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월미 전통정원, 월미문화회관

큰누리 2015. 3. 17. 01:30

≪월미전통정원≫

월미공원 안 5만㎡의 부지에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들을 축소해서 재현해 놓은 곳이다. 궁궐정원은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와 애련지, 아미산 굴뚝을 재현했고, 별서정원(선비들의 별장)은 소쇄원과 국담원, 서석지를 재현했다. 전통농가와 양진당은 민가정원을 재현한 것으로 주변에 농업체험장, 채소밭 등을 만들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월미문화관≫

월미문화관에는 전통생활문화전시실, 궁중문화전시실, 기획전시실이 있으며 관광객들이 한국전통문화를 즐기며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민가정원 - 전통농가>

전통농가 앞에 채마밭과 농업체험장을 만들어서 체험을 할 수 있게 했다. 전통농가 앞 나무에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단 복주머니들이 특색있고 아름답다.

 

 

<민가정원 - 양진당 정면과 측면>

양진당은 북촌을 대표하는 종가집으로 서애 류성룡의 친형인 겸암 류운룡이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조성한 17세기 초의 건물이다. 'ㅁ'자형의 안채를 중심으로 앞면 동쪽에는 문간채가, 뒷면으로는 사랑채가 연결되어 3개의 건물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보이며 후원의 북동쪽에는 2채의 사당이 있다. 월미 전통공원의 양진당은 건물과 담장, 삼문, 협문을 재현했다. 

 

 

 

<민가정원 - 양진당의 사당 내부>

 

 

<민가정원 - 양진당의 부엌>

 

 

<별서정원 - 소쇄원>

소쇄원은 조광조의 제자인 양산보가 1520년~1557년에 전남 담양군 지곡리에 조성한 별서정원이다. 내원(담장으로 둘러쳐진 공간)과 외원(마을 쪽의 계곡을 따라 올라가 뒷산인 용정봉에 이르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원은 크게 대나무 숲이 있는 진입공간과 대봉대와 애양단이 있는 공간, 계류와 광풍각이 있는 공간, 제월당과 화계가 있는 공간으로 구분된다. 월미전통정원에서는 소쇄원도를 기초로 하여 소쇄원의 담장, 화계, 초정, 연못 등을 재현하였다.  

 

 

<별서정원 - 국담원>

국담원은 영조 4년(1728)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 때 의병에 참여하여 군량을 지원한 주재성의 공을 기리기 위해 관군이 경남 함안군 칠원면 무기리에 조성한 별서정원으로 풍욕루, 하환정, 충효사, 영정각, 국담, 영귀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담은 장방형의 연못으로 중앙에 당주라고 불리는 방도가 있으며 물에 근접할 수 있는 계단과 좁은 단이 조성되어 있다. 월미전통정원에서는 국담, 하환정, 중도를 재현하였다.

 

 

<궁궐정원 - 부용지>

부용지는 창덕궁(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후원에 있는 연못으로 조선 정조 원년(1777) 열무지를 부용지로 개칭했고 정조 16년(1792) 택수재를 재건하여 부용정이라 하였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천원지방의 음양오행사상 영향으로 장방형의 방지 속에 원형의 섬이 배치되어 있다. 월미전통정원에서는 부용지, 중도, 부용정, 화계, 석물, 괴석 등을 재현하였다. 

 

 

<궁궐정원 - 풍기대>

바람의 방향과 바람의 세기를 측정하는 깃발을 세운 받침대이다. 이 풍기대는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아래에 조각한 대를 놓고 그 위에 구름무늬를 양각한 8각 기둥을 세운 모양이다. 8각 기둥 맨 위의 중앙에는 깃대 꽂는 구멍이 있고, 그 아래 기둥 옆으로 배수 구멍이 뚫려있다.

깃대 끝에는 좁고 긴 깃발을 매달아 그것이 날리는 방향으로 풍향을 재고, 나부끼는 정도로 바람의 세기를 쟀다. 풍향은 24방향으로 표시하고 풍속은 그 강도에 따라 6단계 정도로 분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정원 입구 통로와 아미산 굴뚝>

조선 태종이 경복궁 서쪽에 큰 연못을 파서 경회루를 세우고 파낸 흙으로 교태전 뒤뜰에 세운 인공동산을 아미산이라고 한다. 아미산의 굴뚝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으로 6각형으로 된 굴뚝 벽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등의 무늬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도 각종 문양, 형태와 구성이 아름다워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월미 24영>

월미 24영은 1영:장원제영, 2영:평원포설, 3영:가산초수, 4영:소정빙난 등 24개의 주제에 맞춰 한국전통정원의 미를 재현한 공간이다.

