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복건성, 산동성

중국 복건성 여행14 - 바다의 화원 고랑서(구랑위)의 이모저모

큰누리 2013. 9. 3. 22:13

고랑서(중국어 구랑위)는 복건성 하문시 관광의 꽃이다. 본래 화강암의 구릉지로 된 황폐한 섬이었으나 명나라 말에 정성공이 청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 거점으로 삼고, 청나라 말에 공공조계장정에 따라 섬 전체가 개방된 후 각국의 영사관들이 들어서고 섬 전체가 별장지가 되었다.

작은 백악관으로 불리는 팔괘루(바과러우), 19세기 유럽풍의 대사관, 저택들이 중국 전통의 양식과 어울려 '만국건축박물관'으로 불린다. 1년 내내 열대, 아열대성의 수목과 꽃으로 덮혀 '바다의 화원'으로도 불린다. 고랑서(鼓浪嶼)라는 이름은 섬의 남쪽에 있는 바위에 파도가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가 북소리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원래의 이름은 원사주(위엔사저우, 圓沙州)였다.

 

≪대만을 개척한 명나라 무장 정성공≫

고랑서(구랑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명나라 말의 유신인 정성공과 숙장화원을 세운 림이가(린얼지아)이다. 정성공은 명나라 말에 무역업과 해적으로 활동했던 정지룡과 일본인 여성 사이에서 일본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명나라의 수군 지휘자가 되면서 7세 때 푸젠성(복건성)으로 건너와 난징에서 교육을 받았다.

1645년 청나라에 의해 난징이 함락되자 부친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황손인 주율건을 가황제로 옹립했다. 그 공로로 명 황실의 성인 '주씨' 성을 하사받았다. 청의 군대가 복건성으로 쳐들어오자 부친은 명을 배신하였으나 정성공은 명의 가황제를 계속 받들었다. 12년 동안 그는 뛰어난 조직력과 전략으로 금문과 하문을 중심으로 복건성 일대의 해안에 강한 세력을 구축하였다. 1659년 10만 대군으로 장강 유역의 해상 원정을 감행했으나 실패하고, 1661년 2만여 군을 이끌고 네덜란드의 요새가 있던 타이완(대만)의 안평에 상륙하여 네덜란드군을 축출하였다.

 

정성공은 대만에서 정치적인 입지를 굳히고 지휘하던 군인들과 복건성 주민들을 대만에 정착시켰다. 이후 본토를 회복하려 했으나 1662년 6월에 사망하였다. 그의 아들 정경은 정성공 사후 20여 년 동안 대만에서 청나라에 대항했으나 1881년 사망했고, 대만은 1883년에 청나라에 함락되었다. 정성공은 중국에서 처음 대만을 개척한 사람으로 신이자 전설적인 영웅이 되었다. 청나라는 그에게 '충절'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대만에 사당을 세우게 했다.

정성공은 20세기 들어 반청운동의 원조가 되었고, 민족주의자들에게 침략자들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현재 대만과 중국 공산당 정부 양쪽에게 추앙을 받고 있다.

 

구랑위 숙장화원 설립자 림이가(린얼지아)

림이가(린얼지아)는 대만인으로 대만이 일본에게 정복 당하자 하문으로 건너왔다. 사업에 성공한 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고랑서에 그의 호인 '숙장'을 따 숙장화원을 만들었다. 일본 패망 후 림이가는 화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대만으로 돌아갔다.

 

 

구랑위근대건축군은 중국 국가급풍경명승구 환경보호를 위해 차를 운행하지 않는다. 면적 1.84㎢, 해발 92.6m, 해안선 길이 8km의 낮고 작은 섬이므로 걷거나 전동관광차를 타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하문 선착장에서 배로 10분 정도 걸린다.

 

 

<하문 선착장 부근의 인물상>

표정이나 동작이 아주 재미있는 하문 선착장 부근에 있는 인물상이다. 독특한 머리채와 하의만 걸친 차림으로 보아 이 지방의 원주민인 듯 하다. 중국은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보는 오만한 중화(中華)사상으로도 모자라 주변 민족들을 몽땅 싸잡아서 오랑캐 취급을 했다.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중국 남부의 복건성 주변은 삼국시대에 오나라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의 漢族들에게는 이런 우스운 모양을 한 남만이었을 것이다.

 

 

<하문 선착장의 유람선들과 고랑서(구랑위)>

서(嶼)는 '작은섬'을 뜻한다. 바다 건너 보이는 곳이 고랑서(구랑위)이다. 가장 높은 일광암, 빨간 지붕의 샤먼박물관이 두드러져 보인다.

 

 

<하문 선착장에서 본 구랑위(고랑서)>

왼쪽 끝이 일광암이고 중앙의 붉은 돔 건물이 작은 백악관으로 불리는 샤먼박물관이다. 

 

 

<하문(샤먼) 선착장>

 

 

 

<고랑서(구랑위) 선착장>

 

 

<고랑서(구랑위) 선착장의 숙장화원 설립자 림이가(린얼지아)에 대한 안내문>

림이가는 허우이로도 불린다. '2013년에 77세로 세상을 떠난 뒤 유골을 고랑서 해변에 뿌렸다. 하문시 영예시민이고, 세계적인 피아노박물관을 설립했다'는 등의 내용인 것 같다. 

 

 

<전동 관광차로 고랑서 한 바퀴>

고랑서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것도 허용이 안 된다고 들었다. 아래 사진의 전동 관광차를 타면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갈 때 한쪽으로 돌아 숙장화원 근처에 내린 후 일광암이나 숙장화원을 둘러보고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나온다. 골목길이 좁아 이 전동차가 지나면 걸어서 관광하는 사람들은 담벽으로 몸을 붙여야 할 정도이다. 탑승 비용은 편도 50위안이라고 들었는데 우리는 왕복 75위안(13,500원 정도)을 주었다.

