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조선의 왕가(궁가)1

큰누리 2014. 5. 5. 21:14

<왕가(궁가)의 개념>

조선시대 한양 도성 안에는 법궁인 경복궁을 비롯하여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의 5대 궁궐이 있다. 궁 밖에 후궁이나 출가한 왕자나 공주들의 거처가 있었는데 그곳을 왕가, 궁가, 궁, 궁집, 궁방 등으로 불렀다. 기타  왕의 어머니이지만 후궁이기 때문에 종묘에 들지 못한 분들의 사당도 궁으로 불렸다. 

 

≪왕가(궁가) 답사 코스≫

카페 <나홀로 테마여행>에서 '왕가(궁가) 특별답사'를 2014년 4월 20일과 27일, 두 차례 진행했다. 인솔자는 <조선의 숨겨진 왕가 이야기-역사도 몰랐던 조선왕실 가족사> 저자인 이순자선생님이었다.

♣ 1차 답사지는 창의궁 터, 창성궁 터, 선희궁 터, 칠궁, 자수궁 터, 도정궁 터, 내자동 어의궁 터 및 월성위궁 터, 수진궁 터, 용동궁 터, 사동궁 터, 죽동궁 터, 순화궁 터, 안(국)동별궁 터, 경우궁 및 계동궁 터, 운현궁, 대빈궁 터, 누동궁 터를 답사했다.

2차 답사지는 경모궁 터, 인평대군방, 상어의궁과 하어의궁 터, 이현궁 터, 영희전 터, 구)명례궁 터, 저경궁 터, 소공주궁 터, 덕안궁 터였다.

 

<왕가(궁가) 주인과 소재지, 현재의 위치>

조선시대에 무슨 '방'으로 불리던 곳은 솔직히 전혀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하긴 지금의 동 이름도 모르는데 이젠 신도로로 명칭이 바뀌어서 우리 세대는 더욱 헛갈린다. 

궁 이름 주인 조선시대 위치 현재 위치 현재 위치 주변의 건물
영희전 세조 잠저 남부 훈도방 중구 저동 중부 경찰서, 영락교회
이현궁 광해군 잠저 동부 연화방 종로구 연지동 종로플레이스
하어의궁 인조, 효종 잠저 중부 경행방 종로구 효제동 한빛프라자
창의궁 영조 잠저 북부 순화방 종로구 통의동 통의동 백송부근
운현궁 고종 잠저,
흥선대원군
중부 정선방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
도정궁 선조 잠저,
덕흥대원군
서부 인달방 종로구 사직동 운경기념관
누동궁 전계대원군 사당 중부 경행방 종로구 익선동 재개발예정 한옥주변
경모궁 사도세자 사당 동부 숭교방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 의대
저경궁 인빈 김씨 사당 남부 호현방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뒤
대빈궁 희빈 장씨 사당 중부 경행방 종로구 낙원동 종로세무서, 원불교당
선희궁 영빈 이씨 사당 북부 순화방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 농학교
경우궁 수빈 박씨 사당 북부 양덕방 종로구 계동 현대빌딩 일부
덕안궁 순헌황귀비 사당 남부 명례방 중구 태평로 서울시의회, 조선일보
자수궁 무안대군 집 북부 순화방 종로구 옥인동 군인아파트
안(국)동별궁 영응대군 집 북부 안국방 종로구 안국동 풍문여고
순화궁 경빈 김씨 사당,
길안현주 집
중부 견평방 종로구 인사동 태화빌딩, 하나로빌딩
용동궁 순회세자 집  중부 수진방 종로구 수송동 코리안리재보험
창성궁 화유옹주 집 북부 순화방 종로구 창성동 청와대 부속 청사
죽동궁 명온옹주 집 중부 관인방 종로구 인사동 센터파크호텔
계동궁 완림군 이재원 집 북부 광화방 종로구 원서동 현대빌딩 일부
사동궁  의친왕 집 중부 관인방 종로구 관훈동 SK빌딩, 백악미술관
수진궁 제안대군,
평원대군 집
중부 수진방 종로구 수송동 두산위브파빌리온

 

평소에 서울문화유산 답사와 테마별 답사를 하면서 서울 복판에서 만나는 무슨 무슨 궁, 혹은 궁 터에 대해 항상 궁금했다. 선희궁이나 도정궁, 운현궁은 흔적이라도 있지만 나머지 궁은 흔적도 없이 이름이나 표석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우선생님의 특별답사에서 몇 차례 궁 이름이 나오고 위치 확인을 하면서 그 궁금증이 좁혀지던 차에 '왕가(궁가) 특별답사'가 진행되었다. 나처럼 다른 이들도 궁금했던지 참석자가 상당히 많았다. 두 번의 답사를 통해 적어도 이름만이라도 남아있는 왕가(궁가)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풀렸다.

