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2014 경주 남산 답사 3일차(칠불암과 신선암의 불상)

큰누리 2014. 11. 4. 00:22

2박 3일 일정의 경주 남산 답사 중 마지막 오후 일정은 남산의 불곡(부처골)→ 탑골 미륵골 서출지 봉화골이었다. 미륵골의 보리사지 석조여래상을 보고 봉화골에 오르자면 서출지와 남산리 동서3층 석탑, 염불사지 3층석탑을 거쳐야 한다. 남산 봉화골로 오르는 입구가 이곳에 있고 봉화골에 칠불암 마애불상군과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 있기 때문이다.

 

 

<서출지 앞의 허수아비와 풍경>

재미있는 현대판 허수아비이다. 추수를 앞둔 황금빛 논과 김장용 배추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서출지와 이요당>

서출지는 사적 제138호로 까마귀가 신라 소지왕의 목숨을 구한 전설이 서려 있는 경주 남산 아래의 연못이다. 소지왕 10년(488) 정월 대보름날에 왕이 궁밖으로 행차했는데 쥐와 까마귀가 나타나 쥐가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 가라"고 했다. 왕이 병사를 시켜 따라가게 하였는데 이 연못에 이르렀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나 "거문고 갑을 쏘라"고 쓴 편지를 바쳤다. 부언하면 거문고 갑을 쏘면 두 사람이 죽고, 쏘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는 내용이다. 왕이 궁으로 돌아와 거문고 갑을 쏘니 그 속에 숨어있던 궁주와 내통을 하던 승려가 화살을 맞고 죽었다. 즉, 바람을 피우던 궁주와 승려를 쏘지 않았다면 왕이 그들에 의해 죽을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 이 못에서 글이 나왔다 하여 서출지(書出池)라 하였으며, 정월 대보름날에는 왕을 살려준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일(烏忌日)의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경주 지방에는 정월 대보름날 아이들이 감나무 밑에 찰밥을 묻어두는 '까마귀 밥주자'라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이요당(二樂堂)은 서출지에 있는 정자로 조선 헌종 5년(1664)에 임적이 지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자이다.

 

 

<서출지 편지의 내용>

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노인이 준 봉투를 열면 둘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하나가 죽는다)노인이 준 봉투를 여니 '거문고 갑을 쏘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래서 거문고 갑을 활로 쏘니 그 안에 궁주와 정을 통하던 중이 함께 숨어있었다. 이 전설에서 23대 법흥왕 때 불교가 공인되기 이전인 21대 소지왕 때 불교가 신라에서 어떻게 인식되었는지 알 수 있다.

 

 

<경주 남산동 동서 3층석탑(보물 제124호)>

이 탑은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처럼 형식을 달리 하는 두 탑이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동탑(앞)은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으로 바닥돌 위에 8개의 돌덩이를 어긋물리게 기단을 쌓고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씩을 얹었다. 지붕돌은 벽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처마 밑과 지붕 위의 받침이 각각 5단이다.

서탑(뒤)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몸돌을 쌓은 일반적인 형태로 윗기단의 몸체에 팔부신중을 돋을새김한 것이 독특하다. 팔부신중은 신라 중대 이후에 등장하며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다.

 

 

<염불사지 3층석탑>

 

 

<무르익은 남산리의 사과와 산사자(산사나무 열매)>

 

 

 

<남산 봉화골 입구의 풍경>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

이 불상은 나 같은 비신도조차 볼 때마다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을 지녔다! '경주 남산' 하면 의례 이 불상을 떠올리고 마음이 설레인다. 처음에 들렀을 때에는 보물이었다가 현재 국보로 바뀌었다.

 

이 불상들은 경주 남산 봉화골의 정상 가까이 위치한 마애삼존불과 사방불로서 '칠불암 마애석불'이라 불린다. 삼존불의 가운데 있는 본존불은 좌상으로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로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사방불도 모두 연꽃 위에 앉은 모습으로 각기 방향에 따라 손 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보살상이 본존을 향하고 있는 것이나 가슴이 길고 다리가 짧게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칠불암에서 신선암으로 오르며 본 경주의 평야와 가파른 오르막길>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이 불상을 보려면 불상이 새겨진 벼랑 위의 바위를 의지해서 붙들고 돌아서야 겨우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지할 수 있는 신앙심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신앙심이 지극해야 접근하는 것조차 바위에 의지해야 하는 목숨을 건 극점에 이런 아름다운 불상을 새길 수 있을까? 절벽 아래로 보이는 경주 벌판과 남산의 모습도 일품이다. 이번에 보니 예전의 길이 절벽 위라 너무 위험해서 바위 뒤로 돌아가게 길이 새로 나 있었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칠불암 위의 곧바로 선 절벽 면에 새겨져 있어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듯이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을 쓰고 있어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오른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올려서 설법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팔각형으로 보이는 대좌 아래로 옷이 흘러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내려놓은 자세이다. 발은 연꽃 위에 있으며, 이 같은 유희좌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예이다. 그 아래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 높이는 1.4m이며,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은 경주 부성식당과 메뉴>

5년 전 1차 경주 남산 답사 때에도 이곳에서 두번 점심을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다음 답사 때 연락처를 모르는 카페지기님이 당시 서울에 있던 내게 연락처를 물어서 사진으로 전화번호를 찾아 알려드렸던 기억이 난다. 일행 모두 맛있고 정갈한 식사에 이번 답사 식사 중 최고라며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