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국립항공박물관 야외 전시장

큰누리 2023. 4. 17. 19:09

코로나로 모든 여행길이 막히다시피 했던 2021년 여름, 제주도에 귀농(!)한 동생의 초청으로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열흘 정도 머무르다 왔다. 당시 외국은 물론 국내 여행도 거의 불가능했고,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는 것만으로도 코로나에 감염이 되지 않을까 초긴장을 했었다. 어쨌거나 무사히 동생 집에서 머물다 돌아오는 길에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 밖에 둥그렇고 눈에 띄는 건물이 보였는데 국립항공박물관이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박물관이라면 어지간히 돌아다녔는데 집에서 가까운 이곳에 이렇게 큰 박물관이 있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유는 국립항공박물관이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2020년 7월 5일에 개관했기 때문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박물관을 들렀는데 그날은 휴관일이라 야외 전시장만 보았다. 야외 전시장의 항공 관련 시설은 낯이 설었지만 전시된 비행기나 부품, 비행사들 조형물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내부는 1년쯤 뒤에 이곳에서 열린 컬로퀴엄(특별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자세히 보았다. 

 

 

≪김포공항의 역사

국립항공박물관이 건립된 김포국제공항(이하 김포공항)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항이자 대한민국의 항공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김포공항의 역사는 일본이 군비행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1939년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미군의 전용 비행장으로 사용되었으며, 1948년 대한민국 공군(당시 항공기지부대)이 근무를 시작하면서 1949년 항공사관학교(공군사관학교 전신)가 창설된 곳이다.

 

김포공항은 1958년 대통령령(제1319호)에 의해 국제기준의 민간 항공기가 드나드는 국제공항으로 지정되었다. 1960년 종합청사 신축, 1980년 1988년 국제선 여객터미널이 각각 들어서면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등의 국제행사 등을 성공리에 마치고 대한민국의 관문공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01년 3월 인천국제공항이 개항되면서 국제선 업무를 이관하였지만, 2003년 김포-하네다 노선 신규 취항을 시작으로 한·중·일·대만의 주요 도시를 잇는 비즈니스 도심공항으로서 위용을 되찾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대한민국 항공교통의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립항공박물관>

위치 : 서울특별시 강서구 하늘길 177(공항동 1373-5번지)

이용 시간 : 화요일~일요일 10:00~18:00(입장 마감 17:00)

휴관일 : 1월 1일, 설·추석,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월요일은 개관하고 다음날 평일에 휴관)

이용 요금 : 무료

 

국립항공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항공 분야 국립박물관이다. 2020년 7월 5일 한인비행학교 개교 100주년에 맞춰 개관했다. 박물관은 항공역사, 항공산업, 항공생활, 야외전시, 기획전시로 나눠지며 국내, 해외의 항공역사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우리 항공사의 전시물과 실물 비행기 16대가 전시되어 있으며, 항공사별 항공기 등록 현황, 조종사와 승무원의 현황, 각종 체험 등 미래 항공 기술 발전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국립항공박물관 활공각 제공시설>

항공기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계기착륙시설 중 활공각(3도)의 정보를 항공기에 제공하는 활공각 제공시설(Glide Path; GP)이다. 활주로 중심의 정보를 제공하는 방위각 제공시설과 함께 항공기가 활주로에 정밀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국립항공박물관 방위각 제공시설>

항공기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계기착륙시설 중 활주로 중심 정보를 항공기에 제공하는 방위각 제공시설(Localizer; LLZ)이다. 활공각의 정보를 제공하는 활공각 제공시설(GP)와 함께 항공기가 정밀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국립항공박물관 진입등 시스템>

진입등 시스템(Approach Lighting System; ALS)은 착륙하려는 항공기에게 진입로를 알려주기 위해 진입 구역에 설치하는 항공 등화로 흰색 및 적색으로 구성된다. 야간은 물론 기상이 좋지 않은 주간에도 밝은 불빛으로 항공기가 활주로까지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유도해준다.

 

 

<국립항공박물관 풍향등>

풍향등(Illuminated Wind Direction Indicator)은 항공기에게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기 위한 항공등화 중의 하나이다. 섬유로 된 지시기와 야간 안내를 위한 조명등이 함께 있어 풍향등이라고도 한다. 항공기는 자연조건 중 바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시설이며 주로 활주로 중앙부, 계류장 부근, 착륙 지점 부근에 설치된다.

 

 

<국립항공박물관 진입각 지시등>

진입각 지시등(Precision Approach Path Indicator; PAPI)은 항공기가 착륙을 위해 활주로에 진입할 때 수직 활공각이 적정한지 여부를 시각적으로 알려주기 위해 활주로의 접지(착륙) 지점 부근에 설치하는 항공등화이다. 전파로 수직 정보를 제공하는 활공각 제공시설과 달리 조종사에게 직접 시각적 정보를 제공한다.

