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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모 여행25 -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큰누리 2014. 4. 8. 01:45

<그라나다와 알함브라 궁전 약사>

그라나다는 아랍어로 석류를 의미하며 그라나다의 문장도 석류이다. 레콘키스타(스페인 국토회복운동, 재탈환)가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스페인 내 이슬람 왕국(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거점이었다.

 

알함브라(Alhambra)는 아랍어로 붉은 성, 붉은 흙의 궁전 등을 의미한다. 알함브라 궁전(Palacio de la Alhambra)은 그라나다의 나스르(Nasrid) 왕조 창시자인 알 갈리브(무하마드 1세)가 13세기 초반에 짓기 시작하여 7대 칼리프(왕)인 유스프 1세와 그의 아들인 무하마드 5세가 1482년에 완성했다.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 안달루시아의 보석으로 일컬어지지만 궁전이 완공된지 10여년 만에 멸망했다.

그라나다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탈환한 이사벨 여왕은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니 화살 하나도 쏘지 말라'고 명한 후 공격 대신 포위를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인 무하마드 12세(보압딜)에게 1492년 1월에 항복을 받아냈다. 그 과정에서 집시들이 스파이로 활약하며 공을 세웠기 때문에 그 보답으로 세금을 면제 받는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레콘키스타(스페인 재탈환) 이후 이사벨 여왕의 외손인 카를로스 5세가 알함브라 궁전을 잠식하며 르네상스 양식 궁전을 증축했다. 하지만 자금부족으로 미완성으로 남았다가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서 공을 세운 귀족이 하사받아 잠깐 살기도 했다. 이후 궁전은 방치되었고, 나폴레옹 군대가 주둔했다가 퇴각하면서 폭파를 해서 알카사바의 많은 탑들과 궁안의 건물들이 파괴되고 도둑과 부랑자들의 소굴로 전락했다.

 

1900년대 초반 마드리드 미국 공사이자 소설가인 워싱턴 어빙이 알함브라 궁전을 방문한 후 쓴 소설 <알함브라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알함브라 궁전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주옥같은 명곡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구조>

나사리 궁전(Palacios Nazaries), 알카사바(Alcazava), 카를로스 5세 궁전, 헤네랄리페 정원(El Generalife)의 4지역으로 나뉜다.

알함브라 궁전의 하이라이트로 불리는 나사리 궁전은 커다란 2개의 파티오(중정)를 중심으로 화려한 대리석과 타일로 장식되었으며 멕수아르(Mexuar) 궁, 코마레스(Comares) 궁,  사자의 궁(Palacio de los Leones) 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함브라 궁전 매표소>

매표소쪽에서 입장하지 않고 사진 상의 왼쪽으로 돌아 언덕으로 오른 후 카를로스 5세가 궁전을 지으면서 건축 자재를 실어 나를 수 있도록 성벽을 헐어 만든 문으로 입장한다. 입장한 직후 보이는 5개의 대포는 15세기에 사용하던 것을 전시한 것이다. 스페인은 단체관광객을 우대하기 때문에 매표가 비교적 쉽지만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고, 표도 중간중간에 점검을 하므로 신경을 써야 한다.

 

 

<알함브라 궁전의 구조>

왼쪽의 빨간색은 알카사바, 중앙의 빨간색은 나사리 궁전 구역이다. 중앙의 노란색은 카를로스 5세 궁전, 오른쪽의 초록색은 헤네랄리페 정원이다.

그 아래 사진은 윗 사진 중에서 나사리 궁전과 카를로스 5세 궁전 부분을 확대한 후 건물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나사리 궁전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구조가 복잡해서 이런 보조 안내도를 들고 관람해도 위치나 명칭 파악이 상당히 어렵다.

 

 

 

<카를로스 5세 궁전 위쪽의 산타 마리아성당>

이 건물은 모양새도 예쁘고 나름 역사가 있을 법한데 다른 출중한 건물에 치어 이름조차 묻혀버리기 일쑤이다. 이 위쪽의 헤네랄리페로 가는 도중에 있는 파라도르 호텔(과거의 왕녀들의 성이었다가 성 프란시스코 수도원이 된 곳)도 그렇다. 1일 객실료가 140여만원이나 하는데 말이다.

 

 

<카를로스 5세 궁전>

알함브라 궁전의 중앙 쯤에 있다. 16세기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이끈 카를로스 5세가 지은 미완성의 2층, 르네상스 양식의 석조 건물이다. 외관은 사각형이지만 내부는 원형이며 내부 기둥 1층은 도리아식, 2층 기둥은 이오니아식이다. 카를로스 5세가 여름 별장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잦은 전쟁으로 자금이 부족하여 공사가 중단되었고 알함브라 궁전과 함께 방치되었다.