왕가는 주로 경복궁, 창덕궁 주변에 집중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서울과 조선시대의 도성인 한양의 공간 개념은 많이 다르다. 한양은 현재의 서울성곽 안쪽에 해당하므로 오늘날에 비해 상당히 좁은 구역이다. 그 공간 안에 공주나 왕자, 혹은 후궁 소생의 왕손들이 일반 백성보다 훨씬 큰 저택들을 가지고 있었으니 왕가(궁가)를 빼면 당시의 한양에는 일반 백성의 가옥은 과연 몇 채나 되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물론 왕가에 살던 왕자나 공주가 죽으면 후손 뿐 아니라 다른 왕자나 공주들이 이어 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이름이라도 남아있는 왕가(궁가)만으로도 한양도성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왕가가 많은 비중을 잠식했을 거라 짐작된다.

 

≪종로구 통의동의 창의궁(彰義宮) 터≫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 맞은편의 통의동, 그 중에서도 백송 부근에 있었다. 효종의 딸인 숙휘공주와 부마 정재현이 살았던 곳을 숙종이 출가한 아들 연잉군(훗날 영조)에게 사주었다. 연잉군은 이곳에서 효장세자와 옹주 둘을 낳고 살다가 왕세제가 되어 입궁했다. 따라서 이곳은 영조의 잠저이다. 잠저는 왕이 될 수 없는 왕자가 왕이 된 경우 이전에 살던 집을 일컫는다.

일제 강점기에 왕실재산 국유화로 폐궁되었고, 1910년에 동양척식주식회사 사택이 들어섰다가 해방 후 대창산업주식회사 소유가 되었다. 현재 금융감독원, 대림미술관, 코오롱빌딩 등이 들어서 있다. 천연기념물 제4호인 통의동 백송이 창의궁 구역에 있다가 1990년 태풍으로 쓰러져 해제되었고 주변에 4그루의 후손이 명맥을 잇고 있다.

 

<종로구 통의동의 창의궁(彰義宮) 터 유구와 위치>

'아름다운 우리 것을 가꾸고 지키는 사람들'이란 모토를 내세운 '아름다운 사옥' 건물 정면 입구에 아래의 설명(사진)이 있다. 2011년 발굴조사 과정에서 조선시대의 건물 터, 담장, 제방시설들이 통의동 35-32, 33번지에서 발굴되었다. 기타 온돌과 기와, 분청사기, 백자, 청화백자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창의궁과 관련된 건물 터는 일제 강점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 사택을 이 부근에 짓는 과정에서 모두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는 두 번째 사진(동네 골목길 관광 2코스/ 사직동)의 붉은 글씨 1~3번 구역이다.

 

<창의궁 터의 통의동 백송과 주변 풍경>

중앙의 밑둥만 남은 채 잘린 나무가 천연기념물 제4호였다가 1990년의 태풍으로 쓰러져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된 백송이다. 주변의 후손 백송 4그루는 서울시, 종로구청, 개인이 각각 소유 관리한다. 담장의 철책 앞에 놓인 기타, 구멍 뚫린 담, 찰스 브론슨과 알랑 들롱 사진, 추사 김정희 초상 등이 사이좋게 어울려 있다.

 

<대로쪽에서 본 창의궁 터>

사진을 찍은 뒤편은 경복궁 영추문이 있다.

 

<정부종합청사 창성동 별관과 창성궁 터>

이 부근부터 사진촬영 제한구역이다. 정부종합청사 창성동 별관 너머 오른쪽 부근의 나무가 많은 곳이 과거에 진명여고 터, 즉 창성궁 터이다. 창성궁은 영조의 딸 화유옹주와 부마 창성위가 살았던 이다. 고종비 엄황귀비 소유였던 창성궁 터에 진명여학교가 들어섰다가 1989년에 목동으로 이전하고 현재 청와대 경호실 부속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창성동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건물에서 본 창성궁 터와 건물 앞의 모자상>

 

<청와대 앞의 지도>

지도 왼쪽 위를 자세히 보면 석파정은 '대원군 법장터'로, 무계정사는 '인평대군 사당'으로 오기되어 있다. 청와대 앞의 안내 지도가 이 정도이니 다른 안내문은 오죽하랴 싶다. 각각 '대원군 별장 터'와 '안평대군 별장' 정도로 고쳐야 한다.

