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열하일기 코스

열하일기 따라가기6 - 심양 백탑보공원, 실승사(황사)

큰누리 2016. 9. 7. 23:28

<16. 8/2. 열하일기 따라가기 3일차 일정2>

요양호텔에서 조식 - 호텔 맞은편의 요양백탑, 광우사 - 관제묘를 찾아 헤매다 1시간 후 관제묘 외관 관람 - 동경성(요동성) 터 천우문 - 요동벌판을 가다 십리하시장 간판으로 십리하 위치 확인 - 다시 요동벌판을 달려 심양 백탑보 - 혼하강을 건너 심양 진입 - 심양고궁 - 실승사(황사) - 실승사 앞 전시장에서 백자, 채색 불상 관람 - 심양 금사만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저녁 - 심양 동방은좌호텔 투숙.

 

8/2. 열하일기 따라가기 3일차 일정 중 심양고궁은 백탑보 다음에 들렀지만 분량이 많아 다음 7편으로 따로 뺐다.

 

십리하를 출발해 요동벌판을 건너던 연암 일행은 지루해지면 구첩(口妾)놀이로 무료함을 달랬다. 구첩이란 지나가는 여자를 무작위로 첩으로 삼는 놀이인데 생김새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입으로만 첩이지만) 복불복 게임이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외모를 보고 뒷담화를 하면서 무료함을 달랜 것이다.

 

십리하를 출발한 연암 일행은 백탑보에서 점심을 먹고 배로 혼하를 건너 심양에 입성했다. 후금(훗날 청나라) 건국 이전에 요동 최대 도시는 요양이었다. 청 태조(누르하치)는 요양을 점령한 후 심양에 성을 쌓고 수도로 삼았다. 뒤를 이은 2대 청 태종(홍타이지)은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심양성에서 황제로 즉위한 후 심양을 성경으로 개칭했다. 이후 심양성(성경)은 청이 중원을 점령하고 북경(연경)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초기 청의 중심지가 되었다.

 

혼하는 심수(瀋水)라고도 하는데 심양(瀋陽)이란 이름은 심수에서 비롯되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볼모로 잡혀온 소현세자 일행이 혼하에서 용골대에게 넘겨질 때 그들의 관행대로 가마 대신 말로 바꿔 타도록 요구 받은 곳이다. 예외를 요청했으나 불허하여 말을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대군부인들조차 말을 타고 들어간 패전국 볼모들의 치욕이 서린 곳이다.

심양 남탑공원은 병자호란 당시에 포로로 끌려온 조선인들을 매매하던 곳이었고, 인근에 있는 중산공원은 당시에 인질로 잡혀온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가 처형된 곳으로 알려졌으나 우리는 들르지 않았다.

 

 

<백탑보공원의 백탑>

백탑보공원의 백탑은 요양백탑과 비슷하게 생겼다. 백탑보란 지명으로 보나 열하일기의 내용으로 보나 오래 전부터 백탑이 있었음이 분명한데 탑이 너무 깔끔해서 의아했다. 마을 중앙에 있던 원래의 탑이 러일전쟁 때 파괴되어 근래에 마을 외곽에 복원했기 때문이다.

백탑보의 백탑에 관한 열하일기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백탑보에 이르니 탑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데 높이는 20여 길이고, 8면 13층이다. 공중에는 층마다 둥근 문 4개가 있다. 말을 탄 채 그 안에 들어가 올려다보니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말고삐를 돌려 나왔다.'

 

 

<심양 외곽 백탑보공원의 무구정광탑>

고졸한 맛도 없고 벽돌 탑이 아니라 석탑처럼 매끈했지만, 규모가 작고 깨끗해서 색 바래고 높은 요양백탑에서 파악하기 어려웠던 불상들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공원 입구의 냇가에는 하얀 흑삼릉꽃이 활짝 피어있고, 백탑 앞에서는 공을 들여 차려입은 초로들이 짝을 지어 춤을 추고 있었다. 

 

 

 

<각면을 확대한 백탑보(공원)의 백탑>

'무구정광탑'이라 쓰여있다. 8면에 각기 다른 수인을 한 석가모니불이 감실 안에 안치되어 있고, 서로 다른 수인을 한 부조 불상이 양쪽 벽에서 협시하고 있다. 감실 위의 구름 같은 무늬를 확대해 보니 비천상이었다. 불룩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비천상이나 기단의 현대적인 연속무늬 등으로 보아 원래대로 복원한 것은 아닐 것이라 추측했다.

