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21.01. 제주 성읍 마을의 남문과 민가

큰누리 2021. 4. 11. 21:50

 

 

<제주 성읍 마을>

국가 민속 문화재 제188호(지정일: 1984. 6. 12.).

제주 성읍 마을은 정의현의 읍치(고을 군아가 있던  곳)인데, 읍성 안의 관청을 비롯하여 객사, 정의향교, 느티나무와 팽나무(천연기념물 제161호), 돌하르방, 마을의 민가(국가민속문화재) 등이 잘 남아있어서 제주도의 민속과 문화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조선 초 제주에는 한라산 북쪽 한 곳에만 관아가 있어 남쪽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관아를 왕래하는데 불편이 많았다. 이에 조선 태종 16년(1416) 한라산 남쪽 약 36여 km(90여 리)를 동서로 나누어 동쪽에는 정의현, 서쪽에는 대정현을 설치하고 조선 후기까지 유지했다. 그 중 정의현은 처음에는 성산 고성리에 읍치를 두었으나 큰 마을과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어서 세종 5년(1423)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읍성의 규모는 동서 160m, 남북 140m, 둘레 약 1,200m에 달하며 높이는 약 3m 정도이고, 남, 동, 서 세 군데에 성문이 있으며, 방어시설로는 바깥쪽으로 돌출된 'ㄱ'자 형태의 옹성과 성문을 두었다.

 

<제주 성읍 마을 문화재 현황>

♣ 국가 지정 문화재

1. 국가민속문화재

  - 제주 성읍 마을(제188호)              

  - 제주 성읍 마을 고평오고택(제69호)

  - 제주 성읍 마을 한봉일고택(제71호)

  - 제주 성읍 마을 객주집(제68호)      

  - 제주 성읍 마을 고창환고택(제70호)

  - 제주 성읍 마을 대장간집(제72호)   

2. 중요무형문화재 - 제주민요(제95호)

3. 천연기념물 - 성읍리 느티나무 및 팽나무군(제161호)

 

 도 지정 문화재

1. 유형문화재 - 정의향교(제5호)

2. 무형문화재 - 오메기술(제3호), 고소리술(제11호), 초가장(제19호), 영장소리(제22호)

3. 민속자료 - 돌하르방 12점(제2-22 ~ 33호) - 동, 서, 남문에 각 4점씩 배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제주 성읍 마을 안내도>

 

 

<제주 성읍 마을 남문과 정의골 돌하르방>

정의골 돌하르방은 동, 서, 남문에 있다고 하고, 그에 따른 지정이 모두 다른 듯 한데 내가 확인한 것은 동, 서문이었다. 서문 밖 좌우에 있는 4개의 돌하르방에는 각각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일련번호가 있었다.

 

 

 

<제주 성읍 마을 남문을 바깥 정면에서 본 모습>

 

 

<제주 성읍 마을 남문 안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본 성곽과 마을>

 

 

<제주 성읍 마을 남북을 관통하는 중심도로> 

 

 

<제주 성읍 마을 고평오 고택과 연자방아>

고평오 고택 : 국가민속문화재 제69호(1979. 1. 26.).

제주 성읍 마을 고평오 고택은 18세기 말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당을 중심으로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가 마주하여 서 있고, 마당 동쪽에 모거리(안거리와 밖거리 사이에 가로 놓인 집채)가 있다. 마당 서쪽에도 모거리가 있어서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으나 1970년대 중반에 헐렸다.

안거리는 3칸으로 왼쪽에 정지(부엌), 오른쪽에 안방과 고팡(고방)을 두었다. 중앙의 상방(대청)에 호령창이라는 쌍여닫이창이 따로 달려 있는데 이는 제주도 남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가옥 형태이다. 밖거리는 정의고을 당시부터 면사무소가 표선리로 옮겨지던 근래까지 관원들이 숙식하던 곳이었다고 하며, 제주도의 여느 집 구조와는 다르게 상방(대청)이 동쪽으로 치우쳐져 있고 연이어 2칸의 방을 두었다.

 

두 번째 사진은 고평오 고택에 있던 것으로 연자방아라고 이름은 붙였지만 바퀴가 바닥이 아닌 위에 있어서 맞는지 모르겠다.

 

 

 

<제주 성읍 마을 객주집과 마당에서 말리는 귤>

객주집이나 객사는 요즘의 여관 같은 개념이지만 사진의 객주집은 서민들이 출입하는 곳이고, 정의현 객사 같은 관청은 임금에게 지방관이 한 달에 2번씩 배례를 올리거나 중앙관리가 내려왔을 때 머무는 숙소로서의 기능을 하는 곳이었다. 마당에서 말리던 귤은 서귀포올래시장에서 사서 우려 먹었는데 값이 싸고 맛도 생각보다 진해서 좋았다.