 

<청와대 안의 칠궁>

위 안내도의 청와대 왼쪽(서쪽) 끝과 아래 사진 중앙에 칠궁이 보인다. 칠궁은 조선시대 왕의 어머니였으나 종묘에 들지 못한 후궁 7분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추존왕의 생모 3분(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저경궁,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대빈궁, 진종의 생모 정빈 이씨-연호궁)과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숙빈묘), 사도세자(장조)의 생모 영빈 이씨(선희궁), 문효세자(진종)의 생모 의빈 성씨(경우궁), 영친왕의 생모 엄황귀비(덕안궁)의 사당이 있다. 원래 숙빈 최씨의 사당인 숙빈묘였으나 이후 다른 사당이 합쳐져 육상묘, 육상궁이 되었다가 엄황귀비의 덕안궁이 합쳐지면서 칠궁이 되었다. 관람을 하려면 인터넷으로 청와대 관람 신청을 해서 관람이 끝난 후 칠궁 관람을 따로 신청해야 한다.

 

<신교동(세종마을) 선희궁 입구>

사진의 도로 오른쪽 중앙 쯤의 안내표지 아래쪽이 국립서울농학교이다. 국립서울농학교로 들어가면 서울맹학교와 걸쳐 뒤쪽에 선희궁 터가 있다. 선희궁은 왕가(궁가)와 사당 중 12,350평으로 최대의 규모로 알려져 있다.

 

<국립서울농학교 운동장의 선희궁 터 담장 흔적>

 

<국립서울농학교 100주년 기념비>

작년 이맘 때 쯤 답사에서는 못 본 조형물이다. '사랑한다'는 의미의 수화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숫자 100을 의미한다고...

 

<선희궁 사당 터>

선희궁은 영조의 후궁이면서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선희궁(영빈 이씨)의 사당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로 쓰였다.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사당이 껍데기나마 온전하게 남았을 거란 말을 하는 이도 있다. 왼쪽의 계단으로 올라가면 어지간한 서울 조망 명소보다 나은 세심대 터가 있다. 아버지를 그리며 정조가 할머니 사당을 찾아 자주 올랐던 곳이라고 하는데 수성동 계곡 쪽부터 현대사옥 쪽까지 전망이 탁월하다.

 

<선희궁 뒤쪽의 금낭화와 하늘매발톱>

전망대에서의 전망도 좋지만 오르는 길의 야생화 단지와 텃밭, 숲도 아름답다.

 

<선희궁 뒤쪽의 세심대 터>

 

<선희궁 뒤쪽의 세심대 터에서 조망한 경복궁, 종로 방면>

 

<선희궁 뒤쪽의 세심대 터에서 조망한 남산 방면>

 

<선희궁 뒤쪽의 세심대 터에서 조망한 수성동 계곡 방면>

 

<선희궁 뒤쪽의 세심대 터에서 본 텃밭과 북악산>

 

<우당 이회영선생을 기리는 신교동의 우당기념관>

 

<자수궁 터에서 본 옥인동 송석원 터>

조선후기에는 평민들의 시사모임 장소인 송석원이, 일제 강점기에 매국노 윤덕영의 저택-벽수산장이 있었던 곳이다.

 

<옥인동 군인아파트 - 자수궁 터>

자수궁은 원래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소생인 무안대군 방번의 집 였다. 1차 왕자의 난 때 유배를 가다 죽임을 당한 후 세종의 후궁들이 모여 살았고, 이후로 죽은 왕의 후궁들의 거처가 되었다. 이후 비구니가 된 후궁들의 여승방이 되었다가 명나라의 굴씨녀가 살기도 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던 순화병원이 들어섰다. 1977년 병원 이전 후 군인아파트, 종로구보건소 등이 들어섰다.

 

<자수궁 맞은편쪽-필운대로, 누하동, 필운동의 골목>

골목 왼쪽 위편으로 배화여고가 있다.

 

<사직공원 앞의 인근 지도>

사직단 서남쪽 옆(사직동)에 도정궁 터, 동남쪽 앞(내자동)에 어의궁 터가 있다.

 

<내자동의 어의궁 터, 월성위궁 터와 주변>

성당 맞은편에는 내수동 아파트 단지 '경희궁의 아침'이, 옆으로 주한중국문화원과 서울지방경찰청이 있다.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부근의 어의궁은 인조의 잠저이면서 봉림대군(효종)이 볼모에서 풀려난 후 효제동에서 이곳으로 이사해서 살다가 왕이 된 곳이다. 어의궁은 원래 왕비의 가례를 행하던 곳이었으로 정원의 백송이 유명했지만 일제 강점기에 어의궁이 사라진 것으로 추측한다.

월성위 궁은 바로 옆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 부근(서울지방경찰청 앞)에는 성종이 연산군의 생모 윤씨를 폐출할 때 나중에 당할 화를 피하기 위해 허침, 허종 형제가 일부러 낙마하는 기지를 발휘하여 화를 모면했다고 전하는 종침교 터 표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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