 

 

<월미 전통정원 안내도>

우리는 월미산 정상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윗글(사진)은 안내도상의 끝(12번)에서부터 입구(1번)로 역행하며 본 것이다.

 

 

<월미 전통정원 입구의 월미도에 대한 안내도>

 

 

<월미 전통정원과 월미문화관 사이의 은하레일과 물범 셔틀 카>

사진 중앙 원경의 호선형 간판(?)은 월미공원 입구이다.

 

 

 

<월미문화관>

 

 

<월미문화관 전통생활문화전시실의 초례(혼례)상>

혼례상은 신부집에서 신랑 신부가 상견례를 할 때 차리는 상이다. 소나무와 대나무를 양쪽에 세우고 과일과 곡식은 앞뒤로 두벌을 차린다. 

초례청 또는 전안청은 차일을 치고 멍석을 편 곳을 말한다. 붉은 칠을 한 고족상을 중앙에 동서로 길게 놓고 상 위 양쪽에 청홍색 양초를 세우고 밤, 대추, 흰콩, 팥을 한 그릇씩 담아놓는다. 산 수탉은 붉은 보자기에 싸서 동쪽에, 암탉은 파란 보자기에 싸서 서쪽에 놓는다. 신랑과 신부 쪽에 각각 작은 상을 놓고, 그 위에 각각 술병과 합근배로 쓸 잔을 놓는다. 두 잔은 청홍색 비단실묶음으로 연결하여 묶어 놓는다. 합근례(신랑 신부가 술잔을 교환하는 예)가 끝나면 상객(신랑을 데려온 사돈)에게 주안상을 대접한다.

 

 

<월미문화관 전통생활문화전시실의 환갑잔치상>

 

 

<월미문화관 전통생활문화전시실의 금줄>

아이가 태어난 집 대문에 부정을 막기 위해 함부로 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매단 줄이다. 왼 새끼줄을 꼬아서 남아는 숯과 빨간 고추를 꽂고, 여아는 생솔가지와 숯을 꽂는다.

 

 

<월미문화관 기획전시실의 강화도 화문석>

 

 

 

<월미문화관 궁중문화전시실의 왕의 일과도>

원칙대로 한다면 살인적인 일과이다! 이렇게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많은 여성 편력까지 하려니 왕은 자연히 단명하기 일쑤였다. 왕의 일과는 기본적으로 일과 공부였다.

아침 조회, 국정 현안 보고 받기, 회의 주재, 신료 접견 등이 공식적인 업무였으며, 하루에 세 차례씩 유학 공부를 하였다. 원칙상 왕의 일정에는 아침 업무 이전에 조강(강연)과 상참(약식조회), 또는 조참(대조회)이 있었지만 실제로 행하는 일은 드물었다. 아침 공부나 조회는 국정 운영에 필수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의례적인 면이 컸으므로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시간대별 왕의 일과>

**05:00 / 기상.

**06:00 / 대비와 대왕대비에게 문안 인사(직접 할 수 없을 때는 내시를 보냄).

**해 뜰 무렵 / 신료들과 학문 토론 겸 경연에 참석. 왕의 공부를 경연이라 하며 승지와 홍문관 관원, 의정부 대신들이 배석함.

**아침 식사 후 조회 / 왕의 공식업무 시간. 매일 열리는 약식조회와 문무백관이 모두 참여하는 정식조회로 구분.

**정오 / 주강에 참여하여 유학 경전이나 역사책을 교재로 한 토론수업을 하여 유학에 대한 식견을 높이고 정치적 안목 육성.

 

**오후 일정 / 주강 후 지방 수령 만나기, 숙직자 명단 확인, 암호 정하기 등.

**저녁공부 / 석강 참석 후 신료들과 국정 현안 논의.

**18:00 / 석강 후 저녁을 먹고 잠시 휴식.

 

**야간 집무 / 낮 동안의 업무가 밀렸을 경우 야간 집무.

**저녁 문안 / 잠자리에 들기 전 대왕대비, 대비에게 문안 인사.

**23:00 / 취침.

 

 

<수라상>

 

 

<궁중복식>

왼쪽부터 왕과 왕자, 중전, 후궁들, 상궁, 나인, 무수리이다.

 

 

<수라상에 오르는 음식들>

 

 

<수라상 차림>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사령부 주둔 기념 조형물>

월미도는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다수의 북한 해군 정규군과 겨뤄 승전한 '연평해전'의 주역 제2함대사령부가 주둔했던 곳일 뿐 아니라, 세계 전쟁사에서도 높이 평가받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 주력부대가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다. 1999년 11월 제2함대사령부가 지금의 평택으로 옮겨가기까지 월미도에서 53년을 주둔했다.

 

 

<월미공원 입구의 전통복장을 한 인형들>

 

 

 

<월미은하레일, 월미공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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