요양백탑과 비교해 보니 주불과 협시불 위에 커텐 같은 장치, 비천상 모두 양식이 일치했다. 원래의 탑을 그대로 복원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백탑보 백탑 6면을 묶어 편집한 것>

다양한 불상의 수인을 볼 수 있다. 위쪽 왼쪽부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 석가여래가 성도를 한 순간에 지은 수인), 중앙은 아미타불의 구품정인 중 상품상생(上品上生)인, 아래쪽 왼쪽은 아미타불의 구품정인(九品定印) 중 중품중생(中品中生)아래쪽 중앙은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 아미타불이 중생의 신앙이나 성품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누어 교화하여 구제한다는 수인), 아래쪽 오른쪽은 시무외인, 여원인(施無畏印, 與願印 : 어떠한 두려움도 없애주고, 어떤 소원도 다 들어준다)

 

 

<백탑 앞에서 짝을 지어 춤을 추는 사람들>

우리나라의 탑골공원 같기도 하고...

 

 

<심양 원도식당에서 점심으로 먹은 버섯전골>

 

---중간에 심양고궁을 보고---

  

<3일차 마지막 코스인 실승사(皇寺)>

실승사(實勝寺)의 정식 명칭은 연화정토실승사이다. 청 태종이 자신의 사후를 위해 1636에 짓기 시작하여 1638년에 완공했다. 황제의 가묘이기 때문에 황사(皇寺)라고도 하며 동북지방에 세운 첫번째 라마교 사원이다. 항상 만주족(청)을 불안하게 했던 몽고족을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그들의 종교인 라마교를 수용했다. 산문-종루, 고루-천왕전-좌우 배전-본전 구조로 배치되어 있으며, 본전에는 석가모니, 미륵불, 무량수불을 봉안했다.

 

 

<실승사(황사)의 돌사자상>

표정이 재미있다. 새끼를 움켜 쥔 윗 사진은 암사자, 보주를 움켜 쥔 아랫 사진은 숫사자상이다.

 

 

 

<실승사 산문과 현판>

  

 

 

 

<실승사 천왕전과 타르촉(Tharchog)>

타르촉은 라마교에서 경전이 적힌 오색 깃발을 긴 줄에 이어 매단 것이다.

 

<천왕전 앞의 東비정>

천왕전 앞 동, 서 양쪽에 있다.

 

 

<실승사 마니차>

마니차를 지지하는 둥근 이 기왓장더미는 라체(티베트의 언덕이나 고갯길에 쌓은 돌무더기)?

 

 

<실승사(황사) 본전>

실승사 본전 내부는 보지 못했다. 입장 시간이 지나 들어갈 수 없는데 이곳에 종사하는 아주머니 한분이 고맙게도 문을 열어줘서 후다닥 외관만 둘러볼 수 있었다.

 

 

 

<실승사 길 건너편의 불상을 실은 낙타상>

최근에 세운 듯 하다. 불상을 실은 낙타가 이곳에 멈춰서 움직이지 않아 이곳에 실승사를 지었다고 한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이야기...

 

 

<실승사 주변의 전시장과 전시 중인 도자기 불상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해는 아직 남아있었다. 그 동안 밤 늦게 숙소로 들어가는 관행 때문에 일찍 들어가는 것이 아쉬웠는지 일행 모두 더위도 식힐 겸 이곳에 들어갔다. 그런데 유명 도요에서 만든 정교하고 아름다운 백자, 채색불상들을 전시 중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도자기 불상인데다 작품들이 빼어나서 눈이 즐겁고 더위까지 싹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백자 진시황상>

 

 

<저녁을 먹은 금사만식당의 현지식>

 

 

<3일째 숙소인 심양 동방은좌호텔과 객실>

객실이 깨끗하고 시설도 좋은 편이었으나 침대 옆에 있는 화장실 문과 벽이 유리여서 난감했다. 씻으려면 불을 켜야 하는데 부부가 아닌 일행 사이에 화장실 벽이 유리이니 난감할 수 밖에... 좋았던 점은 안쪽에 책상과 간이 침대가 따로 있어서 밤 늦게 다음 일정을 체크하는 내가 일찍 잠을 자는 룸메이트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