후에 내부에서 투우가 열리기도 했으며 중앙에서 소리를 지르면 전체에 고르게 퍼지는 음향효과 때문에 매년 여름, 그라나다 음악제가 열린다. 현재는 1층은 박물관으로, 2층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첫번째 사진은 궁전 외관, 두번째 사진은 궁전 입구에 있는 4개의 부조 중 스페인 군대가 이슬람교도들을 무찌르는 내용이다. 세번째 사진은 입구 쪽의 외관과 내부 사이, 네번째 사진은 내부의 모습이다.

 

 

 

 

 

<멕수아르(Mexuar) 궁>

멕수아르 방이라고도 하며 멕수아르 궁(방)의 특징은 4색 타일 장식과 밤색의 목재 천정이다. 왕이 재판 업무를 보는 법정과 기도실로 이용되었던 곳이기 때문에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나사리 궁전의 다른 방에 비해 다소 무거운 느낌이 든다.

왕이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판결을 하던 2층 격자 안의 공간은 레콘키스타(재탈환) 후 성가대석으로 바뀌었다. 이슬람교도와 유대인 거주지역인 알바이신 지구가 창 너머로 보이는 동쪽은 메카 방향이기 때문에 그 곳에 기도실이 있다.

 

지구의 4원색을 상징하는 검정, 녹색, 파랑, 노랑 타일의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건물 내부 벽을 장식했다. 벽면에 기독교도들이 추가한 '보다 먼 세상으로'의 뜻인 'PLVS VLTRA(영 : Plus Ultra)'라고 쓰인 리본이 감긴 헤라클레스의 기둥 장식 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지구가 둥글다는 이론이 받아들여지기 이전의 사람들에게 지중해의 관문인 지브롤터 해협을 넘으면 낭떠러지이므로 더 이상 항해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였다고 한다. 첫번째 사진과 세번째 중앙 2층의 격자는 왕이 앉아서 재판을 보던 곳, 두번째 사진은 기독교도들이 후대에 꾸며넣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다. 

 

네번째 사진은 기도실 창에서 본 알바이신 지구이다. 창 오른쪽의 산자락 바로 아래 부분이 사크로 몬테(Sacromonte)라 불리는 집시들의 토굴 마을이다. 이 일대에 정착한 집시들이 언덕의 경사면에 동굴을 파고 살던 곳으로 밤에 술을 마시거나 플라멩코를 감상할 수 있다.

 

 

 

 

 

<멕수아르 궁과 코마레스 궁전을 연결하는 파티오(중정)>

코마레스 궁전 안에 있는 대사의 방에서 왕을 알현하려는 사신들이 대기하거나 왕이 대신들과 함께 차를 마시거나 물담배를 피우면서 중요한 사항을 논의하던 곳이다.

 

 

<코마레스(Comares) 궁전>

각지에서 찾아온 사신들을 맞이하기 위해 유스프 1세와 아들 무하마드 5세가 세운 왕의 접견실이다. 벽과 기둥, 아치와 천정에 빈틈없이 새겨넣은 아라베스크 무늬와 예술적인 쿠란 글귀들이 아름답다. 코마레스 탑, 대사의 방, 아라야네스 중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코마레스 탑 안에 대사의 방이 있다.   

첫번째 사진은 파티오와 황금의 방 사이의 벽, 두번째 사진은 황금의 방이다. 황금의 방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석고 벽 장식에 금박을 입혔기 때문이다.  

 

 

 

<코마레스(Comares) 궁의 아라야네스 중정>

아라야네스 정원의 7개의 아치는 이슬람교에서 고행을 나타내는 7개의 문을 상징한다. 아라야네스는 아랍어로 '향기롭다'는 뜻이면서 연못 양쪽 옆의 잘 다듬은 초록색 나무 이름이기도 하다. 아라야네스는 한국명으로는 은매화라고 하며 이슬람교에서는 '천국의 꽃'으로 불린다. 윗 사진은 카를로스 5세 궁전쪽으로 본 모습, 아래 사진은 맞은편인 코마레스 탑쪽으로 본 모습이다.

 

 

 

<코마레스(Comares) 궁의 대사의 방>

왕이 사신이나 대신을 접견하던 정사각형의 방이다. 창쪽에 왕좌가 있으며 무늬가 있는 바닥과 말굽 모양의 창이 특징이다. 천정은 태양과 별을 형상화한 수천개의 삼나무 조각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1492년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인 보압딜이 이 방에서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에게 항복을 하고 아프리카의 모로코로 망명했다.

