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열하일기 코스

열하일기 따라가기 번외 - 뤼순(여순)감옥

큰누리 2016. 8. 29. 23:18

<뤼순형무소(Lushun Prison), 뤼순일아감옥구지, 여순감옥>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시(大連) 소재. 중국 국가중점역사문화재.

1902년 러시아가 건축하였으나 러일전쟁 후 일본이 1907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확장하였다. 규모는 26,000㎡로 3층 높이에 길이 725m의 붉은색 담벽으로 둘러싸여져 있으며, 약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감방 275실, 검신실, 고문실, 사형장 등과 15개의 공장이 있다.

 

수감자 대부분은 중국인, 한국인, 러시아인 정치범, 사상범이었으며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박희광 등의 항일지사들이 이곳에서 순국했다. 1906년~1936년 사이의 수감자는 2만여 명에 달했고,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후에는 수감자가 급격히 늘었으며, 전쟁 막바지에 이른 1942년~1945년에 700여 명의 수감자가 이곳에서 처형을 당했다.

1945년 8월 일본 패망 후 소련군이 뤼순에 주둔하면서 사용이 중지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1971년 중국이 이곳을 복원해 일반에게 개방하였다. 군사기밀 보호 등을 이유로 외국인에게는 방문을 불허하다 2009년부터 외국인에게도 개방하고 있다.

 

 

<뤼순감옥(여순감옥)>

현재 명칭은 여순일아감옥구지(旅順日俄監獄舊址)이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1902년에 러시아가 처음 지은 건물이다. 뒷쪽과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붉은 벽돌 건물들은 1907년에 일본이 증축한 것.

 

 

<여순감옥>

사진 왼쪽 끝에 감옥 출입구가 있고, 감방은 관람자들의 진행 방향으로 좀더 나아간 후 좌회전해서 입장한다. 오른쪽의 붉은 색 건물은 감방 3개동 중의 하나이고, 잔디밭의 불룩 튀어나온 부분은 식품 저장고이다.

 

 

<여순감옥 배치도>

아래(오른쪽)의 1/2 방사선 모양의 건물(진회색 지붕과 노란색 벽)은 감방이고, 왼쪽의 좀 작은 붉은 벽돌 건물들은 일제가 증축한 공장들이다. 현재는 대부분 전시관으로 용도 변경되었지만... 원경 왼쪽 아래 끝에 있는 작은 건물은 사형장이다.

 

 

<서대문형무소 배치도>

2014년에 안산 자락길에 갔다가 촬영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다. 방향은 다르지만 감방이 있는 주 건물은 감시를 쉽게 하기 위해 여순감옥처럼 1/2 방사선 모양으로 지었다.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은 사진 오른쪽 위 밖 끝부분에 있다.

 

 

<여순감옥과 감방 내부>

 

 

 

<안중근 의사 수감방>

현지 안내문에 의하면...

--조선애국지사 안중근을 구금했던 감방--

안중근(1879~1901)은 조선 황해도 해주부 사람이다. 1907년 조선의병운동에 가담하여 참모중장을 담당하였으며, 1909년 '대한독립동맹'에 가담하였다. 동년 10월 26일 그는 중국의 하얼빈역에서 일본제국주의 중심인물로 조선 초대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체포된 후 11월 3일 여순감옥으로 압송되었으며, 일본의 '국사범'으로 분류되어 간수부장 당직실 옆에 있는 이 감방에 단독으로 구금되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안중근은 감옥 교수형장에서 순국하였으며 그 때 나이 32세였다. 

 

 

 

<안중근 의사 수감방 내부>

 

 

 

<여순감옥 고문실>

수도의 용도가 궁금했는데 죄수의 입안에 수도를 연결한 후 배를 때리거나 무거운 것을 올려놓고 밟아 입, 귀, 항문 등으로 수분을 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수분만 빠졌겠는가?

 

 

<1902년에 러시아가 처음 건설한 여순감옥 구역>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감방이 있고, 모든 통로 중앙에는 윗층 복도에서 간수들이 아랫층 감방을 잘 감시할 수 있도록 철판(?)을 설치했다.

 

 

<1907년에 일제가 증축한 여순감옥 구역>

앞쪽의 회색 본 건물(감방 1호~33호, 58호~ )은 1902년에 러시아에 의해 건축되었다. 이 부분은 뒤쪽 구역으로 34호부터 57호까지는 일본이 붉은 벽돌로 증축해서 벽의 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순감옥 35, 36호 방(이회영, 신채호 선생 수감방)>

신채호 선생은 10년형을 선고받고 1930년부터 복역하다 1932년에 35호방에서 순국했고, 이회영 선생은 1932년에 체포되어 36호방에 수감되었다가 가혹한 고문으로 순국했다.

