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스.포.모 여행13 - 세비야의 황금의 탑과 후데리아

큰누리 2014. 3. 9. 19:44

<4일째 코스>

세비야의 황금의 탑 - 세비야 스페인 광장 - 후데리아 - 세비야 대성당 - 점심 식사 후 타리파로 출발 - 페리를 타고 모로코 탕헤르로 이동 - 탕헤르에서 숙박.

 

<세비야(Sevilla)>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세비야州의 주도로 과달키비르강 안쪽 상류에 있다. 영어로는 세빌리아라고 한다. 세비야는 카이사르에게 정복되어 고대 로마시대부터 지방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5세기부터 13세기까지 서고트, 무어의 지배를 받는 동안 중심도시, 혹은 수도였다. 1248년 페르난도 3세에 의해 회복된 이후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가 공존하거나 혼합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15세기 말부터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의 출입이 가능한 과달키비르 강 때문에 신대륙 전진 기지로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스페인 최대의 세비야 대성당, 대학 등이 세워졌으나 17세기부터 대형선박의 출입이 더 편한 카디스에 밀려 쇠퇴하기 시작했다.

 

유적으로 12세기에 무어인들이 세운 알카사르 궁전과 세비야 대성당의 히랄다탑, 스페인 최대의 성당인 세비야 대성당, 황금탑 등이 있다. 세비야 대성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화가 벨라스케스의 출생지이고 17세기에 수르바란, 무릴료(무리요) 등 바로크 화파의 대가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세비야의 Abades호텔>

나중에는 이런 다국적 건물(!)을 수없이 보았지만 처음 이 호텔을 보았을 때 유적을 보는 것처럼 신기했다. 실내장식도 무데하르 양식, 타일 장식 등으로 꾸몄다. 이 호텔에서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린 '가로수 오렌지나무'들도 처음 보았다. 

 

 

<세비야의 Abades호텔의 방>

변기 왼편의 또 다른 변기 같은 물건(?)은 예전에 사용했다고 하는 구형 비데이다. 호텔마다 모두 있다.

 

 

 

<세비야의 Abades호텔 로비>

사진 분량 때문에 모두 뺐지만 천정이나 벽면 장식, 소품 등이 모두 독특하고 아름답다.

 

 

 

<세비야의 Abades호텔 식당>

포르투갈의 전혀 간이 안 된 음식을 먹은 후라서인지 대체로 맛있었다. 이곳 역시 기름진 닭 요리가 빠지지 않았다. 달라진 점은 이쯤부터 떠먹는 요구르트 숙주무침이 식단에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페인은 농업국가 겸 낙농국가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보다 유제품에 관해서는 뒤지지 않는다. 요구르트 맛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약간 더 달고 살짝 비린내가 느껴졌다. 치즈는 어디에서 먹어도 맛이 비슷하고 먹을 만 했다.

 

스페인의 숙주무침은 다소 의외였는데 마드리드의 한식집은 한식이어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우리가 들른 여러 곳에서 우리나라의 숙주나물과 비슷한 숙주무침이 식단에 올라왔다. 마늘이 빠진 숙주나물이기 때문에 우리 입에 잘 맞는다.

 

 

 

<황금의 탑>

1220년 무어인들이 과달키비르강을 통과하는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웠고 강 건너편에는 은의 탑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 두 탑을 쇠사슬로 연결해서 배를 통제했다. 마젤란이 이곳에서 세계일주 항해를 떠났기 때문에 탑 안에 해양박물관이 있다. 

황금의 탑이란 명칭은 탑을 세울 당시 금 타일로 탑을 장식했기 때문이라는 설과 대항해 시대 이후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을 넣어두는 창고로 썼기 때문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아래 사진은 황금의 탑 앞 마당(광장)이고 야자나무 왼쪽 뒤로 과달키비르강이 흐른다.

 

 

 

<세비야의 젖줄 과달키비르강>

다른 팀은 보통 황금의 탑에서 강가를 따라 걸어서 세비야 대성당까지 이동했다고 한다. 세비야 스페인 광장은 마리아 루이사 공원 끝에 있고 공원 다른 쪽 끝으로 이 강이 흐르며 인근에 세비야 대성당이 있다.

우리는 모두 버스로 이동했다. 수심이 깊어 큰 배가 깊숙히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세비야는 17세기부터 신대륙에서 약탈한 물자를 들여오는 관문이었다.

 

 

<무릴료(무리요) 공원의 콜럼버스 기념탑>

화가 무리요를 좋아한 프랑코 총통이 만든 공원이라고 한다. 스페인어로는 '무리요'가 맞는데 학창시절에 '무릴료'로 배웠기 때문에 우리 세대에게는 무릴료가 익숙하다.

무리요공원은 세비아 후데리아 앞에 있으며 공원은 남미 식민지에서 가져온 식물로 꾸몄다고 하는데 식물을 좋아하는 나도 들여다 볼 시간이 없었다. 그저 열매를 주렁주렁 단 오렌지나무만 눈에 띠었다. 공원 앞에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는데 남미대륙에서 당시에 가져온 나무라고 했다.

