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상주 傳)사벌왕릉과 고령가야 태조왕릉, 화달리 삼층석탑

큰누리 2012. 6. 7. 17:51

제3차 가야 유적 답사, 참 재미있었다! 유적답사를 빙자해서 살랑거리는 남녘의 봄 내음을 실컷 맡은 것도 크나큰 행운이었고 삼국, 특히 신라에 치어 그간 존재감이 적었던 가야를 고분을 통해서나마 재발견한 것도 그랬다. 유적의 질로 보아 삼국에 비해 손색이 없고 다량의 질 좋은 철을 생산했으면서도 왜 가야가 멸망했는지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눈 것(고상하게 말하자면 현장토론), '고분을 봐서 고분고분해졌다' 등의 돈키호테님의 어록을 음미하는 것도 즐거웠다. 게다가 우리는 돈키호테님의 자칭 탄생지(ㅋㅋ...) 그 지척에 있는 나제통문을 답사하는 행운을 누렸다.

 

가야의 고분은 참 아담하고 사랑스럽다. 내가 뱉은 말이지만 고분을 사랑스럽다니, ㅎ... 그 동안 답사한 신라나 고구려, 고려, 조선의 무덤이 상대적으로 정제되거나 규모가 컸다면 가야의 고분은 산줄기를 따라 자연스럽고 아담한 모양새로 떼지어 있어서 정겨웠다.

 

교과서나 사서에서는 삼국 귀퉁이에서 고분 출토 굽다리 토기 몇 점을 감상한 게 가야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는데 현장 답사를 하고 고령의 대가야왕릉전시관 유적을 둘러보니 섬세함이나 양이 초라하기만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새삼 느낀 것이지만 그래서 책상으로만 대하는 역사가 아니라 답사가 꼭 필요한 것이다. 흔히 발해를 잃어버린 역사라고들 하는데 가야가 바로 잃어버린 역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늦었지만 그래서 앞으로라도 더 많이 밝혀지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행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씨, 따사한 햇살과 맑은 바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개나리와 벚꽃, 동백,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배려하는 일행들 때문에 귀경 길의 주차장 같은 정체도 잊을만큼 이번 답사는 즐거웠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았던 것은 돌을 섞어 쌓은 고분이나 재실의 흙담과 언덕을 따라 봉긋하게 자리 잡은 가야의 고분들이었다.

 

 

<상주 傳 사벌왕릉의 제비꽃과 냉이꽃> 

 

 

<상주 傳 사벌왕릉 안내판>

지정: 경상북도 기념물 제25호.

소재지: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 산 44-1.

이 능은 상주에 있었던 소국인 사벌국의 왕릉으로 전하고 있다. 주변에는 삼국시대 고분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봉분의 크기는 장축 16m, 단축 직경 14.5m, 높이 4.5m인 동, 서향의 타원형 봉토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이 왕릉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서편에 있는 신도비에는 상산(商産) 박씨의 시조인 신라 경명왕의 아들 박언창(朴彦昌)이 신라말(917년)에 사벌군(沙伐君)으로 책봉되어 있다가 후삼국 동란기에 사벌국을 세웠고 이 능이 그의 묘라는 내용이다.

 

그 동안 황폐된 채 돌보지 않다가 조선 현종 이후에 누차에 걸쳐 국가에서 수축 또는 보수를 해왔고, 1825년 상주목사 민종열이 현재와 같이 보수하였다. 인접한 헌신동 고분군은 5세기 후반 이후에 해당하는 큰 석실 봉토분들이 밀집 분포되어 있어서 당시 이 지역 세력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상주 傳 사벌왕릉>

 

 

<상주 傳 사벌왕릉 신도비와 사적비>

 

 

<상주 傳 사벌왕릉 바로 앞에 있는 화달리 삼층석탑>

지정: 보물 제117호

소재지: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 422.