 

 

<여순감옥 세부검신실의 죄수복>

 

 

<여순감옥 제1공장>

러시아가 원래 지은 회색의 감방 외에 일제는 15개의 공장을 증축한 후 군수품을 생산했으며 제1공장에서는 군용 장갑을 생산했다.

 

 

<뒤에서 본 큰 '大'자 모양의 여순감옥 감방>

누런 벽돌로 러시아가 건축한 건물과 붉은 벽돌로 일본이 건축한 건물이 확실히 나뉜다.

 

 

<여순감옥 제3공장>

 

 

<여순감옥 의무계(병동)>

 

 

<여순감옥 의무계(병동) 감방>

 

 

<여순감옥 의무계(병동) 격리병실>

 

 

<동북쪽 끝에 있는 여순감옥 사형장>

방향은 다르지만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사형장과 비슷하다. 후면 담장에는 죄수들의 시신을 뒷산 공동묘지로 실어낸 통로가 폐쇄된 채 남아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형장은 비공개이다.

 

 

<여순감옥 사형장 교수대>

목에 거는 밧줄이 천장에 매달려 있고, 밧줄 아래 네모난 구멍 밑에는 죄수의 시신을 담는 나무통이 있다.

 

 

 

<나무통 안의 죄수의 시체>

아래 부분의 병은 접혀지지 않는 죄수의 뼈를 녹이기 위한 염산병이라고 한다.

 

 

<여순감옥 사형장과 감시초소, 시체를 나르던 통로>

왼쪽 건물은 사형장, 오른쪽 담장의 안내문이 붙은 문(현재는 폐쇄)은 죄수의 시신을 공동묘지로 나르던 통로이다.

 

 

<여순감옥 이식묘지관>

이식묘지는 '(공동)묘지를 재현한 곳'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조악한 인형을 보면서 콰이강의 다리 건설 장면을 재현한 태국 칸차나부리의 전쟁박물관이 떠올랐다. 검신실에 전시된 갈색 죄수복을 입은 죄수들이 사형 당한 죄수의 시신이 담긴 통을 옮겨 공동묘지에 묻는 장면을 순서대로 재현한 것이다. 시신이 든 나무통들이 열을 지어 묻혀있고, (두번째 사진 윗부분에서 잘렸지만) 들개(혹은 늑대)들이 시신을 파먹고 있는 장면이다.

 

 

 

<여순감옥 일본군 자료관>

 

 

<국제지사관(국제전사재여순 특전)>

2009년 중국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와의 공조와 상호 신뢰를 위해 만든 600㎡ 규모의 별관이다. 안중근 의사, 단재 신채호, 우당 이회영 선생의 동상과 그들의 항일운동 사료, 관련 기사들이 3개의 칸에 각각 전시되어 있다. 나머지 칸에는 한인애국단에서 활동하다 순국한 유상근.최흥식 선생 등의 흉상과 사료, 제3국 항일지사들에 대한 간략한 사료가 전시되어 있다. 앞에서부터 안중근 의사 방- 신채호 선생 방- 이회영 선생 방- 유상근, 최흥식 선생 및 기타 지사들 방이다.

 

 

<국제지사관의 안중근 의사 방>

오른쪽 끝에 있는 故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의 (사진과) 글에서 중국인들의 안중근 의사에 대한 존경심과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중일갑오전쟁 후, 중국조선인민의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반대하는 투쟁은 본 세기 초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국제지사관의 단재 신채호 선생 방>

 

 

<국제지사관의 우당 이회영 선생 방>

 

 

<국제지사관 4번째 방의 최흥식, 유상근 지사 흉상>

대한민국정부에서 이분들에게 수여한 훈장증과 영국, 미국인을 비롯한 몇 나라 수감자들에 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두 분은 한인애국단 소속으로1932년에 함께 대련에서 일본 고관을 암살하려다 계획이 탄로나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 중 광복 전날에 살해되었다.

 

 

<여순감옥 안중근 의사 사형장>

감옥 끝에 있는 사형장이 1934년 일본에 의해 증설되었으니 감옥 안쪽에 있는 이 사형장은 그 이전에 사용된 (최초의) 사형장일 것이다. 내부에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곳'임을 알리는 내용과 밧줄에 묶인 채 이목구비 부분만 진하게 포토샵한 안중근 의사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진이 있다. 기타 중국과 한국 저명인사들의 안중근 의사에 대한 자필 평이 전시되어 있다.  

 

 

 

<안중근 의사 사형장 모습>

감옥 끝에 있는 사형장처럼 이곳도 윗층에서 죄수의 목에 밧줄을 걸어 교살을 한 후, 뚫린 구멍으로 아래층의 나무통에 시신을 떨어뜨리는 구조이다. 밧줄 아래 중앙의 사진은 사형 당하기 직전 흰 한복을 입고 단아하게 앉아있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년 추모제>

안중근 의사 동상과 옥중에서 쓴 붓글씨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순감옥에서 복역한 죄수 중에서 유일한 개인 추모공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