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스.포.모 여행10 -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리스본 풍경

큰누리 2014. 3. 3. 23:03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포르투갈어로는 리스보아(Lisboa)라고 하며 테주강(타호강)의 삼각 하구 오른쪽에 있다. 이 나라 수도이자 최대의 도시이며, 유럽대륙 대서양 연안의 대표적인 항구이다.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시대부터 항구도시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BC 205년에 로마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714년 이래 다시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리사보나로 불리다가, 1147년 알폰소 1세에 의해 해방되었다. 1255년 코임브라로부터 천도한 뒤 수도로서 현재까지 이르렀으며, 15∼16세기 해외진출시대에는 유럽 최고의 상공업 도시가 되었다.

1755년의 지진과 그에 따른 화재, 해일로 시가지의 2/3가 파괴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성 조지성(城), 벨렘탑, 제로니모스 수도원, 아주다 궁전(현재의 외무성) 등이 남아 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Jeronimos Monastery)

1552년경에 마누엘 1세가 포르투갈 왕실의 묘를 안치하기 위해 항해 왕자 엔리케가 세운 산타 마리아 성당 자리에 세웠다. 산타 마리아 성당은 당시 뱃사람들이 항해를 할 때 안전을 비는 곳이었다.

이후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에서 귀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장소로 바뀌었다. 포르투갈이 발견의 시대를 이끌 때 누렸던 영광을 가장 잘 반영한 건물로 평가된다. 

1502년 처음으로 디오고 보이탁의 설계로 공사가 시작되었고, 스페인 건축가 후안 데 카스틸류(섬세한 파사드 조각과 내부 장식 제작)가 뒤를 이었다. 이어 디오고테 토랄바(중앙 예배당과 성가대석을 짓고 성당 완성), 루앙의 제롬 등이 건축을 완성시켰다. 마누엘 1세 사후 공사가 잠시 중단되었지만 1550년에 재개되었다.

 

수도원의 전체적인 양식은 후기 고딕(노르만 고딕) 양식과 스페인의 플라테레스코 양식의 혼합이며 항해와 관련된 마누엘 양식이 첨가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마누엘 양식의 건축으로 벨렘탑과 함께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건물 안에는 예배당, 수도원, 포르투갈 왕 마누엘 1세와 조앙 3세, 국민시인인 카몽이스와 시인 페르난도 페소,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일부 파손되었으나 원형은 잘 보존되고 있다. 수도원,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으며 일부가 국립고고학박물관으로 사용된다.

 

 

*제로니모스(히에로니무스 : 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8년 - 420년)

암브로시우스, 그레고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라틴 4대 교부이며, 카톨릭 성인이다. 영어로는 제롬(Jerome), 스페인어로는 예로니모(Jeronimo)이다(살라망카 대성당의 공식 명칭은 예로니모 카테드랄이다). 그리스어로 된 성서를 라틴어(불가타, Vulgata)로 번역했다.

상체를 벗은 체 펜을 들고 저술을 하거나 돌로 가슴을 치는 모습, 사자와 함께 있는 펜을 든 노인 등으로 묘사된다. 히에로니무스에 관한 유명한 전설은 어느 날 사자 한 마리가 절뚝거리며 다가와 그에게 앞발을 내밀어서 보니 가시가 박혀 있었다. 가시를 빼주자 사자는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사자와 동행한 허름한 펜대를 든 노인은 히에로니무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

 

 

 

 

 

 

*마누엘 양식(Manuelino)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재위 1495~1521) 때 만들어진 포르투갈식 고딕 건축양식이다. 스페인의 플라테레스코 양식과 비슷한 시기에 유행했으며 고딕, 르네상스,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 문이나 창 주변, 궁륭(穹窿)의 리브나 원기둥 등에 매듭무늬, 구형, 식물, 물고기, 조개나 해초 무늬 등으로 장식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누엘 양식의 건축으로는 바탈랴의 수도원성당, 벨렘탑, 제로니모스 수도원 등이 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의 마누엘 양식들과 천정의 그물 무늬>

두번째 사진은 박물관 출입문이다. 이곳에 있다는 시인 까몽이스와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의 관을 찾으려고 이곳에 들어가려니 현지 가이드는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대신 왼편으로 들어갔다 나오란 말을 하고는 사라졌다. 내가 보고 싶었던 그들의 관(무덤)은 어디에 있었을까?

 

 

 

 

 

<제로니모스 수도원 안쪽>

안으로 들어가면 게속 볼거리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더 이상 연결되는 곳이 없었다. 원래 외관만 보기로 했지만 너무 아쉬웠다. 결국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여기까지 밖에 못 봤다. 남들은 최소한 두 사람의 관은 다 보았던데...

 

깨끗하거나 깔끔해야만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건물 유지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수도원 밖도 그랬지만 이곳 안쪽의 검은 이끼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너무 부실하게 관리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아무리 남의 나라지만 이 시커먼 이끼를 어쩔 것인가?

 

 

 

 

 

<제로니모스 수도원의 외관>

건물이 상당히 길어서 가까운 거리에서는 화면 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수도원 앞은 트램 철로와 인도(India)대로가 2중으로 있다. 트램 전선 때문에 전선이 지저분하게 얽혀 도시와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비롯한 다른 문화유산들에 대한 이미지를 흐리게 만들었다.

Tip : 트램(路面電車, 궤도전차) - 도로 위에 만든 레일 위를 주행하는 전차.