 

정상에 사자가 올라탄 이 탑은 신대륙 항해를 지원한 이사벨 여왕과 남편인 페르난도 2세의 이름, 발견 시기인 1492년이 새겨져 있다. 범선으로 꽉 조인 두 기둥은 이사벨 여왕의 카스티야와 페르난도 2세의 아라곤 왕국의 결속을 상징한다고 한다. 

 

 

<무리요공원에서 후데리아(juderia)로 들어가는 입구>

juderia는 유대인 사회나 유대인 집단 거주지를 뜻한다. 출발하기 전 여행사의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처음 접했을 때 여성과 관련된 곳인 줄 알았다. 곰곰 생각해 보니 'Jude'와 스페인어의 'j'는 'ㅎ'으로 발음한다는 생각이 났다. 아, 유대인...

그 다음부터는 이해가 되었다. 유대인 집단 거주지, 여기저기에 있겠구나 등...

 

후데리아는 일반적인 관광차원에서는 세비야보다 코르도바가 훨씬 볼거리가 많다. 코르도바의 후데리아는 관광 상품 사진에 단골로 등장할 정도로 골목 벽에 걸린 화분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세비야의 후데리아가 일정에 낀 이유는 무리요 공원에서 가로지르면 세비야 대성당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도 좁은 골목 외에 베네라블레스 양로원과 돈 후안(존 조반니, 돈 주앙)의 여성 편력 여관 등 볼거리는 충분히 있다.

 

 

<세비야의 후데리아(juderia)>

흰색 건물과 노란 색의 선이 인상적이다. 

 

 

<산타크루즈 광장의 십자가>

상당히 독특하고 복잡한 십자가인데 설명을 놓쳤다. 우리나라의 동네마다 하나쯤 있는 공원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광장이다. 주변에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오렌지 열매를 주워먹어 보았는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세비아 후데리아(juderia)의 악사>

꽤나 집요하게 따라왔는데 이 악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었을 것이다. 빨리 가이드를 따라붙지 않으면 길을 잃고, 구경도 해야 하니 모두 귀찮아하며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악사 앞의 대문은 후데리아 내에서 대표적인 유대인 집인지 관광객을 위해 대문(만)을 열어 놓았다. 아랍의 느낌도 나는, 독특한 집이었다.

 

 

<세비아 후데리아(juderia)의 골목들>

성녀 테레사와 과련된 글귀가 눈에 많이 띈 골목이다. 낡은 벽을 그대로 둔 점이 불안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스페인 낙서 벽화 에스키스>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는 스페인의 낙서같은 벽화는 일정한 양식(혹은 틀)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래 그림과 같은 틀이 있는데 포르투갈, 모로코까지 유형이 너무 비슷해서 나중에는 보기가 싫어질 정도였다. 낙서는 그야말로 낙서니까 자유로워야 하는데 세 나라의 낙서는 공통된 틀이 있었다.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적어도 스페인은 가우디, 피카소, 달리, 미로 같은 천재 조각가와 화가들을 줄줄이 배출한 나라가 아닌가?

 

 

<세비아 후데리아(juderia)의 골목>

 

 

 

 

 

<세비아 후데리아(juderia)의 베네라블레스 양로원>

이 양로원에 대해서 모처럼 현지 가이드의 제법 친절한 설명이 있었는데 유감스럽게 놓쳤다. 양로원 앞의 작은 광장과 카페들, 돈 후안 여관 등 세빌리아 후데리아에서 가장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세비아 후데리아(juderia)의 베네라블레스 양로원 앞의 돈 후안 여관>

정면의 LA  HOSTERIA  DEL  LAUREL이라 쓰인 건물이 바람둥이 돈 후안이 묵으면서 여성 편력을 한 곳이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전설 속의 인물이 묵으며 여성 편력을 한 곳이라고라? 스페인 사람들의 미신은 종교와 만나서 포장이 되었을 뿐 만만찮다.

 

돈 후안(Don Juan)은 14세기 경 스페인의 전설에 등장하는 바람둥이 귀족으로, 여자를 유혹했다가 버리고 죽이는 등 엽색행위를 하다가 성직자에게 처형 당했다고 한다. 17세기의 스페인 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의 희곡 <세비야의 호색가와 돌의 초치객>에 등장한 이후 여성 편력가의 대명사가 되었다. 19세기에는 이상적인 사랑을 찾아 방랑하는 이상주의자, 낭만주의자로 캐릭터가 바뀌기도 했다.

돈 후안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작품은 몰리에르의 <돈 후안>, 바이런의 <돈 주앙>, R.슈트라우스의 <돈 후안>, 소리야 이 모랄의 <돈 후안 테노리오>, 버나드 쇼의 <인간과 초인>,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등이 있다.

 

 

<세비아 후데리아(juderia)의 골목과 타일 안내도>

 

 

 

<세비아 후데리아(juderia)의 예쁜 접시 가게와 알카사르 성벽이 보이는 위치>

 

 

 

 

 

<올리브 열매>

이 올리브 나무는 후데리아가 아니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경선 휴게소에서 촬영한 것이다. 사진 분량 때문에 끼워 넣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