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열하일기 코스

열하일기 따라가기14 - 북경 동악묘

큰누리 2016. 9. 18. 17:26

<16. 8/5. 열하일기 따라가기 6일차 일정2>

노룡호텔-영평부 고성-노룡현 이제고리-북경 KFC에서 점심-동악묘-조양문 터를 스쳐지나고-북경 古관상대-북경 남당-북경 유리창-정양문, 전문대가-북경 본가 망경점에서 한식-북경 Holiday Inn Express 투숙.

 

연암은 열하일기에 동악묘의 구조, 건물 배치뿐 아니라 정전인 대악전과 육덕전, 76사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전각이나 신의 명칭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동악묘가 번창했을 때 종사한 사람들의 숫자까지 짐작할 수 있고, 연행단과의 관계도 알 수 있다. 유학자인 연암에게 동악묘에 모신 신들이 마음에 들리 없었고 그런 허접한(!) 신을 위해 거창한 사당을, 그것도 연경에 세운 것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사당을 세운 원나라는 물론 그런 곳을 공을 들여가며 유지한 명, 청에 대해서도 눈과 창자가 없다는 등의 혹독한 비판을 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원나라 인종의 묘비와 강희제의 묘비를 자세히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묘비는 도교와 별도이므로) 통탄하고 있다. 내 눈에 동악묘는 도가의 신과 민속신앙이 혼합된 형태의 사당이었다. 

 

♣ 열하일기에 표현한 연암의 동악묘에 대한 묘사와 소견은 다음과 같다. 

18 리를 가서 미륵원(彌勒院)을 지나 길 북쪽에 무지개 같은 문이 있는데 곧 동악묘이고 가운데 들어가 보니 그 웅장하고 화려하며 씩씩하고 뛰어남은 북진묘보다 배나 낫고 정교함이 믿지 못할 듯 하였다묘위에 겹겹이 지어 거의 17겹이니 맨 위 두 전(殿)이 무릇 50여 칸이다2층 누를 짓고 누 위에 옥황전(玉皇殿)과 나한전(羅漢殿)과 세존전(世尊殿)이 있다옥황전은 곧 정전(正殿)이니 대종성전(岱宗聖殿)이라 현판하고 남녀 소상을 모셨으니 곧 옥황이라 일컫고 천제세(天帝世)라하니 세상이 전하길 원나라 때 소문관학사(昭文館學士) 예원()이 손수 지은 것이라 한다옥황은 하늘 신령인데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위하는 것이 의리에 말이 되지 않고 하물며 감히 소상을 모셔 이름을 옥황이라 하는 것이 도리어 무례하고 방자하지 아니한가?

원나라와 더불어 금일 청인은 책망할 것이 없으니 대명 때에도 중원의 사람이 눈과 창자가 있는 자가 있지 않았을 것이다그 앞 동서 행랑에 바람과 구름과 우뢰와 비를 만드는 각각 귀신이며 혹 신선 관원이며 혹 귀신 사자며 혹 부인이며 혹 아이며 혹 준마를 차려 나열하였는데 그 수를 자못 여기에 기록하지 못하고 그 형상하여 버린 의리를 또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이 묘우(廟宇)를 원나라 인종 연우 연간에 비로소 세우고 명나라 때 중창하였는데 묘정 비석을 살펴보려고 하나 바빠서 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殿)앞 좌우에 팔자각(八字閣) 두 집이 있어 팔랑팔랑 나는 듯하고 누런 기와로 이었는데 강희가 쓴 비를 넣었다전정 안팎에 세운 비는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하고 좌우와 전후에 누전(樓前)과 행랑을 겹겹이 지어 깊숙하고 그윽히 광활하니 비록 수일을 보아도 다보지 못할 것이다.

 

동악은 태산이니 노나라 땅이 있는데 여기다 묘를 쓴 것을 가히 알지 못하겠다. 황명 때에 묘우 안에 도사(道士)가 평상시 지내는 자가 만여 명이고 조석으로 분향하고 경을 외웠는데 이제는 자가 없고 또 명 때에는 우리나라 사행이 여기에 이르면 회동관 지키는 놈이 기한보다 앞서 여기와 기다리다가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였는데 이제는 또한 그러하지 않았다삼사신이 여기부터 사모관대하고 가마를 버리고 말을 타고 북경으로 들어가는 것이 전례였다. 

 

 

<북경 동악묘 유리 패방>

중간에 도로가 지나서 패방이 길 건너편에 있다.

 

 

<북경 동악묘 입구>

북경민속박물관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대부분의 유적지에 박물관이란 부제가 있었다. 배를 걷은 젊은 남자가 거슬려서 지나가길 기다렸지만 한참을 이러고 있고, 일행들은 앞서가서 할 수 없이... 웃통 벗은 모습보다 나은가?

 

 

 

<북경 동악묘 배치도>

 

 

<북경 동악묘 담대문과 수호신>

문을 양쪽에서 지키는 용장, 호장은 도교에서 법을 수호하는 장군이다.

 

 

 

 

 <북경 동악묘의 회화나무와 소원패들> 

 

 

<북경 동악묘 본전인 대악전(岱嶽殿)>

 

 

<북경 동악묘 서비정과 옥마>

 

 

 

<북경 동악묘 비림(碑林)>

연암은 이곳(묘정의 비석들) 보는 것을 놓친 것을 후회했다.

