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맘대로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 스포모 여행에서 겪은 발음에 관한 내용이다. 사전에 자료조사를 할 때 지명이나 이름 때문에 차질이 생겼다. 아래의 발음 문제는 내가 느낀(!) 것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모른다^^*
♣ 스페인에서 알파벳 'j'는 'ㅈ'이 아니라 'ㅎ' 으로 발음했다. 따라서 Nude Maja는 '누드의 마야'가 아니라 '누드의 마하'이다.
♣ 중간에 엘(L) 두개가 겹치면(ll) 묵음이 된다. 따라서 화가 '무릴료'가 아니라 '무리요'이다.
♣ 'z'는 'ㅅ'으로 발음한다. 따라서 브랜드 zara는 '사라'가 맞다.
♣ 'g'는 'ㅎ'으로 발음한다. 따라서 Generalife는 '제네랄리페'가 아니라 '헤네랄리페' 정원이다.
♣ 포르투갈어 맨앞, 혹은 이름의 'R'은 경우에 따라 묵음이다. 따라서 '로시우 광장(praça do Rossio)'이 아니라 '호시우 광장'이다.
♣ '스페인'이란 국가 명칭도 '에스파냐'가 맞지만 결론은, 이미 귀에 익어서 편의상 익숙한 기존의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현지 가이드에게 들은 포르투갈 약사(略史).
♣ 포르투갈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적이며 인구는 1,100만명 정도이다.
♣ 한 겨울은 평균이 섭씨 15도 정도로 온화하다.
♣ 1147년 앙리 드 보르고스의 아들이 보르고뉴 왕국를 세우며 독립했고, 15세기에 아비스 왕가로 바뀌었다.
♣ 1498년 바스코 다 가마의 항로 개척으로 해양국가의 선봉이 되었다.
♣ 아비스 왕가의 혈통이 단절되어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다가 1620년에 독립했다.
♣ 살라자르가 독재정치를 하다가 1974년 4월 25일의 혁명으로 무너졌다.
♣ 우리나라보다 9시간 느리다.
♣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축구 선수 피구이다 등...
스페인 국경에서 2시간 30분을 달려 한밤중에 파티마에 도착했다. 포르투갈 산타렘州 빌라노바데오렘의 작은 마을이었던 파티마는 1917년의 성모 발현으로 성지가 되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세 목동의 기적은 1930년 10월 13일 레이리아 주교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카톨릭과 나의 인연.
비신자인 내가 파티마의 성모 발현에 대해 비교적 잘 아는 것(!)은 천주교 재단의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뺑뺑이(추첨)로 들어간 천주교 재단 소속 고등학교를 다니며 일주일에 1시간씩 종교수업을 듣고 점심 때마다 삼종기도를 해야 했다. 삼종기도는 선택할 수 있었지만 신부님이 진행하는 종교시간은 정규 수업이라 의무사항이었는데 카톨릭에 대한 이야기보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나름 재미있게 들었다.
특히 좋았던 것은 1년에 한 번씩 하는 피정이었다. 하루 종일 성당과 학교에서 진행하는 축제 같은 피정은 한국말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 신부님들이 진행했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그 외에 종종 카톨릭 관련 영화를 보여주었는데 그것도 좋았고, 그 중 하나가 바로 <파티마의 기적>이었다.
*파티마의 성모 발현 성당.
소성당은 발현한 성모의 요청으로 1920년에 지었으며 대성당은 1953년에 교황청에 의해 지어졌다. 대성당은 신고전주의 양식이며 앞 광장은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고 중앙에 고행의 길이 있다. 중앙 고행의 길 끝에 64m 높이의 탑이 있고 좌우 주랑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다. 성당 내부의 제단 왼쪽에는 야신타와 루치아의 묘가 오른쪽에는 프란치스코의 묘가 있다.
*1917년 기적의 현장에 있었던 세 어린이 루치아, 프란치스코, 야신타.
