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거창 용암정(龍巖亭), 농산리석조여래입상

큰누리 2017. 7. 22. 22:15

<거창 용암정(龍巖亭)>

지정 :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53호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3.

용암정은 1801년(순조 1)에 용암 임석형(龍巖 林碩馨)이 위천(渭川)강변의 바위 위에 지은 정자이다. 1864년에 보수공사를 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중앙에 방 1칸을 만들어 마루 아래에서 불을 땔 수 있게 하였고 마루 둘레에 난간(계자난간)을 설치하였다. 정자 안에는 용암정(龍巖亭), 반선헌(伴仙軒), 청원문(聽遠門), 환학란(換鶴欄)이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다.

계곡의 바위 옆면에는 붉은색 음각으로 '龍巖亭' 새겨져 있다. 용암정 일원은 전통적인 건축경관과 역사, 문화적 환경이 조화를 이룬 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경치가 아름답고 물이 맑을 뿐 아니라 주변에 수승대 관광지가 있어서 거창뿐 아니라 경상남도 서부지역의 대표적인 피서 휴양지이다.

 

 

<거창 용암정(龍巖亭)을 계곡쪽을 제외한 3면에서 본 모습>

용암정 바로 앞에 겹벚꽃이 만개해서 흩날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에 단청이 없어서인지 정자와 주변이 을씨년스러웠다. 계곡도 물이 말라서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했다. 용암정의 계단도 동호정처럼 무심하게 툭툭 치듯 거칠게 깎아 만들었고, 마루 밑에는 아궁이 반대편에 검게 그을린 자국이 보였다.

 

 

 

 

 

<거창 용암정(龍巖亭)의 편액>

이 정도면 전서체? 다른 편액은 모두 읽는 것이 가능했으나 이 편액만 왼쪽의 문(門)을 제외하고 판독(!)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이름을 파악한 3개 용암정(龍巖亭), 반선헌(伴仙軒), 환학란(換鶴欄)를 제외하면 청원문(聽遠門)만 남는다. 오른쪽의 두 자가 의심스럽지만 정자 안의 판방 문 위 대들보에 달려 있기까지 하니 일단 청원문(聽遠門)으로 해 두고... 

 

 

 

<거창 용암정(龍巖亭) 내부에 걸린 편액>

첫번째 사진의 정면은 용암정(龍巖亭), 오른쪽은 반선헌(伴仙軒)이다. 두 번째 사진의 편액은 환학란(換鶴闌)이다.

 

 

 

<거창 용암정(龍巖亭)의 대들보, 서까래>

 

 

 

<거창 용암정(龍巖亭)의 액자들>

 

 

 

 

 

<거창 용암정(龍巖亭)의 판방>

3면이 나무판으로 구성되거나 반대로 1면만 막히고 3면이 뚫린 다른 정자의 판방과 달리 용암정은 4면 모두 문살 안에 문이 있는 형태였다. 물론 1면만 막히고 3면이 뚫린 판방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접이 형태의 문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거창 용암정(龍巖亭)의 판방과 우물마루>

 

 

<거창 용암정(龍巖亭)에서 본 위천(渭川)쪽 풍경>

 

 

<위천(渭川)쪽으로 내려가며 본 용암정>

 

 

 

<위천(渭川)쪽에서 본 용암정>

바위에 음각으로 '龍巖亭'이라 새기고 붉은 칠을 했다. 위천은 함양 상림 앞을 지나는 그 위천일 듯...

 

 

 

<용암정을 등지고 본 왼쪽(북서쪽) 방향의 위천(渭川)>

 

 

 

<용암정을 등지고 아래에서 본 오른쪽(동남쪽, 수승대) 방향의 위천(渭川)>

 

 

 

<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農山里 石造如來立像)>

지정 : 보물 제1436호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산53번지.

이 불상은 광배받침대(臺座)를 모두 갖춘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석불이다. 바위를 원추형으로 쪼아서 불상과 광배가 하나의 돌에 조각되었다. 머리 부분의 상투모양(육계)은 높고 뚜렷하게 표현하였다. 알맞은 이목구비를 갖춘 둥근 얼굴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당당한 가슴과 함께 부드러운 경사를 이룬 유연한 어깨, 잘록한 허리와 날씬한 다리, 얇은 옷자락(天衣) 속에 드러난 사실적인 몸매는 불상의 뛰어난 입체감을 더해준다. 여기에 양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通肩)은 가슴 위에 몇 갈래의 U자형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다가 허리 부분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두 다리에 살짝 밀착되어 작은 U자를 그렸다가, 종아리 부분에서 큰 V자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옷자락의 표현법을 인도의 우드야나(Udyana)왕 여래상 형식이라 부른다. 

그 유래는 석가모니가 성불한 후 한 때 도리천(忉利天)에 올라가 그곳에서 다시 태어나(往生) 어머니에게 설법하였는데, 그때 밧사(Batsa)국의 우드야나왕이 부처가 잠시라도 지상에 없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150cm 크기의 여래상을 만들어 공양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불상이 최초의 부처상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그 여래상의 옷자락의 조각형식이 이 석조여래상 같은 형태였다고 한다. 이 같은 옷자락의 표현은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에 나타나고 있다. 몸 전체를 감싼 광배에는 불꽃무늬를 새겼고,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받침대는 심하게 마멸되었으나,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조각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다.   --현지 안내문--

 

보존상태는 좀 불안하다 싶었지만 이번의 함양, 거창지역 답사에서 본 석불 중 가장 아름다운 불상이었다.

 

 

<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農山里 石造如來立像)을 사면으로 돌아가며 본 모습>

도로에서 산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불상이 등을 지고 있다. 광배의 왼쪽과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받침대 부분의 마멸이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