 

 

<북경 동악묘 76사>

동악묘 주전인 대악전을 동, 서, 남으로 둘러싼 회랑형 건물 안에 76사가 있는데 실제로 76개인지 확인은 못했지만 엄청나게 많았다. 각 칸 위에 붙은 현판만 보아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름과 관련된 상황이나 소상을 안치해 놓았다. 소상이 조악하고 칙칙해서 느낌은 좀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표정이나 상황묘사가 아주 재미있어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곳이기도 하다. 건물은 크고 중후하지만 넓고 적막한 경내, 중국 특유의 빨강(Chinese Red), 76사의 소상들 때문에 겁 많은 사람은 대낮이라도 무서워할 만한 곳이다. 

 

76사(司)의 각 칸은 모두 끝에 司가 붙었는데 부재전광사전만 전(殿)이 붙었고, 태산부군 칸은 그냥 '태산부군'이었다. 부재전은 일종의 재물신이고, 광사전은 생명(탄생)을 주관하는 신으로 보이는데 두 칸에 있는 신이 76사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존재로 보인다. 부재전(동), 광사전(서)이 76사 동, 서 전각 중앙에 각각 위치한 것으로 보아 태산부군 칸 맞은편 방향에도 같은 급(이름)의 존재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게재한 외에 태생사, 산신사, 살생사, 충효사, 풍백사, 시약(施藥)사, 망량(魉)사, 추감(推勘)사, 방생(放生)사, 악보(惡報)사 등을 더 확인했다.

 

 

<북경 동악묘 부재전(阜財殿) 내부>

부재전은 원나라 지치 3년(1323년)에 건립되었고, 봉안된 신은 오른쪽의 文財신 비간(比干眞君), 왼쪽의 武財신 조공명이다.

 

 

<북경 동악묘 광사전(廣嗣殿) 내부>

광사전은 원나라 지치 3년(1323년)에 건립되었고, 봉안된 신은 구천감생명소진군, 구천위방성모원군이다. 출생이나 생명과 관련된 신으로 추측된다.

 

 

<북경 동악묘 76사의 승도사(僧道司)>

승려와 관련된 내용이다.

 

 

<북경 동악묘 76사의 적도사(賊盜司)>

도둑과 관련된 내용으로 중앙에 정좌한 신의 눈썹이 치켜올라간 모습이 재미있다. 뭔가 열심히 변명하는 도적들을 언짢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북경 동악묘 76사의 무주고혼사(無主孤魂司)>

행색만 보아도 사고무친으로 외롭고 불쌍한 자들이다.

 

 

<북경 동악묘 76사의 태산부군(泰山府君)>

이 칸 현판에 특별히 '司'가 붙어있지 않다.

 

 

<북경 동악묘 도가 비부계열도>

도교가 이렇게 체계적인 것은 처음 알았다. 내게 도교란 옥황상제, 염라대왕, 수성, 도사 정도이고, 중국의 도교사원 몇 곳을 본 후 벽하원군이나 동악신 등 몇 개의 신이 추가된 정도였다. 

 

 

<북경 동악묘 본전인 대악전(岱嶽殿)>

관리하는 사람이 입구에서 엄숙하게 바라보고 있어서 봉안된 주신(동악대제)을 정면에서 촬영하지 못했다. 대신 전시관에 현재의 모습으로 도금을 하기 전의 사진이 있었다. 손에 홀을 든 모습이 이채로웠다.

 

 

 

 

<대악전과 육덕전(育德殿) 사이의 건물>

본전인 대악전과 후전인 육덕전 사이 동, 서쪽에 건물이 담처럼 막고 있고, 동, 서 양쪽에 각각 욕실과 태자전이 있는데 지나친 듯 하다. 이름으로 보아 욕실은 제를 올릴 때 목욕재계를 하고, 현재 전시실로 사용되는 후덕전 뒤쪽 회랑형 방들은 상주자, 관리인들의 숙소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북경 동악묘 육덕전 후면>

육덕전 뒤편의 회랑 같은 건물은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동악묘는 출입문을 제외하고 사각형 구조로 완벽하게 폐쇄된 형태이다.

 

 

 

 

<북경 동악묘 12지신 전시실>

동악묘 육덕전 뒤 가장 북쪽에 있는 공간인데 이곳은 12지신을 2~3으로 묶어 관련 내용을 전시해 놓았다. 쥐, 소띠 칸과 뱀, 말, 양 칸이다.

 

 

 

 

<북경 동악묘 자료 전시실의 동악묘 미니어처>

 

 

<북경 동악묘 전시실 앞의 회화나무와 소원패>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지지대로 버티는 고목인데 소원패까지 주렁주렁 매달았으니, 명소에서 사는 댓가를 톡톡히 치른다.

 

 

<북경 동악묘 서욕실로 추측되는 건물과 비석들>

대악전 앞 뿐 아니라 대악전과 육덕전 사이에도 이런 비석들이 있다. 공묘가 됐던 도교사원이 됐던 중국의 사당(廟)은 온통 비석 천국이다. 후세에 보는 이야 역사나 금석학 공부에 도움이 되어 좋지만 중국인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유명한 산의 평평한 바위는 모두 각자를 해서 온전한 모습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동악묘 입구 회회나무의 소원패들>

남산타워의 소원을 비는 자물쇠와 세느강의 무슨 다리 역시 소원을 비는 자물쇠로 인해 붕괴 위험이 있어 철거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사진을 보면 그 말이 이해가 된다.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긴 하는데 나는 아직 이렇게까지 복을 빈 적이 없어서... 젊은 현지 가이드도 몇 개의 76사 칸을 찾아다니며 두 손을 모으고 열심히 무언가를 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