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영주 부석사 - 입구에서 범종각

큰누리 2012. 12. 4. 02:07

영주 부석사는 지난 10월 27일에 봉화 청량산과 묶어 다녀왔는데 워낙 이야기거리가 많아 글을 올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부석사에 대한 자료를 대충 찾았는데도 A4용지로 14쪽이었다. 

부석사 입구 주차장에서 내린 후 어디로 가야 부석사인지 감이 안 잡혀 잠시 헤맸다. 오른쪽으로 사람들을 따라 가니 부석사 안내판이 있고 시골길 복판에 일주문이 서있었다. 보통 사찰은 산 중턱 이상에 있기 마련인데 상식을 깨는 상황이었다. 일주문을 지나자 길 양쪽의 은행나무들이 막바지 단풍잎을 비바람에 우수수 떨구고 있었는데 전국에서도 소문난 가로수길이라고 한다. 당시 서울은 단풍이 들락말락 하는 시기였다.

 

푸른 탱자나무와 붉은 단풍이 이어지고 보물 제255호 당간지주가 보였다. 부석사 창건 당시 즉, 신라 문무왕 때 세운 것인데 보존상태가 아주 좋았다. 부석사의 유물을 시대별로 볼 때 신라 때 것으로는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보물 제249호 부석사삼층석탑과 동서쌍탑, 국보 제17호인 석등 나머지 1기, 자인당에 봉안된 3구의 석불 좌상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로는 무량수전의 주존불인 소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 벽화 6점(국보 제46호), 원융국사비(경상북도 유형문화제 제127호), 보물 제735호 부석사고려각판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 것으로는 괘불이 있다.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현존하는가장 오래된 건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은 긴 수식어가 필요없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이며 조사당(국보 제19호)의 벽화 또한 현존하는 사찰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부석사는 초행이었는데 천왕문부터 석축을 쌓아 거의 수직으로 무량수전까지 오르는 점이 일단 기억에 남았다. 석축은 비탈을 깎고 평지를 고르는 과정에서 만든 것이지만 화엄종이라는 종파의 특성상 극락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인 9품 만다라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천왕문에서 요사체로 오르는 3단은 하품단, 그곳에서부터 범종루까지의 3단은 중품단, 범종루에서부터 3단을 올라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에 이르는 곳은 상품단, 즉 극락을 상징한다. 거의 수직으로 계단을 올라야하는 절의 독특한 배치와 일정하게 앞, 혹은 위에서 다가오는 전각의 날렵한 처마와 기둥들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부석사 안내도>

안내도에는 가람의 배치가 거의 일직선으로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범종각에서 안양루 사이의 공간은 오른쪽으로 방향이 꽤 틀어져있다. 비, 바람이 부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많아 변변한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특히 무량수전에서는 사람과 우산에 가려 소조아미타여래좌상만 겨우 보고 한국 목조건축을 대표한다는 천정, 바닥의 녹유전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부석사 일주문>

태백산부석사라는 현판이 좀 의외이다. 실제로 태백산은 서쪽으로 꽤 떨어져 있고 부석사의 뒷산은 봉황산이다. 범종각의 현판에는 봉황산부석사라고 써있다. 여기서는 절이 어디에 숨었는지, 앞에 있을 거란 짐작 밖에 안 된다.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은행나무 길이 열린다. 길 양편에 사과밭이 늘어서 있어 주민들이 울타리 너머나 길가에서 추수한 사과를 팔기도 한다.

 

 

<은행나무길이 끝난 지점의 탱자나무와 단풍나무길>

길 한쪽으로 은행나무 사이로 느티나무, 단풍나무가 섞여 마지막 가을을 장식하고 있다. 다른 한쪽으로는 사과밭 울타리로 두른 푸른 탱자나무가 붉은 단풍들을 도드라지게 받쳐준다. 

 

 

 

<부석사 입구의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지주가 약간 부실한 감이 없지 않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둥근 홈에 깃대를 꽂고 깃발을 매달아 행사를 알렸을 것이다. 문무왕 16년(676) 창건 당시의 유물이다.

 

 

<절로 들어가는 문(천왕문)과 석축>

부석사에서 처음 만나는 석축이다. 굵은 돌 사이에 잔돌을 끼워가며 자연스럽게 쌓았다. 천왕문을 지나면 신축한 또 다른 문이 보이고 좌우로 계단을 대체할 경사진 길이 있다. 

 

 

 

<천왕문을 지나 만나는 새로 만든 문과 석축>

석축은 원래부터 있었음이 분명한데... 문 좌우의 구조로 보아 사천왕상이나 인왕상이 목책 안에 있어야 할 것 같다.

 

 

<문 너머로 보이는 범종각>

우산들 때문에 이미지가 흐트러지긴 했지만 그 전에는 석축만 눈에 들어오다 이 문을 지나면 비로소 부석사란 절이 어떤 곳인지 실감이 난다. 이 문과 범종각 사이 좌우로 삼층쌍탑과 요사채, 소소한 건물들이 집중되어 있다.

 

 

<삼층쌍탑 중 동탑>

통일신라 때의 작품으로 동, 서탑의 크기나 모양이 비슷하다. 무량수전 동쪽의 삼층석탑은 보물이고 이 쌍탑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이다. 이 탑은 부석사 동쪽 일명사 터에서 1966년에 옮겨온 것으로 서탑에 익산 왕궁리 오층탑에서 가져온 석존사리가 분안되어있다고 한다. 제 자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부석사 범종각>

이런 수준의 사찰 건물이 처음은 아닐 텐데 위로 우러러보는 구조 때문인지 무척이나 웅대하고 처마가 날렵해 보였다. '드디어 배흘림기둥을 만났구나' 라는 감탄을 하며 자석에 끌리 듯 앞으로 전진... 이 위풍당당한 범종루가 너무 멋있어서 압도 당하는 느낌이었다. 일주문과 달리 현판에 봉황산부석사라고 되어있다.

 


  

<범종각 아래(바닥)>

목조건물이나 누각의 짜임새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견고한 짜임새와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에서 느껴지는 소박함이 동시에 와닿는 공간이었다.

 

 

<범종각>

질서정연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조는 천정으로도 이어진다. 부석사의 건물들은 특히 지붕의 보와 서까래들이 드러나있어서 건축을 전공하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지붕이라는 공간이 새롭게 다가온 곳이었다. 야트막한 난간조차 허술하게 넘기지 않고 정성을 쏟은 것이 느껴졌다. 이름은 범종각이지만 정작 종은 없고 목어와 법고만 있다.

 

 

 

<범종각 원경>

범종각은 무량수전이나 조사당과 달리 조선시대 후반기에 세운 건물이다. 그래서 단아한 느낌을 주는 무량수전이나 조사당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런데 이 범종각은 참 특별하다. 지붕이 앞에서 보면 팔작지붕이지만 안에서 보면 맞배지붕인데 각각의 위치에서 너무 잘 어울린다. 경사진 곳에 지은 누각이라는 특성도 작용했겠지만 누가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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