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스.포.모 여행7 - 스페인 최고의 대학 도시 살라망카

큰누리 2014. 3. 1. 00:42

살라망카(Salamanca) 구)도시는...

살라망카는 스페인 카스티야레온 자치지역 살라망카의 주도이다. 기원 전 3세기에 카르타고인들에 의해 처음 정복되었고 한니발이 점령하면서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서고트와 이슬람의 지배를 받다가 1085년 그리스도교도들의 지배로 되돌아갔다.

1254년 알폰소 대주교에 의해 살라망카 대학이 창립된 이후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현재에도 살라망카 대학을 중심으로 학문의 도시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스페인을 대표하는 관광 도시이기도 하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구)대성당, 16세기 고딕 양식의 신)대성당과 무어 양식, 바로크와 플라테레스코 양식 등 중세부터 근세까지의 건축 전시장이라고 할 만큼 다양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다. 붉은 빛(연한 살구색)을 띠는 건물이 많아 '붉은 도시, 황금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기타 관광 명소로 고대 로마시대의 다리, 마요르 광장, 조개의 집 등이 있다. 1998년 구)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살라망카 구)도시 입구의 이정표들>

호텔 등의 숙소 안내판으로 보인다. 사진 왼쪽 원경으로 살라망카 신, 구)대성당이 보인다.

 

 

<또르메스강과 살라망카 신, 구)대성당>

이 날도 수시로 비가 오락가락했다. 선팅한 차창 색과 구름이 얽혀 바깥 풍경이 을씨년스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아름답고 평온하다. 

 

 

 

<살라망카 고대 로마 다리>

살라망카의 고대 로마 다리는 구 도시 남서쪽으로 흐르는 또르메스(Tormes) 강에 놓여져 있다. 고대 로마가 스페인을 정복하던 1세기에 세운 유서 깊은 다리로 살라망카의 주요 교통로였으며 현재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총 길이 176m, 폭 3.7m, 아치형 교각은 26개이다. 살라망카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의 하나로 1931년 스페인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고대 로마다리는 살라망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강을 낀 오래된 도시에는 거의 모두 있다고 보면 된다. 고대 로마인들은 다리나 수로를 상당히 튼튼하게 만든 모양이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로마 다리'로 불리는 다리는 대부분 형태가 온전하고 상당수가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용된다.

 

 

 

<현지 가이드로부터 '교황청립 대학'이라고 들은 구)도시 입구의 건물>

교황청립이면 일종의 카톨릭 대학교인데 살라망카 대학교 부속 단과대학인지 독립된 신학대학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자료를 찾아보면 살라망카 대학교는 공립대학교라고 되어 있고, 살라망카 대학교 설립자는 알폰소 대주교이고, 후원자는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2세이다. 그래서 헛갈린다.

 

 

<살라망카에서의 현지 가이드의 직무 유기>

사전에 찾은 자료를 보고 나는 남들이 그런 것처럼 당연히 대성당 위로 올라가 구 도시를 조망할 줄 알았다. 솔직히 그게 살라망카 관람의 백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당을 본 것은 차창으로 본 아래의 사진(↓)과 마지막 부분에서 대학 건물 사이로 지붕의 끝부분을 본 것으로 끝이었다.

대학 주변 골목으로 들어서면 건물들이 높아 다른 건물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눈앞의 건물만 목을 젖히고 보게 된다. 우리는 사진은 찍되 가이드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다. 그대로 쫓아갔더니... 눈앞에 대로가 나오고, 그 앞에 우리의 버스가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성당 관람을 통째로 생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사진을 정리하면서 더듬어 보니 우리의 가이드는 프라도 미술관을 빼고는 회화 작품은 몽땅 제외시켰고(대성당 안에서 반드시 보아야  할 명화들이 상당히 많았고 그 작품 몇 점을 볼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뺄 수 있었다.), 걸어서 올라가는 코스도 거의 제외시켜 버렸다(대표적인 것이 세비야의 히랄다 탑이다). 나는 위와 같은 불상사 때문에 살라망카 신, 구 대성당에 대해 내가 본 단면만으로 추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살라망카 구)도시를 다녀온 사람은 '살라망카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성당 전망대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성당 풍경과 아래의 시가지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몇 세기를 이어 짓느라 다양한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성당의 조망은 사진으로만 보았는데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숨이 막힐 정도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까?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극찬이 절대 틀린 말이 아닌 그 장관을 우리는 놓쳤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올려다 보는 것보다 높은 곳에 올라 '조망'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 '기쁨'과 '장관' 두 가지를 무성의한 가이드 때문에 모두 놓치고 말았다! 입장료 3유로 25센트와 1시간, 아니 단 30분만이라도 투자했으면 되었는데...