 

 

 

<제주 성읍 마을의 성읍교회>

 

 

<제주 성읍 마을 민가와 골목 풍경>

 

 

 

 

<제주 성읍 마을 꽃나린공방과 오메기술 담그는 집>

오메기떡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오메기술도 있다!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3호 오메기술 기능보유자가 운영하는 곳이라고...

 

 

 

<제주도 방언>

--사진 속의 제주도 방언--

* 혼저옵서, 제주도 사투리로 말 호난 → 어서 오십시오, 제주도 사투리로 말하니까.

* 무신 거옌 고람 신디 몰르쿠게?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지요?

* 게메 마씀, 귀 눈이 왁왁하우다 그러게 말입니다, 귀와 눈이 캄캄합니다.

* 경해도 고만히 생각호멍 들으민 호끔씩 알아집니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하며 들으면 조금씩 알게 됩니다.

* 제주도 사투리 촘말로 귀하고 아름다운 보물이우다 → 제주도 사투리 정말로 귀하고 아름다운 보물이우다.

* 편안 하우꽈? 제주도에 오난 어떵 하우꽈? 편안하십니까? 제주도에 오니 어떠하십니까?

* 촘말로 좋수다, 공기도 맑고 정말로 좋습니다, 공기도 맑고.

* 산이영 바다이영 몬딱 좋은게 마씀 산이랑 바다랑 모두가 좋습니다.

* 호꼼만 이십서게 조금만 계십시오.

* 몽케지 마랑 혼저 오라게 꾸물대지 말고 어서 오너라.

* 혼저 와 먹읍서 어서 와서 먹으십시오.

* 무사경 몽캐미꽈? 혼저 옵서게 뭘 그리 늦장 부리십니까? 빨리 오십시오.

* 무사 경 다울렴디? 왜 그렇게 재촉하느냐?

 

 

<제주도 마방과 정낭>

첫 번째 사진의 마굿간 안에는 실제로 말이 들어있다. 두 번째 사진은 정낭으로 정낭은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 혹은 문앞에 대문 대신 가로로 걸쳐놓는 길고 굵직한 나무이다. 3개가 모두 가로로 걸려있으니 집에 사람이 없다, 혹은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듯...

 

 

 

<쇼파에서 느긋하게 휴식 중인 댕댕이>

 

 

<정의향교 앞 골목과 동백나무>

내가 들렀을 당시 제주도는 동백꽃이 한창이었다. 사진의 동백은 꽃동백이 아니라 전통적인 제주도의 동백꽃이다. 동백꽃은 주로 국가(군경)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사건인 4.3사건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제주 성읍 마을 고창환 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 70호(1979. 1. 26.).

제주 성읍 마을 고창환 고택은 정의향교와 이웃해 있으며, 19세기 초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 여인숙으로 쓰였던 적이 있어 '여관집'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여관으로서 특별한 형태는 찾아볼 수 없고, 안거리(안채)와 마당을 가운데 두고 헛간채가 마주한 단출한 집이다. 큰길에서 올레길을 따라 들어가면 정낭(대문 대신 가로로 걸쳐 놓는 긴 나무)도 없이 마당으로 들어서게 된다.

안거리는 제주도의 전형적인 3칸 집 구성을 잘 보여준다. 상방(대청마루)을 가운데 두고 구들과 고팡(고방)이 붙어있다. 정지(부엌) 공간이 비교적 좁고, 정지 안쪽으로 작은 구들이 있으며 뒤뜰에 텃밭이 있다. 헛간채는 예전에 멍석이나 남방애(통나무로 만든 제주 특유의 절구) 따위를 두었던 공간이다.

 

 

 

<제주 성읍 마을 흑돼지 관람(예정)지>

통시에 있는 돼지 말고 어떤 점 때문에 '흑돼지 관람'을 해야 하는지 궁금했지만 준비 중이라 패스...

 

 

<제주 성읍 마을의 흙담과 바람에 대비한 처마>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비가 오고 바람 부는 날을 모두 거쳤는데 삼다(三多 : 돌, 여자, 바람)라더니 바람이 잦고 세기도 엄청났다. 초가(억새)지붕은 사진처럼 단단히 얽어매지 않으면 다 날아가고 없을 성 싶었다.

 

 

<제주 성읍 마을 흑돼지 초가 구경하는 집>

예전에는 이른바 '똥돼지'로 불리는 재래식 화장실 아래에서 사는 제주도 돼지를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위생적인 이유로 현재는 특정한 곳에서만 보여주는 것 같다. 성읍마을에만 이곳을 포함해 2곳이 있는데 다른 한 곳은 '준비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