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열하일기 코스

열하일기 따라가기9 - 여산 북진묘

큰누리 2016. 9. 12. 23:42

<16. 8/4. 열하일기 따라가기 4일차 일정2>

심양 동방은좌국제호텔- 영안(석)교- 요동평원을 달리며- 한강 하류처럼 강폭이 넓은 넓은 거류하(요하)를 버스에서 내려서 보고- 신민소흑산 가는 평원에서 내려 수박을 사 먹고- 중간에 화장실 대신 옥수수밭에서 용무를 본 후- 북진 도착- 광녕성 성문(북진고루)이성량 패루- 북진 초급반점에서 현지식- 숭흥사 쌍탑- 북진묘- 의무려산- 십삼산을 스치며- 주 금쾌자에서 현지식- 금주 금하호텔 투숙.

 

 

≪북진묘≫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베이닝시(北寧市)의 북서쪽에 있는 도교 사원이다. 뤼산 북진묘라고도 하는데 뤼산(閭山)은 의무려산(醫巫閭山)의 약칭이다. 중국은 순임금 이래 동, 서, 남, 북, 중앙에 5대 진산을 봉하여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5대 진산 : 기산(沂山), 오산(吳山), 곽산(霍山), 회계산(會稽山), 여산(閭山).

 

여산은 의무려산의 약칭으로 현재 4개의 사원은 사라지고 의무려산신을 모신 북진묘만 남아있다. 원, 명, 청의 황제들이 이곳에 찾아와 의무려산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1421년 명나라 영락제 때 오늘날의 규모로 확장되었고 청나라 때까지 중수가 이어졌다. 건물 폭 109m, 길이 240m의 규모로 남에서 북으로 ♣ 석조패방→ 영성문→ 조방→ 신마전→ 종루, 고루→ 비림→ 어향전→ 대전→ 갱의전→ 내향전→침전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북서쪽 끝에는 보천석과 여와를 모신 사당 낭랑전이 있고, 건물 외곽 동북쪽에는 바위덩어리인 회선정과 기반석 등이 있다.

 

연암은 북진묘에 들러 (고전에 대한 깊이가 얕고, 간자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내가 직접 보고 묘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높이는 너댓 길이나 되고 그 구조의 정교함이나 세밀함이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할 만큼 잘 되었다. 중략...

정전은 푸른 기와를 이었으며, 북쪽 벽에는 울총가기(鬱葱佳氣)라고 적혀 있는데 옹정 황제가 쓴 것이다. 정전 뒤에는 정전과 같은 화려한 형태의 전각이 있는데 모두 비어 있다. 정전 앞뒤로는 역대의 큰 비석들이 나란히 서서 파밭 같으며, 거기에 새긴 글들이 모두 나라를 위해 복을 기원하는 제문이다. 중략...

동문 밖으로 수백 보쯤 나가면 거북의 등처럼 솟은 커다란 돌이 있는데 여공석(呂公石)과 회선정(會仙亭)이라고 새겨져 있다.'

  

 

<북진묘 패루과 영성문>

패루 주변의 희노애락을 상징하는 표정을 지은 4마리 석수들의 표정이 엄숙한 사원의 분위기와 대조적이다. 뒤돌아서면 연행단들이 지나온, 거슬리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광야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전에 들렀던 태산의 사당인 대묘와 비교하면 도교 사원으로 딸린 산의 신을 모시고 하늘에 제사를 올린다는 점에서는 성격이 같다. 태산 대묘가 고풍스럽고 구조가 궁궐처럼 곁 건물을 배치한 사원인데 비해 북진묘는 곁 건물 없이 깔끔하게 직선으로 배치했다는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설명 없이도 한눈에 구조 파악이 가능했다. 

 

8월 5일에 들른 북경의 동악묘 성격이 많이 달랐다. 주전인 대악전에 태산신인 동악대제를 모신 것은 기존의 도교 사당과 똑같은데 주전을 둘러싼 회랑 같은 76개의 동서 전각에 민간신앙 대상을 모신 것이 달랐다. 다소 조악한 목각상으로 각 사당의 성격을 묘사한 76사를 둘러보면서 상당히 흥미로웠고, 우리나라의 무속, 민간신앙과 비교가 되었다. 시간이 넉넉했더라면 76사의 모든 내용을 담고 싶었지만 결국 일부 밖에 담을 수 없었다.

 

패루는 중국의 궁궐이나 묘, 사당 앞에 세우는 문 모양의 건물인데, 우리는 패루(牌樓)라고 많이 쓰지만 현지 안내문에는 대부분 패방(牌坊)이라고 적혀있다.

