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2014 경주 남산 답사 3일차(서악동, 불곡, 탑곡, 미륵곡)

큰누리 2014. 11. 2. 16:39

경주 남산 답사 3일차 코스는 서악동의 신라왕릉과 삼층석탑→ 불곡 마애여래좌상 탑곡 마애조상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답사였다. 전날 밤 경주국립공원 서악지구에 있는 도봉서당에서 묵었기 때문에 우리 일정에 없는 주변의 왕릉을 둘러보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이틀째 숙소였던 도봉서당에 대해서는 일행들 모두 상당히 불편해 했다. 카페지기님은 유적답사이니 만큼 불편함을 감수하고 고택에서 묵어야 한다고 했지만 일행들, 특히 여성들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외관이나 방 구조는 고택이지만 보일러를 설치해서 난방도 잘 되고 가정집처럼 편안했다. 손바닥만한 방 크기야 하룻밤을 묵는 이들에게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으니까... 문제는 화장실, 특히 목욕시설이었다. 고택의 개조는 법의 규제를 받기 때문에 함부로 외관에 손을 댈 수 없어서 뒷뜰에 별도로 만든 화장실이 있었다. 묵는 사람은 20여명인데 샤워실은 공용 1칸, 화장실은 남녀 각각 1칸 밖에 없었다. 낮에 답사를 하느라 온몸이 땀에 절었는데 제대로 샤워를 하자면 우리 일행에 다른 팀까지 더했으니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이었다. 결국 조금씩 양보를 해서 고양이 세수 아닌 샤워를 하거나 화장실 세면대에서 찬물로 머리만 감을 수 밖에 없어서 너무 불편했다.

 

고택이라 해도 숙박 손님을 받으려면 화장실에 대해서 더 고려를 해야 했다고 본다. 집안에 증축이 불가능하다면 건물 밖에 별도의 화장실, 샤워실을 만들면 간단히 해결될 것 같다. 어차피 하나 밖에 없는 화장실도 건물 가장 구석에 있어서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신발을 신고 마당을 지나 건물 뒤로 가야 했다. 카페지기님이 사전에 이런 상황을 정확히 고지하고 일행의 선택에 맡겼다면 좋았을 텐데 유감이었다.

 

도봉서당 바로 뒤에 신라왕릉 4기와 서악동 3층석탑이 있고, 옆에 서악리 고분군과 태종무열왕릉, 비가 있다. 서둘러 뒷산으로 올라 서로 이웃해 있는  헌안왕릉, 진지왕릉, 진흥왕릉, 문성왕릉 둘러보았다. 낮은 산자락에 일반 무덤보다 조금 더 큰 규모로 있는 왕릉들은 다소 의외였다. 특히 신라 왕 중에서 가장 영토를 확장한 진흥왕릉이 생각보다 규모도 작고 장식이나 번듯한 비석 하나 없이 초라한데 놀랐다. 바로 옆 서악리 고분군 안의 무열왕릉은 규모는 비슷해도 번듯한 비석이 있고, 다른 곳의 김유신장군의 묘는 왕릉을 능가할 정도로 봉분이 호화로운데...

오랜만에 서악리 고분군과 태종무열왕릉과 비를 보려고 했지만 시간도 부족하고 카메라만 달랑 들고 나갔는데 입장료를 받아 들르지 못했다.

 

 

 <우리가 묵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97호 도봉서당>

도봉서당은 조선 성종 때의 학자인 불권헌 황정(1426~1497)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해 1545년(중종1) 묘 아래 재실(추보재)로 처음 건립되었다. 이후 훼손된 것을 황정의 후손들이 1915년 추보재 터에 도봉서당 일곽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숭앙문, 도봉서당(강당), 추보재, 연어재(서재), 상허당(사당) 등 7동의 건물이 있으며 서원 형식이다.

 

주변에 서악동 고분군, 왕릉들이 있다. 목욕시설, 화장실 때문에 불편했지만 방도 따뜻하고 조용한 점은 좋았다. 서당 뒤에서 촬영한 두번째 사진 앞쪽으로 서악동 고분 3기가 보인다.