 

 

<성벽 너머로 올려다 본 살라망카 대성당>

아래 사진을 자세히 보면 돔을 지붕에 인 큰 건물 2개와 왼쪽 돔 아래로 돌기가 돋은 낮은 돔이 하나 더 보인다. 수많은 자료를 비교해 본 결과 오른쪽 돔과 주변의 정방형 건물이 살라망카 구)대성당이고 왼쪽의 높은 돔 지붕 건물과 돌기가 돋은 낮은 녹색 돔 부분이 살라망카 신)대성당이란 결론을 내렸다. 두 건물이 붙어있다고 했으니 내린 결론이지만 자신은 없다. 살라망카 대성당은 동일한 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공 사진을 보면 신)대성당으로 추측되는 왼쪽의 건물이 앞에 있다.

 

살라망카의 신, 구 대성당 모두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의 하나로 꼽힌다. 구)대성당은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으며 원래의 웅장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고 거대한 돔과 가요(Gallo) 타워가 특징이다. 반구형의 돔에는 외벽을 따라 끝이 뾰족한 원추형의 작은 지붕으로 덮인 가느다란 원형 탑 4개가 있다. 가요(Gallo) 타워는  원추형의 대형지붕으로 덮여 있으며 외벽 둘레에 4개의 작은 원형탑이 딸려있다.

 

신)대성당은 1513년 아라곤의 국왕 페르난도 2세의 명령으로 짓기 시작하여 220년 후인 1733년에 완성되었다. 바로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혼합 형태로 플라테레스코 양식의 조각 장식이 아름다운 건물의 정면, 대형 돔,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많은 성인상이 조각된 대형 출입문, 내부 제단 뒤의 황금빛 조각 장식 등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887년 국가기념물로 지정되었다.

 

Tip : 스페인 건축물을 관람하려면 아래의 2가지 양식에 대한 사전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래의 두 양식은 따로 따로가 아니라 합쳐져서 표현되었다고 보면 된다.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도 덤으로 알아두면 상당히 유용하다.

 

**추리게라 양식(Churrigueresco)은 스페인에서 나타난 바로크 말기의 건축 양식이다. 추리게라家와 제자인 P.리베라, N.토메에 의해 확립되었으며 살라망카 마요르 광장의 시 청사 건물 대표적이다. 아래의 사진처럼 건물의 외벽, 기둥 등에 식물 문양 등의 곡선이나 인물 조각, 회화 등을 사용하여 화려하고 섬세하게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플라테레스코 양식(Estilo Plateresco) : 15세기 말 ~ 16세기 초의 스페인 건축 양식이다. 건축의 벽에 스페인 고유의 돌출된 장식을 가미한 양식으로 풍부한 장식 문양이 금은세공(플라테리아)과 비슷한 데서  명칭이 유래했다. 대표적인 건축은 발랴드리드의 성십자학당, 살라망카 대학의 파사드(정문), 똘레도의 성십자병원, 알카라 데 에나레스 대학 등이다.

 

**고딕(Gothic) 양식 : 12세기부터 14세기에 르네상스가 도래하기 전까지 3세기 정도 서유럽에서 유행하였다. 높은 건물, 첨탑,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특징이다. 프랑스의 노트르담 대성당, 독일의 쾰른 대성당이 대표적인 건물이다.

 

**바로크(Baroque) :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이며 바로크 양식은 건축 분야에서는 르네상스 양식 다음에 절대왕정 시대의 궁전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베르사이유 궁전이 대표적이다.