 

 

 

<북진묘 돌사자 석상>

다른 사원이나 절에서는 볼 수 없는 귀엽고 익살스러운 표정이다.

 

 

<북진묘 패루에서 바라다 본 전경>

지평선을 거스르는 건물이 전혀 없다. 우리나라의 호남평야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풍경이다. 뒤쪽에 의무려산이 있다.

 

 

<북진묘 신마전>

신마전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종루, 왼쪽은 고루이다.

 

 

<북진묘 신마전(神馬殿) 내부>

안내문에 의하면 명나라 영락제 19년(1421)에 건립했고, 명의 홍치제, 성덕제, 만력제와 청의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광서제 등 역대 황제에 걸쳐 중수되었다고 한다. 신마 두 필과 석비 2기가 있는데 왼쪽은 비문이 없는 무자비이고, 오른쪽은 청나라 광서제 18년에 세운 비이다.

 

 

<북진묘 신마전(神馬殿)의 무자비(無字碑)>

 

 

<북진묘 비림과 어향전>

어향전 앞뜰의 비석군을 비림(碑林)이라고 한다. 이곳 외에 대전 앞뜰과 옆뜰에도 비석이 있다. 원나라부터 청나라에 걸쳐 역대 황제나 고관이 세운 큰 비석들이며 건물 옆의 비까지 합쳐 총 45기가 있다.

연암은 이곳을 일컬어 '파밭 이랑 같다'고 했다. 비석들의 보존상태가 아주 좋고 이수 조각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비석들의 상태와 여유있는 배치, 군더더기 없는 건물 때문에 태산의 대묘보다 이곳이 훨씬 더 눈에 잘 들어왔다.

 

 

<북진묘 어향전 동쪽 앞의 비와 종루(鐘樓)>

서쪽에 같은 형태의 고루(鼓樓)가 있다.

 

 

<북진묘 어향전 앞 비림의 비석들>

 

 

<북진묘 어향전 내부>

북진묘 관련 자료와 사진, 미니어처가 있다.

 

 

<북진묘 대전과 의무려산지신>

정면 5칸으로 중앙에 금빛의 의무려산 산신과 그를 호위하는 시종상이 봉안되어 있다. 3면의 벽에는 의인화한 32개 별자리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광무제를 도와 후한을 세운 공신 32명이라고 한다. 도교 사원 주전에서 벽화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벽화 아래에는 비신만 남은 비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북진묘 대전의 32 성수>

 

 

 

<북진묘 대전 동쪽의 비석들>

 

 

<북진묘 갱의전>

 

 

<북진묘 어향전>

 

 

<북진묘 침궁>

의무려산 신이 휴식을 하거나 잠을 자는 안방 같은 곳이다. 照普光神이라 쓰인 붉은 휘장 아래 남, 녀 신이 좌정하고 있고, 좌우에서 시녀가 보좌하고 있다.

 

 

 

<북진묘 침전 뒤에 있는 臺>

전각 가장 끝 동, 서쪽에 있는 단인데 간자 해독을 못했다. 사슬을 둘러 출입을 금지 시킨 것으로 보아 황제가 제사를 지내거나 하는 신성한 공간이었던 것 같다.

 

 

 

<보천석>

북진묘 서북쪽 끝에 있는 터널 모양의 바위로 여와가 하늘을 메울 때 떨어졌다고 한다. 중앙의 작은 구멍을 통과하면 무병장수한다며 지기님이 자꾸 아프지 말라, 허리 낫게 해달라고 빌며 통과하라고 해서 기어서 통과했다.

 

 

<보천석 뒤에 있는 낭랑전과 내부>

보천석에 얽힌 전설의 주인공인 여와를 모신 곳이라고 하는데 도상 위에는 '조보광불'이라고 적혀 있다. 

 

 

 

<보천석 쪽에서 본 북진묘>

 

 

<북동쪽 끝에서 본 북진묘와 비석들>

 

 

<북진묘 동쪽 밖에 있는 회선정 구역>

바위각자들이 몇 개 있다. 기반산(棋盘山)이라 적힌 바위 위에는 바둑판 모양으로 줄이 그어져 있다.

 

 

<기반산과 북진묘>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돌로 바위 두는 흉내를 내며 저마다 촬영을 했다. 아래에 서체가 돋보이는 각자들이 몇개 있는데 '건륭황제..'를 운운한 각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