 

 

 

 

<제로니모스 수도원 전경과 트램>

 

 

<제로니모스 수도원에서 바이샤 지구로 가는 길에 있는 대통령宮>

버스 차창으로 대통령궁은 보이지 않고 담장만 보인다. 우리에게 익숙한 '보안이 철통 같은 대통령 관저'와 달리 소박하다. 리스본이나 대서양 해변을 지나면서 본 포르투갈 건물들은 대통령궁 담장처럼 벽이 살구색, 밝은 노랑색, 밝은 하늘색 많다. 은은한 파스텔톤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도시에서는 결코 소화하기 쉬운 색이 아니다. 우리의 관념으로 볼 때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하거나 유치하지만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는 이 3색이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위의 3색이 아니면 새하얀 벽에 빨간 원색의 지붕을 인 건물들이 많고, 그 때문에 명소가 된 곳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미하스'이다.

 

 

*100m 달리기보다 더 빠른 리스본 투어

이전까지 본 지역은 벨렘지구라고 부르고, 이어 트램 노선을 따라 버스를 타고 바이샤 지구, 리베르다드를 통과하는 중이다. 5분도 안 지나 계속 나타나는 광장들에 대한 설명들을 들으면서 식당으로 갔다. 이러고도 우리는 리스본을 관광한 것, 맞나? 포르투갈은 제로니무스 수도원 외관과 벨렘탑을 10분 정도 보기 위해 들른 것 뿐이다.

한 마디로 '10박 여행에 2대륙에 걸쳐 3개국을 보았다'는 틀에 맞춘 '수박 겉 핥기식 관광'이다. 낸 금액이 있으니 여행사를 원망할 수는 없고, 포르투갈을 보려면 따로 일정을 잡아야 한다. 

어쨌거나 아래의 사진과 내용은 현지 가이드에게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주워듣고, 나중에 자료를 찾아 끼워맞춘 것이다.

 

<포르투갈의 거리들>

1755년의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리스본을 재건하기 위해 포르투갈의 왕 동 주세 1세는 퐁발 후작을 기용했다. 퐁발 후작은 리스본의 바이샤 지구를 프랑스의 샹젤리제 거리를 참고로 하여 고전적이고 통일된 아케이드식으로 재건하고자 했다.

 

 

 

<리스본 바이샤 지구의 꼬메르시우 광장(Praca do Comercio)>

테주(테호) 강가에 있는 리스본 최대의 광장이다. 대지진으로 무너진 리베이라궁 터에 건설했다. 이곳에서 동 카를로스 1세와 아들이 살해 당함으로써 포르투갈의 왕정이 종말을 고했다. 중앙의 기마 인물상은 퐁발 후작을 기용하여 지진으로 폐허가 된 리스본을 재건하려고 했던 '동 주세 1세'이다.

 

 

 

<로시우(Rossio) 광장>

리베르다데 거리와 바이샤 지구가 맞닿은 곳에 있으며 리스본 시가의 가장 중심지이다. 정식 명칭은 브라질 초대 총독(왕)인 동 페드로 4세의 이름을 딴 '동 페드로 4세 광장'이며 광장 중앙에 그의 동상이 있다. 13세기부터 리스본의 중심지로 왕실의 모든 공식행사와 종교재판 등이 열렸다. 건물의 외형을 바꾸는 것을 금지한 법 때문에 퐁발 후작의 도시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주변 건물들이 지금까지 잘 남아있다.

 

 

<헤스타우라도레스 역, 광장과 오벨리스크>

헤스타우라도레스는 포르투갈어로 독립, 부흥을 의미한다고 한다.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포르투갈이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에서 독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퐁발 후작 광장과 그의 동상>

퐁발 후작은 외교 수완이 좋고 업무 추진력이 뛰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 왕 동 주제 1세에게 기용되어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1755년의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리스본의 재건에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권력남용으로 추방되었다.

달리는 차창으로 메모까지 해가며 궁상스럽게 광장들을 촬영하는데 날씨도 안 받쳐준다.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음식이라는 바칼라우>

왼쪽 접시가 리스본에서 상당히 전통이 있다는 전문점에서 먹은 바깔라우 요리이다. 바칼라우는 건조 시킨 대구의 가시를 발라내고 염장한 후 서서히 건조시켜 구운 대구를 덮밥 형태로 만든 음식이다. 질척하고 (대구라 비리지는 않지만) 생선 냄새가 나는 요리인데 먹을 만은 하지만 칭찬을 할 정도는 아니다. 차라리 우리나라의 황태국이나 북어를 볶아 부스러뜨린 후 밥을 섞어 뭉친 주먹밥이 훨씬 낫다.

 

빵은 구수하고 맛있다. 이곳도 스페인처럼 야채에 올리브 기름을 듬뿍 섞어 먹는데 올리브 기름이 상당히 고소하다.

 

 

<바칼라우 집 근처의 주택>

밝은 하늘색이 빠지긴 했지만 리스본 부근의 전형적인 건물색이다.

 

 

<바칼라우 집 근처 공원의 소나무>

이베리아 반도, 특히 바닷가에는 아래처럼 우리나라 소나무와 약간 다른 소나무들이 많다. 무어인(이슬람교도)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할 때 강한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많이 심었다고 한다.

 

 

 <4월 25일 다리 근처의 로마시대에 건설된 수로>

 

 

 <4월 25일 다리와 크리스토 레이>

'4월 25일 다리' 독재자 살라자르의 이름을 딴 '살라자르 다리'였다가 혁명 후 개명되었다. 크리스토 레이 다리 너머로 보이는 40m 높이의 거대한 그리스도상이다. 이 그리스도상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리오데 자네이루 외에 앙골라에도 있는데 3곳을 연결하면 삼각형이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