 

 

 

 

<코마레스 궁전의 회랑>

 

 

<사자의 궁(Palacio de los Leones)>

124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둘러싸인 여인들의 거처인 하렘이며, 중앙에 사자의 정원이 있다. 왕을 제외한 남성들은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다. 원형 분수를 떠받든 12마리의 돌사자는 '사자의 분수'를 왕에게 선물한 그라나다의 12개 유대인 부족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자의 중정(정원), 아벤세라헤스의 방, 왕의 방, 두 자매의 방, 린다하라 중정, 왕의 목욕탕이 있다. 두번째와 세번째 사진은 사자의 궁 회랑으로 레이스를 뜬 것처럼 정교한 종유석 모양의 장식인 모카라베(Mocarabe)이다. 모카라베 장식의 사이사이에 박힌 푸른 보석은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생산된 금보다 더 비쌌다는 청금석이다.

 

 

 

 

<사자의 궁, 사자의 중정을 여러 방향에서 본 모습>

위의 정면 사진 두장은 순서대로 자매들의 방쪽 모습과 아벤세라헤스의 방쪽 모습이다.

 

 

 

 

 

<사자의 궁, 아벤세라헤스의 방>

천정의 모카라베(종유석 모양의 화려한 장식)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며 천정 쪽 창문의 배치가 독특하다. 방에 있는 12각형의 분수는 사자의 분수로 흘러들어간다. 귀족인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젊은이가 왕의 후궁과 사랑에 빠졌다가 발각되어 보복으로 가문의 젊은이 36명이 참수된 방이라고 전한다. 일명 암살자의 방으로 불리며 현재에도 벽에 핏자국 비슷한 얼룩이 남아있다.

 

진상은 아름다운 포로를 새 왕비로 들이려던 왕에 맞서 자리에서 쫓겨난 왕비가 세자(!)인 그의 아들, 지지하는 아벤세라헤스 가문과 손을 잡았다가 왕과 그를 지지한 세력과의 권력 싸움에 밀려 몰살 당한 것이라고 한다. 헤네랄리페 정원에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불륜을 저지른 후궁을 목 매달아 죽였다는 그럴싸한 전설을 지닌 고사목이 한 그루 남아있다.

 

 

 

<사자의 궁 통로의 현란한 장식들>

현대적인 의미로 볼 때 복도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여성 전용 구역인 만큼 모카라베 장식과 타일 장식이 정말 아름답다! 한쪽 벽에는 '저런 방에서 어떻게 지냈나' 싶을 정도로 아주 작은 방들이 늘어서 있다. 명성에 비해 알함브라 궁전, 그 중에서도 나사리 궁전의 방이나 궁들은 아주 작다.  

 

 

 

<사자의 궁, 두 자매의 방>

왕비의 거처 맞은편에 있는 아벤세라헤스의 방과 더불어 나사리 궁에서 가장 화려한 방이다. 천정은 종유석 모양의 모카라베로 장식되었으며, 방 한 가운데에 있는 원형분수의 물은 사자의 분수로 흘러들어간다. 카를로스 5세의 궁전 증축으로 전망이 막히자 그 댓가(!)로 린다하라 중정을 만들었기 때문에 린다하라 중정과 붙어있다. 

 

 

 

 

<워싱턴 어빙 집무실>

카를로스 5세가 신혼여행 차 이곳에 들렀을 때 이교도들의 방에 묵는 것을 꺼려 급하게 만든 방이었으나 워싱턴 어빙 집무실로 명칭이 바뀌었다. 워싱턴 어빙은 역사에서 사라질 뻔한 알함브라 궁전을 살렸으니 황제를 능가하는 대접을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정도가 아니라 알함브라 궁전은 스페인을 관광대국으로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사리 궁에서 조망한 알바이신 지구>

중간의 언덕배기는 집시들의 거주지인 사크로 몬테(Sacro monte)이고 아래쪽은 아랍인들과 유대인 거주지역인 알바이신 지구이다.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은 항복 후 망명하면서 엄청난 배상금을 지불하는 대신 알바이신 지구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의 종교와 거주에 대한 자유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해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바로 변심한 이사벨 여왕은 이슬람교도들을 추방했고 그것도 모자라 도망하는 그들을 추격하여 몰살시켜 버렸다. 비참하고 억울한 민초들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역사는 승자들, 그 중에서도 선봉에 있었던 이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린다하라 중정>

 

 

 <알함브라 궁전 파르탈 정원>

작지만 복잡한 나사리 궁전 관람을 마치고 헤네랄리페 정원으로 가기 위해 나서면 보이는 전경이다. 윗 사진은 파르탈 정원 뒤쪽에서, 아래 사진은 앞쪽에서 본 모습이다.

 

 

 

<헤네랄리페 정원으로 가는 길에 본 사자의 궁, 아벤세라헤스의 방>

 

 

​<이른 아침의 그라나다市>

이렇게 몽환적인 안개를 보는 것도 참 드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