당시 9살이었던 프란치스코는 1919년 4월 4일에, 7살이었던 야신타는 1920년 2월 2일에 1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를 휩쓴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다. 10세였던 루치아는 1947년 까르멜 수녀원의 수녀가 되어 교황청의 특별한 관리(!)를 받다가 2007년 10월 14일,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2005년이라고도 한다). 3명은 현재 파티마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파티마 발현 성모의 3가지 예언.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의 벽지 파티마에서 3명의 어린 양치기(루치아와 사촌인 야신타, 프란치스코) 앞에 성모가 발현하여 인류의 운명과 관련된 3가지의 비밀 예언을 했다. 이후 성모 마리아는 5개월에 걸쳐 매월 13일에 총 6번 발현해서 죄인들이 회개하는 것을 돕기 위해 묵주 기도를 하고 고행을 하라고 했다.
첫 번째 예언은 환시로 보여준 지옥, 두 번째는 지옥으로 빠지는 사람을 구원하는 방법이었다. 세 번째는 가파른 산의 큰 십자가 아래에서 흰옷을 입은 교황과 사제, 신도들이 기도를 하려는데 군인들이 나타나 총과 활로 그들을 모두 살해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위의 내용은 해석에 따라 러시아의 공산화와 파시즘의 등장, 2차 세계대전 발발, 교황 암살(요한 바오로 2세 총격 사건)로 해석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첫째를 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 둘째를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지옥의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태양의 기적.
1917년 10월 13일, 성모 마리아가 3명의 양치기에게 3번째 발현을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기적을 일으킨다는 사전에 한 예고대로 비가 오는 날 수만 명의 군중이 벌판에 모인 가운데 갑자기 쟁반 같은 태양이 떠서 불 바퀴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춤을 춘 기적을 말한다.
<파티마 성지 입구에 있는 세 목동 조각상>
석상으로 추정이 되는데 한밤중에 버스 차창으로 찍었더니 이 모양이다. -.-;;
<숙소 산타 마리아 호텔>
스페인에서 묵은 호텔보다 조금 더 깔끔하고 격이 높다. 밤에 도착해서 새벽에 출발했기 때문에 둘러볼 시간은 없었지만 버스로 오가는 길에 보니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었다.
<성모 발현 성당 입구의 베를린 장벽 조각과 안내문>
안내문은 까막눈이고, 가이드 설명은 들었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어쨌거나 생뚱맞게 베를린 장벽의 조각이 이곳에 놓인 이유는 성모의 두번째 예언인 공산주의의 몰락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파티마 성모 발현 대성당과 광장>
이 때쯤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번 스포모 여행 기간이 우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비를 만났다.
광장은 최대 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성당 앞 중앙의 통로는 고행자의 길이다. 발현한 성모가 예언을 하며 부탁한 묵주 기도와 고행을 하라는 내용에 따라 신도들이 무릎으로 기어 그리스도상까지 간다고 한다.
<파티마 성모 발현지 소성당>
광장 왼쪽에 있는 아래의 건물은 세 목동이 최초로 성모를 만난 참나무가 있던 곳에 세운 소성당이다. 1920년에 건립하여 1921년부터 신자들의 미사를 허용했다고 한다. '매괴의 성모(발현)상'과 세 목동 등의 벽화, 요한 바오로 2세의 상이 있다고 하는데 패스~.
아래 사진의 바리케이트(?) 안은 고행의 길이다.
<파티마 성모 발현지 대성당과 오른쪽 주랑>
대성당은 신고전주의 양식이며, 좌우 주랑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린 벽화가 있다.
<파티마 성모 발현지 대성당 내부의 제단>
제단 왼쪽 나무 책장 같은 물건 옆에 야신타와 루치아의 묘가, 오른쪽의 밤색 문 옆에 프란치스코의 묘가 있다. '묘'는 우리나라 식의 묘가 아니라 '석관' 이다.
<성당 제단쪽에서 본 문쪽>
파이프 오르간 3대가 있고, 좌우 벽은 신도들이 서서 1층을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스페인 성당과 다르기도 하고 비슷하기도 하다.
