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터키 여행16. Efes1 (오데온, 아르테미스신전, Hydreion), Citto 플러스 매장

큰누리 2018. 11. 18. 23:27

<2018. 8/5. 6일째 일정1>

새벽에 파묵칼레 출발- Citto 플러스 매장에서 가죽제품 구입- 한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점심- Efes(Ephesus) 고대유적 관람- 그리스인 마을 쉬린제 방문- 숙박.

 

 <알쓸신잡>

유럽 3대 평야 :  콘야(아나톨리아) 평야(알렉산더와 다리우스 2세 전쟁, 알렉산더 승리), 프랑스평야, 스페인 평야를 차지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치열한 전쟁.

 알렉산더 대왕의 관(시신)은 이스탄불박물관에 있음. 팔을 벌린 채 묻어 달라고 유언을 했는데 실제 그 자세가 맞다고 한다.

 터키는 지반이 약해 KTX같은 고속철도는 없음.

 파묵칼레(목화의 성)란 이름이 있을 정도로 터키는 목화를 많이 심고, 여성들 히잡 착용 등의 영향으로 이불이나 타올 질 좋은 면제품이 발달.

마당에 올리브나무가 있으면 아들이 있다는 의미이며, 15년이 지나면 올리브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여 그 나무를 팔아 결혼비용으로 사용.

 

 <믿거나 말거나 현지 가이드가 권한 터키에서 꼭 사야 할 물품의 종류와 가격> 

♣ 로쿰 터키를 대표하는 과자로 보기만 해도 너무 달 것 같았음. 지방 휴게소나 이스탄불 탁심광장에서 사면 20리라, 시내에서 사면 40리라.

질레트 면도기6, 폼 크림까지 들어있는 것이 38,000 원대이므로 엄청 쌈.

비옥신(머리카락 영양제)과 악마의 발톱(관절염약)

 올리브로 만든 폴리코사놀(쿠바는 사탕수수로 만듦. 혈관 청소용으로 오래 먹으면 지혈에 문제가 생기므로 6개월 정도만 먹어야 됨.)

블랙 커민시드(검정깨) : 췌장암 예방에 최고. 반드시 사전에 먹어야 효과가 있음.

장미유(로즈오일) : 다마스커스(터키 남부지역)에서 나오는 얼굴만한 장미 증류수로 여자들의 화장품(가루 분)으로 인한 납중독 치료에 효과가 탁월했음. 장미의 전쟁 때 프랑스가 1/3 정도 약탈했으며, 만든 사람이 산 지명(랑콤)으로 상표화. 요즘엔 살 터짐 방지용으로 사용되는데 3방울이 좋으며 매일 밤에 1번씩만 사용함. 우리나라의 1/6 가격이라고...

토스카나 : 가장 품질 좋은 최고급 양의 등가죽을 이용하므로 가볍고 주름이 없으며 부드러움. 구입하여 가을 내내 입었는데 착용감이 정말 좋고 가벼우며, 뭉치면 한 웅큼 밖에 안 됨. 터키의 특산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고 애용 중임.

카페트 : 면제품부터 실크, 합성 등 소재가 다양하며, 수제품은 3년여에 걸쳐 직조하므로 가격이 상당히 비싸지만 품질은 세계 최상이다.

 

 버버리, 프라다 신발, 몽펠(골프웨어, 폴로 셔츠) 구입하느라 580여 달러를 지른 이브자리 매장에서 현지인들은 질 좋은 면 이불을 많이 산다고 한다. 나는 버버리 프렌치 코트, 면 스카프, 큰딸 버버리 티셔츠를 샀다.

 