 

 

<살라망카 마요르 광장(Plaza Mayor de Salamanca)>

펠리페 5세가 왕위계승전쟁 때 자신을 도와준 살라망카 시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1729년~1735년의 1단계 공사는 알베르토 데 추리게라(광장 건립)가 총책임자로 공사를 했지만 1735~1750년은 공사가 중단되었다. 1750년~1755년의 2단계 공사는 안드레스 가르시아 데 키뇨네스가 추리게라 家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다(시 청사 건립).

 

광장은 정사각형의 스페인식 바로크 양식으로 조성되었으며 동시에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히며 과거에는 투우장으로 많이 이용되었고 현재는 공연장으로 이용된다. 북쪽의 건물은 시 청사로 사용되고 있으며, 광장의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사방의 기둥 위에는 세르반테스 같은 스페인의 유명인사, 역대 국왕, 주교 등의 인물 부조상이 붙어있다.

 

 

 

 <살라망카 마요르 광장 북쪽의 살라망카 시 청사>

윗 사진 바닥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지가 있다.

 

 

 

 <살라망카 시 청사를 바로 아래에서 올려본 모습>

 

 

 <살라망카 마요르 광장 동쪽 건물>

이 건물에 스페인 국왕 부조상들이 붙어있다. 

 

 

 

<세르반테스의 조상과 테레사라는 여성의 초상 부조가 붙어있는 벽>

붉은 머리칼을 한 맨 왼쪽 초상은 지워졌고, 왼쪽에서 두번째 인물조상이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이다.

 

 

<살라망카 마요르 광장 밖의 중국집과 한국 전자제품>

스포모 여행에서 첫번째 들른 중국집이다. 이곳 말고 두 곳을 더 들렀던 것 으로 기억한다. 여행지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한자로 간판을 건 중국집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일찌감치 이역만리까지 진출하여 뿌리를 내린 화교들의 저력이 느껴졌다. 음식 맛은 괜찮은 편이다. 

 

그 당당한 중국집 위에 더 당당하게(!) 걸린 LG에어컨 팬이 보인다. 삼성 휴대폰과 스마트 TV는 공항이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LG에어컨은 호텔이나 이런 작은 건물 외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가전산업이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글로벌하다는 것을 느꼈다.

 

 

<살라망카의 중국집 '大世界酒家' 내부와 음식>

스페인의 한식집, 중국집은 명칭만 그렇고 동양인 단체 관광객을 주로 받기 때문에 특별히 자기 나라의 음식을 고수하지 않는 듯 했다. 이 집만 해도 김밥이 있고, 나중에 들른 바르셀로나의 한식집은 아예 한국인, 중국인, 동남아인 테이블이 따로 있었다. 

 

 

 

<살라망카 대학교>

1218년 당시 살라망카의 지배국이던 레온 왕국의 알폰소 9세가 오래 전부터 교육기관이었던 현재의 살라망카 대학을 정비해 고등교육기관을 만들었다. 이후 1254년 알폰소 대주교에 의해 대학이라는 이름을 얻어 유럽 최초의 대학이 되었다. 2011년을 기준으로 2,500개의 학과와 3만여 명에 달하는 학생, 2,500여명에 달하는 교직원을 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학이다. 유학생을 위한 스페인어 과정으로 명성이 높다. 15세기의 천문학자 아브라함 자쿠토, 시인 살리나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콜럼버스 등이 이 대학 출신이다.

 

 

<살라망카 대학교의 한 건물과 살라망카 성당 겉 핥기>

현지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살라망카 대학교 정문 앞을 지나면서 주변의 단과 대학 건물을 훑는다. 아래 건물은 대학 정문이 있는 도로에서 가장 먼저 본 대학 건물이다.

이런 살구색 석조 건물은 모두 대학 건물이라고 보면 된다. 이 돌은 캄보디아의 반띠아이 스레이 사원 돌과 같은 사암의 일종이 아닌가 한다. 이 돌 색깔 때문에 '황금의 도시, 붉은 도시'로도 불리고, 딱딱해 보일 수 있는 교육 도시가 상당히 화려하면서도 부드럽게 다가왔다.