<야신타, 루치아의 무덤>
왼쪽 벽의 소녀상은 양을 안은 루치아이다. 성모 발현 당시 가장 어린 나이(7세)였던 야신타는 3년 뒤인 1920년 2월 2일에 독감으로 세상을 떴다. 루치아는 2005년(2007년, 97세라고도 한다.)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2개의 관 중 앞은 야신타, 안쪽은 루치아이다.
<제단 오른쪽의 프란치스코 무덤>
서양에서 성당 안에 관이 안치된다는 것은 보통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들른 대성당의 통로나 바닥에 관이 안치되어 있어 식겁을 한 적이 있다.
프란치스코는 성모 발현이 있은 2년 뒤인 1919년에 가장 먼저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다. 성모를 직접, 그것도 6번이나 알현한 어린이 3명 중 2명이 어린 나이에 독감으로 세상을 뜬 것은 좀 이해가 안 된다.
<우리의 숙소인 산타 마리아 호텔 로비>
맨앞의 닭들은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행운의 닭(galo)'이다.
<산타 마리아 호텔의 타피스트리>
호텔 벽 곳곳에 이런 타피스트리나 사진, 벽화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산타 마리아 호텔 객실, 화장실>
이번 스,포,모 여행에서 이곳을 포함한 딱 2곳에 물비누가 아닌 세수비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로션 종류를 제공한 곳은 이곳이 유일했을 것이다. 둘다 사용하지 않아서 기억이 흐릿하다. 대신 커피 포트가 제공되지 않는다.
스,포,모 3국 모두 변기 옆에 또 다른 변기(?)가 나란히 붙어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는데 구식 비데라고 한다.
<산타 마리아 호텔의 식당>
로비도 그렇지만 식당도 인테리어가 상당히 괜찮다. '아메리카'라는 우스운 이름에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초로의 남성이 계속 '안녕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를 연발했다. '맛있게 드세요'를 몇번 반복해서 가르쳐줬지만 잊었을 것이다.
<산타 마리아 호텔의 저녁 메뉴>
메뉴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맛이 없었다. 빵은 상당히 구수했지만 야채 샐러드와 메인 요리는 전혀 간이 되어 있지 않아서 목으로 넘기기가 힘들었다. 야채 샐러드는 전혀 간을 안 한 대신 올리브 기름을 들이부어 먹는데(스페인도 그렇다.) 그건 기름 때문인지 그래도 목으로 넘어는 간다.
하지만 팍팍한 닭가슴살에 맨밥, 맨 야채... 어지간한 음식을 다 소화하는 나도 전혀 간이 안 된 음식은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빵 접시의 붉은 소스(?)는 참치 맛이 나는데 먹을 만 했다.
<식당의 행운의 닭(galo)>
<3일째 아침 메뉴>
어제 저녁 메뉴에 질린 사람들이 뜨악한 표정으로 식당으로 갔는데 빵 위주로 된 아침은 그런 대로 먹을 만 했다. 커피가 제공되고 스크램블드 에그, 소시지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왜 이렇게 과일을 푹푹 삶아 먹는지 이해가 안 된다. 사과는 푸욱 굽고, 배는 푸욱 쪘다. 나중에 들른 모로코도 뭐든 푹푹 찌다 못해 형체 파악이 좀 곤란한 흐물흐물한 야채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거야, 원.... 내게는 파티마에서의 식사가 최악이었다.
<파티마에서 유럽의 땅끝인 '까보 다 로까(로까 곶)'로 가는 길의 포르투갈 풍경>
차창으로 본 스페인 풍경이 수평선으로 이어지는 다소 푸석한 느낌의 평지였다면 포르투갈은 굴곡이 있는 초록색이었다. 스페인의 평원이 시원스럽다면 포르투갈의 대지는 좀 아기자기하다고나 할까? 물론 내가 본 곳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우리를 내내 따라다닌 비>
상당히 심하게 비가 내려서 아침인데 밖이 컴컴하다. 이래가지고는 모자도 날아갈까봐 끈으로 바짝 묶어야 한다는 서극점 까보 다 로까를 볼 수 있을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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