걸어서 가이드가 안내하는 특별한 건물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마지막 날이라 너무 지치고 날이 더워서 이 관광차를 탔다. 편하게 섬 관광은 했지만 중요한 포인트를 놓쳐서 유명한 건물이 무엇인지 여행 후에 고달프게 찾아야 했다. 정확한 지 어떤 지도 모르겠고...

 

 

 

<고랑서(구랑위)의 숙장화원 옆 해변>

고랑서의 남서쪽 쯤 되는 것 같다. 이 해변을 끼고 사진 왼쪽으로 숙장화원이 들어서 있다.

 

 

<숙장화원 옆 해변에서 본 건물>

어떤 이의 글을 보니 전면의 빨강 돔 지붕 건물이 '풍금박물관'이라고 되어 있는데 가 보지 않아서 확실한 건 모르겠다. 블로거나 사진가들이 박물관 입구나 내부만 촬영하고 건물 전체를 촬영한 사진이 없었다. 게다가 숙장화원 안에 피아노박물관1, 2가 있어서 더 혼동이 된다.

 

 

<일광암으로 오르는 길의 아파트>

아치형 창문에 석재로 된 아파트라 눈에 띄고, 현지인의 거주지이기 때문에 이 아파트가 고랑서 관련 사진에 의외로 많이 올라와 있었다.

 

 

<일광암 입구에서 내려다 본 건물>

유명 건축을 놓쳤기 때문에 혼자서라도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모든 건물들이 다 특징이 있고 예뻐서 내게는 다 특별해 보였다.

 

 

 처음엔 이 건물이 팔괘루(바과러우)인 줄 알았다. 문이 닫혀있는 걸로 보아 개인 저택 것 같다. 사진 왼쪽 위로 일광암이 보인다.

 

 

 이 건물도 높은 위치에 있고 뾰족지붕이어서 어지간한 곳에서는 모두 보였지만 무슨 건물인지는 모르겠다. 숙장화원에 딸린 건물 중의 하나 추측한다.

 

 

전동차에서 스친 이름 모르는 건물...

 

 

<고랑서 선착장 부근의 상가>

이 부근에 음식점들이 밀집되어 있고 먹거리가 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해산물, 군것질 거리, 전병, 국수류 등... 고랑서에는 대만 음식들이 특히 많다고 한다.

 

 

<고랑서(구랑위) 선착장 부근>

전면의 러시아풍 빨강 건물이 무척 예쁘다. 관광을 하다 지친 관광객들은 이렇게 쉬기도 한다. 이 사람들은 전동차를 기다리거나 내린 뒤 쉬는 사람들이다.

 

 

 

<구랑위 해안에서 본 샤먼(하문)시>

 

 

<샤먼(하문)시를 마주한 고랑서 선착장 쪽> 

이쪽 방향으로 나가면 우리는 놓쳤지만 고랑서란 이름의 유래가 된 고랑석들이 해안에 있다. 더 나가면 거대한 정성공 동상과 정자가 있는 호월원이 있다. 하문에서 배를 타고 들어올 때부터 섬 속의 섬 같은 호월원이 궁금했지만 우리 코스에서 제외되었다. 호월원이라는 이름도 사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알았다.

 

 

<고랑서의 고랑석들>

고랑석이란 안내문이 있는 특별한 돌은 사진 왼쪽의 경비초소 같은 건물 왼쪽에 있는데 놓쳤다. 사진 앞으로 보이는 돌들도 고랑석들이다. '고랑석'은 '파도가 치면 북소리가 나는 돌'이란 뜻으로 고랑서(구랑위)란 섬 이름이 이 돌에서 유래되었다. 중국인들은 과장이 심하기 때문에 파도가 치면 정말 바위에서 북소리가 나는지 좀 의심스럽다. 아래 아래 사진의 오른쪽으로 호월원과 정성공 석상이 보인다.

 

 

 

<호월원과 정성공 석상>

석상의 높이가 엄청나게 크다. 시간 여유가 있었더라면 호월원까지 걸어서 들러보고 싶었다.

 

 

 

<고랑서 선착장 앞에서 본 샤먼(하문)박물관>

일광암과 더불어 섬 밖에서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이 건물이 바로 '작은 백악관'으로 불리는 샤먼박물관이라고 한다. 그런데 관광 안내도 1곳에는 이 건물 그림 아래에 '풍금박물관'이라고 표기되어 있어서 혼란스럽다. 많은 블로그와 하문 관련 신문, 책자들을 뒤져본 결과 샤먼박물관이 맞는 것 같다.

자료들을 종합한 결과 샤먼보우관(하문박물관)... 구랑위 북쪽에 있으며, 1907년 은행가 림학수(린허서우-숙장화원 주인인 림이가의 사촌형제)가 백악관을 모방해 지은 별장이다. 1988년 중국정부가 박물관으로 개조했고 팔괘루(바과러우)라고도 불린다. 돔형의 붉은 지붕이 인상적이며, 샤먼의 근대 건축물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하문역사관, 국제예품관, 하문체육명성관, 석조대관 등 5개의 전시실에 1천여 점의 전시물이 있다. 

 

 

<고랑서 선착장 앞>

 

 

<고랑서 선착장 매표소>

 

 

 <고랑서 선착장 앞의 웨딩 촬영을 하는 신부>

다른 이들의 사진에서도 이곳의 신부들은 하나 같이 빨간(Chinese Red)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