화달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기의 석탑으로 단아한 모양새도 일품이지만 기단 덮개 돌 위의 목 없는 불상이 인상적이다.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의 3층 석탑으로 높이는 6.24m이며, 건립 연대는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8미의 장대석으로 구축한 지대석 위에 탑을 세웠는데, 기단부는 단층으로서 하층기단 면석을 생략한 형식이다. 이는 상주나 문경지방에 분포된 탑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대석은 마치 하층기단의 덮개돌과도 같이 그 상면에 높직한 원호와 낮은 각형의 핌을 조출하여 그 위에 기단 면석을 받고 있으며, 상면 네 귀퉁이에는 약간의 경사로 합각이 뚜렷하다(문장 한 번 되게 어렵다!)기단 면석은 8미석으로 짜여지고 있고 각면에는 모서리 기둥과 안기둥이 정연하다. 기단 덮개돌은 다른 석탑에 비하여 이례적으로 넓어서 신부와 면석보다 상당히 내밀어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현재 기단  덮개돌 위에 있는 목 없는 불상 1구와 석탑 부재는 이 석탑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 정면과 측면>

 

 

 

<상주 傳 사벌왕의 재실 숭의각, 영사전, 영사각> 

 

 

<상주 傳 사벌왕의 재실 숭의각, 영사전, 영사각의 돌담> 

최근에 보수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과 흙, 담장의 곡선이 너무나 곱다.

 

 

<상주 傳 사벌왕의 재실 숭의각, 영사전, 영사각> 

 

 

<고령가야 태조왕릉>

지정: 경상북도 기념물 제26호

소재지: 상주시 함창읍 증촌리 7번지.

이 능은 서기 45년 낙동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6가야(六伽倻) 중 하나로 함창, 문경, 가은 지방을 영역으로 하는 고령가야의 태조왕릉이다. 조선 선조25년(1592) 당시 경상도 관찰사 김수(1537~1625)와 함창현감 이국필(李國弼) 등이 무덤 앞에 묻혀있던 묘비를 발견하여 고령가야릉임을 확인했다고 되어 있다. 그후 조선 숙종 38년(1712) 왕명으로 묘비와 석양 등의 석물을 마련 후 후손들에 의해 여러 차례 묘역이 정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태조왕릉은 왕릉과 왕후릉이 300m 떨어져있다. 왕릉 앞에 고릉관, 숭정각, 만세각, 자금문, 가야문 등의 건물들이 많은 점이 건립 연대를 떠나 이채롭다. 왕비릉은 현재 봉분 공사중이다.

 

 

 <상주 고령가야 태조왕릉 입구의 홍살문>

홍살문 오른쪽 기둥 뒤로 보이는 문이 왕릉 입구이다.

 

 

 <상주 고령가야 태조왕릉, 고릉관과 가야문, 숭정각 >

 

 

 <상주 고령가야 태조왕릉의 개나리>

 

 

 <상주 고령가야 태조왕릉, 만세각>

 

 

 <상주 고령가야 태조왕릉>

 

 

 

 

 <상주 고령가야 태조왕릉에서 촬영 중인 우리 일행>

이 포즈, 이 주인공이 내 사진에 아주 많이 등장한다.ㅎㅎ...

 

 

 <상주 고령가야 태조왕릉의 꽃다지>

 

 

 <상주 고령가야 태조왕릉에서 왕후릉으로 가는 길의 살구꽃>

소재지는 상주군 함창읍 증촌리.

복잡한 골목길을 따라 왕릉에서 왕후릉까지 300m 떨어진 마을 길을 걸어올라가면서 살구꽃도 보고, 매화도 보고, 견공과 우공도 보고... 남도는 온통 꽃대궐이다.

 

 

 <상주 고령가야 태조왕릉에서 왕후릉으로 가는 길의 광대나물>

 

 

 <상주 고령가야 태조왕릉에서 왕후릉으로 가는 길의 견공>

 

 

 <상주 고령가야 태조왕릉에서 왕후릉으로 가는 길의 우공>

 

 

담장에 걸린 이 통의 용도는?

 

 

 <상주 고령가야 태조왕릉에서 왕후릉으로 가는 길>

바닥의 노란 꽃다지와 짙푸른 탱자나무 울타리가 너무 예쁘다.

 

 

 <상주 고령가야 태조왕후릉>

봉분이 검은 비닐에 쌓여 있고 문을 잠궈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