 

 

<국립항공박물관 전방향 표지시설>

전방향 표지시설(VHF Omni-directional Radio Range; VOR)은 비행하고 있는 항공기에게 현재 진행 방향에 대한 위치정보를 주기적으로 제공하여 항공기가 정해진 항로대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모든 방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장비이다.

 

 

<국립항공박물관 항공등화(?)>

항공등화란 불빛 색채 또는 형상을 이용하여 항공기의 항행을 지원하는 시설이다. 종류로는 비행장 등대, 활주로등, 활주로시단등, 접지구역등, 선회등, 유도로등, 정지선등 착륙방향 지시등 등이 있다.

 

 

<국립항공박물관 공항지상감시 레이더>

공항지상감시 레이더(Airport Surface Detection Equipment; ASDE)는 공항 내 항공기의 지상 이동공간(활주로, 계류장 등)에서 항공기와 모든 차량의 이동을 감시하여 위험상황 등 사전 경보를 해주는 시설로 특히 야간이나 안개 등으로 시야 확보가 어려울 때 안전을 책임지는 장비이다.

 

 

<국립항공박물관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과 비행사 6인>

왼쪽부터 장병훈, 오림하, 이용선, 노백린, 이초, 이용근, 한장호.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그해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수립되자 미주에 있던 한인 자치단체로 독립을 열망하고 있던 '대한인국민회'는 발 빠르게 호응하여 '청년혈성단'을 조직하였다. 청년혈성단은 조국 독립을 위한 방법으로 군사기술을 익히는 것에 중점을 두었고, 적은 인원으로도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비행사가 되기 위해 LA 인근의 '레드우드 비행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시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군무총장(현재의 국방부장관) 노백린(1875~1926)은 미주 한인들을 대상으로 임시정부의 설립을 알리고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기 위해 동포사회를 순회하고 있었다. 그는 레드우드 비행학교에서 청년혈성단을 만나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우리나라 항공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임시정부 한인비행학교(1920년)'를 설립하게 되었다.

당시 노백린 장군과 뜻을 함께한 청년혈성단 단원들은 임시정부 한인비행학교의 설립 소식을 독립신문에 전하기 위해 기념사진을 남겼고, 아래 사진의 동상은 그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다. 

 

 

<국립항공박물관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최초 비행사 안창남>

조선총독부를 폭격하려고 했던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1901~1988)은 숭의여학교 3학년이던 1919년에 3.1운동에 가담하였다가 구금되었고,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독립자금 모금과 송금에 앞장서다 체포되어 6개월간의 옥살이를 했다. 1920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중 이시영 선생 등의 추천으로 1923년 중국 운남비행학교에 입학하였고, 1925년 3월 졸업과 동시에 비행사 시험에 합격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되었다.

그녀는 중국 항공사령부 소속 비행사가 되어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중국 육군참모학교의 교관으로 활약하였으며, 비행기록이 총 7,000시간에 이르렀다. 1943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군설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거, 해방 후에는 고국으로 돌아와 국화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하긷도 했다.

 

조국의 하늘을 최초로 날았던 항공독립운동가 안창남(1901~1930)은 1917년 미국인 아트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조종사의 꿈을 키우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오쿠리 비행학교'에 입학하였다. 6개월간의 교육을 마친 후 1921년 일본 비행면허시험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참가하여 1등으로 합격했고, 1922년에는 도쿄-오사카 간 비행우편대회에 출전하여 최우수상을 차지하였다. 그해 12월 동아일보가 안창남을 초청하여 '고국방문 비행대회'를 개최하였고, 그는 한반도를 그린 자신의 비행기 '금강호'를 타고 서울을 날아 한국인 최초로 조국의 하늘을 비행한 인물이 되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의 잔악한 만행을 목격한 후 자신의 조종술을 조국독립에 바치기로 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4년 중국군 소속 산서성 비행학교의 교장이 되어 항일운동을 위한 조종사 양성에 매진하던 중 기체결함으로 추락하여 1930년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다.

 

 

<국립항공박물관 B-757 주날개를 사방에서 본 모습>

미국 보잉사가 제작한 B757-200의 오른쪽 주날개이다. B757-200은 쌍발 엔진의 제트여객기로 최대 길이 약 47m, 양 날개 너비 38m에 이르는 중형급  항공기이며, 조종사와 승무원을 포함한 최대 탑승 인원은 202명이다. 1979년 첫선을 보였고, 2004년 단종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 비행학교(윌로우스) 훈련생과 훈련 비행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 비행학교 기념조형물>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 비행학교(윌로우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 비행학교 설립자와 재정 지원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 비행학교(윌로우스) 교관, 감독, 훈련생들>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장교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