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안성 죽산리 봉업사지 당간지주와 오층석탑

큰누리 2017. 6. 6. 14:52

<안성 봉업사지(奉業寺址)>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145-2, 죽산리 145외 41필지 소재.

봉업사지는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이다. 봉업사(奉業寺)는 양주 회암사, 여주 고달사와 더불어 고려시대 경기도 3대 사찰로 꼽히는 거대 사찰이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남쪽으로 갔다가 1363년(공민왕 12) 청주를 거쳐 올라올 때 이 절에 들러 태조의 어진을 인사하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봉업사가 고려시대 태조 왕건의 어진을 봉안한 진전사원(眞殿寺院)이었음을 알 수 있다.

 

봉업사지는 오랫동안 죽산리사지로 알려져 오다가 1966년 경지정리 작업 시 출토된 유물의 명문을 통해 봉업사로 밝혀졌다. 이후 경기도박물관의 3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의 '화차사(華次寺)'가 고려시대의 봉업사로 변환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청주 호족 능달이 관여하였고 고려 광종 때인 963년과 967년에 중창되어 크게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1530년 문헌에 의하면 이 때에 이미 봉업사는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봉업사가 사라진 터에는 그 때의 영광을 그려볼 수 있는 보물 제435호 봉업사지오층석탑,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8호 봉업사지삼층석탑, 제89호 봉업사지 당간지주 등의 문화재가 남아있다. 또한 봉업사지 인근에는 칠장사, 관음당의 장명사지, 미륵당의 매산리사지 등이 남아있어 죽산지역의 불교문화가 융성했음을 알 수 있다.   --현지의 경기도 영남길에 대한 안내문 중(존칭은 평어로 바꿈)--

 

 

<안성 죽산리 당간지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9호.

당간지주는 당간(幢竿)을 고정해 주는 두 개의 지주대를 말하며 절 입구나 법당 앞에 세워져 있다. (幢) 부처와 보살의 공덕과 위신을 나타내는 깃발이고, 간(竿)은 당을 거는 장대로 주로 대나무나 철재로 만든다. 예전에는 목재로 당간지주를 많이 제작한 것으로 보이나 남아있는 목재 당간지주는 많지 않다.

 

죽산리 당간지주는 현재 위치에 쓰러져 있던 것을 1980년에 바로 세워 복원한 것이다. 높이 4.7m, 폭 0.76m, 두께 0.5m로 약 1m 정도의 거리를 두고 한 쌍이 서 있는데 돌기둥의 표면이 거칠고 아무 장식이 없는 소박한 형태이다. 윗부분은 바깥쪽으로 둥글게 다듬었고 앞쪽에는 당간을 고정시키는 직사각형의 홈이 만들어져 있다. 남쪽의 기둥은 윗부분이 1/4 정도 깨져 나간 상태이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형태로 보아 당간지주를 세운 시기는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보물 제435호)과 같은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 당간지주 사이로 보이는 탑은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죽산리 오층석탑)이다.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죽산리 오층석탑)>

지정 번호 : 보물 제435호(1966. 2. 28 지정)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145-8 소재.

봉업사 터에 있는 봉업사지 오층석탑(죽산리 오층석탑)은 경기도의 대표적인 고려 전기 석탑이다. 이곳 봉업사는 태조 왕건의 영정을 모신 국가에서 관할하는 사찰이었는데 조선 초기에 폐사되었다. 이곳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 기와에 화차사(華次寺)란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초에 봉업사란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있는 탑은 그 높이가 6m로 여러 장의 크고 넓적한 돌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단층 기단을 두고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다. 이 탑의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우주 : 隅柱)이 잘 남아있다. 1층 탑 몸돌의 남쪽면에는 작은 감실(龕室)을 만들었는데, 그 감실을 막기 위한 문을 달은 듯한 흔적이 보인다. 

지붕돌은 얇으면서 각 층마다 5단의 지붕 받침이 표현되어 있으며,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여 편평한 느낌을 준다. 현재 상륜부는 남아있지 않다. 기단부가 둔중한 점, 1층 탑신이 다른 층에 비하여 유난히 높은 점 등에서 고려시대 석탑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