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효창공원, 산천동 부군당

큰누리 2013. 7. 28. 11:43

효창공원(사적 330호).

효창공원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친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원래는 정조와 의빈 성씨 사이에서 정조의 큰 아들로 태어나 5세에 죽은 문효세자의 무덤인 효창원(孝昌園)이 있었던 곳이다. 몇년 전에 인기를 끈 TV드라마 <이산>의 여주인공을 기억하면 의빈 성씨에 대한 이해가 빠를 것이다.

♣ 이산(정조)역 : 이서진, 성송연(의빈 성씨)역 : 한지민. 영조역 : 이순재 분.

 

효창원 조성 후 경내에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 성씨, 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 숙의 박씨의 소생 영온옹주가 안장되었다. 일제는 1924년 6월에 효창원의 일부를 효창공원으로 만들고, 1945년 3월에 효창원 안의 모든 무덤을 고양의 서삼릉으로 옮겼다.

 

1946년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선생이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국민장으로 안장하고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효창공원 안에 조성했다. 1948년에는해방을 보지 못하고  중국에서 순국한 이동녕(임시정부 의장, 주석 역임)과 차이석(국무원비서장), 귀국 후 서거한 조성환을 안장했다. 1949년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총탄에 서거하자 국민장으로 안장함으로써 효창공원은 애국지사들의 묘역이 되었다.

 

 

<효창공원 내 장렬문> 

 

 

<효창공원 북한반공투사위령탑>

 

 

<백범 김구 선생의 묘>

묘역 앞에 백범기념관이 있다.

 

 

 

<효창공원 의열사>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김구 선생 등의 임정요인과 삼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7분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안중근 의사 가묘와 삼의사 묘역>

몇년 전에 들렀을 때는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지 못했는데 지금은 말끔하게 단장을 하고 개방했다. 왼쪽부터 안중근 의사 가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묘이다.

 

 

 

 

<삼의사 묘역의 안중근 의사 가묘>

석비에 '이곳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봉안되면 모셔질 자리로 1946년에 조성된 가묘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8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한 후 잡혀 뤼순감옥에서 순국했다. 해방 후 1970년대에 북한이, 1998년 4월에는 방한한 후진타오 부주석의 협조로 남한이, 이후 중국 다롄시 문화국이, 2008년에 다시 남한이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뤼순 감옥 뒤편의 야산과 공터를 조사했지만 4차례 모두 실패했다.

안의사는 광복 후 유해를 고국에 안장해 달라고 유언을 했지만 가족에게 시신조차 돌려주지 않고 암매장한 일제에 의해 타국에서 그 영령이 떠돌고 있다.

 

 

<이봉창 의사 생가 터>

지하철6호선 효창공원앞 역 1번 출구에 표지석이 있다.

 

 

 

 <남이장군 사당(용산구 용문동)>

남이장군 사당은 사근동에도 있다. 사당 안에는 중앙에 남이장군 무신도, 부군대감 내외, 최영장군, 정추정씨와 부인상, 토지관장, 천신대감, 맹인 내외 등의 무신도가 걸려있다고 한다. 개인이 관리하는 사당이 의례 그렇듯이 이곳도 문이 닫혀 내부를 볼 수 없었다. 

매년 10월 이곳에서 행해지는 남이장군사당제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 남이장군사당이 위치한 이유는 남이장군이 이 부근에서 병사들을 육성했는데 장군의 사후에 부하가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고 한다. 원래 당고개에 있었는데 장군이 현몽해서 1904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남이장군은 1441년(세종 23)에 태어나 17세에 무과에 합격하고, 26세에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을 격퇴하고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모죄로 몰려 27세에 거열형(車裂刑)을 당했다.

 

 

<남이장군사당에서 산천동 부군당 가는 길>

 언덕에 있는 남이장군사당에서 이 언덕을 돌아 내려가면 성심여중고가 나오고, 성심여중고 후문 바로 맞은편에 산천동 부군당이 있다.

 

 

<산천동 부군당>

서울에는 산천동 부군당을 비롯하여 부군당(당산동), 방학곳지 부군당(신길2동), 당인동 부군당(당인동), 창전동 부군당, 한남동 부군당, 서빙고동 부군당, 동빙고동 부군당, 산제당과 부군당(구기동) 등이 있다. 부군당은 마을의 액운을 막고 무사안녕을 빌기 위해 주민들이 마을의 신인 부군(府君)에게 치성을 드린 곳이다.

산천동 부군당은 약 400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산천동의 한복판 저지대에 있었으나 1980년대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북동쪽 400m 지점인 현 위치로 이전했다.

 

산천동 부군당은 특이하게 남이장군의 첫째 부인(권람의 딸)을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남이장군 사당제 때에 남이장군 사당의 종이 연꽃과 부군당의 종이 연꽃을 서로 교환(꽃받이행사)한다고 한다. 사당 안에는 부군 내외, 오른쪽 벽에 3명의 제석천이 모셔져 있다고... 

 

 

 

<산천동 부군당을 제대로 보려면...>

바로 이 곳이 부군당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이다. 이곳도 제를 올릴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문이 닫혀있기 때문에 정문에서는 제대로 볼 수 없다. 사당 맞은편의 작은 공원 울타리에서 보면 잘 보인다.

 

 

<산천동 부군당 맞은편의 도시가스 배관>

산천동 부군당을 둘러보고 길을 건너 맞은편에 있는 성심여중고 정문으로 향하는 길에 본 풍경이다. 참 많은 가구들이 산다, 무려 11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