 

 

<살라망카 조개의 집>

앞의 건물이 '조개의 집'이고 아래 사진은 근접해서 본 것이다. 살라망카 조개의 집(Casa de las Conchas)은 한쪽 벽면에 400여개의 조개껍데기를 박아 15세기 후반에 지은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조개는 그리스도의 12제자 중의 1명인 야고보의 묘가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로 가는 순례의 길을 상징한다.

 

'조개의 집'은 순례자를 보호하던 기사단 단원의 저택(호화 귀족 저택)이었고 순례자들의 쉼터로 사용되었다. 순례자들이 조개껍데기를 들고 다니며 식기나 컵으로 사용했는데 쉼터인 이 건물을 쉽게 알아보도록 조개를 붙였다고도 한다. 현재는 공공 도서관으로 사용 중이다.

 

 

 

<마에스트로 살리나스의 동상>

손에 들고 있는 문서로 보아 무언가 대학과 관련된 분 같은데 이 동상에 대한 자료는 어디에서도 못 찾았다.

 

 

<살라망카 대학교 정문(파사드) 맞은편의 시인 루이스 데 레온像>

종교가 대세이던 시절에 반종교적인 발언으로 30년간 감옥살이를 하다가 다시 대학 강단에 선 꼬장꼬장한 분이다. 

 

 

<살라망카 대학교 정문(파사드)과 복을 부르는 해골 속 개구리>

한쪽 문이 빼꼼이 열려있긴 하지만 대학 내부에 일반인은 출입이 안 된다고 한다. 건물 외벽의 돌 색깔도 화려하고 플라테레스코 양식의 조각들도 화려하기 그지 없다. 이 대학 정문은 대표적인 플라테레스코 양식이다.

정문(파사드) 중앙에 스페인의 왕국을 통일했고 대학에 재정적인 후원을 한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의 문장이 있고, 그 좌우에는 이들의 초상이 있다. 또 1516년부터 스페인을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장과 추기경들과 함께 담론을 나누고 있는 교황의 모습도 새겨져 있다.

 

대학 정문(파사드)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해골 조각 속에 박혀 있는개구리이다. 이 개구리를 찾아낼 만큼 날카로운 눈을 지닌 이에게는 행운이 온다고 한다. 오른쪽 기둥 중간 쯤에 해골 3개가 있고, 표시한 대로 가장 안쪽의 해골 위에 개구리가 박혀 있다.

 

 

<살라망카 대성당 전망대(?)>

대학 건물 사이에서 지붕이 돔인 대성당의 건물을 올려다 본 것이다. 이 건물 안에 내가 놓친 것을 통탄한 전망대가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살라망카 대성당 문의 플라테레스코 장식>

신)대성당의 출입문으로 추측되는데 대학 정문과 더불어 플라테레스코 장식이 현란하다.

 

 

<살라망카 대학의 까마라 신부상과 붉은 낙서들>

까마라 신부는 대학을 위해 공헌을 한 분일 것이다. 대학 건물 곳곳에서 아래 사진들 오른쪽 아래처럼 붉은 글귀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어렵게 들어간 명문대학을 어렵사리 졸업하면서 그 기념으로 '졸업생들이 소의 피로 쓴 낙서'라고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전통처럼 이어지다가 빨간 물감으로 재료가 바뀌었지만 요즘은 사라졌다고 한다.

 

 

 

<유일하게 살라망카 구)대성당이 보인 지점>

대학 건물 사이로 (명칭은 추측이지만) 구)대성당 돔과 신)대성당의 일부가 보인다.

 

 

<살라망카 대학 출구 쪽>

딱히 입구니 출구니 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거나 대로 바로 안쪽이다.

 

 

<대로변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돋보이는 집>

이 집 건너편에서 당시에는 뭐가 뭔지 모른 체 우아하면서도 화려하고, 그런가 하면 대학 특유의 권위가 느껴지는 단아한 도시 살라망카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