르(요새)는 고대 로마시대에 세워졌으며 서고트, 무어인, 기독교인들에 의해 여러 번 재건되었다. 무데하르 (Mudejar)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합된 빼어난 건축이다. 나폴레옹군에 의해 불에 탔고, 1936년 스페인 내란 때에는 프랑코군의 모스카르도 대령이 공화파의 포위에 맞서 72일 동안 격렬하게 저항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의 건물은 당시에 거의 폐허가 된 것을 다시 지은 것이다. 현재 군사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며 카를로스 5세의 튀니지 정복 기념 동상, 무기 변천사 전시실, 스페인 내란 당시의 모스카르도 대령 집무실, 군복 전시실 등이 있다.
2. 똘레도 대성당은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으로 스페인에 있는 성당 중 규모가 가장 크다. 1227년 페르난도 3세가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짓기 시작하여 266년 후인 1493년에 완성되었다. 보물실에 있는 180kg의 순금과 은으로 만든 성체현 시대가 유명하며 미술관으로 사용되는 성기실에는 엘 그레코, 고야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똘레도 대성당에 대한 내용은 다음에 글을 올릴 예정이므로 이 정도로 생략...
3. 기타 이곳 출신인 화가 엘 그레코의 집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똘레도(Toledo)의 산업>
일찍이 칼, 갑옷 등 무기 생산과 금세공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똘레도의 검'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사용되었을 정도로 지금도 유명하다. 기타 섬유, 도자기 등의 산업이 발달했고 주변에서 생산되는 양, 말 등의 가축과 곡식, 과일, 포도주 등의 농축산물과 광산물 집산지이다.
<똘레도 입구>
마드리드를 떠나 붉은 땅과 연두빛 지평선만 보이는 라만차(평야지대)를 40여분 가면 지평선에 납작 엎드린 도시가 보인다. 이어 오른쪽으로 강을 끼고 불쑥 솟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한 덩어리 바위 산이 나타나는데 바로 똘레도이다. 군대나 병법을 전혀 모르는 이들이 한눈에 봐도 완벽한 요새이다.
외곽에서 성을 향해 버스가 오르기 시작하면 손잡이를 잡지 않고는 몸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험하다. 성으로 진입하면 맨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래의 다리와 작은 문인데 천연의 해자인 타호강을 건너 외부에서 들어가는 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가이드 말로는 다리 부근에 흩어진 건물 터는 로마시대의 목욕탕이라고 한다.
<타호(Tajo)강 건너편 조망지에서 본 똘레도>
하나의 성을 이렇게 통째로 들여다 본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평지에서 거대한 건물들에 압도되어 우러러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원경이긴 하지만 건물 하나 하나가 속까지 들여다 보일 것 같고 보존상태도 훌륭하다. 성 아래로 흐르는 강은 타호(Tajo, Tagus) 강인데 북쪽을 제외한 3면을 완벽하게 막아주는 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
성에서 가장 높은 오른쪽 끝의 사각 건물이 알카사르(성채, 요새)이고, 뾰족한 첨탑이 있는 건물이 똘레도 대성당이다.
<조망지에서 똘레도 대성당 부근을 확대한 모습>
똘레도 대성당 왼편의 푸른 지붕들이 궁금해서 지도를 확대해 보니 산 로만 이글레시아, 아르소비스팔 팔라시오 등이라고 적혀 있다. 이글레시아(iglesia)는 사제가 거주하는 일반적인 성당, 팔라시오(palacio)는 궁전을 의미한다. 이들 중 많은 곳이 박물관으로 쓰이는지 무제오(museo)가 병기되어 있다.
<똘레도와 타호강 사이에 놓인 산 마르틴 다리>
로마시대에 놓은 다리라고 한다. 날이 흐리기도 했지만 선팅된 버스 차창으로 촬영해서 우중충하다.
<똘레도성의 성채>
이 아래의 버스 주차장에서 하차해서 아래 사진의 성 입구로 들어간다.
<똘레도성 입구와 에스컬레이터>
따로 성으로 들어가는 곳이 더 있겠지만 우리는 이곳으로 들어갔다. 사진 오른쪽 중앙(건물 아래)에 보이는 검은 색 사선이 성으로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이다.
<똘레도성 안에서 본 바깥 풍경>
지평선을 감히 거스르는(!) 고층 건물은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보기 힘든 풍경이지만 스페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똘레도 성안>
각각 특색이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다양한 벽돌이나 돌을 깐 바닥, 모자이크 같은 벽돌 등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다. 그 아름다운 건물들을 보느라 무기와 금세공품(파는 가게)을 놓쳤다, ㅎ...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고퀄리티 무기들을 모두 이곳에서 제작했다는데...
<똘레도 산토 토메성당 주변>
사진 왼쪽의 앞에 보이는 건물이 산토 토메성당이다.
<산토 토메성당(Iglesia de Santo Tome)과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팁 : Iglesia(이글레시아)는 전기한대로 사제가 거주하는 성당, Cathedral(카테드랄, 대성당)은 주교가 있는 교구 전체의 모성당을 말한다. Capilla(카필라)는 성직자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성당이나 신자가 기도하기 위한 건물을 말한다.