이브자리 매장을 지나자마자 목화밭, 옥수수밭 너머로 라오디게아(파묵칼레 주변의 고대 7대 교회 소재지)를 지나쳤다. 라오디게아를 지나 오른쪽으로 계속 도로와 이어지는 협궤철도는 이스탄불에서 이집트까지 가는 오리엔탈 특급 열차 철로라고 한다이어 옥수수 밭, 올리브 밭이 이어지고, 그 너머로 능선이 칼 같은 아름다운 산들이 이어졌다. 도로 주변 마을의 가로수로 소나무가 눈에 자주 띄었는데 밑둥에 하얀 석회가루를 발라 놓았다. 2009년에 중국을 경유하여 백두산에 갔을 때 연변의 도로에서 본 익숙한 풍경이었다. 석회가루는 벌레 방제도 되고 전기가 부족한 터키의 시골도로에서 밤에 야광등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10리라를 주고 오렌지쥬스를 사 마셨는데 석류쥬스와 함께 터키 어디서나 믿고 마실 수 있는 상큼하고 새콤달콤한 맛이었다. 셀주크까지 이동하는 동안 앞, 뒤로 무화과 밭이 이어졌다. 셀주크의 토스카나 양피 옷은 터키에서도 품질이 탁월하다고 한다. 중간에 스친 고원 도시 콘야(Konya) 과거 이고니온이라 불렸으며, 유럽 3대 평원 중의 하나라 영토 다툼이 심했던 곳이라고 한다. 11세기 셀주크 터키의 수도가 된 이래 크게 번성하였으며 카페트와 가죽제품이 유명하다고 한다.

 

오늘(8/5) 17:30분부터 우리가 귀국할 아시아나항공 온라인 체킹이 가능하다며 알아서 티켓을 예매하라고 했다. 이전엔 여행사에서 당연히 귀국행 비행기표를 구매했는데 지금은 각자 알아서 한다! 물론 스마트폰 사용이 서툰 사람들은 가이드가 대신해 준다. 나는 아예 인터넷도 다 막아놓고 출국해서 기회 자체가 없었고, 여행 중에도 틈만 나면 인터넷 게임을 하는 50대 초반의 동생이 가장 먼저 예매에 성공했다. 

내일(8/6. ) 일정은 트로이 관광이며, 월요일이라 교통체증을 고려해 일찍 출발(06:00)한다고 했다. 터키 대도시의 교통체증은 우리나라 저리 가라 수준으로 정말 대책이 없다.

 

 

<일기 부적합으로 못탄 열기구를 눈으로만...>

날은 멀쩡하지만 바람이 강하다는 기상청의 열기구 탑승 불가 판정으로 8/2. 카파도키아에서 터키 관광의 꽃인 열기구 탑승을 놓쳐서 정말 아쉬웠다. 우리가 에페스를 향해 버스로 이동하는 8/5. 새벽, 카파도키아가 아닌 파묵칼레 석회붕 상공에서 열기구들이 하늘을 향해 오르는 중이다. 사진의 열기구는 탑승한 사람까지 확인이 가능할 정도이다.

 

 

<이스탄불에서 이집트까지 이어지는 오리엔탈 특급 열차 협궤철도>

예전의 수인선 협궤철도처럼 철로 폭이 좁다. 수인선 협궤철도는 고교시절에 소풍을 가서 딱 한 번 탔는데 없어졌고, 주변에 있던 염전과 결핵요양원 터는 지금은 모두 송도, 남동공단 된 것 같다.  

 

 

<셀주크의 면세점 Citto 플러스 매장>

가장 품질 좋은 최고급 양의 등가죽을 이용한 토스카나(주름이 없을 정도로 부드러움.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양가죽은 뱃가죽) 제품을 판매한다카파도키아 여행 때 현지 가이드가 입은 가죽제품이 종잇장처럼 얇고 부드러워 물었더니 Citto 플러스 매장에서 구입했다고 해서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입은 것과 같은 한국에서 350만원에 팔린다는(진위 여부는 모름) 토스카나 가죽 점퍼를 65만원 대에 구입했다.

이 매장의 특징은 남녀 모델들이 직접 등장하고, 후반부에 손님을 모델과 함께 무대에 세운다는 것이다. 흐름을 보아하니 살 만한 사람을 모델로 올리는 듯 했다. 내게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

  

 

 

<점심을 먹은 한식당>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 중식, 터키식을 혼합식당의 비빔밥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했는데 실망스러웠다. 비빔밥은 어디에서 먹어도 확실한 메뉴인데 이곳은 뻣뻣한 야채가 많이 들어있어서 씹느라 이가 아플 지경이었고, 맛도 기대 이하였다.

특이한 것은 별매하는 신라면이었는데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 융프라우에서 사발면을 먹으려면 뜨거운 물 따로, 젓가락 따로라 15유로인지 20유로(한화로 2만원을 훌쩍넘는다!)가 든다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고추와 상추를 한 접시씩 담아놓고 1달러를 따로 받고 팔았다. 식당 주변에 고추밭과 들깨밭이 있는 걸로 미루어 직접 재배한 야채를 재료로 쓰는 것 같았다. 