 

 

 

<경주국립공원 서악지구 안내도>

경주시내 복판에도 왕릉들이 있지만 이곳은 신라시대에 상당히 외진 곳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왕이나 귀족들의 묘지로 많이 이용된 듯 하다. 우리가 본 4왕릉 외에 서악리 고분군, 태종무영왕릉, 법흥왕릉 등이 더 있다.

 

 

<서악동의 왕릉 분포도>

 

 

<서악동의 왕릉>

윗사진의 맨 왼쪽은 일반인 묘, 중앙은 헌안왕릉, 오른쪽은 문성왕릉이다. 아래 사진 앞줄의 왼쪽에서부터 두번째 능이 헌안왕릉, 그 옆이 문성왕릉이며 뒤쪽은 진지왕릉이다. 사진에 보이지 않지만 진지왕릉 뒤쪽에 진흥왕릉이 있다.

 

 

 

<서악동 3층석탑(보물 제65호)>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모전탑 계열의 3층석탑이다. 기단은 바닥돌 위에 다듬은 돌 8개를 2단으로 어긋물리게 쌓았다. 1층 몸돌 남쪽에 문틀을 얕게 새기고 그 양쪽에 인왕상을 돋을새김 했다. 지붕돌은 하나의 몸에 밑받침과 윗면의 층급을 두었는데 몸돌에 비해 커서 무거운 느낌을 준다. 이 탑은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탑 형식의 유형분포를 조사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경주 남산동 동탑(보물 제124호)을 모방한 것으로 추측된다. 

 

 

<경주 서악동의 아침>

 

 

<남산 불곡 입구의 관광마차와 대숲길>

이런 유치한(!) 마차는 중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보물 제198호)>

이 불상은 남산 동쪽 기슭의 바위를 0.9m 깊이로 파고 감실을 만든 후 조각한 여래좌상으로 경주에서는 '할매부처'로 불린다. 머리에서부터 귀 부분까지 두건 같은 것을 덮어쓰고 있고, 양어깨에 걸쳐 통견을 두르고 있다. 양손은 옷소매에 넣었으며 옷은 흘러내려 대좌를 덮고 오른발만 부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 있다. 장창골 애기부처, 배동(배리) 삼존불과 함께 신라 석불로는 아주 이른 시기인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이 불상 때문에 계곡 이름이 부처 골짜기(불곡)로 불린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앞 옥룡암의 현판>

옥룡암은 탑곡 마애조상군 앞에 있는 근래에 지어진 암자이다. 암자 건물에 이 현판이 있는데 신도로 보이는 분이 뒤의 현판과 함께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했다. 추사선생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집자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탑곡 마애조상군이 있는 곳은 통일신라 시대에 신인사(神印寺)라는 절이 있었으며 남쪽에 3층석탑이 있어 탑곡이라 부른다. '마애조상군'이란 명칭은 높이 약 10m, 사방 둘레 약 30m의 바위와 주변의 바위면에 여러 상이 새겨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면에는 마주 선 9층 목탑과 7층 목탑 사이에 석가여래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탑 앞에는 사자 2마리가 새겨져 있다. 동쪽면에는 중앙에 여래상이 새겨져 있고, 주위에 비천상, 승려상, 보살상, 인왕상, 나무 등이 새겨져 있다. 남쪽면에는 삼존불이 정답게 새겨져 있고, 그 옆에는 여래상과 승려상이 새겨져 있다. 면이 좁은 서쪽에는 능수버들과 대나무 사이에 여래상이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이 여러 상이 함께 새겨진 예는 보기 드물며, 지금까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총 34점의 도상이 확인되었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내용이 많은 동쪽과 북쪽면이며, 왼쪽 끝에 남쪽의 탑이 보인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의 북쪽면>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의 서쪽면>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의 동쪽면>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의 탑과 북쪽면>

남쪽면의 불상들은 돋을새김이 높고 바위에 붉은색이 끼어 있어 시각적으로 가장 눈에 들어온다.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36호)>

신라시대 보리사 터로 추정되는 경주 남산 동쪽 기슭에 남아있는 석불좌상이다.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대작이며 현재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석불 가운데 가장 상태가 좋은 것이다. 별도로 된 배 모양의 광배에는 연꽃띠 바탕 사이사이에 작은 불상을, 그 옆에는 불꽃 무늬를 새겼다. 광배 뒷면에는 모든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좌상이 왼손에 약그릇을 든 모습으로 선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