산토 토메성당은 규모는 작지만 엘 그레코가 그린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으로 유명하며 따로 입장료를 받는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똘레도 출신의 화가 엘 그레코가 산토 토메 성당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1578년 3월에 그려 9개월만에 완성했다. 오르가스 백작은 톨레도 지방의 귀족으로 카스티야 왕국의 수석 공증인이었다. 생전에 신앙심이 깊었을 뿐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 산토 토메 성당을 후원하였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사후 250여년이 지난 후 백작의 장례식에 대한 전설을 그려 성당에 걸기로 했다.
전설의 내용은 백작의 장례식에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스테파노가 지상으로 내려와 직접 매장을 했다고 하는 기적을 말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북아프리카 누미테아 출신의 성직자로 이교와 이단에 대항해 카톨릭 교회의 정통 이론적 기초를 다진 성인이다. 성 스테파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교육 받고 예루살렘에서 살다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추측되는 유대인으로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이다. 기독교에 대한 진리를 설파하다 유대인들에 의해 거짓 증언을 한 것으로 무고되어 성난 군중들에게 돌로 맞아 죽었다.
엘 그레코 作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함께 세계 3대 성화이다. 그림의 내용은 천상과 지상으로 크게 나뉜다.
하단의 지상에서는 똘레도의 유명 인사와 성인(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스테파노)들이 참석한 가운데 백작을 매장하기 직전의 상황이다. 화려한 사제 복장을 한 성인 중 젊은이는 성 스테파노이고, 노인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이다.
상단의 천상에서는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성모 마리아와 천국의 열쇠를 쥔 성 베드로, 세례자 요한, 왕들이 백작의 영혼을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의 노란 옷을 걸친 사람은 엘 그레코가 아부하기 위해 그려넣은 당시의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이다.
중간은 백작의 영혼을 받아들이기 위해 구름이 둘로 갈라졌고 그 중앙에서 강보 같은 것에 싸인 백작의 영혼이 천사에 의해 올려지고 있다.
그림에는 실존 인물들이 들어가 있는데 성 아우구스티누스 모자 바로 위에서 하늘을 보는 이는 화가 자신, 왼쪽 아래의 수도사 중의를 입은 이는 그림 제작을 의뢰한 산토 토메성당의 안드레스 누네스 신부, 그 앞의 유일한 어린이는 당시 8살인 엘 그레코의 아들 호르헤 마누엘이다.
그림 속의 엘 그레코의 아들은 산토 토메 성당 입구에서 방향만 바꿔가며 똑같은 자세로 안내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산토 토메 성당에서 똘레도 대성당으로 가는 길>
산토 토메성당과 똘레도 대성당은 5분 정도의 거리이다. 골목마다 루미나리에 비슷한 전등 장식이 걸려있는데 밤이면 무척 아름다울 것이다.
<똘레도 대성당 내부를 보고 성 밖으로 나가는 중...>
성 밖 전망대에서 볼 때 똘레도 대성당 바로 왼쪽으로 보인 푸른 지붕의 건물들이 보인다. 땅거미 질 무렵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한 성밖의 풍경도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다.
<저녁을 먹은 마드리드의 한식집>
10일 동안의 스.포.모 체류 중 모로코에서 주문으로 공수해서 먹은 도시락을 제외하고 한식은 두번 먹은 것으로 기억한다. 한식 도시락은 아주 푸짐하고 맛 있었고, 아래의 마드리드에서 먹은 한식도 아주 맛있었다. 제육볶음이 주메뉴였는데 시금치와 숙주나물, 초고추장 야채무침 등이 모두 맛이 좋았다.
하지만 출국 전날 바르셀로나에서 대구탕을 먹은 한식집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 동안 빵과 고기로 절어서 얼큰한 음식이 그리웠음직 했는데도 그랬다.
<첫번째 숙소, 마드리드 Holiday Inn Express>
Holiday Inn Express는 미국에서 운영하는 체인점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곳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이 체인 호텔에 묵었는데 안락하진 않아도 딱 필요한 것만 있는 실용적인 숙소였다. 하긴 안락하면 뭐 하나? 한밤중에 호텔에 들어가 새벽에 나오는데...
순수한 유럽 숙박 시설과 달리 한국인이 예측할 수 있는 숙박 시설(!)인 점은 좋은데 문제는 와이파이 이용료를 따로 받는다. 1시간 이용료 4유로, 전일은 12유로나 받는다. 그나마 연결이라도 잘 되면 좋은데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휴대폰을 들고 잘 되는 곳을 쫓아다녀야 한다, 이런 된장... 정말이지 IT에 관한 한 한국은 최강이다.
<마드리드 Holiday Inn Express의 내부 시설>
아주 귀한(정말이다!) 커피 포트가 제공된다. 고맙게 1회용 커피와 차도... 유럽에서는 흔하지 않은 서비스이다. 하지만 욕실은,,, 물컵 2개와 수건, 벽에 부착된 액체 비누를 제외하곤 썰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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