 

  

 

<한식당 밖에서 한국 관광객의 도움(!)을 요청하는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

'자식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서 손주들을 키우고 있으니 기념촬영도 하면서 격려해달라' 한글로 된 문구와 이 분이 한국전쟁 때 찍은 사진들을 늘어놓았다. 일행 중 많은 이들이 현금을 기부했다.

 

 

<드디어 Efes(Ephesus) 입성!>

우리는 남문으로 들어가 Curetes거리를 통과하며 오데온, 프라타네움(시청사 터), 아르테미스 신전 터, 도메티안 신전, 물의 궁전(Hydreion)과 메미우스 기념비, 헤라클레스의 문, 하드리아누스 신전, 테라스 하우스, 셀수스 도서관 등을 보고, 열주도로를 거쳐 대극장(원형경기장)을 본 후 북문으로 나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셀수스도서관 옆으로 이어진 커머샬 아고라(상업지구) 그 뒤쪽으로 이어지는 마리아 교회를 통으로 놓친 것이다.

 

 

<Efes 고대 유적 발굴 과정 안내문>

 

 

<안내문으로 본 Efes(Ephesus) 略史>

 에페스 역사 안내문1 : B.C. 7,000년경-B.C. 334. Early Ephesus. 청동기시대부터 리디아 - 페르시아제국 등의 지배를 받다가 B.C. 334년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하기까지의 시기 B.C. 4세기의 아르테미스 신전 지진으로 사라졌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 의 하나로 꼽힐 만큼 탁월한 건축이었다.

 

 에페스 역사 안내문2 : B.C. 3세기-B.C. 1세기. Hellenistic Ephesus. 불불산과 파나이르산을 끼고 9km의 성벽이 세워지고항구와 저지대, 고지대의 시가지, Curetes거리, Commercial Market(상업지구), 극장, 스타디움 등이 세워졌다. B.C. 2세기에 Terrace House 2가 세워지고 B.C. 2세기에서 B.C. 1세기에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로마 스타일을 본뜬 강력한 대도시가 형성되었다.

 

 에페스 역사 안내문3 : B.C. 1세기-A.D. 5세기. Roman Ephesus. B.C. 2세기부터 로마인들의 에페스 거주자가 늘었고B.C. 33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이 때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아우구스투스 황제, 옥타비아누스 이름이 안내문에 등장한다  예수 사후 사도 바울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안주한 곳으로 알려졌으며, 313년 이후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도시의 성격도 기독교화 되었다.

 

 에페스 역사 안내문4 : A.D. 4세기-A.D. 14세기. Byzantine Ephesus. 유스티아누스 대제 때 건립한 하기오스 요아네스 테오로고스 바실리카를 필두로 고대 로마신전 대신 교회(Basilica)로 대체되었다. 1090년 셀주크 왕자 Tengribirmis가 등장하고 1096년 테오로고스 언덕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1304년 비잔틴제국은 기울기 시작하여 15세기에 Ottoman 왕조로  넘어갔으며 현재 이슬람의 유적으로 이사 베이의 모스크가 있다.

 

이후 에페스는 강에 토사물이 쌓여 항구 기능이 저하되고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면서 점차 도태되고 사라졌다가 19세기에 발굴되기 시작했다.

 

 

<Ephesus 고대 역사(Early, Hellenistic, Roman, Byzantine) 안내문>

윗단 左 에페스 역사1 : B.C. 7,000년경-B.C. 334. Early Ephesus,

윗단 右 에페스 역사2 : B.C. 3세기-B.C. 1세기. Hellenistic Ephesus

아랫단 左 에페스 역사3 : B.C. 1세기-A.D. 5세기. Roman Ephesus,

아랫단 右 에페스 역사4 : A.D. 4세기-A.D. 14세기. Byzantine Ephesus이다.  Ephesus는 영어식 표기, Ephesos는 그리스식 표기라고 한다.

 

 

 <고대 Efes(Ephesus) 지도>

 

 

<입구 쪽에서 본 Efes(Ephesus) 공중목욕탕 터(오른쪽)와 오데온(콘서트 홀, 왼쪽)>

 

 

<Efes(Ephesus) Basilica Stoa오데온(콘서트 홀)>

도리아식 기둥이 2열로 늘어서 있는 곳은 Basilica Stoa(대형 건물), 오른쪽 뒤 반원형 계단같은 건물은 Odeon(콘서트 홀, 소극장)이다.

 

 

<Basilica Stoa에서 이어지는 Efes 중심도로들>

바실리카 스토아(Basilica Stoa)를 중앙에서 본 모습으로 원래 지붕이 덮인 2층 건물이었으나 현재 기둥만 남은 것이라고 한다. 남문에서 출발 직후의 모습으로 바실리카 스토아를 관통 도로는 Curetes 도로로 이어져 에페스 중심을 관통하며 셀수스 도서관까지 나아간다. 다시 도서관 앞에서 90도 오른쪽(동쪽)으로 꺾이며 Marble 스트리트가 대극장까지 이어지고, 대극장 앞(북쪽)으로 Harbor 스트리트 바다까지 이어진다.

중심도로 양쪽으로 에페스의 중요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왼쪽은 불불산이다.

 

 

<Efes 오데온(소극장, 콘서트 홀)과 출입문>

 1,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고, 지붕이 있었다고 한다.

  

 

 

<Efes 로디안 열주와 프리타네움(시청사 터), 아르테미스 신전 터 안내문>

 

 

<Efes(Ephesus) 프리타네움(시청사 터), 아르테미스 신전 터>

 

 

 

<Efes(Ephesus) 아르테미스 신전 터에서 발굴된 아르테미스 여신像>

바티칸박물관에서 포도송이처럼 가슴이 달린 여성상 궁금했는데 바로 아르테미스 여신이었다. 아르테미스(로마신화의 다이아나 - 달과 사냥의 여신)는 다산의 상징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결혼도 안 했고, 차갑고 도도하기로 유명한 여신인데... 주절주절한 가슴들 아래에는 동물상이 층층이 조각되어 있다. 현재 이곳에서 출토된 다른 조각상들과 함께 에페스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Efes(Ephesus) 북문  출구에 있는 기념품점 앞의 조각상들>

이곳 에페스에서 출토 되었음직한데 왼쪽은 이름을 모르겠고, 오른쪽 두상은 알렉산더 대왕이다. 이 외에도 도미티안 황제상은 박물관에 있고, Curetes 거리에는 멤미우스 기념비와 헤라클레스의 문, 도미티안 신전 입구에 니케 여신상 등이 남아있다.

 

 

<Efes(Ephesus) Curetes 거리>

Curetes 거리에서 Curetes는 시청사 성화를 관리하는 성직자였다고 한다. 

 

 

<Efes(Ephesus) Curetes 거리의 Hydreion(물의 궁전)과 멤미우스 기념비>

 양쪽에 인물상이 있고, 중앙은 축대 위에 세운 분수대로 추정되는 돌조각이 있다.  내리막쪽의 홀로 선 인물상은 현재 많이 마모되긴 했지만 이 도로에서 가장 높은 돋을새김을 했다.

 

 

 

 

<Efes(Ephesus) Curetes 거리의 건물 잔해>

남, 북문쪽에 상당량의 석재들이 쌓여 있고, 특히 대극장 앞에서 하버 스트리트에 이르는 구간에 가장 많은 건물 잔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 석재들은 언젠가 구석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을 수 있기나 할까? 

 

 

<Efes(Ephesus) Curetes 거리를 되돌아 본 모습>

이 지점에서 서쪽으로 도미티안 신전까지 막다른 도로가 이어진다. 도미티안 신전에 들르지는 않았지만 도미티안 황제를 위해 지은 신전이라고 한다. 도로가 갈라지는 중심에 놓인 대형 석조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꽤나 귀하게 사용되었을 법하다. 석조(石槽) 같기도 하고, 꼬마 분수 같기도 하고...

 

 

<Efes(Ephesus) Curetes와 도미티안 신전으로 갈라지는 지점의 대형 석조물>

 

 

<Efes(Ephesus) 도미티안 신전>

정면의 기둥 2개가 있는 지점이 도미티안 신전 터이고, 보수 중인 왼쪽은 도미티안 황제와 관련된 다른 용도의 건물이다. 

 

 

<Efes(Ephesus) 도미티안 신전 입구의 니케(승리의 여신)像>

이 여신의 포즈에서 나이키 상표가 만들어졌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머리는 없어졌지만 우아한 몸과 섬세한 날개를 단 환조(완전입체) 니케상만 알고 있었는데 그에  비해 다소 투박하다.